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38. 다시 만나야 할 이유.
138. 다시 만나야 할 이유.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간절하게 기원하는 카이오와 여자들을 보던 최창수는 전복과 눈을 맞췄다. 5군단의 이동차량에 탄 지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혼란이 전복의 눈에 있었다. 분명 불안을 품고 있다.
‘이게 우리가 이야기하던 그런 때일까?’
전복은 눈으로 그렇게 묻고 있다. 최창수 자신은 대답해 줄 수 없는 물음이다.
‘나도 모르겠군.’
정말 알 수 없다. 루카스중령과 원필성 대위가 이종이 돼서 공격한 밤이다.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 찼던 집, 3층 건물은 벌컨의 불벼락 아래 초토화 됐다. 대체거주지를 마련해 준다는 약속을 5군단이 했다.
‘당장 오늘 밤을 기거할 곳이 없으니······’
그렇기에 5군단이 임시거주지로 데려가는 건 어쩌면 당연하고 고마운 일이다. 그곳도 다름 아닌 5군단 내로다. 위험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걸 확인할 때까지 그래야 한다는 거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예감이 안 좋다.
‘대전 내로도 못 들어가던 처지였는데······’
5군단의 병영 안으로 들어간다는 현실이 기묘한 불안을 주고 있다. 물론 객관적으로 불안요소라고 할 것은 없다. 5군단 내로 들어가면 안전은 최고다. 파괴된 집도 다시 마련해 준다고 한다. 진정 감사한 일이다.흔들리는 차 바닥을 응시하던 전복이 다시 시선을 맞췄다.
‘우린 인질이 되는 건지도 몰라.’
불안한 예감, 최창수는 동의의 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 모든 일의 근원이 있지.’
강흑성, 그로인한 일이다.그렇지만 그가 이러한 현실을 일부러 만든 것은 아니다.마찬가지로 그리샴 장군은 확고한 적의를 가진 게 아니다.미지의 상황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강흑성이란 제어 못할 힘에 대한.
‘강흑성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확보한다는 전략적 판단.’
최창수의 눈을 응시하며 전복은 미간을 강하게 찌푸렸다.
‘무기를 내주는 게 아닌데, 잘못했어.’
표정을 구기며 후회하는 전복을 최창수는 눈빛으로 달랬다.
‘어쩔 도리가 없었어.’
5군단 내로 들어간다는 데, 민간인의 무기 소지를 금한다는데,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과 여자들 전부가 이미 군대의 손에 든 상황이었다. 그 장소에서 도망칠 수도 없었다. 순순히 차에 올라야만 했었다.
“다시 만나야 해.”
최창수는 작은 소리로 그 말을 흘려냈다.전복이 흠칫하며 시선을 던졌다. 갑자기 최창수가 목소리를 내서다.중간에 앉은 군인들도 시선을 돌렸다.무슨 의미인지 모를 말, 최창수는 전복만이 알아듣게 이어냈다.
“우리 모두가, 다시 만나야 해.”
좁혔던 미간을 펴며 전복은 수긍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최창수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서고 당연히 그래야 해서다.강흑성, 그를 다시 만나야 한다. 그것이 모두의 안전이고 위험의 끝이란 걸 절감한다.
“5군단이에요!”
준후의 흥분한 목소리가 최창수와 전복의 상념을 밀어냈다.
‘드디어.’‘여길 왔구나.’
최창수와 전복은 복잡하고 무거운 감회로 눈자위를 떨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5군단의 군영은 숨죽인 불빛 속에 엎드린 거대한 괴수 같다. 그 안으로 카이오와 여인들을 태운 5군단 차량은 느릿하게 들어갔다.
* * *
일곱줄기의 검강은 조화를 이뤘다. 후려치는 채찍처럼 휘어져 들어오는 저 힘은 천지문의 무예, 그 옆으로 닥쳐오는 월인의 검강지기는 삼월문의 비기다. 그리고 백두파의 검들은 천붕지력의 패도지기로 뻗어온다.
‘나의 길을 나아갈 뿐.’
철혼을 두 손으로 움켜잡은 강흑성은 고요한 호수처럼 가라앉은 눈으로 모든 걸 바라봤다. 그러나 호수의 깊은 곳에선 의지가 치솟아 올랐다.철극진기의 극의 철강지력, 무원진력의 근원, 어우러진 힘을 풀어냈다.강흑성은 흑청빛으로 물들었다.그 빛깔은 철강지기의 쇠빛이기도 한 동시에 절대지독의 자홍빛이었다.내미는 검극으로 그 의지가 나갔다.흑청빛이면 자홍빛인 빔이 발출된 것 같았다. 압살의 장벽으로 닥쳐오는 고수들의 공격, 천지문과 삼월문과 백두파의 합격 중심을 강타했다.콱, 못을 송판에 때려 박는 것 같은 기음이 퍼졌다. 그러나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연못의 중심에 조약돌을 던져 생긴 파문의 동심원처럼, 삼대문파 고수들은 출렁이며 휘날렸다. 사방으로 튕겨 날아갔다.레인을 굴러가는 볼링공처럼 미친 듯이 굴러간 명위군이 제일먼저 일어섰다. 경악의 눈을 다스리기도 전에 치미는 토혈 먼저 다스려야 했다.
‘이럴 수가······!’
천지문 천각주가 자신이다. 천지육검과 함께했다. 그 누구를 상대함에도 없었던 초유의 일이다. 거기에 삼월문과 백두파가 합세 했다. 경천동지할 일이건만 결과가 이것이다. 그 누구도 똑바로 서 있지 못했다.
‘내가, 천지문 천각주인 명위군이 이토록 무력한 존재였던가······!’
명위군은 몸을 부들거리고 숨을 떨었다. 현실을 절감케 하는 이 굴욕과 충격을 절실하게 받아 들였다. 그렇다, 강흑성 저 자는 다른 존재다.
‘유성대협의 후인······!’
그런 존재와 대적한 거다. 붉은 엘프와 마찬가지로 불가해한 존재인 거다. 황금안의 공격 안에서 살아나왔다. 그런 존재와 싸우자고 맞선 거다.
‘물릴 수 없는······!’
지금 이 현실이 그렇다. 이러할 것을 예감하면서도 검을 뽑은 거다.
“지옥사신!”
토혈을 무시하고 소리친 명위군은 형형한 안광으로 뒷말을 던졌다.
“천지문의 이름이 지고한 이유를 이제 깨닫게 될 것이다!”
명위군의 전신에서 투명한 기운이 피어났다.아지랑이의 산란처럼, 아니 맹렬히 피어나는 불길 같은 기세다.검과 하나가 되어 모습이 사라진다.
“백두의 이름으로 너를 죽이고야 말 것이다!”
뒤이어 터진 경운의 음성, 그의 검은 격렬한 강기의 불길을 뻗어냈다.
“달 세 개가 뜨면 종말을 피하지 못하리라.”
우인홍은 느릿하게 검을 움직였다.검무를 그려내는 것 같은 그 움직임 속에 세 개의 달이 생겨났다.그 순간 강흑성은 명료하게 말했다.
“전부 죽인다.”
강흑성은 움직였다.명위군과 우인홍과 경운이 흠칫하는 순간 검을 후렸다.흑청빛 벼락이 천지육검을 강타했다.명위군처럼 검 뒤로 형상을 숨겼던 자들, 흩어졌다.휘날려 날아가는 그들의 흔적은 핏물로 녹았다.강흑성의 두 번째 검격은 삼대문파의 움직임과 동시다.팽이처럼 방향을 바꾼 행보는 백두파의 백두삼검, 그들과 충돌했다.백두삼검은 유리처럼 흩어지는 검과 함께 흩어졌다. 그들이었던 핏물만 바닥에 떨어졌다.
“이놈!”
분노보다는 패닉에 가까운 반응으로 경운은 검을 뻗었다.공간을 소멸케 하는 검강지기가 강흑성의 인후로 들어갔다.그런데 강흑성은 손으로 받아냈다.푸른 물이 든 것 같은 손, 벽뢰수가 검을 부수고 터져나갔다.펑, 가슴에서 울린 북소리를 들으며 경운은 허공을 날았다.충격을 느끼며 바닥에 떨어진 순간에야 일격을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황망함 속에서 벼락처럼 몸을 일으켰다.그런데 손에 검이 없다.가슴도 마찬가지다.
‘가슴이······’
커다랗게 구멍 난 가슴을 내려다보며 경운은 비틀거렸다. 그 순간 자신의 앞으로 날아와 떨어지는 잔해들이 있었다. 삽시간에 녹아버리는 것들, 삼월문의 일월검종들이다. 눈을 부릅뜬 머리가 핏물로 흘러내린다.
“허.”
무릎을 꿇은 경운은 구멍 난 가슴으로 지나가는 바람을 느꼈다.뭔지 모를 후련함, 죽음으로 끌려감을 자각했다.그런데 그것은 자신만이 아니다.흐려지는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 팔이 잘린 우인홍이 휙 날아간다.
‘죽는······ 구나······’
자신처럼 벌떡 일어서는 우인홍을 눈에 담고 경운은 엎어졌다. 마지막 시선은 우인홍을 향했다. 그 눈길을 받은 자, 우인홍은 몸을 경련했다.
“크흑!”
잘려나간 오른팔이 핏물로 녹아버린 걸 봤다. 그래서 혈도를 봉쇄했지만 늦었다. 내부로 번지는 이 가공할 독기는 저항할 수 없는 것이다. 삼백년 전 프락시안들을 쓸어버린 유성대협의 독, 아니 지옥사신의 독이다.
‘내가, 삼월문 일웍각주 우인홍이······!’
부들거리는 모습으로 강흑성과 명위군의 싸움을 바라보던 우인홍은 토혈했다. 입으로 분수 같은 핏줄기를 터트렸다. 그리고 엎어졌다. 이미 형상이 사라진 경운의 흔적을 바라보며 마지막 숨을 냈다. 녹아버리면서.
“크억!”
우인홍의 형상이 사라지는 순간 터진 비명, 명위군은 자신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다. 그런데 부정할 수 없다. 검을 쥐었던 두 손이 사라졌다. 지옥사신 강흑성의 검과 부딪친 결과, 녹았다.미친 듯이 물러난 명위군은 주변을 돌아봤다.검이나 도를 찾았다.촛농처럼 녹아 들어오는 팔을 잘라내기 위해서다.그런데 그걸 할 수 없다.
‘손이 없어.’
검이나 도를 쥘 손이 없다. 누군가 잘라주지 않는 한 스스로는 할 수 없다.죽음이다. 그걸 막을 수가 없다. 경운과 우인홍처럼 사라지는 거다.
“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으로 안면을 일그러뜨렸던 명위군은 스르르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말없이 바라보고 서 있는 강흑성을 응시하며 물었다.
“붉은 엘프, 가라운을 죽일 건가?”
흑청빛이 어른거리는 눈길만 던지던 강흑성은 대답했다.
“그걸 위해 왔다.”
팔이 녹아 흘러 어깨까지 사러져 가는 명위군은 다시 물음을 냈다.
“화성도 죽일 건가?”
강흑성은 명료하게 답했다.
“그래야 한다면.”
명위군은 흐릿한 미소를 피워냈다. 어떤 의미인지, 무슨 마음인지 헤아릴 수 없는 미소다. 그 미소가 녹아내린다. 명위군의 형상이 흘러내린다.핏물로 변해버린 명위군을 향해 강흑성은 심중의 말을 던졌다.
“다시 만나야 하거든.”
강흑성의 음성이 흩어지는 그 순간 하늘의 별이 빛을 냈다.황금별, 황금의 빛을 토해냈다. 그것이 떨어지는 곳은 아우리엘이 있는 5군단이다.
* * *
눈부신 황금광이 지상으로 꽂혀 내리는 걸 그리샴은 눈 부릅뜨고 바라봤다. 5군단의 폭발한 무기고 앞이다. 붉은 엘프를 직격하는 광경이다. 그렇지만 예감이 말한다. 저것으로 죽지 않을 거라고. 그가 필요하다고.
“강흑성을 연결해.”
볼프장군의 놀란 얼굴이 화면에 보인다. 붉은 엘프를 황금안이 직격한 순간에 날아온 그리샴의 명령, 하지만 뜻을 헤아리고 바로 지시를 내린다.
-강흑성에게 통신기를 넘겨라.
초원의 기갑부대, 지휘관은 죽음을 각오하고 명령을 수행했다. 저지하던 자들, 화성 삼대문파의 고수들, 그들을 핏물로 죽여 버린 존재에게 통신기를 넘겼다. 강흑성의 얼굴이 통합 테이블 위에 선명이 떠올랐다.
“강흑성.”
이름을 부른 후 짧은 침묵을 만든 그리샴은 다시 입을 열었다.
“붉은 엘프를 제거하는데 협력하길 바란다.”
홀로그램이 아닌 화면 속의 강흑성, 흑청빛 눈을 번득이며 말한다.
-그곳이 대전입니까?
물음의 답이 아닌 다른 말, 그리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나는 7군단 사령관 그리샴이다.”-거기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안다, 그들을 보호하고 있다.”
순간 강흑성의 눈동자에서 격한 기세가 터져 나왔다. 그걸 인지한 그리샴은 바로 말했다.
“화성연구소의 공격이 있었다. 날 노린 암살이었고 그들을 노린 기습이었다. 걱정할 일은 없다. 모두 무사하다. 추가위험에 대비해 보호 중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강흑성은 눈동자는 깊고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일이 생기면, 당신에게 책임을 묻겠습니다.
그리샴이 반응하기 전에 볼프장군의 목소리가 터졌다.
-무슨 헛소리야! 죽을 걸 살려줬더니 그딴 소리냐!
그리샴은 볼프를 제지했다.
“그만!”
강하게 튀어나간 한마디에 볼프는 화를 누르며 입을 닫았다.그리샴은 화면 속 강흑성을 응시하고 말했다.
“내 행동엔 책임을 진다. 살면서 그러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다.”
화면 속 강흑성의 눈이 응축하는 걸 그리샴은 분명히 인지했다.자신이 보호라는 말로 포장한 진의를 알기에 저렇다.그렇다, 보호인 동시에 인질이다.후회하지 않는다. 책임을 져야 할 일이 된다면 책임진다.
-그들을 만나러 갈 겁니다.
강흑성은 그 말을 끝으로 통신기를 던졌다. 화면이 휘돌아 지휘관이 손에서 바로잡혔다. 그렇게 보이는 영상은 강흑성이 5군단으로 가는 것이다.
-강흑성에게 길을 열어줘라!
볼프장군의 흥분한 명령 속에 기갑부대가 좌우로 갈라지고 있다. 그 중앙으로 강흑성은 질풍이 돼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며 그리샴은 기원했다.
‘부디, 이겨주기를.’
마음 깊은 곳에서 돋아나는 바람, 붉은 엘프와 강흑성이 양패구사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리샴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다시 고갤 들었다.
“운악산 일대를 뒤지고 화성연구소의 자취를 찾아라!”
7군단 병력들은 밤을 잊은 채 기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