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28. 정체.
128. 정체.
통합데스크에 뜬 긴급정보를 뚫어지게 응시하던 그리샴장군은 주먹을 올렸다. 자신도 모르게 내리치려던 몸짓을 악문 숨을 뱉으며 다스렸다.
‘날 이용하겠다는 겨냐······!’
치안총국으로부터 날아온 초긴급의 정보, 이것엔 숨은 의도가 있다. 아니 내놓고 드러낸 속셈이자 공작, 지구에 전란을 일으키려는 야욕이다.
‘블랙블러드의 전멸, 그걸 만든 붉은 엘프, 이결과를 내게 알린 너희는······!’
새벽별이 스러져가는 이 시간에도 책상을 지킨 선물이 이거다.화성으로부터 온 치안총국의 초대형선물이다.블랙블러드 지구총사 곽산이란 자가 오백의 살수들을 이끌고 행사하다 붉은 엘프에게 전멸한 사건이다.곽산과 블랙블러드 본진은 붉은 엘프의 추적과정과 접전시의 영상을 송신했다. 그들의 이동장비에 탑재된 통신전파는 어느 곳인가를 거쳐 화성으로 날아갔다. 필경 5군단이나 3군단, 아니면 화성연구소를 거쳤다.화성연구소에 정확하게 어떠한 장비들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화성과 연락을 주고받는 송수신환경이 조성되어 있을 거란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머지않아 그들은 화성정부의 승인을 얻어 이착륙장까지 확보할 터다.
‘붉은 엘프, 이자는 대체 누군가?’
가슴속 분노위로 의혹을 덮은 그리샴은 블랙블러드가 전한 내용에 집중했다. 레드파운틴족의 전설, 붉은 하늘 가라레를 여는 신인 가라운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런 소리를 믿어야 하는 가는 결과로서 판단함이다.
‘블랙블러드의 전멸······!’
그들도 1차에 이어 2차로 움직였다.이백 명에 이어 오백 명, 모조리 죽었다.그들의 목표였던 강흑성이 아니라 느닷없는 존재에게 당했다.말이 이백이고 오백이지 살아 있던 자들이 그만큼 죽은 결과는 치 떨린다.
‘삼대문파 역시······!’
삼월문과 백두파와 천지문, 그들은 태산에 몸을 묻었다. 블랙블러드가 확보한 샤크의 블랙박스영상도 함께 왔다. 치안총국은 정말 친절하게도 이걸 그리샴 자신에게 보냈다.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조력자로서다.그게 그런 친절한 의도가 아니란 건 바보라고 해도 안다.치안총국은 혼란을 원하고 있다. 조성하려고 한다.그러기 위해 움직이길 바란다. 지구의 군부가 행동에 나서길 원한다.전쟁이 일어나도록 꾸미고 있다.
‘붉은 엘프가 5군단으로 향하고 있다고?’
현실을 냉정하게 되새기며 그리샴은 전후를 짚었다.레드파운틴족의 전설이란 존재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왔느냐가 첫째다.삼대문파의 지구행은 지옥사신 강흑성 때문이다.아니 본래는 뇌인걸의 무공 때문이었다.
‘태산방향으로 이동하던 강흑성을 추적하던 행보······’
그 길의 어디에선가 붉은 엘프가 등장한 거다.그들은 결국 태산에서 다 만났다.샤크의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강흑성도 그곳에서 싸웠다.역시 무서운 존재다.건쉽을 파괴하는 장면은 보고도 믿지 못하겠다.그러나 삼대문파의 공격은 다 부서졌다. 허무하리만치 소용없었다. 이유는 붉은 엘프, 그 존재가 풀어낸 힘은 대적할 수 없는 것이었다. 태산이 붕괴되는 화력에서도 그는 건재했고, 대적자들을 모조리 없앴다.
‘강흑성도 생사불명.’
그 이후에 블랙블러드가 그 현장에 와서 샤크의 블랙박스를 확보한 거다. 그렇게 상황확인이 된 거다. 그들은 본부에 내용을 알리고 추적했지만 전멸했다. 그 뒤를 따라간 총사 곽산과 오백살수도 역시 몰살했다.
‘날 이용하려든 것이든 뭐든, 어쨌든 이런 내용을 알게 된 건 좋아.’
치안총국의 의도에 분노가 치솟지만 그건 다음일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고 진행되는 위험의 정확한 진상을 파악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치안총국의 의도대로 대응하게 되겠지만······’
5군단에 알려야 한다. 그곳으로 향하고 있는 위험의 실체를 알려 대비하게 해야 한다. 치안총국이 바라는 게 그것이지만 앉아 있을 수는 없다.물론 붉은 엘프란 존재가 5군단을 어쩔순 없다. 하지만 행동해야 한다.
‘이것만이 다인가?’
치안총국이 두고 있는 장기, 그 수가 지금 눈에 보이는 이것만이 아니란 걸 그리샴은 확신했다. 2차 출정대를 보내는 삼대문파의 행사도 그들의 한수다. 그들에게도 그리샴 자신에게 보인 이 내용을 전했을 것이다.
‘그밖에는?’
더 있다. 그러나 지금 눈에 보이는 건 이것이다.
“5군단 연결해라.”
명령음성을 받은 통합데스크는 통신부를 거쳐 5군단 사령관 볼프 장군에게로 연결했다. 짧은 군인머리가 희끗한 볼프장군은 반색한 얼굴이다.
-형님, 이 새벽에 웬일입니까? 술 한 잔 생각납니까? 그럼 넘어 오시구랴.
늘 그렇듯 웃으며 너스레를 떠는 볼프장군에게 그리샴은 본론을 바로 던졌다.
“첨부된 영상부터 봐라.”-에이, 김새는 소린 여전하시구만.
볼프장군은 짧은 머리를 습관처럼 쓰다듬으며 눈동자에 힘을 준다. 화상 통화중인 통합데스크의 분할화면에 뜬 영상을 보는 눈이 확 커진다.
-이, 이거 뭡니까? 이자들 삼대문파인데?
태산에서 접전을 벌이는 자들, 5군단에 스페이스 셔틀을 타고와 내린 자들인 거다. 볼프장군 자신이 직접 대면하진 않았지만 자세히 보고 받았다. 지구에 온 목적도 안다. 그런 자들이 한자리에서 몰살하는 광경이다.
“블랙블러드가 치안총국에 보낸 내용이다.”-블랙블러드가요?
황망한 충격의 의혹에 사로잡힌 볼프장군에게 그리샴은 전후를 알렸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배경, 정보를 알려온 치안총국의 의도까지 말했다.
-치안총국 개자식들이······!
분노로 이 가는 볼프장군에게 그리샴은 냉정히 말했다.
“흥분하지 마라. 우린 군인이다. 어떤 상황이든 우리 할 일을 하면 된다.”-형님, 이건 그렇게 생각할 일이 아니잖습니까?
볼프장군은 더 흥분해서 목소릴 높였다.
-치안총국 놈들이 기회를 엿보는 거잖습니까? 군부를 완전히 눌러버리겠다는 속셈입니다! 중요한 건 이게 총통의 의지이거나 묵인이냔 겁니다!
그리샴은 된숨을 흘려냈다. 자신이 생각하는 부분이 그것이다.치안총국의 본격적인 도발로 확신되는 현황, 그 배경이 총통의 의중이냐는 거다.
-화성의 군부야 총통의 발을 핥고 있으니까 상관없겠지요! 총통이 가시로 생각하는 건 언제나 형님이었습니다! 화성시민들의 존경을 받는 그리샴강군! 없어지면 속편할 존재가 형님입니다! 이건 그 수작입니다!
버럭 대는 볼프장군에게 그리샴은 차분한 목소리를 전했다.
“말한 대로 우린 군인, 사명을 다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자 하는, 우리의 존재를 이용하고자 하는 적에게 자비는 없다. 우리가 가진 모든 역량을 다해서 분쇄할 것이다. 그것이 군인이다.”
-형님······“현황에 대응해라.”
짧고 명료한 그리샴의 결론에 볼프장군은 입을 다물었다.
“붉은 엘프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5군단 방향으로 북상중이다. 확인한 것처럼 엄청난 능력을 가진 존재다. 피해가 없도록 만전을 기해라.”-알겠습니다. 화성에서 삼대문파가 출발했다는 연락을 조금 전 받았습니다. 그들이 그 존재를 찾아 갈 겁니다. 상황을 주시하면서 대응하겠습니다.“그래, 3군단에도 알리겠다.”-예, 그럼 나중에 보시죠, 그땐 정말 술 한 잔 하십시다.
웃는 얼굴로 고갤 끄덕인 그리샴은 통신을 종료했다. 하지만 바로 3군단에 연결했다.
* * *
물결처럼 출렁대는 운무를 뚫고 달려오는 건 괴수들이다. 끔찍한 괴성을 지르며 몽둥이를 휘두르는 괴수, 블루마운틴이다. 모두 다섯 마리, 놈들이 접근하기 전에 백호부대는 대응했다. 복합소총의 섬광이 터져나갔다.머리 두 개 팔 네 개 달린 괴수 블루마운틴은 터졌다. 야구공만한 광구가 날아가 격중 된 몸은 팔다리와 몸통 할 것 없이 폭발해 흩어졌다.그런데 놈들 뒤로 블랙베어들이 달려온다. 대원들은 연사로 대응했다.프르르륵, 곤충의 날갯짓 같은 소리가 제로원 복합소총으로부터 퍼져 나왔다. 소리의 원인인 빔의 소나기가 날아갔고, 블랙베어들은 벌집이 돼 쓰러졌다. 한순간에 최강괴수들의 출현과 위험이 동시에 사라졌다.
“사주 경계!”
지휘관의 외침 속에 백호부대원들은 사방으로 총구를 겨누고 경계했다. 그 중앙에서 루카스중령은 지휘관과 눈을 맞췄다. 동시에 눈을 빛냈다.
‘확신.’
지휘관과 루카스중령의 눈빛이 그것이란 걸 원필성은 알았다.화성연구소의 위치가 이곳 운악산이란 것의 확신이다.수림 속으로 난 길이 첫 번째 증거고, 난데없이 공격해온 괴수들의 움직임이 두 번째 증거다.
‘특임대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달려왔어.’
일체의 기척 없이 나가는 행보였다. 이런 운무 속에서 거리가 떨어져 있던 괴수들이 특임대를 인지하고 달려온 다는 것은 괴이한 일이다. 누군가 알려줬다면 가능하다. 그게 바로 화성연구소, 악마새는 척후였다.
‘이종을 만드는 곳, 인지하지 못한 것들이 더 있었을 지도.’
화성연구소는 그런 곳이다. 괴수들을 이용하는 일 따위는 어려운 게 아닐 거다. 특임대가 지나온 경로에 있었을 모든 것이 이목이었을 수 있다.
“명확한 증거 하나만 찾으면 퇴각합시다.”
루카스중령의 결론에 지휘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최소한 건물 사진 한 장은 가져가야 한다. 그것까지만 하고 돌아가는 거다.
“침투대형으로 전진.”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특임대는 다시 전진을 시작했다. 루카스중령은 슈트로 통신을 계속 시도해 보지만 역시 안 된다. 운무로 인한 장애다.
‘응?’
원필성은 루카스 중령을 보다 멈칫했다.오른편에서 뭔가 스르르 일어서서다.운무에 가려 모습이 분명치 않지만 거대한 기둥 같은 것이다.슈트의 고글에 움직임과 동시 순간에야 포착된 무엇, 벼락처럼 움직인다.
‘뭐!’
경직한 눈을 추스를 새 없는 순간에 일이 벌어졌다. 거대한 기둥 같은 형상이 벼락처럼 뻗어 나왔고, 백호부대원들 둘을 한 번에 물고 일어섰다.
“야무치다!”
지휘관의 외침과 더불어 특임대의 화기가 불을 뿜었다.
* * *
3군단과의 통신을 마친 그리샴은 그들을 떠올렸다. 7군단의 착륙장에 내린 화성의 손님이다. 보급품에 딸려온 자, 그는 치안총국의 인물이다. 화성정부의 특명이 있어 정체확인이 안됐지만, 그는 종적을 감췄다.
‘현재 상황을 인지하기 전의 행사.’
그자의 소임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치안총국은 현재 일이 일어나기 전에 조치한 거다. 어떠하든 이제 상황은 명료하다. 치안총국은 이빨을 드러냈다. 블랙블러드와 화성연구소와도 연결된 그들의 행사는 위협이다.
‘춘천에서 블랙블러드와 매화검문이 충돌한건 지엽적인 일.’
이제 그들이 만들어낸 일은 거대하고 엄중하다. 다시 전쟁을 일으키는 일이다. 그 목적이 그리삼 자신의 제거라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날 곱게 보지 않는 총통의 마음을 이용한······’
저들이 그리는 큰 그름이 있다. 그 그림은 화성과 지구를 위험하게 만들 것이다. 언제나 그렇다, 역사는 통해서 배우지 못한 자들의 야욕이다.
“내가 있는 한 절대로 용인하지 않는다······!”
뜨거운 숨을 토해낸 그리샴은 통합데스크를 통해 특임대의 상황을 확인했다. 역시 그 지역의 특성으로 인해 통신두절상태, 깊은 생각에 빠졌다.
* * *
여명이 움터오기 시작한다. 푸르스름한 빛으로 변하는 하늘은 어둠을 밀어내고 있다. 낮이 지나가면 다시 맞아야 하기에 손을 놓지 않는 이별이다. 그 속에서 강흑성은 숨을 돌렸다. 쉼 없는 질주로 너무 지쳤다.
‘이제 하북 땅에 들어선 건가?’
흥건히 흐르는 땀을 씻어내며 강흑성은 주변을 돌아봤다. 어디나 그렇듯이 폐허와 수림뿐이다. 발을 딛고 선 이지역이 오랜 옛날엔 영화를 누린 곳이라고 안다. 하지만 이젠 폐허다. 인간의 자취는 수림에 먹혔다.
크르르르.
곁에서 울음을 흘려내는 흑호의 반응이 뭔지 강흑성은 알았다.수림에서부터 냄새가 날아오고 있다.괴수로 분류되는 프레데터피그다.칼날어금니라고도 불리는 놈, 강흑성 자신도 여태 세 번 밖에 본적 없는 놈이다.
‘여기서 쉬어야겠군.’
여명이 물드는 하늘 저편을 본 강흑성은 아우리엘의 영상을 밀어냈다. 그 순간 흑호가 자세를 낮췄고, 수림에서 프레데터피그들이 나타났다.
꾸워어!
삼목울프의 두 배 크기인 놈들은 괴성을 터트렸고, 흑호가 먼저 움직였다. 공격해 오는 프레데터피그들 사이로 든 흑호는 모조리 물어 죽였다.강흑성이 불을 피우는 동안 흑호는 프레데터피그들의 피와 심장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