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29화 (130/172)

혹성강호. 129. 손님 1.

129. 손님 1.

예상했던 것 중의 한 부분을 확인하며 패튼은 눈에 힘을 줬다. 저들이 싣고 온 철상자 안에는 송출장비가 있었다. 이제 발을 디딘 대륙에서 한반도의 정찰대본부나 화성연구소에게 통신할 징검다리, 그걸 설치한다.

‘이지역이 청도라고 불린 곳인데······’

해안을 끼고 내륙을 바라보는 가장 높은 산이다. 이름까지는 모르지만 그곳에 지금 샤크가 하강해 장비를 내리고 있다. 산 정상에 놓인 장비는 다리가 돌출해 암반을 파고들어 고정된다. 괴수들도 파괴 못할 거다.

‘여기 하나, 내륙으로 더 들어가서 하나 정도 더 놓겠군.’

예상을 삼키며 수통의 물을 마신 패튼은 기체 밖을 응시했다. 푸른 하늘과 바다가 보인다. 반대편으로는 대륙의 산과 들이 보인다. 삼엄해진 군대의 경계를 피하느라 거북이처럼 이동해온 보답인지 눈이 시원하다.

‘형포와 함께 하는 저자, 화성에서 온 인물을 군부에서도 인지하고 있을 텐데.’

그래선지 다른 이유에선지 서해바다의 경계는 엄밀해졌다. 물론 현재 일어나고 있는 대륙에서의 사건들이 영향을 미쳤을 터다. 군부가 바보가 아닌데 이상조짐을 인지 못할 리 없다. 그리샴장군은 무서운 인물이다.

‘치안총국은 대체 의중이 뭐야?’

좁힌 미간을 꿈틀거리며 수통의 물을 재차 넘기던 패튼은 장비가 가동되는 불빛을 확인했다. 초록빛이 상부에 들어왔다. 정상작동이 되는 거다.

‘서해바다 때문에 통신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것도 괴이한 일이긴 해.’

파도의 난반사 따위가 아니다. 뭔지 원인을 파악 못할 조건 때문에 대륙으로 넘어가면 통신이 끊긴다. 아니 간간히 이어지긴 하지만 딱 그 정도다. 그런데도 대륙에서의 사건상황은 파도가 밀려오듯 잘도 넘어온다.

‘필요도 없던 일을 하고 있구나.’

대륙에 통신장비를 설치할 거라곤 생각해 본적 없다.필요성이 전혀 없어서다.대륙의 북과 남에 5군단과 3군단이 있다.그들은 화성과도 직접 통신하는 송수신탑이 있다. 7군단과도 상시적으로 통신을 주고받는다.그들의 통신시스템 외에 다른 게 필요 없는 것이다.대륙엔 정찰대가 없으니 군부의 통신장비를 이용할 일도 없다.대륙은 버려진 땅, 신경 쓸 일도 없었다.그런데 이제 이렇게 하고 있다. 필요와 목적에 의해서다.

“최소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정도는······”

불만스러운 눈으로 중얼거림을 내던 패튼은 움찔했다. 샤크의 통신시스템이 갑자기 작동해서다. 아침하늘과 대비되는 짙은 화면에 내용이 떴다.

[블랙블러드 전멸.]

움찔했던 미간을, 눈동자를 확 팽창하며 패튼은 내용을 파악했다.

‘이게 무슨!’

첨부된 영상이 경악케 한다.붉은 엘프가 블랙블러드 암살자들 수백 명을 도륙하는 광경이다.이동장비와 바디캠등의 영상, 자신들의 최후를 찍었다.이영상이 전해진 경로가 추측된다. 이들도 송출장비를 놓은 거다.

‘저, 저놈이 대체 누구야?’

경악을 삼킨 패튼은 이내 확인했다.

‘가라운?’

레드파운틴족의 전설, 붉은 하늘 가라레를 여는 신인 가라운이다.블랙블러드가 파악해 보낸 내용이 그렇다.지금 보는 영상은 곽산이란 총사가 오백수하들과 전멸하는 것, 이전의 것이 있다.태산에서의 사건이다.

‘미친! 이건 거짓이야!’

화면을 보며 패튼은 부정을 외쳤다. 입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 외침이다.

‘삼대문파가 저렇게······!’

몰살했다.태산은 옆구리가 무너져 내렸다. 그 속에 강흑성도 있었다.경악스러운 건 저런 일을 만든 존재가 바로 붉은 엘프란 거다.보고도 믿지 못한 무력을 발휘했다.블랙블러드가 2차에 걸쳐 전멸한 이유다.

‘저놈, 영상이 전송될 것 알면서도 방치했어······!’

붉은 엘프는 그렇게 한 거다. 태산에서 블랙블러드가 샤크의 블랙박스를 통해 찾아냈듯이, 곽산과 오백살수가 전송할 것을 알면서도 외면했다.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 같다. 자신에겐 아무런 장애가 아니란 뜻이다.

‘저런 존재가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해본 상황이다. 지옥사신이라고 불리는 강흑성에 대한 생각과 염려만 하고 있었는데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저 존재는 훨씬 위험하다.

[정보관의 지시를 따를 것.]

명료하고 분명한 마지막 문구에 페튼은 시선을 집중했다. 치안총국에서도 아마 뜨거라 하고 놀란 게 분명한 상황, 통신이 연결되기도 전에 보내온 정보와 명령엔 핵심이 들었다. 정보관, 그의 지휘를 따르라 한다.

‘그자가?’

매화검문의 형포와 동행해 온자, 그자가 분명하다. 정보관이라면 치안총국내의 핵심요인이다. 총국장직속이다. 역시 중요한 인물이 온 거다.

‘그렇군.’

고개를 주억거린 패튼은 바로 통신음을 들었다.

-패튼대장, 듣고 있나? 본인은 치안총국 정보관 로웰이다. 이제부터 지휘는 내가 한다.

어이지는 로웰의 목소릴 들으며 패튼은 거칠게 수통을 입에 박았다.

* * *

관제탑에서 보이는 착륙장은 스페이스셔틀이 뿜어내는 연기로 자욱하다. 하강하며 뿜어내는 에너지와 열기가 몽고내륙의 흙먼지를 밀어 올려서다. 황사의 장막을 만들어내는 것 같은 광경, 복잡한 숨을 쉬게 한다.

‘드디어 왔구나.’

착륙하는 셔틀을 바라보며 볼프는 어금니에 힘을 실었다.화성의 삼대문파, 저들이 하나의 셔틀을 타고 왔다.각기 어떠한 생각을 품은 건지는 몰라도 가려는 방향은 하나다.저희가 당한 수모를 갚고자 함이다.

‘3군단을 맡은 이래로 가장 큰 손님이군.’

과연 어떠한 인물이 내릴 것인가, 볼프는 기대아닌 기대를 하게 되는 자신에게 실소했다. 화성에서 정확한 내용을 확보하지 못해 삼대문파가 누구를 보냈는지 모른다. 이전에 보낸 이들의 윗선일 것은 당연하다.

‘가라운을 상대하는 일.’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이런 일이 생길 거라곤 손톱만큼도 예상 못했다.전설이 이뤄진 일인 거다.물론 전설 전체는 아니지만, 가라운이란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그 존재가 블랙블러드를 몰살했다.

‘지구에 국한된 일이지만.’

엄청난 결과다. 블랙블러드는 그런 일을 당하면서 내막을 알렸다.치안총국에게다. 그래서 저들이 왔다.치안총국이 알려준 내용에 경악하면서다.1차출정대의 연락두절 상황에 대응함을 넘어선 상황대응인 거다.

‘블랙블러드가 소모품처럼 된 일이지만······ 그들이라면 그럴지도.’

블랙블러드의 정확한 규모나 힘을 모른다. 지구의 전력이 소실됐다고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분명한건 그들이 치안총국과 연결된 거다.

‘치안총국, 너희는 현재 상황을 이용하려는 거겠지. 되고 있구나. 그렇게 놔두진 않는다.’

심중의 결의를 씹은 볼프는 목소리 이어냈다.

“형님, 저것들이 뭘 하든 우리가 까부숩시다.”

그리샴장군의 얼굴을 그리며 중얼거림을 흘린 볼프는 부관의 보고를 받았다.

“수색대가 정찰중입니다만, 현재까진 종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북상중인 존재, 붉은엘프를 찾고 있다. 놈의 위치를 확인하면 저들을 보낼 것이다. 이를 갈고 있는 삼대문파, 지금 도착한 저들이 선봉에 서는 거다. 치안총국에서 바라는 것이기도 할 터, 이용당하는 척 이용함이다.

“내몽고 수림지역에 든 것이겠지?”“그렇게 판단됩니다.”“수색기들이 수림 속을 들여다 볼 순 없고······”

수림 속엔 온갖 것들이 산다. 상공에서 붉은 엘프를 구분해 낼 수가 없다. 게다가 내몽고수림은 광활하기가 터무니없다. 물론 그것이 장점이기는 하다. 그곳을 거쳐야만 이곳에 온다. 시간을 벌어주는 장애물이다.

“허.”

갑자기 터져 나온 실소, 아니 허탈함에 볼프는 미간을 찡그렸다.

‘고작 붉은 엘프 하나 때문에······’

5군단의 화력을 때려 부으면 그런 존재쯤 먼지로 만들 수 있다.그렇게 확신한다. 그런데 그렇게만 생각할 수 없는 문제가 이 일이다.가라운이라고 추정되는 그 존재는 블랙블러드를 도륙했다.상황은 엄중하다.

‘치안총국의 흉계가 스며든······’

역에 역을 이용해야 한다, 냉철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당하고 만다.

“수색대를 강화해라. 반드시 붉은 엘프의 위치를 확인하도록.”“알겠습니다.”

경례하고 돌아서는 부관에게 볼프장군은 한마디 덧붙였다.

“교전은 안 된다, 위험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후퇴한다.”

부관은 무겁게 가라앉은 시선을 던지다가 빠르게 돌아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볼프장군은 다시 밖을 봤다. 셔틀에서 손님들이 내리고 있다.

“손님맞이를 해야겠구나.”

* * *

“헉, 헉, 헉.”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며 원필성은 주변을 돌아봤다.은신한 바위 주변으론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멀티폰은 노이즈만 보일뿐 통신이 되질 않는다.그 이유는 한치 앞도 제대로 분간 못할 이 안개, 운무 때문이다.

‘제길!’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될 줄 몰랐다. 특임대가 어떻게 된 건지 정말 궁금해 미치겠다. 야무치의 공격에 최소한 여섯 명이 죽었다. 그놈이 삼켰다.

‘무공으로 단련된 백호부대원들을······!’

제로원복합소총으로도 그 괴수는 파괴되지 않았다. 칼날처럼 곤두서는 비늘이 초합금장갑처럼 튕기고 막아냈다. 물리적인 충격도 크게 받지 않았다. 대원들은 전투대검을 뽑아 공격했지만 스파크만 일어날 뿐이었다.

‘루카스중령은 어떻게 된 걸까?’

가쁜 숨으로 충격과 의문을 달래던 원필성은 경직했다. 바로 곁의 운무가 출렁거려서다. 즉각 숨을 멈추고 슈트의 카멜레온기능을 작동했다.바위와 같은 빛으로 변해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원필성, 그 옆으로 거대한 야무치가 지나갔다. 운무를 가르며 미끄러져 가는 모습은 흉악하고 무시무시하다. 그런데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대가리가 확 돌아온다.

‘헉.’

얼어붙은 원필성은 야무치의 붉은 눈이 번득이는 걸 봤다.뭘 느낀 건지 놈은 바위주변을 기웃거린다. 그러는 놈의 입엔 대원들의 흔적이 있다.찢어진 전투복과 핏자국, 저 거대한 몸통 속으로 먹혀들어간 자취다.

‘그냥 야무치가 아니야.’

그렇다는 걸 원필성은 확신했다. 저놈의 비늘은 원래도 강하기로 유명하지만 이건 그이상이다. 신형병기인 제로원복합소총의 화력을 무력화했다. 검기를 이룬 게 분명한 백호부대원들의 공격을 장난처럼 받아냈다.

‘이종, 그거야.’

화성연구소에게 만들어낸 괴물임을 확인하는 원필성은 얼어붙었다.

‘저!’

야무치의 머리가 벌어진다. 반으로 벌어진 그 속에서 사람이 나왔다. 하얗기가 마치 밀가루를 묻혀 놓은 것 같은, 요사한 아름다움의 여인이다.

“다 보여요.”

무시무시한 미소를 지어내는 여인, 눈이 야무치처럼 새빨갛다. 하반신은 야무치의 속에 묻힌 모습으로, 상반신만 내민 것 같은 형상으로 말한다.

“나하고 가요.”

원필성은 경직을 깨고 움직였다. 움켜쥐고 있던 제로원 복합소총을 미친 듯이 난사했다.

* * *

만리장성이 멀지 않았다. 그게 실제로 어디 있는지도 몰랐고 들어본 적도 거의 없다. 그렉과 박준에게서 들어 아는 내용이 전부다. 이 경로로 아우리엘은 지나갔다. 흑호는 이제 아우리엘의 냄새를 정확히 찾고 있다.

크르르르.

흑호의 반응을 따라 강흑성은 멈췄다. 이내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것들을 느꼈다. 다시 무원신풍보를 전개해 나갔다. 눈앞에 현장이 들어왔다.

‘블랙블러드.’

그들이다.태산에서 종적을 추적해간 자들의 전멸 이후로 뒤를 밟은 자들이다.역시 아우리엘이란 존재의 힘을 피하지 못했다.얼마나 많은 숫자가 죽었는지 모르겠다. 어림잡아도 지난번의 배는 넘을 것이 확실하다.

‘이번에도 남은 건 없구나.’

사체는 없다. 수림에 사는 존재들이 이 풍성한 잔치를 놀칠 리가 없다. 피냄새와 접전의 흔적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 외엔 장비들이 남았다.파괴된 블랙블러드의 이동차량들, 그 잔해로 다가간 강흑성은 시스템계기판을 살폈다. 전원이 아직 남아 있는 차량에서 영상을 찾았다. 아우리엘과 블랙블러드가 싸우는 광경, 몰살당한 이 영상은 어디론가 전송됐다.차량에서 떨어져 나온 강흑성은 다시 북쪽하늘을 봤다.

‘아우리엘, 네가 가는 곳엔 무엇이 있는 거냐?’

5군단이 있다. 그곳으로 아우리엘은 가고 있다. 왜 가는지는 그만이 안다.

크르르르.

낮은 울음을 내는 흑호, 그 머릴 쓰다듬은 강흑성은 다시 걸음을 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