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35. 운명의 길.
135. 운명의 길.
본능적으로 카이오는 핸드건을 발사했다. 원필성을 보는 사이 우측에서 벼락처럼 닥쳐온 그림자를 향해서다. 빔이 강타했다. 삼백이가 발사한 라이플, 자신이 쏜 핸드건, 그림자를 맞췄다. 그렇지만 그대로 닥쳐온다.눈을 치뜬 카이오를 안고 넘어간 것은 전복이다. 격하게 소리친다.
“죽여!”
삼백이와 최창수는 즉각 반응했다. 아직까지 망부석처럼 서 있는 원필성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원필성이 춤추는 것처럼 휘청거리며 물러나는 순간 전복은 그림자를 향해 총을 쐈다. 루카스중령이란 이름의 존재다.
“애들 피신시켜!”
귀를 때린 전복의 외침에 카이오는 흠칫하며 움직였다. 건물을 향해, 잠이 든 아이들과 여자들을 깨우기 위해 달려갔다. 그 순간 그림자가 또 덮쳤다. 하지만 전복이 동시에 벼락처럼 움직였다. 장검으로 후려쳤다.캉! 쇳소리와 함께 튄 스파크처럼 전복은 놀람과 충격을 품었다.어깨가 갈라져 상체가 두쪽이 됐어야 할 상대는 멀쩡하다.검을 통해 들어온 반발력은 강철을 친 감각이다. 저 형상, 근육과 합성된 금속의 방어다.
‘이종!’
전복은 확신했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소문의 그 존재가 분명하다. 그런데 황당한 충격이 배가하는 현실인 것은 원필성 대위다. 그가 이종의 모습으로 나타난 거다. 이 한밤에, 저런 존재가 돼서, 이게 무슨 일인가.
“크아아!”
흉악한 분노를 터트리며 이종사내가 손을 휘두른다. 그 손이 장도가 되어 갈라오는 것을 전복은 분명히 목도했다. 스피드와 파워가 느껴진다.
‘윽!’
장검으로 방어한 전복은 뒷걸음질했다. 예상은 했지만 상대의 힘은 무섭다. 군부무예를 익힌 자다. 손이 변한 장도로서 펼치는 것은 삼월검법과 더불어 유명한 육합도법이다. 멸문한 육합문의 기예, 빠르고 강하다.그야말로 칼바람을 일으키며 풀어져 나오는 공격에 전복은 위태롭게 뒷걸음쳤다. 금방이라도 칼에 쓰러질 것만 같은 모습, 그렇지만 역전의 기회를 노렸다. 싸움과 전투라면 이골이 났다. 곧 숨을 돌리는 때가 온다.
‘네놈의 목을 치는 순간이다!’
분노와 전의를 뜨거운 숨으로 삼키던 전복은 경직했다. 대적상대가 바람처럼 돌아서다. 전복 자신의 숨통을 끊기 위해 마지막 전력을 퍼부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 직후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돌아서 달려간다.
‘카이오!’
놈이 노리는 것이 뭔지 알았다.카이오와 아이들과 여자들이다.카이오가 달려 들어간 건물을 향해 놈이 벼락처럼 달려간다. 한 발 늦은 상태다.
‘이 새끼!’
받아쳐주려던 자신이 오히려 당한 상황, 전복은 온힘을 다해 움직였다. 그런데 자신보다 먼저 이동하는 존재가 있었다. 바람처럼 옆을 지나간다.
‘원대위!’
정체를 인지한 전복은 아득한 절망을 삼켰다. 어째서 원대위가 이종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인지 의문이지만, 이런 상황은 예상한 것이었다. 위기, 위험이 닥쳐오는 일이다. 예상했지만 이렇게 당하고 마는 현실이다.
‘늦었어.’
치떨리는 후회와 자책의 찰나 속에서 전복은 눈을 치떴다.
‘뭐!’
원대위가 그놈을 공격한다. 똑같은 이종의 형상으로 이 밤에 나타난 존재, 카이오와 아이들을 공격하려 뛰어 들어가던 놈의 등에 칼을 꽂았다.
* * *
-형님!
치뜬 눈을 한 볼프장군의 모습을 그리샴의 참모들은 목도했다. 공간을 건너 뛸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올 기세, 놀라고 분노한 얼굴이다.
“괜찮아. 보다시피 죽지 않았다.”
흐릿한 미소로 그리샴 장군은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렇지만 한 눈에 봐도 심각한 중상이다. 안 죽고 살아 있는 게 천행이라고 여길 상태인 거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5군단을 이끄는 수장답게 볼프장군은 흥분을 억누르고 물었다.
“화성연구소에게 당했지.”
가라앉은 음성으로 전후를 이야기 하는 그리샴장군, 볼프는 묵묵히 들었다.
“이상한건 말이야······”
미간을 찌푸린 표정으로 그리샴장군은 더듬었다. 죽음에 몰렸던 그 상황이다.
“원필성 대위, 그놈은 날 죽일 수 있었어. 분명이 그럴 수 있었지. 그런데 난 살아 있어. 척추는 물론 장기도 손상 없는 부상, 기이한 일이지.”-그거야 형님이 천운을 타고난 거라서 그렇겠지요.
볼프는 진심을 말했다. 목과 어깻죽지를 가른 저 상처도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갔으면 위험했을 터다. 그런데다 복부를 관통한 상처는 말대로 기이한 결과다. 복강만 뚫고만 결과, 의도한다고 해도 어려울 결과다.
-지독한 형님의 팔자가 그렇게 만든 겁니다. 죽지 말고 싸우라는 거죠.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소리를 한 볼프를 그리샴은 말없이 노려봤다.
-크흠, 뭐 말인즉슨 그렇다는 겁니다.“내가 악운을 품고 있다는 건 인정한다.”
그리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늘 생각하던 부분이 그것인 거다. 군인이 돼서 지구를 책임지는 7군단의 사령관이 되기까지의 삶, 악운이다.
‘죽을 고비를 무수히 넘기면서 온 길.’
그렇지만 원필성의 공격은 정말로 이상하다.분명 그 순간 그리샴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그런데 살아 있다.이건, 원대위로 인해서인 거다.화성연구소에 의해 이종이 된 그에게, 그 영혼에 남아 있던 마음이다.
“현재 상황은?”
전황을 묻는 그리샴의 눈길에 볼프장군은 즉각 현실에 집중하며 대답했다.
-붉은 엘프가 괴수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분할화면에 뜬 영상을 그리샴과 참모들이 보는 가운데 볼프는 말을 이었다.
-우리 5군단 병력을 상대하려는 의도입니다.
명확한 소리, 그리샴은 고개를 끄덕였고 볼프는 또 다른 상황을 말했다.
-군단 남쪽경계지에 이종들이 출몰했습니다. 현재 대응중입니다만, 적들의 공격입니다. 적이란 당연히 화성연구소를 비롯한 그 배후겠지요.
무겁게 가라앉은 눈빛을 흘려내던 그리샴은 물었다.
“붉은 엘프, 어려워 질 것 같나?”
볼프는 역시 심각한 눈으로 대답했다.
-쉽지 않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예측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 그리샴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보며 모두가 침묵을 삼켰다. 그리샴은 다시 눈을 뜨고 말했다.
“황금안(黃金眼)을 사용하자.”
그리샴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때처럼 볼프는 눈을 부릅떴다.
-형님 그것은······!“망설이고 좌고우면 할 때가 아니다. 단호하게 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수단을 모두 동원해서, 최강파워로 위험을 분쇄해야 한다.”
볼프는 알아들었다. 이결과로서 화성에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5군단이 비밀리에 숨겨두고 있는 전략자산, 골든아이라고 부르는 황금안을 사용하는 거다. 저고도 위성이며 고고도 정찰기체인 골든아이, 최강무기다.
-화성에서 골든아이를 보게 되면 기함하겠군요.“그렇겠지. 지구를 버리기로 결정하면서 폐기된 전략프로그램의 결과물이니까. 많이 놀랄 거야. 그래서 전쟁은 더 빠르고 치열하게 이뤄질 테고.”볼프장군의 눈을 응시한 그리샴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게 말했다.
“황금안을 띄워라.”
* * *
어깨에 박힌 상대의 칼, 손이 변한 무기를 부러뜨리며 원필성은 뒤로 물러났다. 자신이 날려 보낸 칼날을 등에 박은 존재가 누군지 알았다.
‘루카스중령.’
그다, 그가 괴수 같은 모습으로 적의를 발산하고 있다. 저 자가 죽이고자 하는 상대가 누군지 안다. 저 3층 건물 안에 있을 여자와 아이들이다.
‘카이오.’
그녀를 죽이려고 한다. 그녀를 봤다. 놀람과 두려움에 물든 그녀의 눈이 원필성 자신을 봤다. 루카스중령처럼 된 모습을, 괴수가 된 이 모습을.
‘나는······’
시야가 온통 붉다. 심장은 거칠게 뛰고 피는 용솟음친다. 죽이라는 소리가 머리에 울리고 있다. 보이는 모든 것을 멸살하라고 충동하고 있다.
‘괴물이 됐어.’
화성여구소가 이렇게 만들었다. 그리샴장군을 암살하기 위해서다.그 일을 했다. 그리샴장군의 등을 찔렀다.그의 생사여부는 알 수 없다. 그 순간에 죽여여 한다는 본능뿐이었다.그런데 찌르는 순간 망설인 것 같다.
‘여기 온 건······’
카이오, 그녀가 보고 싶어서다.준후와 명희와 아이들을 보고 싶어서다.괴물이 되었지만 그 마음이 남았다.지금의 자신이 뭔지 모르겠다.아는 건 하나다.루카스가 카이오와 아이들을 해치게 둘 수 없다는 것이다.
“크아아!”
괴성을 터트리며 공격해 오는 루카스와 얽혀 원필성은 굴렀다. 상대의 팔과 칼을 잡은 순간 전신에서 폭발해 나오는 칼날을 그대로 맞았다.
“죽여! 다 죽여!”
피와 침을 튀기며 소리치는 루카스, 붉은 그 눈을 응시하며 원필성은 말했다.
“아니, 살려야 해.”
원필성의 무릎이 솟아올랐다. 그로부터 폭발해 나온 원뿔의 칼날이 루카스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등으로 튀어나온 그것이 불가사리의 다리처럼 사방으로 벌어졌다. 원필성이 무릎을 내리는 것과 같이 훑어 내려갔다.후두두둑, 바닥으로 떨어진 루카스의 장기들은 뜨거운 김을 피워냈다. 휘청거리며 물러난 루카스는 열려버린 복부를 보고는 커다랗게 웃는다.
“으하하하하!”
꾸드득 거리는 기음을 내며 루카스의 복부는 다시 닫힌다. 진흙구멍을 메우듯이 상처가 사라졌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금속질의 근육이다.
“크아!”
다시 달려드는 루카스의 전신에 칼날의 비늘이 덮였다.원필성도 같은 모습이 됐다.둘은 포탄이 부딪치는 것처럼 충돌했다.쇳소리와 불꽃이 무섭게 퍼졌다. 카이오와 아이들이 피한 3층 건물은 부서져 나갔다.괴수들의 싸움, 무시무시한 접전의 상공에 비행체가 날아온 것은 그때였다. 샤크가 정지비행으로 떴다. 벌컨포신이 돌출, 불벼락을 퍼부었다.
* * *
“저건 뭘까?”
밤하늘을 가르고 올라가는 불빛을 보며 아우리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이 5군단에서 쏘아올린 것이다. 자신을 상대하기 위한 뭔가다.
“알게 되겠지.”
천진한 미소를 지은 아우리엘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괴수들이 질주해간 초원 저편을 향해서다. 5군단의 군인들이 내는 화력이 밤을 밀고 있다.
“아, 아름다워.”
초원의 지평선을 밀어 올리는 불빛을 향해 아우리엘은 웃으며 걸어갔다.
* * *
해일처럼 밀려온 괴수들을 보며 명위군은 그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붉은 엘프, 가라운이란 전설의 존재가 다가오고 있음이다. 군대와 합류를 결정한 것이 수치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존재, 최후의 기회를 노려야 한다.
‘군대의 화력을 언제까지 당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예감 된다. 붉은 엘프, 저 존재라면 가능할 것이란 느낌이다.
‘그 어떤 화력을 퍼부어도 죽지 않을 거란, 지치지 않을 거란······!’
떨리는 숨을 몰아 내쉬던 명위군은 경운의 놀란 음성을 들었다.
“5군단에서 뭔가를 쏘아 올렸습니다!”
밤하늘로 긴 불꼬리를 남기며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뭔지 모르지만 5군단의 대응이다. 그런데 그걸 바라볼 상황이 아니다, 괴수들이 코앞이다.
“보고만 있을 수 없겠소이다.”
삼월문 일월각주 우인홍이 검을 뽑았다. 일월검종 사인도 즉각 검을 뽑는다. 싸우기 위해 온 터, 지켜보고만 잇는 것도 이젠 힘든 일인 거다.
“한손 거들긴 해야겠지요.”
경운과 백두검 삼인도 검을 뽑았다. 그들이 군대의 방어선이 무너진 곳을 향해 움직이는 순간 명위군도 움직였다. 천지육검은 바람처럼 달려갔다.
* * *
마치 깊은 호수를 향해 불을 던진 것 같은 모습이다. 밤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저 불빛이 뭔지 모르지만 대단히 위험한 것이란 걸 느낄 수 있다.
크르르르.
흑호의 울음소리에 반응하며 손을 뻗은 강흑성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 왔다.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흑호는 그 말을 기다린 듯 뛰어나갔다. 초원 저편을 향해서, 군대의 화력이 불빛의 출렁임으로 어둠을 흔들고 있는 곳을 향해서다. 저곳에 아우리엘이 있다. 이젠 끝을 내야 할 시간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렇게 왔다.
“아우리엘.”
담담히 이름을 부른 강흑성은 걸음을 냈다. 바람을 탄 것 같은 형상은 초원의 풀을 밟으며 나갔다. 그 흐름 뒤에서 공간은 찢어져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