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26. 특임대.
126. 특임대.
장교숙소는 오늘 밤에도 처량하고 음울하다. 저 모습이 보기 싫어서 영외로 나가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들어간다.
‘결혼하면 영외생활을 할 수 있는데.’
계단을 올라가며 그 생각을 한 원필성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결혼이란 생각과 자연스럽게 연결돼 떠오르는 한 여자 때문이다. 당황스럽다.
‘필성아, 이젠 거침없이 막 나가는 구나. 대체 언제부터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거냐?’
계단 오르던 걸음을 멈추고 한숨을 내쉰 원필성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생각은 생각이지 뭐 어때.”
중얼거림을 낸 원필성은 다시 계단을 오르며 저녁식사를 떠올렸다.카이오와 아이들과 모두 함께 한 시간이었다.배터리를 교체해 부활한 로봇 삼백이로 인해 즐거움과 행복은 배가 됐다.카이오에게 자랑스러웠다.
“하하.”
자신도 모르게 웃음 짓던 원필성은 멈칫했다. 자신의 방 앞에 누군가 서 있어서다. 복도의 어두운 조명 속에 서 바라보는 자가 누군지 알았다.
‘루카스중령.’
상대를 인지한 원필성은 빠르게 걸어가 경례했다.루카스는 고개만 끄덕했다.
“차 한 잔 하지.”
저 말이 용건이 아님을 원필성은 직감했다. 차나 한잔 하려고 이 밤에 찾아왔을 리 없다. 뭔가 다른 일이 있는데 그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들어가시죠.”
문을 열고 앞서 들어간 원필성은 바로 차를 준비했다. 당연히 커피다. 화성에선 흔할 테지만 귀한 원두커피, 끓는 물에 우려 향기롭게 냈다.
“좋군.”
커피 잔을 들고 한 모금 음미한 루카스중령, 저 미소 뒤로 나올 말을 원필성은 기다렸다.
“특임대를 구성했다.”
미간을 꿈틀하며 좁힌 원필성은 이어 나오는 말을 듣고 깨달았다.
“화성연구소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확인하는 임무다. 원대위와 내가 정보장교로서 참여한다. 03시에 출발할 거다. 준비 시간은 충분하다.”
이제 11시니까 그렇긴 하다. 하지만 이건 너무 갑작스럽다. 그런데 할 말도 없다. 화성연구소의 위치를 찾으라는 그리샴장군의 명령이 있었다.
‘군인은 명령을 받으면 수행하는 존재.’
새삼 정체성을 자각하며 원필성은 묵직한 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그곳에 다녀온 건가?”
다시 건너온 루카스중령의 물음에 원필성은 시선을 들었다. 그렇게 깨달았다. 아니 확인했다. 루카스의 눈에 든 감정의 갈래가 무엇인지다.
‘적의.’
아우의 죽음으로 인한 원한, 그 불이 저 가슴속에 있다.
‘그녀들의 효용이 무엇인지 구분하라던.’
보급창고에서 루카스는 그렇게 말했다.그 뜻을 안다.선을 넘는 관계를 만들지 말라는 거다.그런 소릴 하는 건 7군단 정보참모로서 당연한 것이지만, 가슴 속에서 퍼져 나오는 강흑성에 대한 원한이 근원인 거다.그렇다고 루카스중령이 여인들을 해치거나 하진 않는다. 그런 행위는 아무런 실익이 없는 자해와 같음을 안다. 그런 인물이라면 그리샴장군의 정보참모를 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근원의 감정까지 없애진 못한다.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대답 아닌 대답을 낸 원필성, 그 눈을 루카스는 말없이 바라봤다.그렇게 두 사람 사이엔 침묵이 내려앉았다.균형을 깬 건 루카스의 멀티폰이다. 설정해 놓은 신호음을 낸다. 뭔가 준비된 상황을 알리는 신호다.
“특임대원들의 준비를 봐야겠군.”
잔에 남은 커피를 단숨에 마시고 루카스는 일어섰다.
“준비하고 3번 격납고로 오도록.”
문 밖으로 사라진 루카스중령을 눈에 담고 원필성은 미간을 찡그렸다. 역시 받아들이기 힘든, 싫은 임무여서다. 왜 하필 원필성 자신인 걸까.
‘난 굳이 낄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슬며시 다른 생각이 든다. 루카스중령이 일부러 그런 것 같다는 예감이다. 여인들에게 출입하는 것에 대해 벌을 주려고 그러는 게 아닌 가 싶다. 그게 아닐 거라고 부정하고 싶은데 자꾸만 그렇다고 반발이 든다.
“하.”
한숨을 내쉰 원필성은 현실을 받아 들였다.
‘명령 거부는 있을 수 없지.’
서둘러 준비에 들어갔다. 정찰임무니까 특별히 더 위험할건 없지만, 화성연구소 위치확인이라는 특별임무다.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함은 당연하다.
‘무기는 준비 돼 있을 테고, 개인 장비만.’
전술배낭에 군장을 꾸리며 원필성은 다시 한숨 쉬었다.
* * *
잠이 든 아이들을 확인하고 잠자리로 가는 카이오, 그녀와 목례한 최창수는 일층으로 내려갔다. 저녁 먹던 식탁에 무기를 꺼내놓고 손질하는 전복과 마주 앉았다. 둘은 서로를 응시했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루트를 생각해 봤어.”
빔 라이플을 분해의 역순으로 조립하며 전복은 뒷말을 이어냈다.
“최악의 경우, 이곳을 탈출해야 할 경우엔 어디로 어떻게 이동해야 할지.”
툭 건너온 첫마디에 이은 뒷말의 내용에 최창수는 미간을 좁혔다.역시 그이야기인 거다.최악의 경우, 일어나기를 진정 바라지 않는 일이다.그런데 자꾸만 불안해진다. 그 이유는 대륙으로부터의 이상조짐이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원대위의 조력을 받는 거야. 그가 이동수단을 마련해주고, 검문 따위의 위험을 걷어 내주는 거지. 물론 위험이 닥친다는 걸 선제적으로 알려주는 거고. 그는 반역자가 되겠지만 우린 살아.”
작게 한숨 쉰 최창수는 입을 열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가정이지. 현재로선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에너지 탄창을 소리 나게 삽입한 전복은 빔라이플을 견착하고 바깥의 어둠을 조준 한 채 말했다.
“바라마지 않는 거지.”
소총을 내리고 장검을 뽑은 전복은 검신을 닦으며 이어 말했다.
“이대로 평화롭게 사는 거. 정말 바라는 거야. 준후가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 본적이 없어.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죽을 때까지 여기 살고 싶어.”
숫돌을 꺼낸 전복은 검날에 대고 밀었다. 치잉 하는 쇳소리와 함께 말한다.
“원대위가 찾아온 날부터 그게 힘들다는 걸 나는 알았어. 원대위, 좋은 친구야. 그런데 말했듯이 세상은 그런 거 하고 별개로 돌아간다 이거지.”
그리샴장군이 아무리 대단하고 공정한 사람이라고 해도, 라는 말을 최창수는 듣지 않아도 들은 것 같았다. 저 생각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부정하고 싶지만, 정말로 이곳에서 살고 싶지만, 예감은 자꾸만 짙어져 간다.
“그리샴 장군이 지구에 있는 이유가 뭔지 자네도 알지?”
검을 보던 시선을 전복에게 고정한 최창수는 침묵으로 반응했다.
“유배지. 화성정부로부터의 유배, 그리샴장군 스스로가 선택한 유배.”
그렇다는 걸 최창수도 안다. 7군단의 수장 그리샴장군은 대륙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다. 그렇지만 바로 그이유로 인해 화성정부의 가시가 됐다.
“총통과 측근들은 영웅의 존재가 필요치 않지. 그리샴장군은 가시 돋친 존재, 끌어안고 싶어도 끌어안을 수가 없어. 그 자신이 지구를 택했고.”
검날을 검사하려 한쪽 눈을 감고 본 전복은 다시 숫돌을 밀었다.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원인이 화성으로부터이든 지구내부로부터이든, 전쟁의 불이 퍼지면 7군단은 안전지대가 아니야. 그리샴장군은 제일 위험한 인물이 될 거고. 화성정부의 입장에선 절호의 기회이겠지.”
절호의 기회, 지구의 총통과 같은 존재인 그리샴 장군을 제거할 기회다. 그게 어떤 이해득실이 있는지 모호하지만, 화성은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니까 그리샴장군이 화성에 반기를 들면 상황은 명쾌해지는데 말이지.”
대수롭잖게 나온 전복의 말, 최창수는 눈썹을 확 세웠다.
“화성에 반기?”“왜? 안될 거 있어? 장군이 그렇게 하면 5군단과 3군단도 동조할 걸?”
최창수는 뜨거운 침을 소리 나게 삼켰다. 전복의 생각처럼 될 것을 동감한다. 정말로 그리샴장군이 화성과 대적한다면, 대륙의 북과 남에 있는 5군단과 3군단은 동참할 것이다. 그들은 그리샴장군을 경외하고 있다.그러니 이 생각은 그저 상상만이 아닌 거다. 정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 그렇기에 화성에서도 눈엣가시, 심복지환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일이 생기면 불길을 피하긴 힘들어.”
다시 입을 연 전복은 차갑게 번득이는 눈빛을 흘려냈다.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하고 대비하긴 힘들지. 그래도 할 수 있는 한에선 해야 해.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최악은 내부로부터의 공격이야.”
곤두세운 눈썹을 최창수는 가늘게 떨었다.
“내부로부터의 공격······ 7군단 안에서의 쿠데타?”“그래, 그게 뭐든, 내전이든 장군의 암살이든.”
치잉 소리 나게 숫돌을 민 전복은 검을 눈앞에 들어 응시하며 말했다.
“우린 살아야지. 애들하고 같이.”
검신처럼 빛나는 전복의 눈을 응시하며 최창수는 중얼거렸다.
“그래야지. 반드시 애들을 살려야지. 그게 우리의 임무야.”
* * *
새벽별이 뜨도록 몰아지경에 빠져 있던 철무진은 복잡하고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철극진기의 길을 열어준 존재, 강흑성은 떠났다. 어디로 뭘 하러 간 건지 모르지만 해야 할 일이 있음이다. 언젠간 다시 볼 터다.
“감사합니다.”
진심어린 인사를 철무진은 어둠을 향해 했다. 돌아서서 제강소와 수하들을 바라봤다. 거침없는 연기를 뿜어 올리는 굴뚝처럼 용맹한 눈을 빛내는 수하들이다. 그들과 미소를 나누었다. 동시에 강한 음성으로 외쳤다.
“철금련의 시대는 이제부터다!”
함성을 터트리는 수하들로부터 다시 돌아선 철무진은 애병 거성을 움켜잡았다. 내력을 끌어올려 검에 의지를 실었다. 철기로 물드는 검을 들고 나갔다. 공간을 가르는 검강지력을 철마류로 풀어내다 그 힘을 던졌다.검극으로부터 이탈해 나간 철기의 검강지력은 어둠을 가르고 수림을 쪼겠다.수하들이 터트리는 함성을 받으며 철무진은 결의를 뱉었다.
“다시는, 그 어떤 적이라도 철금련을 침탈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새벽별은 철무진과 철금련 무인들과 제강소를 비추었다.
* * *
별이 기울어가는 걸 올려다보며 강흑성은 북으로 전진했다. 수림에 사는 모든 것들이 존재감을 과시하는 속에서 거침없이 나아갔다. 무원신풍보를 전개 해 나가는 그 움직임은 무서운 것들이 무서움을 느끼게 했다.
콰우우!
불루마운틴의 울음과 늪지의 야무치가 용틀임하는 소리, 블랙베어들의 괴성과 온간 것들의 울음 속으로 강흑성은 바람이 돼 나갔다. 북쪽으로, 아우리엘이 간 방향으로, 수림의 모든 장애를 무시한 직선의 행보다.
‘응?’
바람처럼 흐르던 움직임을 멈춘 강흑성은 수림을 응시했다. 좌측,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그야말로 칠흑의 수림, 그 안에 빛나는 뭔가가 있다.
‘너구나.’
흑청빛 눈동자로 수림을 꿰뚫어 본 강흑성은 존재를 인지했다. 철금련을 향해 가던 도중에 만난 존재, 삼바바들의 합공을 물어뜯은 흑호다.
‘날 찾아온 거냐?’
강흑성은 미소 지었다. 미소인지 뭔지도 모를 옅은 표정, 그 앞에 존재가 다가왔다.수림을 헤치고 소리 없이 다가온 흑호, 울음을 토한다.사방을 떨어 울리는 그 포효가 적의가 아니란 걸 강흑성은 영혼으로 안다.
“나한테 흥미가 있지? 그냥 끌리지? 왜 그런지도 이상하고 궁금하고?”
강흑성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다. 흑호는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슬금슬금 다가온다. 강흑성의 2미터 전방에 멈춰 선다. 작게 그르렁거린다.
“그래, 우린 닮았다.”
강흑성은 손을 내밀었다. 흑호는 가만히 응시하다 2미터의 거리를 없애고 다가온다. 흉악한 이빨이 든 입을 벌렸지만 혀를 내밀어 핥는다.
“지금 보니까 너 아주 크구나?”
삼바바들과 싸울 때는 이정도로 큰 줄은 몰랐다. 삼바바들의 덩치가 커서 상대적으로 작게 보인 듯하다. 새카만 털로 덮인 몸은 강인한 근육의 결을 꿈틀거린다. 커다란 앞발에 든 발톱은 고수의 병기라고 하겠다.
“난 할 일이 있어서 가야 한다.”
강흑성의 손을 핥던 흑호는 시선을 맞춘다.
“그 일이 끝나고 보자.”
결과를 알 수 없는 일, 하지만 강흑성은 흑호에게 다시 보자고 말했다. 철무진에게도 그랬고 그렉에게도 그랬다. 반드시 그렇게 할 생각이다.
“잘 지내라.”
흑호의 머릴 쓰다듬고 강흑성은 돌아섰다. 무원신풍보의 바람이 돼 질주했다. 그런데 뒤에서 포효가 들린다. 흑호가 뒤따라 달려오고 있다. 스피드가 어마무시하다. 어느새 강흑성 자신의 곁이다. 다시 울음을 토한다.
‘같이. 그래, 가자.’
흑호의 마음을 받은 강흑성은 미소를 뿌리며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