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33화 (134/172)

혹성강호. 133. 파멸의 진혼곡.

133. 파멸의 진혼곡.

크워엉!

흑호가 포효를 터트렸다. 전진하고 있는 방향, 북쪽을 향해서다.강렬한 적의와 분노를 드러낸 그 울음에 반응한 것은 수림이다.보이지 않는 곳에 있던 짐승들이 혼비백산 달아난다. 그 순간 강흑성은 도약했다.

‘에너지!’

온 몸과 영혼의 감각으로 알아지는 것이다. 거대수를 차고 비상해 근원을 봤다. 섬광이 눈에 들어온다. 저런 강도의 에너지라면 역시 군대다.아우리엘과 군대가 충돌한 거다. 수림지대가 거의 끝나가는 지점이다.

“아우리엘.”

이름을 나직이 부르며 강흑성은 하강했다. 낙엽이 휘돌아 내리는 것과 같이 땅을 밟은 그의 곁으로 흑호가 다가와 그르렁거린다. 위험을 느껴서고 그렇기에 흥분해서다. 흑호의 목을 쓰다듬으며 강흑성은 말했다.

“그래서 온 거다.”

옅은 미소의 강흑성을 흑호는 가만히 응시했다. 그러다 얼굴을 핥았다. 당신이 하려는 일을 같이 하겠다는, 이미 그러고 있다는 마음이다.

“하하하, 간지러워.”

박준이 본다면 저게 강흑성 맞아? 할 상황이다.

“어어, 밀지 마.”

강흑성은 정말로 흥겨운 마음으로 흑호와 장난했다. 어린 시절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그렇지만 어린 가슴에 늘 그리던, 천진한 아이가 됐다.

“자, 천천히 가볼까.”

흑호와 밀고 당기는 장난 끝에 강흑성은 다시 걸음을 시작했다. 그러나 천하태평한 움직임이다. 여태 전력을 다해 전개하던 무원신풍보를 잊은 행보, 수림을 헤치고 나가는 움직임은 산보를 나온 한가한 걸음 이다.

‘군대가 아우리엘의 접근을 알았어.’

여유로운 걸음 속에서 강흑성은 전후를 더듬어 나갔다.

‘블랙블러드의 송신으로 인해서겠지.’

자신도 그들의 파괴된 장비 안에서 영상을 봤다. 아우리엘이 블랙블러드를 전멸하는 광경, 그것은 5군단으로 들어간 거다. 경로는 직접이었는지 간접이었는지 모른다. 화성으로 먼저 들어간 것이 내려왔을 수 있다.

‘간단하지 않아.’

이제 벌어지고 있는 접전은 그렇다.아우리엘의 접근을 인지하고 5군단이 대응에 나선상황, 삼대문파도 가만있지 않을 터다.이 현실은 그렇게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강렬한 예감, 배후와 흑막이 있는 사건이다.

‘아우리엘이란 존재를 이용하는, 나라는 존재를 기회로서 활용하는.’

치안총국이란 이름을 강흑성은 뇌리에 붙잡았다. 애초부터 강흑성 자신과 악연으로 얽힌 이름이다. 그들은 남도의 제왕을 움직였고 블랙블러드를 고용했다. 그들의 행사엔 더 크게 숨겨진 의도가 있음이 느껴진다.

‘종국엔 패권이겠지.’

어머니가 늘 들려주신 말씀이다. 힘을 가진 자는 더 강한 힘을 원한다고, 그러한 욕심과 야망이 파멸을 부르게 된다고, 그래서 세상이 이렇다고.

“누구든, 놀기를 원한다면 놀아준다.”

진한 미소로 강흑성은 중얼거림을 던졌다. 아무도 듣는 이 없는 수림에서, 그 속을 산보하듯 걸어 나가며, 흥겨운 콧노래를 부른다. 그 소리가 수림의 바람을 타고 퍼져나간다. 북에서 불어오는 파멸의 바람처럼.

* * *

회의실의 대형 스크린에 뜬 접전상황을 그리샴은 지켜봤다. 5군단이 상공에서 촬영해 보내는 실시간 영상이다. 참모들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마침내 천붕까지 터트렸기 때문이다. 그 빛 때문에 눈을 감아야했다.

-형님, 보고 계십니까?

회의실의 긴 테이블 위에 뜬 볼프장군의 얼굴은 긴장과 흥분이 가득하다.

“보고 있다.”-천붕의 에너지에 가루가 됐을 겁니다. 아무리 괴물 같은 놈이라고 해도 견딜 수가 없지요. 먼지가 가라앉고 화염이 잦아들면 결과를 확인하게 될 겁니다. 붉은 엘프를 방아쇠로 이용한건 어쨌든 성공한 거겠지요?

알면서도 확인하듯 묻는 볼프의 의중을 그리샴은 안다.말 그대로 방아쇠는 이미 당겨졌다.화성과 지구 사이의 전쟁이다.이건 그 시작, 도화선의 불일뿐이다.총통과 치안총국과 그리샴 자신 사이의 싸움이다.

‘군인으로서만 남고자 했거늘.’

그럴 수가 없게 됐다. 총통은 그리샴 자신을 이용해 제 욕심을 채우려 한다. 치안총국은 그런 총통을 기회로 활용해 화성과 지구의 영구패권을 잡으려 한다. 삼대문파는 그 흐름에 편승해 저희 욕망대로 움직일 것이다.

“결정은 변함없다.”

단호하게 뱉은 그리샴의 대답에 볼프는 미간을 경련처럼 움찔했다. 화성의 야욕을 상대로 항전하겠다는 그리샴장군의 결심은 확고한 것이다.

-그렇지요, 그래야 합니다.

강하게 마음을 드러낸 볼프는 더 강한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는 지구를 지키는 군인들이지 화성의 하인이 아닙니다.

쌓이고 쌓여 썩어 들어가던 흉중의 진심이다. 이젠 가슴을 펴고 그 진심을 말함이다. 저들이 목에 칼을 들이미는 마당에 당할 생각은 없다.

“우린 그 누구의 하인도 아니다. 우릴 믿는 자들을 위해 싸우는 군인이다.”

그리샴의 목소리는 회의실을 울리며 참모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 순간 회의실 문이 열렸다. 다급하게 들어온 장교가 참모에게 귓속말을 전한다.

“구조대가 돌아왔습니다.”

참모의 경색된 목소리를 들은 그리샴은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 * *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광경을 바라보며 명위군은 소름을 삼켰다.저것이 천붕의 위력인 것이다.하늘상어의 파괴력과 비교할 수 없는 위력이다.저런 에너지 속에선 아무 것도 무사할 수 없다. 저것은 파멸이다.

“허.”

헛바람 소릴 낸 경운이 이어내는 말은 두려움의 경탄이다.

“파멸의 진혼곡이 부는구나······”

무슨 소린지 명위군과 우인홍은 알았다.몽골초원을 지나온 바람이 분다.귓가를 스치며 새된 울음을 내는 바람소리가 마치 진혼곡처럼 들린다. 거대한 버섯구름을 만들어낸 천붕의 파멸을 위해 노래하는 것 같다.

‘바람이 먼지구름을 밀어내면······ 아니, 끝났어.’

명위군은 확신했다. 불가해한 존재였던 붉은 엘프는 죽었다. 저런 파괴력 속에서 살아날 순 없다. 그러니 지구에 온 임무는 일단 여기서 끝이다.

‘본문과 삼월문과 백두파가 바라는 것은 저 불속에······ 그러나 시작이지.’

그렇다, 완전한 끝은 아니다. 임무는 이제 시작한 것이라 봐야 한다.

‘각축전.’

이제부터 벌어질 일을 생각하며 명위군은 우인홍과 경운을 돌아봤다. 삼월문과 백두파, 저들과의 오월동주는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 궁금하다.

‘당분간은.’

지그시 이를 물던 명위군은 천지육검의 수좌가 낸 소리에 흠칫했다.

“붉은 엘프가 보입니다!”

* * *

벌컥거리는 소리를 내며 물을 마신 볼프는 긴 숨을 내쉬었다. 자신처럼 안도하는 표정을 품는 참모들을 응시하며 설핏 미소 지었다. 정말 한숨은 돌린 상황이어서다. 그런데 시작은 이제부터다. 화성과의 전쟁이다.

‘아직은 내제돼 있는 상황이지만.’

화성에서도 직접 공격을 해 온 게 아니고 지구에서도 반격을 하는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일, 포문을 열었다는 건 서로 안다.

‘혼란을 일으키자는 수작이면 이것만은 아닐 텐데······’

미간을 찡그리고 물 잔을 돌리던 볼프는 눈동자를 응축했다.

‘형님을 직접 노린다면?’

눈엣가시, 결국엔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이 그리샴 징군이다. 그가 있고 없고가 전황을 좌우한다. 그를 반역의 대상으로 만들어 헤게모니를 갖는 것도 좋지만, 그가 부재한 상황자체를 명분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리샴 장군을 암살하고 모반을 일으킨 세력을 일소한다는······!’

눈썹을 확 곤두세운 볼프는 그 순간의 보고에 얼어붙었다.

“붉은 엘프가 살아 있습니다!”

경직한 눈을 화면으로 돌린 볼프는 봤다. 천붕이 만든 파멸의 먼지 속에서 걸어 나오는 존재를.

* * *

시원한 물 한잔이 이렇게도 좋고 귀한 것이구나를 원필성은 새삼 깨달았다. 의무대 침상에 누워있는 지금 더없는 안온함을 느낀다. 간호장교가 준 물 한잔은 정말 감로수 같다. 지금 생각나는 건 그녀 한 사람이다.

‘살아 돌아왔어,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어.’

카이오를 떠올리며 살아있음을 만끽하던 원필성은 이내 경직했다.

‘그들은······’

백호부대원들, 특임대는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 생존자는 루카스중령과 원필성 자신뿐이다. 그들이 어떻게 된 건지를 모른다. 정신을 차렸을 땐 운무바깥에 있었다. 운무 속에서 괴수들과 교전한 기억밖엔 없다.

‘살았다고 좋아하다니······!’

스무 명 한팀이 생사불명이다. 나만 살았다고 좋아하는 건 군인이 아니다. 인간이기에 너무나 당연한 감정이지만, 전우들을 잃고 얻은 목숨인 거다. 그들의 가족과 지인들이 슬퍼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원필성은 관자놀이를 누르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렇지만 찌르는 것 같은 두통만 일어나고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운무 속에서 괴수들과 접전했는데, 그 후로는 기억이 전혀 안 난다.

‘루카스중령은?’

침상에서 일어난 원필성은 루카스를 찾아 움직였다. 커튼을 열고 돌아보니 응급실 저편에 그가 보인다. 자신처럼 침상에 앉아 찡그린 얼굴이다.

“중령님.”

루카스를 부르며 다가간 원필성은 그의 시선에 담긴 의문을 읽었다. 역시 기억이 안 나는 거다. 운악산에서 무슨 일을 겪은 건지 안개속인 거다.

“기억 안 나시는 군요.”“그래, 안개가 낀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자네도 그렇지? 란 루카스의 눈길이 뒤로 건너갔다. 그 시선을 따라 몸을 돌린 원필성은 어깨를 경직하며 부동자세를 취했고, 경례를 올렸다.

“다시 얼굴을 보니 반갑군.”

그리샴 장군, 사령관이 직접 왔다.

“보고가 늦어진 점 용서하십시오.”

루카스중령의 경례를 받으며 그리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저간의 상황을 파악하고 온 터, 백호부대원들이 귀환하지 못한 결과를 삼킨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그리샴은 물었고 루카스와 원필성은 곤혹 속에 부동자세만 취했다.

“별다른 이상소견은 없습니다.”

군의관의 보고에 그리샴은 귀를 기울였다.

“찰과성과 타박상 외엔 골절도 없고 신체는 무사한 편입니다. 기억을 못하는 부분은 원인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메디칼 캡슐의 스캔 결과를 보면 전두엽 부분에 이상소견이 보입니다. 아주 작은 종양 같은······”

그 순간이다, 루카스와 원필성은 휘청거렸다.강한 충격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종양, 그 말을 들은 순간이다.머리로부터 뭔가 퍼져 나온다.사지백해로 퍼져나가는 무엇, 그것이 눈동자를 붉게 물들여 버린다.

‘헉!’

원필성은 봤다. 세상이 온통 붉게 물드는 것을. 눈앞의 괴수들을.

‘죽여야 해!’

맹목적이고 강렬한 목적의식 속에 원필성은 움직였다. 움직인 순간 뻗어낸 손을 군의관의 가슴에 박았다. 괴수로 보인, 아니 괴수를 죽였다.

“괴물들아!”

같은 순간 루카스는 그리샴장군을 공격했다. 소리치며 원필성처럼 뻗어낸 손이 칼날이다. 그러나 그리샴은 둘이 휘청거릴 때 예감하고 피했다. 하지만 목과 어깻죽지가 갈라졌다. 동시에 핸드건을 뽑아 발사했다.

“크아!”

루카스는 핸드건을 맞았다. 가슴에 구멍이 났다. 그렇지만 벼락처럼 빠르고 강한 힘으로 공격을 이었다. 그리샴은 바닥을 굴렀고 부관들은 갈라졌다. 그 일에 합세한 원필성은 그리샴 장군을 쫓아 복도로 나갔다.

“사살해!”

소리치는 그리샴 장군의 등을 향해 몸을 던진 원필성은 손을 꽂았다. 칼날이 된 손, 그것이 그리샴 장군을 관통했다. 그 순간 총격이 날아왔다.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난 원필성, 그 곁의 루카스에게 집중사격이 날아갔다.

* * *

어떻게 돌아가는 판국일까? 의문을 억누르고 패튼은 게틀러의 진동 에 몸을 맡겼다. 수림지대를 관통해 나가는 전진, 이미 어둠이 내려앉았다.

‘응?’

선두의 게틀러가 멈췄다. 형포와 로웰이 탄 차량, 로웰이 명령한 거다. 이유를 알았다. 수림지대가 끝났다. 이제부터는 초원과 사막이 기다린다.

‘5군단도.’

어금니를 물던 패튼은 로웰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종들이 5군단을 즐겁게 해줄 거다.

날아간 이종들을 떠올리며 패튼은 미간을 찌푸렸다.

-예상보다도 더 놀라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한번 볼 텐가?

게틀러 계기판 모니터에 뜬 영상을 패튼은 응시했다. 그리고 얼어붙었다.

‘저!’

붉은 엘프가 군대와 싸우고 있다. 상공에서 촬영한 것, 5군단은 화성으로 송출했다. 그것이 다시 이곳으로, 로웰에게로 온 것이다. 그런데 경악스럽다. 5군단은 천붕을 사용했다. 그런데도 붉은 엘프는 죽지 않았다.

-해가 지도록 소모전이 이어지고 있는데, 아무래도 붉은 엘프가 놀고 있는 것 같지 않나? 우리한텐 좋은 일이야,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해야지.

로웰의 목소리는 그것으로 그쳤다. 그의 게틀러가 다시 움직였고, 그 뒤를 따라 패튼의 개틀러도 전진했다. 패튼은 소름 돋은 한기를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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