소설리스트

혹성강호-124화 (125/172)

혹성강호. 124. 출정.

124. 출정.

드디어 샤크가 움직인다. 진동을 퍼트리며 울음을 토한다. 기체가 떠오르는 느낌이 아랫배의 싸한 감각으로 확연하다. 착륙장이 점점 멀어진다.

‘대륙으로 간다······!’

설명하기 힘든 희열 속에서 패튼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바로 떴다. 샤크의 창으로 보이는 정찰대본부의 전경을 눈에 담으며 현실을 삼켰다.

‘6기의 샤크.’

대륙으로 떠나는, 아니 출정하는 규모다.크다면 크다 할 수 있고 작다면 작은 규모다.패튼 자신과 정찰대 한팀 스무 명이 탑승한 기체, 게틀러와 빅풋을 실은 기체가 둘, 매화검문 인물들이 탄 기체가 하나, 나머지는 철상자들이다.내용물이 뭔지 모르지만 저들이 준비한 무기이리라.

‘어떤 장비를 실은 건지 모르겠지만.’

어두워지는 시간 속으로 시야에서 멀어지는 본부를 응시하며 패튼은 작게 중얼거렸다.

“죽을 길이 될 수도 있고 살길이 될 수도 있겠지.”

지금 가는 길이 그렇다.대륙의 그놈을 찾아가는 출정 아닌 출정, 결과에 달렸다.그놈은 지옥사신이라고 불린다.놈을 도모하는 이 행로에서 죽을 수도 있다. 반대로 성공적인 결과로서 출세 길이 열릴 수도 있다.

‘그놈······’

지옥사신, 놈이 상해를 거쳐 일을 벌이기 전에는 지금과 생각이 달랐다. 힘들겠지만 잡아 죽이리라 여겼다. 그런데 이젠 아니다.

‘남도의 제왕 문주 명일해는 그놈에게 죽은 거야.’

소식 없는 그의 최후는 확인 안 해도 안다. 동행했다는 황금대호방주 혁리추도 죽은 거다. 자세한 정보는 모르지만 대륙으로부터 넘어온 소문의 얼개가 그렇다. 지옥사신 그놈은 서주를 뒤집어엎고 북행하고 있다.

‘화성 삼대문파가 놈을 잡기 위해 움직였으니······’

그건 죽음이다.놈이 아무리 지옥사신이란 별호를 얻고 무섭다고 해도 그들을 이길 순 없다.그들만이 아니라 블랙블러드도 있다.이 일은 이렇게나 무섭고 큰일이다.그런데 그 속에 이제 패튼 자신도 끼어드는 거다.

‘매화검문과 함께, 아니 저들의 뒤엔 화성연구소가 있고 치안총국의 힘도 있지.’

복잡하게 얽혀 있다.치안총국의 수뇌부는 블래블러드와도 닿아 있고 화성연구소와도 마찬가지다.그런 현실이 패튼 자신의 지금 행보를 만들었다.이제 대륙에선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될까, 필경 전쟁이리라.

‘원하는 것을 놓고 여러 손이 부딪치는.’

과연 화성 삼대문파의 힘과 충돌해서 이길 수 있을까,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그로인한 후과는 어떻게 감당할까, 패튼은 숨을 쉬었다.복잡하고 무거운 가슴은 깊은 숨을 들이 내쉬어도 가벼워지지 않는다.

‘형포와 같이 있는 인물은 과연 누구일까.’

생각의 갈래를 돌린 패튼은 좁힌 미간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매화검문사람은 아니야.’

매화검문 인물들이 탄 샤크 속을 들여다보고 싶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싶다. 샤크의 기체간 통신으로 가능한 일이지만 하게 되면 저쪽 기체에서 인지하게 된다. 그럴 바엔 대놓고 물어보는 게 낫다.

‘화성연구소?’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화성연구소는 정확한 위치가 드러나지 않았다. 그들의 연구가 특급기밀이듯 행사도 그렇다. 화성에서 오는 보급품은 7군단의 셔틀 착륙장을 거쳐 이동된다. 역으로도 같은 코스다.

‘아무도 정확한 위치를 몰라.’

화성정부의 명령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행사 자체가 은밀하다. 몇 곳의 장소가 추정돼 소문으로 퍼지긴 했지만, 그걸 확인하려는 움직임은 어디에서도 없었다. 그건 화성에 대한 반역, 종말을 맞이하는 길이다.

‘화성연구소 자체의 공격으로 우선 그렇게 되겠지만.’

과연 철상자 안에는 뭐가 있을까로 생각을 또 옮긴 패튼은 메시지 알림을 확인했다. 본부에서 샤크로 보낸 통신, 손목의 멀티폰으로 확인했다.

“뭐!”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낸 패튼은 경직한 채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삼대문파의 행사에 이상발생. 삼대문파가 2차 출정대를 준비하고 있음.]

화성의 치안총국으로부터 온 메시지다. 북부지구 정찰대를 통해 샤크의 통신 시스템으로 막 들어왔다. 대륙으로 넘어가게 되면 더 이상 은 안 된다. 그러니 이 메시지는 중요하고 놀랍다. 삼대문파가 잘못된 거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설마 당했다고?’

눈썹을 부들거리며 패튼은 메시지를 노려봤다. 이상발생이란 의미가 뭔지를 곱씹었다. 정확한건 알 수 없지만 말 그대로 이상이 생겼다는 거다.

‘무슨 이상?’

치안총국에서 모든 정보자산을 동원해 알아내고 있을 터다. 어디까지 알아낼지 모르지만 명확한 건 현재 상태다. 지구에 온 자들에게 생긴 이상.

‘2차출정대를 보낸다는 건······!’

1차가 실패했다는 의미다. 삼대문파가 다 그렇다는 거다.그런데 그럴 수가 있는 건가?삼대문파인데? 그들이 쫓던 놈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패튼 대장, 들립니까?

귀를 파고드는 통신음에 패튼은 움찔하며 반응했다. 매화검문의 형포다. 왜 통신을 열었는지 알겠다. 저들도 지금 안 거다. 목소리가 경직했다.

-삼대문파가 실패한 모양입니다. 일이 생각보다 어려울 걸로 판단됩니다.

형포의 목소리를 들으며 패튼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둠이 내린 하늘은 멸도 달도 보이지 않았다. 샤크의 스텔스비행음만 귀신울음같다.

* * *

현재 위치에서 3킬로 정도만 동북으로 이동하면 북경이다. 지구가 온전할 당시에 영화를 누린 도시, 지금은 폐허가 돼서 흔적도 없어진 곳이다. 역시 놈의 발길은 북경 같은 곳이 아닌 더 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몽골, 5군단으로 가려는 거야.’

북쪽의 어둠을 응시하며 곽산은 상대의 의중을 가늠했다. 붉은 엘프, 놈이 무슨 이유로 5군단을 향해 가는지 모르겠지만 느긋한 행보를 하고 있다. 저 걸음을 어느 곳에서 멈추게 할 것인지 이젠 결정해야 한다.

‘몽골로 넘어가기 전에, 장성에서.’

결론을 내린 곽산은 벨트에 찬 플라스크를 꺼냈다. 은을 섞어 만든 금속술병엔 몰트위스키가 찰랑거린다. 차가워진 바람을 느끼며 한 모금했다.

‘흐, 좋군.’

짜릿한 목 넘김을 만끽하며 곽산은 미소 지었다. 블랙블러드 총사로서의 이 순간을 진실로 즐기고 있다. 강적, 예상치 못한 존재의 등장은 살아 있는 긴장과 전율을 준다. 블랙블러드의 삶이란 건 바로 이러한 것이다.

‘오백의 수하들이 전멸한다 해도······!’

마지막에 붉은 엘프의 목을 칠자는 자신이란 생각으로 곽산은 전율했다.상대는 진실로 무서운 존재이지만 그렇게 될 것이다.물론 그렇게 만든 죽음으로부터 얻어내야 할 것들이 있다.그 존재의 힘, 원천이다.

‘치안총국의 청부는 강흑성이란 놈이지만.’

지금 집중해서 이뤄야 할 것은 붉은 엘프다. 그래서 뒤를 쫓고 있다. 저 무시무시한 놈은 정확하고 치밀한 방법을 만들어 공격해야 한다. 저놈이 가진 힘의 비밀을 알아낸다면 블랙블러드가 세상에 군림할 것이다.

‘강흑성이란 놈은······’

태산에서 죽은 건지 산건지 존재가 사라진 놈, 그 생각으로 이어가던 곽산은 눈동자에 힘을 줬다. 어둠 저편에 빛이 생겨나서다. 당연히 붉은 엘프놈이 만든 모닥불이 아니다. 이쪽으로 다가온다. 점점 선명해진다.

‘뭐?’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난 곽산은 야숙준비에 들어간 수하들을 돌아봤다. 오백의 숫자, 주변의 들과 숲에 퍼져있다. 그들에게 소리쳤다.

“기동! 적이 온다!”

* * *

검강투월(劍罡投越), 철혼을 이탈한 그 힘에 강흑성은 의지를 실었다. 그것이 이어져 나간 흑청빛 검의 포효는 빔을 가르고 전차를 둘로 갈랐다.등 뒤로 느껴지는 철무진의 시선을 무시하고 강흑성은 달렸다.벼락이라는 말이 무색한 스피드로 두 번째 전차로 쇄도했다.포탑이 돌아갈 틈 같은 건 주지 않았다.검을 그어 올렸다.땅과 같이 전차는 갈라졌다.일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둘로 갈라진 전차에서 스파크가 튀고 화염이 불거져 나오는 순간이다. 그것은 결국 폭음과 함께 최후를 연출했다.그렇게 만든 존재, 강흑성을 모두가 바라봤다.철무진과 연강은 굳었다.

“너희가 적호문이냐?”

연강을 향해 강흑성은 물음을 던졌다.꿈틀, 경악의 경직을 깬 연강은 다시 전차의 최후를 봤다.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던 첫 번째 전차는 불덩이다.흑청빛을 인지한 순간 피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소름이 돋는다.

“너, 너는 누구냐?”

목소리가 떨린 것을 인지한 연강은 인상을 일그러뜨렸고, 대답은 철무진이 했다.

“지옥사신이다.”

지옥사신, 그 말에 연강은 다시 경직했다.어마무시한 무력을 보인 이 젊은 사내가 바로 그자인 거다.소문보다도 더 무서운 무위를 가진 자다.

“네, 네놈은 삼대문파가 잡겠다고······”

떨리는 숨으로 말하던 연강은 입을 닫았다. 눈앞에 지옥사신이 있는 결과다.

‘그들이 실패했다고······?’

화성에서 지구로 온 삼대문파의 고수들이 태산부근으로 행보했음을 안다. 목적은 바로 저 자, 지옥사신이었다. 그러한 상황을 기회로 이용해 신남경을 도모하려던 터다. 그런데 지옥사신이 지금 눈앞에 나타났다.

“적호문주가 누구냐?”

다시 물음을 던진 강흑성은 성큼 걸음을 했다. 그 움직임에 반응하며 움찔한 연강은 발작처럼 명령했다.

“죽여라! 모든 전력을 퍼부어라!”

뒤로 신형을 날리는 자, 적호문의 수괴를 응시하며 강흑성은 철혼에 철룡을 연결했다. 어두워진 밤하늘을 날아오는 기체들을 보면서다. 삼각형 형상의 무인 건쉽들이다. 열기의 건쉽이 빔의 불벼락을 쏟아 붓는다.

“피해라!”

철무진의 다급한 외침을 들으며 강흑성은 철혼을 던졌다.은빛의 용으로 화한 검은 하늘로 치솟았다.불벼락을 뿜고 지나가는 건쉽 비천을 뚫었다.그것이 시작이었다. 검푸른 기운의 용은 어둠과 하늘을 유린했다.

* * *

어둠 속에 선명히 보인다. 블랙블러드 살수들이다. 몇이나 되는지 셀 수도 없게 많다. 살수들답게 은폐기동하지만 저 생명에너지가 다 보인다.

“즐거운 걸?”

아이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우리엘은 걸어갔다. 블랙블러드 살수들을 향해서, 이제 느낄 피와 죽음의 전율을 기대하면서, 한없이 행복하다.

“호.”

어둠 속에서 터져 나오는 섬광을 보며 아우리엘은 감탄성을 냈다. 어둠이 내린 하늘로 올라갔다 떨어지는 섬광, 십이연장의 이동형포로 발사한 저것이 뭔지 알겠다. 머리 위에서 터진다. 백색의 불이 떨어진다.

“꺼지지 않는 다는 백린이군.”

고개를 주억거리는 아우리엘을 백색의 불폭포가 덮쳤다.삽시간에 모든 것이 불로 뒤덮였다.아우리엘의 형상은 백색 불속에 파묻혔다.그런데 걸어 나온다. 불폭포가 만든 불의 바다를 유유히 걸어 나온다.

“따듯하긴 한데?”

천진한 아이처럼 미소 지으며 아우리엘은 오른 손을 흔들었다.푸른 뇌전의 칼이 폭발하듯 나타났다. 그와 같이 나아가는 움직임도 벼락이 됐다.폭발해 나오는 화기들의 공격을 비웃듯이 아우리엘은 움직였다.격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잉어처럼 화력의 사이를 흘러나갔다.그렇게 휘두르는 뇌전도는 형상들을 갈랐다. 블랙블러드라는 존재들을 흩어버린다.

* * *

상공의 무인건쉽 비천들이 파괴되는 걸 보며 철무진은 경악을 삼켰다. 강흑성, 저 사내는 알고 있던 무력의 사내가 아닌 거다. 처음 보았을 때도 강했지만 이젠 터무니없이 강하다. 홀로 와서 적을 분쇄중이다.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라!”

수하들에게 외치며 철무진은 수괴 연강을 찾아 달려갔다. 강흑성에게 도륙당하는 적호문 무인들 뒤로 물러난 놈을 향해, 애병 거성에 전력을 싣고 휘둘렀다. 앞을 막는 적호문 무인들의 병기를 모조리 박살냈다.

‘검강!’

내력의 성취와 무공의 깨달음이 이 순간 가능케 한 경지다. 선조의 유진을 찾아낸 결과이고 강흑성이란 존재를 보고 겪으며 이뤄진 무력이다.

“연강! 앞으로 나서라!”

분노로 검을 휘두르며 외치던 철무진은 연강을 찾아냈다. 경직한 눈에 분노를 드리운 놈은 얼굴을 부들거리더니 괴성을 지르며 달려 나온다.

“으아아!”

연강을 향해 철무진은 마주 달려갔다. 검을 부딪치는 순간 전율의 몰아(沒我) 속으로 들어갔다. 역시 예상보다 강한 연강, 그가 펼치는 적호검법의 엄밀함 속에서 철마류의 검로를 밟았다. 시간과 공간을 잊었다.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접전은 어떠한 걸까,철무진은 검의 울음을 들었다.애병 거성의 울음, 그 전율 속에서 연강의 최후를 봤다.그의 검을 가른 거성이 동강내는 머리다. 양쪽으로 나뉘는 눈은 죽음을 부정한다.검을 멈추고 선 철무진은 둘로 나뉜 연강의 죽음 앞에서 말했다.

“이것이 철극문의 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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