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31. 결심(決心).
131. 결심(決心).
-형님, 삼대문파 인물들이 막 기지를 떠났습니다.
통합테스크에 속 볼프장군의 긴장을 그리샴은 여실히 느꼈다. 드디어 그들이 도착한 것이다. 지체하지 않고 행동에 나섰다. 역시 삼대문파다.
-치안총국의 의도를 확실히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이어 나온 볼프장군의 의견은 확신에 찬 목소리다.화성의 정세를 확인하는 부분이다.총통과 군부와 치안총국과 삼대문파로 대변되는 파워게임의 판이 지구로 옮겨온 것이다.정보를 내민 치안총국을 의심함이다.
-이렇게 행동에 나서도록 된 원인에 대해 삼대문파는 의혹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강흑성과 뇌인걸의 무공으로 인한 부분이 원천이기는 하지만, 그로인해 벌어진 사건들과 얽힌 내막의 결과가 분명 있다고······“시간의 문제였을 뿐이다.”
명료한 목소리로 입을 연 그리샴장군, 볼프장군은 눈동자를 강하게 응축했다. 존경하는 군의 선배이자 인생의 롤모델인 이에게서 강한 예감이 풍겨서다. 아니, 단호하게 뱉어낸 지금 저 말이 가진 의미는 결심이다.
-형님······!
긴장을 넘어 선 볼프장군의 눈을 응시하며 그리샴은 말했다.
“총통의 통치는 오래전부터 금을 만들어 왔다. 보이지 않는 금, 모두가 흉중에 적의를 품게 만드는 골이었지. 그 틈이 벌어지고 깊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계기가 필요한 시간의 차이일 뿐, 필연코 닥칠 일이었다.”-형님, 총통은 차제에 형님을 제거하고 정적들을 포함해 적대세력을 일소하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치안총국은 그러한 총통의 야망을 읽고 기회에 편승한 겁니다. 쿠데타로 총통의 눈 밖에 났던 치안총국의 음모입니다.“그래, 총통 역시 치안총국의 야욕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 거다. 하지만 그걸 역이용하려는 거지. 스스로를 과신하는 인물, 제어할 수 있다고 믿는 거다. 화성군부는 수족이고 모든 게 제 손에 있다고 여길 테니까. 실상이 또 그러하고. 그렇지만 치안총국의 그림자가 드리웠어.”-그래서 화성연구소를 찾으라 명령한 거군요?“그곳은 화성정부의 통제를 받는 곳이다. 허나 실제는 다르지. 매화검문과 연결돼 있고 블랙블러드도 마찬가지다. 그 뒤엔 치안총국이 있을 거다. 그런 현실을 총통측이 알고 있는지, 대응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모를 겁니다. 안다면 일이 이렇게 흘러가도록 두겠습니까?“삼대문파를 활용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흠칫한 볼프장군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리샴장군의 말대로일 가능성도 있음이다. 지구라는 장기판에 삼대문파라는 한 수를 던지는 거다.
“삼대문파 역시도 전체를 보면서 행사하는 것이겠지.”
그러한 판, 커지고 있는 이판에서 이제 지구의 군부가 어찌하느냐의 결론적 흐름이다. 그것에 대해 그리샴장군은 의중을 비췄다. 아니 결정했다.시간의 문제였을 뿐이라는 말은 스스로의 결정에 관한 결론인 것이다.
“더는 외면하지 않겠다.”-형님······!“내가 죽어서 평화가 온다면 기꺼이 죽겠다. 그러나 그런 일은 생기지 않겠지. 그러니 날 죽이려는 자들을 죽이겠다. 싸워서 평화를 갖겠다.”
볼프장군은 우르르 소름을 떨었다.드디어 그리샴장군이 결심한 것이다.이것은 전쟁, 혁명이다.그 시작은 이미 하고 있다.이것은 반역이 아니다. 죽지 않으려는 저항이고, 인갑답게 살기를 원하는 소망이다.
-형님, 지옥불속이라도 형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평생 가슴에 지녀온 불덩이를 뜨겁게 토해낸 볼프장군, 그와 눈을 맞추고 엷은 미소를 짓던 그리샴은 변화를 봤다. 볼프장군에게 온 보고다.부관을 돌아보는 볼프장군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바로 그리샴에게 알린다.
-목표의 위치가 포착됐습니다.
숨을 멈춘 그리샴은 이 순간 다른 것을 생각했다. 화성연구소를 찾아간 특임대다. 그들은 연락두절 상태다. 후속행동을 결정해야 할 때다.
* * *
“삼백아, 뭘 보고 있는 거야?”
건물 앞마당에 서서 서쪽하늘을 바라보던 삼백이가 고갤 돌렸다.
“하늘 보는 거야?”
붉은 눈에 짙은 빛을 드리운 삼백이, 해골 같은 얼굴에 표정이 보이는 것 같다. 사람이라면 걱정하는 얼굴이 맞을 거라고 준후는 생각했다.
“흑성이형 걱정하는 거야?”
명희와 아이들에게 들어서 안다. 흑성이 형과 삼백이가 유별나게 가까웠다고 한다. 배터리를 교체해 되살아난 삼백이는 저렇게 서쪽을 본다.그래야 할 이유 하나다. 서쪽하늘 저 아래 있을 강흑성을 걱정하는 거다.
“염려 하지 마. 흑성이 형은 무사히 돌아 올 거야.”
안심시키려는 웃음으로 준후는 삼백이의 손을 잡았다.차가운 금속의 로봇손이 움찔거린다.고맙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정말로 삼백이는 그냥 로봇이 아니다. 명희와 진숙이와 제나와 샤이닌 말처럼 마음을 가졌다.
“준후오빠!”“삼백아!”“뭣들 해!”“술래잡기 하자!”
여자아이들이 부르는 소리에 준후는 웃는 얼굴로 돌아섰고 삼백이는 그 손에 끌려갔다. 그렇지만 삼백이의 붉은 눈은 서쪽하늘을 다시 돌아본다.
* * *
사람들은 농장 재건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이젠 노예가 아닌 자신들의 땅, 그 안에 살 집을 지으며 웃고 있다. 얼마나 좋은지 웃는 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그 속으로 철금련의 손님들이 와서 더욱더 그렇다.
‘총관 마테오라고 했던가?’
문주 철무진이 직접 와야 하지만 사정이 그렇지 못해 미안하다며 온 자는 엘프다. 강흑성과 조우했던 일의 경과를 알려줄 땐 정말로 놀랐다.
‘적호문이라니······’
그렉 자신의 기억 속에 든 그 이름은 강흑성의 과거와 관련 있다.강흑성을 짐승처럼 잡아 사육한 놈들이다.그것들이 대륙에도 있었다.‘미래’ 라는 반화성조직의 체계 안에다. 그렇다는 게 확실히 증명된 일이다.
‘놈들의 공격을 분쇄한건 다행이지만······’
위험은 다시 닥쳐올 것이다. 상시적인 위험, 이세상은 그렇다. 그 속에서 살아남고 지켜야 한다. 그러고자 이곳 사람들과 이러고 있다. 해낼 것이다. 어떤 놈들이 들이닥쳐도 까부수고 이길 것이다. 그래야 한다.
‘철금련과 연계했듯이 비슷한 생각과 의지를 지닌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해.’
흉중의 생각을 더듬던 그렉은 망루 아래로 다가오는 아이를 봤다.철수다, 여동생 영희를 보살피는 저 아이는 가슴 속에 돌덩이가 들었다. 무공을 배우겠다는 의지다. 돌덩이에 정을 쳐 새겨 넣겠다는 각오다.
‘언제 올지 모를 흑성이를······’
망루를 올라오는 철수를 보며 깊은 숨을 들이 내쉰 그렉은 입을 열었다.
“내가 먼저 몸 쓰는 법을 가르쳐 주마, 할 테냐?”
머리를 내밀다 멈칫한 아이, 철수는 몸을 마저 끌어올리고 그렉을 응시했다. 상황을 알고 있기에 지금 들은 말의 의미를 헤아린다. 강흑성은 언제 돌아올지 모르고, 본다고 해도 무공을 가르쳐 줄지 알 수 없다.
“십대문파의 한곳이었던 철극문의 무공이다. 손님으로 찾아온 철금련의 뿌리지.”
눈동자를 꿈틀거리는 철수를 향해 그렉은 뒷말을 던졌다.
“너는 백지다. 뭘 그릴지는 네가 정하는 거다. 나는 네게 그림을 그릴 준비, 그것만을 알려줄 뿐이다. 손발을 내고 거두는 방법, 숨을 쉬는 법, 의지를 다스리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법, 그것들조차도 네게 달렸다.”
그렉의 호목을 말없이 응시하던 철수는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가르쳐 주십시오.”
흐릿한 미소를 입가에 피워낸 그렉은 일어섰다.
“일어서라.”
따라 일어선 철수의 눈과 그렉의 눈동자엔 파란 하늘의 빛이 스며들었다.
* * *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원필성과 루카스는 걸어갔다. 앞서가는 자, 화성연구소장이 분명한 종리운의 뒤를 좇아서다. 지체하면 여지없이 야무치의 꼬리가 후려친다. 그렇게 쓰러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걷는 중이다.
“자, 여기가 본연구소의 중지 중 한곳이지.”
걸음을 멈춘 종리운, 그의 뒤로 벽이 또 열린다. 야무치가 이동할 만큼의 공간을 확보한 연구소 내부, 벽 뒤는 거대한 광장 같은 곳이다. 거대수들이 있고 가지마다 열매가 달리듯 뭔가 매달렸다. 뭔지 바로 알았다.
‘이종!’‘저렇게!’
원필성과 루카스는 충격으로 눈을 치떴다. 거대수에 매달린 수많은 고치덩어리 같은 것들, 그 속에 화성연구소가 만든 인공생명체들이 있다. 다른 형질의 이종개체를 혼합시킨, 말 그대로 이종, 창조된 괴물들이다.
“아름답지 않은가?”
자랑스러운 미소로 종리운은 거대수들을 가리켰다.
“거대수의 에너지가 열쇠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 이 방법을 알아내는 데만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 몰라. 이젠 완성단계야. 축복받은 일이지.”
축복이라는 말에 원필성과 루카스는 진저리를 쳤다.
“반가운 얼굴들을 봐야겠지?”
이어진 종리운의 미소와 목소리에 두 사람은 흠칫했다. 불길한 예감이 뒷골을 엄습해서, 종리운이 던지는 저 눈길과 미소의 사악함이 읽혀서다.종리운이 손뼉을 치자 결과가 왔다. 원필성과 루카스는 얼어붙었다.
‘저들을!’‘미친!’
특임대, 백호부대원들이다. 일곱 명이 흑색관에 실려 왔다. 형상이 변해 있다. 본래의 모습에 다른 것들이 접합돼 있다. 괴수와 맹수들이다.
“아름답지?”
사악한 미소를 흘려낸 종리운은 설명하듯 말을 이어냈다.
“혼종의 과정을 마친 상태다. 이제 거대수의 에너지로 숙성하는 과정만 남았어. 워낙에 소재들이 좋아서 훌륭한 결과물이 나올 걸로 기대한다.”
눈자위를 떠는 원필성과 루카스에게 종리운은 뒷말을 던졌다.
“이정도의 소재와 결과물은 우리에게 차고 넘치지만 말이야.”
사악한 미소를 피워낸 종리운은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더는 다른 말없이 두 사람을 응시했다. 그 시간이 길어져 경직이 깨질 무렵 입을 열었다.
“너희가 할 일은 따로 있다.”
원필성과 루카스는 지독하게 불길한 예감을 삼켰고, 종리운은 답을 말했다.
“그리샴에게 보내는 내 선물이 되는 거지.”
* * *
공포와 경악에 사로잡힌 채 한인철은 제로원복합소총을 난사했다. 빔을 발사하고 광탄발사기를 연사했다. 소대원들도 마찬가지, 그 화력이 집중되는 곳의 붉은 엘프는 웃고 있다. 푸른 에너지 배리어 안에서다.
“캐논!”
발악 같은 한인철의 명령에 맞춰 이동형 캐논포가 불을 뿜었다. 몸 전체로 포를 받친 전투원들은 연속해서 발포했다. 하지만 역시 소용없다. 붉은 엘프 주변으로 퍼진 화력에 수림의 거대수들만 휘날리고 있다.
“후퇴한다! 퇴각!”
소대원들에게 외치며 한인철은 돌아서 달렸다. 플라잉바이크를 숨겨둔 장소까지 전력으로 달렸다. 교전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긴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붉은 엘프는 갑자기 나타났고 소대원들을 희롱처럼 죽였다.
‘기갑부대가 있는 곳으로 유인해야 해!’
붉은 엘프의 출현과 교전상황은 이미 알렸다. 대응이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소대원들과 피해야 한다. 저런 괴물을 상대로 싸울 순 없다.
‘어서 여길 헛!’
얼굴을 때리는 감각에 한인철은 순간 경직했다. 질주를 멈추고 옆을 봤다. 자신을 따라 달리던 소대원이 쓰러졌다. 상하로 나뉜 형상으로다. 그에게서 터져 나온 피가 얼굴을 때린 거다. 왜 저렇게 된 건지 눈에 보인다.붉은 엘프.그 존재가 흔드는 손으로부터 푸른 벼락의 칼날이 퍼져 날아온다.수림을 가르는 그 뇌전의 칼날들이 소대원들을 동강내고 있다.
‘헉.’
가슴에 느껴진 화끈한 감각, 한인철은 주저앉았다.제로원복합소총으로 바닥을 짚고 버티며 가슴을 봤다.벌어지고 있다. 심장이 보인다.벌떡거린다. 그런데 갈라진다. 선혈을 뿜어낸다. 바닥으로 몸이 기울어진다.
‘어머니.’
마지막에 떠오른 이를 부르며 한인철은 그 존재를 봤다. 푸른 에너지의 정화와도 같은 괴물, 붉은 엘프다. 전신으로 뇌전의 칼날을 풀어낸다.그가 멈춰 서서 웃는다. 지옥의 미소, 그 속에 중얼거림을 흘려낸다.
“흥겨워 지는 걸?”
푸른 바람처럼 붉은 엘프는 지나갔다. 그 자리에 엎어진 한인철은 숨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