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27화 (128/172)

혹성강호. 127. 화성연구소.

127. 화성연구소.

3번 격납고에 들어선 원필성은 긴장을 풀기 위해 깊은 숨을 내쉬었다.특임대의 구성이 생각보다 강력해서다.백호부대원들이다.일당백, 완수하지 못한 임무가 없다는 전설을 자랑으로 삼고 사는 최강군인들이다.

‘한팀.’

20명의 백호부대원이 완전무장하고 기다리는 속으로 원필성은 스며들었다. 계급장이 없어 지위고하를 알 수 없는 자들, 목례만 주고받았다.이들에 대한 소문은 무수히 많다. 무공고수들, 살인마들, 전쟁귀신들.

‘이들이라면 전쟁이 나길 바랄 수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고갤 흔든 원필성은 루카스 중령의 등장을 봤다. 격납고 안쪽에서 걸어 나오는 그는 슈트를 착용했다. 천산마갑슈트의 개량 모델이다. 침투작전에 맞게 새카만 블랙컬러, 외골격이 로봇같다.

“원대위, 슈트 착용하도록.”

루카스중령이 원필성 자신을 지목해 명했지만 백호부대원들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들의 무관심 속에서 이동한 원필성은 격납고 안쪽의 장비실에서 슈트를 착용했다. 정말로 로봇 속에 들어간 느낌이다.

‘이렇게 가볍구나.’

훈련 시에 착용해 본적이 있지만 정말 놀랍다.최강전사가 된 느낌이다.슈트의 성능은 대단하다는 정도로 부족하다.보통사람을 고수로 만드는 것과 같은 거다. 그런데 백호부대원들은 아무도 착용하지 않았다.

‘저들은······’

백호부대원이니까, 그 말이 끝이다. 최강의 군인인 저들은 슈트가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거다. 원필성 자신 같은 정보장교에게나 필요한 장비다.

‘제대로 활용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

전투병과가 아니기에 슈트의 생소함이 걱정된다. 그런데 전투를 벌일 일 자체가 없을 거다. 침투염탐이 목적임무다. 설사 전투가 일어난다고 해도 백호부대원들과 함께다. 걱정할 일은 없을 거고 무사귀환할 거다.

‘그렇게 돼야해.’

가슴속으로 바람을 더듬은 원필성은 루카스중령의 목소릴 들었다.

“이미 알린 바와 같이 임무는 화성연구소의 정확한 위치확인이다.”

블랙슈트 속에서, 로봇 안에 든 것 같은 모습으로 루카스중령은 엄정히 말했다.

“연구소의 추정 위치는 데빌그라운드 인접지역인 운악산이다. 늘 운무가 끼어있어 시정관측은 물론 레이더 등의 장비도 소용없는 지역이다.”

그 지역의 운무는 수림에너지로 인해 번개가 산란하는 곳이란 걸 원필성은 상기했다. 한마디로 지독한 지역이다. 이제 그곳으로 들어간다.

“임무의 중요성은 다시 말하지 않겠다.”

엄정한 눈빛을 흘려낸 루카스중령은 대원들 하나하나를 응시하고 말했다.

“어떤 장애가 있더라도 완수하고 돌아온다.”

루카스중령의 눈빛만큼이나 힘이 들어간 안광을 풀어내는 대원들은 동시에 소총을 친다. 타타타탁, 하는 동시다발적인 소리, 결의의 대답이다.

‘제로원 복합소총.’

대원들이 지닌 소총의 제원을 떠올리며 원필성은 작은 소름을 삼켰다.미니건을 소총화 하는 개념으로 개발을 한 총기가 저것이다.벌컨의 미니버전인 미니건의 화력에다 복합광탄발사기를 더한 무기, 막강하다.

“개인 물품은 소지 하지 않는다.”

다른 목소리의 주인, 백호부대원들의 지휘관이다. 각진 얼굴이 유난히 강인해 보이는 그를 보며 원필성은 곤혹을 삼켰다. 군장 안에 개인물품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준비하라는 루카스중령의 명령대로 꾸려왔다.

“만일의 경우, 신분이 드러날 상황이 되면 자결이다.”

이어 나온 담담하고도 무서운 말에 원필성은 경직했다. 개인물품을 소지하지 말란 말의 의미도 깨달았다. 잘못되면 자살하란 말에 답이 있다.

“접전 시 전투지휘는 내 명령에 따른다. 이상, 3분후 출발하다.”

명료한 마지막 명령이 떨어졌다. 백호부대원들은 모든 준비를 마쳤기에 탑승하고 있다.

‘샤크.’

격납고 중앙에 대기 중인 샤크를 원필성은 바라봤다. 침투작전에 맞춰 흑색으로 위장한 기체, 유난히 아름답고 위험해 보이는 신형이다. 분명 스텔스모드로 저공비행을 할 거다. 운악산까지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한 시간 정도 걸리려나.’

대전을 벗어나기까진 저공비행, 상승해 날아가다 운안산 인근에서 다시 스텔스저공비행을 해야 한다. 그런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모르겠다.

“준비 됐나?”

곁으로 온 루카스중령의 시선을 향해 원필성은 돌아섰다.

“예, 준비됐습니다. 그런데 군장은 괜히 꾸려온 것 같습니다.”“음, 그렇게 됐군. 뭐 오래 걸릴 작전이 아니니까.”

원필성의 전술배낭을 힐긋 본 루카스 중령은 샤크를 향해 가며 말했다.

“나이프라도 챙기든가.”

허탈한 시선으로 루카스중령을 보던 원필성은 배낭에서 정말로 나이프 하나만 뺐다. 슈트의 가볍고 힘찬 움직임이 의지대로 이뤄지는 감탄 속에 샤크에 올랐다. 대원들을 지나 루크스중령이 앉은 자리 옆에 앉았다.

“귀대 예정 시간은 언제쯤입니까?”

자동으로 채워진 좌석벨트를 확인하며 원필성은 물었다. 루카스는 심드렁히 대답했다.

“동 트기 전에.”

샤크의 엔진이 깨어나는 느낌 속에서 원필성은 깨달았다.

‘전속력으로 날아가겠구나.’

아랫배가 서늘해지는 느낌을 시작으로 샤크는 날아갔다. 격납고를 언제 나왔는지 모르게 하늘이다. 창으로 보이는 새벽하늘은 흐르고 있다.

* * *

‘적어도 백 명이상.’

흔적을 응시하며 강흑성은 아우리엘을 떠올렸다. 새벽이 되도록 쉬지 않고 달린 주파였다. 흑호와 경쟁하듯 질주한 행보는 태산을 지나왔다. 신남경에서 산동땅을 말 그대로 주파한 거다. 아무도 안 믿을 경이다.

‘블랙블러드를 죽인다더니······’

아우리엘은 그렇게 맹세했다, 푸른 바람의 정령 사슴 칸타를 죽인 복수를 하겠다 했다. 그 일의 한부분이 걸음을 멈춘 이곳에 있다. 태산으로부터 자취를 쫓던 블랙블러드가 아우리엘에게 당했다. 분명 전멸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구나.’

아니 병기 등은 남았다. 하지만 사체는 없다. 수림의 존재들이 먹어치웠다.그런데 이 자리를 강흑성 자신만이 살펴보지 않았다.그들도 봤다.

‘블랙블러드.’

진정한 본진이 이곳을 거쳐 아우리엘을 쫓아갔다.그들은 강흑성 자신을 노리고 움직였다. 그런데 태산에서의 괴변에 놀라 아우리엘을 쫓는 거다.추적목표 강흑성은 죽었는지 사라졌는데, 붉은 엘프가 등장한 거다.

‘레드파운틴족의 전설, 가라레를 여는 가라운.’

놀라고 당황하며 그 존재를 추적중인 거다.화성 삼대문파의 공격까지 분쇄한 엄청난 존재인 거다.추락한 샤크에서 블랙박스를 수거해 인지했다.화성삼대문파도 태산으로 2차 출정대를 보내 확인하게 될 것이다.

‘내 뒤를 따라오겠지.’

강흑성 자신이 흔적을 따라가듯이다. 분노하고 마음이 급한 화성 삼대문파는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농장의 동료들도 철금련도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그러나 근원을 해결해야 한다. 싸워야 쟁취해야 한다.

‘모두의 안전.’

무릎을 펴고 일어선 강흑성은 새벽별을 올려다봤다.유난히 차갑게 반짝이는 별들은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 같다.정말 그렇다면 웃는 지도 모르겠다.

‘서로 죽이며 사는 세상, 이 지옥을 재밌어 할까 우스워 할까.’

별에서 시선을 내린 강흑성은 흑호를 바라봤다. 엎드려 있던 흑호는 이곳에 밴 피 냄새에 털을 곤두세우며 그릉거렸다. 수림으로부터 들려오는 괴수들의 울음과 존재감에 옅은 신경질을 내면서다. 느릿하게 일어선다.

“또 달려보자.”

흑호에게 미소로 말한 강흑성은 움직였다. 발을 낸 순간 바람이 된 그 질주를 따라 흑호는 포효를 터트리고 달려갔다.

* * *

수림의 한 부분으로 사라진 샤크를 돌아보며 원필성은 침을 삼켰다. 슈트의 헬멧을 돌출시켜 착용하자 자동적으로 나이트비전 야시경이 작동했다.

‘운무가 정말로 지옥하구나.’

운악산으로 들어가는 주변지대부터 이러니 갈 길이 암담하다. 운악산의 형상이 어른거리는 저편 하늘에선 뇌전이 계속해서 작렬하고 있다.

‘뇌류의 산란정도가 아닌데?’

경직한 마음을 침과 함께 삼키던 원필성은 경고를 들었다.

-원대위, 대원들과 보조를 맞춰라.

루카스중령의 날선 음성에 원필성은 흠칫했다. 움직임을 기민하게 하며 대원들을 따랐다. 과연 백호부대라고 해야 할까. 전투헬멧만을 착용한 대원들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다. 은일한 백호의 움직임이 딱 맞다.

-좌측에 이동로 확인.

척후로 나간 대원의 보고가 귀에 울린다. 운무에 가려진 수림의 속에 길이 있다는 거다. 이런 곳에 그런 게 있을 까닭이 없다. 있다면 하나다.

‘화성연구소.’

그 이름을 상기한 원필성은 새삼 임무의 무게를 절감했다.

-이동로를 피해 전진한다.

백호부대 지휘관의 명령을 따라 특임대는 운무 속을 파고 들어갔다.

‘지독하구나.’

운무는 짙어지고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헬멧으로 인한 시야확보가 아니라면 한치 앞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수림 곳곳에 확인되는 열상의 정체가 뭔지 고글 화면에 나온다. 대부분이 괴수와 맹수, 아직은 괜찮다.

‘블루마운틴에 블랙베어까지 있는데?’

확인된 괴수들의 정체에 원필성은 괴이함을 느꼈다. 저런 위험한 괴수들이 너무 가깝게 모여 있어서다. 저놈들은 제 영역을 구축하고 산다. 그 안으로 침범하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 그런데 이건 정말 가깝다.

“중령님, 뭔가 이상합니다.”

루카스중령의 반응은 바로 왔다.

-그래, 괴수들의 위치가 너무 가까운 것 같은데?“그렇습니다. 영역으로 삼을 만 한 거리가 확보된 게 아닌 걸로 보입니다. 이 정도 거리라면 서로를 인지하고 싸우는 게 맞습니다. 이건 마치······

그 순간 특임대의 머리 위로 뭔가 지나갔다.운무를 가르고 날아간 존재, 고글화면엔 악마새라고 표시됐다.그런데 이것도 이상하다.사체를 탐하는 악마새가 이런 운무 속을 난다? 위험에 누구보다 민감한 놈이?

-저게 악마새인가?

전진을 멈춘 루카스중령은 바로 강한 목소리를 냈다.

-괴수들이 움직이고 있다!

원필성은 경직한 채 고글 화면의 붉은 점들을 봤다.블루마운틴과 블랙베어로 표시된 존재들이 움직인다.분명히 특임대를 향해 다가고 고 있다.

* * *

새벽 4시를 막 지나갔다.피곤이 몰려오지만 그렉은 망루를 지켰다.직접적인 위험은 분쇄해서 없다지만 안심해선 안 된다.절대 그럴 수 없다.강흑성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지켜야 한다.그는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

‘철금련과 협조하게 되면 정말로 큰 도움이 될 거야.’

그 일을 위해 간 강흑성을 생각하던 그렉은 뒤쪽의 기척을 인지했다.망루 아래서 누군가 올라오고 있다. 머리를 올리는 모습을 보니 철수다. 손에는 쟁반을 들었다. 삶은 옥수수와 감자다. 냄새가 기가 막히다.

“이거 잡수세요.”“여, 안 그래도 출출했는데 고맙다.”

철수에게서 쟁반을 받은 그렉은 옥수수와 감자를 맛있게 먹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철수는 뭔가 생각하는 얼굴이더니 조심스레 묻는다.

“그분이 지옥사신이죠?”“엉?”

옥수수 사체를 쟁반에 떨구던 그렉은 철수의 눈을 응시했다.

“저하고 영희를 구해주신 분요, 우리전부를 살려주신 그분이 지옥사신이죠?”“어 그게,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긴 하더라만······”“어디 가신 건가요? 다시 안 오시나요?”

뭔가 간절함을 담은 철수의 눈을 그렉은 진중히 응시했다.

“왜 그러는데? 뭐 할 말이라도 있는 거냐?”

분명히 그렇다, 이 새벽이 안 자고 그렉 자신에게 먹을 걸 가지고 온 것부터가 그렇다. 그런데 그게 뭔지를 듣는 순간 머리를 맞은 것 같다.

“그분처럼 강해지고 싶어요.”

어? 소리도 못낸 그렉은 철수의 진정한 염원을 들었다.

“그분께 무공을 배우고 싶어요.”

쟁반에서 집어 들던 감자를 놓친 그렉은 멍한 시선만 흘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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