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36화 (137/172)

혹성강호. 136. 초원의 별.

136. 초원의 별.

“흐으.”

지금 낸 숨소리가 인간다운 것인지 원필성은 생각했다.그렇기를 바라지만 모르겠다.인간이 아닌 존재가 돼 그리샴장군을 해쳤다. 이곳에 와서 카이오와 아이들을 위험하게 만들었다.왜 이렇게 되고 만 것일까.

‘막았어.’

루카스중령의 공격을 막아냈다.머릿속에서 울리는, 모조리 죽여야 한다는 본능을 이겨냈다.이젠 눈에 보이는 것이 붉지 않다.밤하늘에 뜬 별이 보인다. 그리고 내 몸도 보인다. 떨어져 나간 팔다리가 저기 있다.

‘저랬구나.’

내 팔과 다리이건만 원래의 모습이 아니다. 칼날 같은 비늘로 덮였고 금속질근육으로 이뤄져 있다. 손끝은 장도를 잡은 것처럼 길게 나왔다.

‘루카스.’

그는 산산조각 났다. 원필성 자신도 마찬가지지만, 벌컨이 퍼붓는 불벼락에 더해진 특전단의 공격을 견디지 못했다. 머리 아래로 가슴의 일부만 남은 그는 하늘을 보고 있다. 자신처럼 아직 의식이 남진 않은 것 같다.

‘카이오.’

고개를 옆으로 돌린 원필성은 그녀를 봤다.최창수 전복과 함께 아이들과 여인들을 보호하며 서 있다.특전단대원들이 차단선을 만든 뒤에서 처연한 눈길을 던진다.원필성 자신을 바라보는 눈, 여전히 아름답다.

‘당신이 살았으면 됐어.’

원필성은 웃었다. 안면에 경련으로 생겨나는 웃음, 모든 걸 놓는 웃음이다. 준후와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지낼 상상이 흩어지는, 카이오와 손을 잡고 산책을 할 것이란 바람이 사라지는, 죽음에 끌려가는 웃음이다.

‘그런대로 잘 살았어.’

밤하늘을 보며 원필성은 마지막 숨을 흘려냈다. 살아온 모든 순간을 담아 하늘로 보냈다. 그 순간 밤하늘 저편, 서북쪽의 고공에서 별이 빛났다.

명희와 제나의 손을 꼭 잡은 채 등 뒤로 서게 한 카이오는 슬픈 눈을 감았다. 원필성 대위가 산산조각 난 모습으로 죽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숨이 붙어 있어 고개를 돌려 이편을 바라본다. 그러나 살 수 없다.

‘원대위님······!’

카이오 자신과 모두를 살렸다. 루카스중령이란 자가 괴물이 돼 찾아왔지만, 저런 모습이 되도록 싸워 막아냈다. 특전단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리샴장군도 죽이려 했다. 어째서 저런 모습으로 그렇게 한 걸까.

‘화성연구소.’

최창수와 전복이 은밀히 말한 그곳이다. 이종을 만든다는 곳, 원필성대위를 저렇게 만든 곳이 그곳이다. 그렇지만 이 밤의 일은 전후를 알 수 없다.

“우리 전부 몰살당할 뻔 했습니다. 이유는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전복의 거친 목소리가 들린다. 특전단 지휘관을 향한 것이다. 알려줄게 없다는 소리만 반복하던 그가 무전기로 누군가 얘기 하더니 대답한다.

“루카스중령의 원한이 이곳으로 오게 한 걸로 판단합니다.”

태도를 바꾼 특전단 지휘관에게 전복 보다 최창수가 먼저 물음을 던졌다.

“원한이라뇨? 우리에게 원한이 있다는 겁니까?”“그렇습니다. 루카스중령에겐 아우가 있었습니다. 그는 북부지구 정찰대 팀장이었습니다.”

전복과 최창수가 놀란 눈으로 서로를 보는 순간 카이오는 깨달았다.

‘그래서 구나!’

루카스중령, 오늘 이름을 안 그자는 지독한 살기를 발산했다. 카이오 자신과 모두를 죽이고야 말겠다는 의지, 그 흉악하고 처절한 기세가 무서웠다.그 이유를 지금 들었다. 어떻게 이종이 된 것인지도 지휘관이 말한다.

“두 사람은 화성연구소를 수색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놀랍고 무서운 이야기다. 백호부대로 이뤄진 특임대 한팀, 스무 명은 돌아오지 않았다. 루카스와 원필성만 작전지역 인근에서 구조한 거다. 귀대한 그들이 그리샴 장군의 앞에서 이종으로 변해 암살을 시도한 것이다.

“장군은 무사하십니다. 여러분에게 진실을 알려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렇게 된 거다. 단호하게 모르쇠로 일관하던 지휘관이 전후사정을 알려준 것은 그리샴장군의 뜻이다. 그는 건재하고 루카스와 원필성은 제거됐다. 이결과는 기쁘고 슬프다. 모두가 살아서 기쁘지만, 가슴이 아프다.

‘우리를 구하려고······!’

원필성 대위는 저런 죽음을 맞았다. 이종이 돼서 이지가 상실된 상태인데도 루카스중령과 싸웠다. 카이오 자신과 아이들을 구하려고다.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고 귀히 여긴 사람이다.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다.

“시신을 수습해야 하지 않나요?”

카이오는 지휘관에게 말했다. 아이들 손을 놓으며 한걸음 나서면서다.

“안됩니다.”

처음처럼 단호한 얼굴과 눈을 한 지휘관은 카이오의 앞을 막아섰다. 제로원 복합소총을 강하게 잡고, 물론 총구는 아래를 향하고 있지만, 통제를 따르지 않는 자는 그 누구든 즉결처분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시신은 군에서 수습할 겁니다.”

이어지는 자휘관의 이야기를 카이오는 들었다. 지금은 어떤 위험이 더 있을지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 파괴된 거주지는 보상한다는 내용이다.

“사령관님의 특별지시사항입니다. 새로운 주택에서 여러분 모두 불편함 없이 거주할 수 있을 겁니다.”

카이오는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숨이 끊어진 원필성을 바라보며, 전복이 잘됐네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가슴 속으로 마음을 전했다.

‘원대위님, 고맙습니다. 아아, 뭐라고 이 고마움을 말씀드려야 할까요. 기억하겠습니다. 항상, 영원히, 아이들과 함께 원대위님을 기억할 겁니다.’

당신이 누구였는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그 순간 카이오의 귀를 파고든 목소리는 진숙이다.

“별이 움직여요.”

무슨 소린지 최창수와 전복이 하늘을 봤다.진숙이가 손을 뻗어 가리키는 곳, 서북쪽하늘이다.정말로 별 하나가 움직인다. 모두가 그걸 봤다.

* * *

황금안이 기동하는 것을 확인한 그리샴은 시급한 다른 현안을 물었다.

“폭격은?”

참모는 긴장한 얼굴로 즉답했다.

“운악산 일대의 지형이 바뀔 만큼의 화력을 퍼붓고 있습니다만, 아시는 바와 같이 그 일대의 운무로 인해 통신이 원활치 않습니다. 현장영상 확인이 안 되는 터라 보고에 시간차가 생깁니다. 아무래도 운무는······”“진법과 결합된 화성연구소의 수작이지.”

단호하게 확신을 뱉은 그리샴은 갈한 음성을 이어냈다.

“뭐가 있든 간에 모조리 파괴해라. 운악산이 사라지고 대지가 증발해 사라지도록 화력을 퍼부어. 화성연구소, 그것들의 숨결도 남겨선 안 된다.”

응축된 눈동자의 힘을 레이더로 돌린 그리샴은 황금안을 봤다. 황금의 점으로 이동하고 있다. 정해진 고도까지 하강하면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야······!’

부상의 통증도 잊은 그리샴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 * *

연구소를 뒤흔드는 공습의 화력 속에서 종리운은 거울을 봤다.젊고 건강한 얼굴, 언제 봐도 흡족하다.이 모습이 아흔이 넘었단 걸 그 누가 믿을까.이렇게 젊음을 갖게 된 비결은 끊임없는 노력과 피나는 연구다.

‘영생불사의 길, 멀지 않았어.’

미소를 피워낸 종리운은 옷깃을 가다듬었다. 천장에서 떨어진 먼지가 내려앉은 어깨를 털어내고 돌아섰다. 이제 정들었던 연구소를 버릴 시간이다. 이 결과가 아쉬운 것은 버려야 해서가 아니라 실패한 부분이다.

‘그리샴, 역시 명줄이 질기구나.’

루카스와 원필성이 실패했다. 그래서 공습이 닥쳐왔다.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연구소를 떠나는 비상상황은 언제나 대비해 봤다. 지하터널을 통해 빠져나가기만 하면 된다. 7군단은 빈껍데기만 때려 부수는 거다.

“준비됐나?”

터널로 이어진 선로 앞에서 종리운은 물음을 던졌다. 대기 중이던 부하들은 선로 위 이동셔틀 위에 고정된 케이지를 개방했다. 버튼 조작으로 보이지 않던 내부가 보인다. 짐승처럼 잡혀 있는 인물, 고개를 세운다.

“호, 아직도 결기가 남아 있는 눈인데?”

반가운 미소로 반응한 종리운은 케이지 안에 잡혀 있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묘진위. 네가 내손에 잡힌 건 운명이다. 이젠 받아 들여라. 아, 네가 받아들이고 아니고는 상관이 없구나. 그래, 네 정신과 육체는 내 것이란다.”

케이지 안 인물, 묘진위는 고개를 떨구고 치를 떨었다.

“마교의 유적지를 찾아 파헤치던 건 너뿐만이 아니었다는 게 불운이라면 불운이겠지.”

즐거운 목소리로 다시 목소리를 낸 종리운은 어깨를 으쓱했다.

“나에게도 반드시 이뤄야 할 목적이 있었거든? 이가 빠진 동그라미처럼 메워지지 않던 그 부분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하고 고민했었지, 아니 치열하게 노력했어. 그러다 마교의 대법들에 착안했고, 너를 찾았지.”

케이지에 상체를 숙이고 종리운은 속삭이듯 말했다.

“네 머릿속에 든 혼천무상대법, 그게 정말 가능하다면 영상불사는 꿈이 아니야. 그래, 불환전한 대법의 편린을 네가 알고 있을 뿐이지. 상관없다. 나는 그걸 보완한 능력이 있어. 너는 내 네 역할만 하면 되는 거야.”

상체를 다시 세운 종리운은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요상한건 말이지. 내가 묘진위 너를 찾아낸 결과가 아니야. 너는 바닷가에서 우연히 주운 진주조개 같은 거지. 그런 행운이 어디 있겠나? 그런데 네가, 묘진위 네가 지옥사신과 인연이 있는 놈이란 거지.”

그것이야 말로 정말로 기요한 일이란 얼굴과 눈빛을 종리운은 흘려냈다.

“아무려나. 상관없다. 이젠 가자.”

묘진위의 기억에서 추출한 정보를 더듬던 종리운은 다시 미소 지었다. 곧바로 셔틀에 올라탔다. 덮개 없는 대형썰매 같은 셔틀은 지하터널을 향해 출발, 빠르게 이동했다. 그 모습이 사라진 직후 천장이 무너졌다.

* * *

흑호가 블루마운틴의 머리를 후려친다. 머리 두 개인 놈은 하나가 박살났지만 여전히 홍포하다. 하지만 흑호의 이빨에 남은 머리도 뜯거나갔다. 그 결과가 다른 불루마운틴들의 공격을 끌어냈지만 흑호는 비호다.초원의 어둠을 밀어내는 전화(戰火)의 빛 속에서 흑호는 벼락처럼 좌충우돌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서 있던 강흑성은 깨달았다. 자신의 영성으로는 이곳에 모인 생명들을 달랠 수가 없다는 것을. 철룡을 풀었다.

‘절대독.’

심중에 그 의미를 품고 강흑성은 철룡을 움켜잡았다. 어딘지 모를 내부의 깊고 깊은 곳으로부터 솟구쳐 나오는 의지와 심득을 철룡에 품었다.

‘아버지, 지켜봐 주세요, 어머니, 이제 흑성이가 갑니다.’

은빛의 철룡은 그 빛이 암흑빛으로 물들었다.그걸 휘돌리며 강흑성은 걸음을 냈다.초원의 어둠을 암흑으로 밟고 나갔다. 암흑의 소용둘이를 태풍으로 일으켰다.그 전진 앞에 모든 것들이 흩어졌다. 사라진다.블랙베어들이 철룡의 회오리에 휘말려 파괴됨과 동시에 핏물로 녹았다.그것조차도 증발했다. 독안개가 되어 주변으로 퍼진다.삼바바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물러나지만 호흡을 막진 못한다. 엎어지며 핏물로 변한다.암흑의 확산, 아니 절대지독의 팽창이다.강흑성은 전진했고 초원의 괴수들은 불판위의 얼음처럼 녹아버렸다.처절하고 무시무시한 광경, 아니 신비한 결과다.강흑성의 뒤를 따른 흑호는 벽력같은 포효를 터트린다.강흑성의 피를 복용해서다. 초원에 들기 전 강흑성은 그 일을 했다. 그 결과로 절대지독의 태풍 속에서 흑호는 건재하다. 그러나 그것은 흑호만이 유일한 것, 괴수와 맹수들은 소멸한다. 도망치는 개체들도 핏물이 된다.

‘응?’

태풍을 풀어나가던 강흑성은 멈춰 섰다.저 앞의 어딘가에 있을 아우리엘을 느끼던 순간이다.하늘에 별이 보인다.수많은 별들 중 하나, 특별할 것 없다.그런데 특별하다.움직인다.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저건······’

미간을 좁히고 별을 바라보던 강흑성은 확신했다. 초원을 향해 내려오고 있다는 것, 저것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간 불꼬리의 정체임을 깨달았다.

‘군대의 무기.’

확신에 확신을 거듭하던 강흑성은 별이 멈추는 걸 봤다. 별의 아래쪽에 눈부신 빛이 생겨나는 것도 봤다. 그 빛이 지상을 향해 퍼져 내려온다.

“이리 와!”

흑호에게 소리친 강흑성은 철룡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흑호가 회오리 안에 들어온 순간 온힘을 다해 철극진기의 극의 철강지력을 발산했다.하늘에서 퍼져 내려온 빛, 그것이 철룡의 회오리로 만든 방어를 강타하는 찰나 강흑성은 절멸을 봤다. 초원의 모든 것들이 갈라지는 절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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