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39화 (140/172)

혹성강호. 139. 생과 사.

139. 생과 사.

수림을 뚫고 들어오는 건쉽들의 기총사격을 피해 패튼은 사력을 다해 달렸다. 현재의 위험을 벗어나자면 샤크들을 숨긴 곳까지 가야 한다.그런데 그곳은 멀다. 지금 달리는 내몽고수림지대를 지나 장성부근이다.

‘빅풋!’

기대 할 것은 그것이다. 두기를 가지고 왔다. 샤크에서 내려 게틀러를 출발할 때 작동시켰다. 수림의 에너지로 인해 신호가 끊길 위험이 있었지만 뒤를 따르게 했다. 지금 이곳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오는 중이다.

‘로웰과 형포 모르게 한 게 오히려 잘한 일이었어!’

정찰대의 무기니 가능했다. 그걸로 추적대를 잘라내야 한다. 그렇게 하는 동시에 샤크를 타고 가든 수림 속으로 도주하든 멀리 벗어나야 한다.

‘돌아가려면 샤크를······ 제길!’

이 상황이 뭔지, 현실이 어떠하지를 패튼은 뜨겁게 삼켰다.5군단의 공격을 받고 있는 거다. 지구의 군부가 무섭게 총을 쏴대는 상황인 거다.

‘처음부터 돌아갈 수 없는 길을 나선 거야!’

전쟁이 시작됐다. 그 도화선의 하나로서 역할 한 것이 패튼 자신이다. 한반도로 돌아갈 수 없다. 그리샴장군의 7군단이 정찰대를 공격할 것이다.이 모든 일을 명확하게는 모르지만, 이것은 정해져 있던 전쟁이다.

‘누구의 의지로서 불이 붙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총통인지 치안총국의 수뇌부인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하다. 이제 전화가 지구를 덮을 것이다. 그 불이 화성까지 덮을 지도 모르지만,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다. 이건 지구의 체제를 정비하려는 전쟁, 그리샴의 제거다.

‘그걸 누구보다 바라는 존재가 총통.’

그렇다면 총통의 의도와 명령으로 이뤄지는 일이다. 아니 그 곁에서 치안총국의 수뇌부가 부채질 했을 것이다. 총통의 마음을 읽는 그들이 이런 기회를 이용하지 않을 리 없다. 그리고 그렇기는 총통역시 같을 거다.

‘황금안을 사용했다는 건 대적선포와 같은 거야.’

그 누구도 존재하는 줄 몰랐던 전략무기가 골든아이다. 그리샴의 지구 군부는 그것을 드러냈고 사용했다. 무시무시한 그 힘을 화성은 봤을 터다.

‘총통과 치안총국 수뇌부의 얼굴이 굳었겠구나.’

무서운 무기다. 패튼 자신은 직접 겪었다. 정보관 로웰과 매화검문의 형포와 그 수하들은 소멸했다. 게틀러를 채 빠져나오지 못하고 황금안이 뿜어낸 골든빔의 빛 속에서 증발했다. 증발, 그건 정말로 증발이었다.

‘그렇게 뒈질 놈이 날 여기까지 끌고 와서······!’

허무하다 못해 어처구니없는 로웰의 죽음을 삼키며 패튼은 질주했다.

‘거의 다 왔어!’

수림 상공을 선회하는 건쉽들의 기총사격은 거대수들 잎과 몸통을 구멍 내고 있다. 그러나 울창한 수림의 형세를 더는 뚫지 못해 돌아간다.

‘좋아!’

흥분한 숨을 뿜어내며 수림을 헤쳐 달린 패튼은 빅풋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두기의 전투로봇은 거대수들을 부수며 질주해 온다. 그런데 수림 상공에 커다란 기체가 다가왔다. 그 배가 열리고 뭔가가 떨어져 내린다.쾅, 지축을 흔드는 울림으로 착지한 것이 뭔지 패튼은 알았다.

‘군대의 빅풋!’

알고 그런 건지 저들도 전투로봇을 보냈다. 노란 눈빛을 뿜어낸다. 그 빛이 황금안을 떠올리게 한다. 쿵, 쿵, 쿵, 석대의 빅풋이 더 떨어졌다.

“막아!”

멀티폰에 대고 소리친 패튼은 자신을 지나가는 두기의 빅풋을 보지 않았다. 군대의 빅풋들과 어우러져 싸우는 무시무시한 싸움은 시작됐다.

‘어디서나 같아! 사는 게 최우선이야!’

패튼은 이 순간 하나만 생각했다. 뒤를 쫓아오는 5군단의 추적대만을 생각했다. 그들로부터 벗어날, 살아날 생각이다. 여기서 죽을 순 없다.

‘살아야 해! 살고 만다!’

처절한 결의를 삼키며 패튼은 미친 듯이 달렸다. 그 뒤를 따르는 스무 명의 정찰대원들은 추적대의 총격에 맞아 하나 둘씩 쓰러지고 있었다.

* * *

“정찰대의 빅풋입니다.”

참모가 통합테이블 하단을 터치하자 수림 속 영상이 나왔다.추적대원들 슈트의 바디캠이 보내는 실시간 광경.정말로 정찰대가 운용하는 빅풋 두기가 보인다. 추적대가 운용중인 빅풋들과 얽혔다.

“확실하군.”

이가는 숨을 흘려낸 볼프는 치안총국을 향한 분노로 주먹을 떨었다.

‘개자식들!’

이종들로 혼란을 만든 놈들, 붉은엘프를 이용한 현실에 편승하고자 하는 치안총국의 그림이다. 화성연구소와 정찰대가 침투한 확실한 증거다.

“소탕에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겁니다.”

결말을 확신하며 말한 참모를 볼프는 보지 않았다. 지금 봐야 할 것은 저것이다.

‘드디어······!’

통합데스크에 떠 있는 두 존재, 붉은 엘프와 강흑성이다.저들이 드디어 서로를 봤다.붉은 엘프가 파괴한 제3무기고 앞이다.숨이 안 쉬어진다.

‘황금안으로도 죽이지 못하는 놈······!’

붉은 엘프는 그런 존재다. 골든 빔에 직격됐건만 저놈은 무사하다. 놈이 서 있던 주변만 증발해 버렸다. 저런 놈을 강흑성이 죽일 수 있을까.

‘둘이 싸우고 있을 때 황금안으로 공격하면······!’

심중의 떨림을 움켜잡으며 볼프는 화면 속 두 존재를 노려봤다.

* * *

부들거리는 눈자위에 힘을 주며 그리샴은 숨을 크게 마셨다. 골든아이의 직격은 역시 소용없었다. 5군단 제3무기고 앞의 붉은 엘프는 멀쩡하다. 직격의 순간 푸른 기운이 엘프를 덮었는데, 그것이 막아낸 것 같다.

‘역시 강흑성에게 기대해야 하나.’

흔들리는 시선에 힘을 준 그리샴은 강흑성을 응시했다. 드디어 붉은 엘프와 마주했다. 두 존재가 서로를 보고 있다. 숨조차 쉬기 힘든 광경이다. 저들은 어떤지 몰라도 보고 있는 자들에겐 심장이 죄어드는 상황이다.

‘위험한 존재들.’

심중에 씨앗처럼 돋아나는 예감으로서 그리샴은 생각했다. 불가해한 저 두 존재가 싸울 때라면, 서로의 힘을 소진시킨 후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

‘황금안의 최대출력으로, 정확하게.’

그리샴의 눈은 핏발이 선 안광을 흘려냈다.

* * *

“아.”

아우리엘은 강흑성을 보고 반응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게 놀랍다는 건지, 살아 있을 줄 알았다는 건지, 다시 봐서 반갑다는 건지 모를, 짧게 낸 한 음절의 감탄사 뒤에 웃는다. 그리곤 하늘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런 게 있는 줄은 몰랐어.”

강흑성은 아우리엘이 보는 밤하늘의 별을 봤다.황금별, 황금의 절멸을 쏘아내리는 무기다. 그런데 그 힘이 아우리엘은 죽이지 못했다.이 곳에 걸음을 멈추기 전 봤다. 황금광이 내려와 아우리엘을 강타하는 광경이다.

“너무 높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지붕위에 떨어진 연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 같은 표정, 아우리엘은 강흑성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랜만에 보는 친지에게처럼 말한다.

“내가 한 일 봤어?”

뭘 말하는지 알지만 강흑성은 반응하지 않았다.

“블랙블러드 놈들, 그것들이 다가 아니잖아? 그렇지?”

아우리엘은 고개 돌려 5군단 중심을 바라봤다. 관제탑이 있는 스페이스셔틀 이착륙장이다.

“저기서 셔틀을 타면 화성으로 갈수 있잖아?”

물음으로 말하며 아우리엘은 강흑성을 돌아봤다. 그 눈에 담긴 의미를 강흑성은 읽었다. 화성에 함께 가지 않겠냐는 뜻, 흑청빛 안광만 던졌다.

“그래.”

흔쾌한 미소로 고갤 끄덕인 아우리엘, 결론을 말했다.

“넌 네 갈 길이 있지.”

강흑성은 멈췄던 걸음을 내며 철혼을 가슴 앞에 세웠다. 저 멀리 어디선가 흑호가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샴의 명령에 의해 길을 열어준 5군단으로 향하며 흑호는 돌려세웠다. 흑호는 이기라고 응원하고 있다.

“이 번엔 다신 못 살아나.”

푸른 형상이 된 아우리엘의 미소를 보며 강흑성은 검이 되어 나갔다.

* * *

군인들 숙소다. 그런데 출입이 통제된 감옥이나 다를 바 없다. 복도를 다니거나 식당과 화장실을 이용하는 건 자유롭지만 딱 거기까지다. 숙소 밖으론 나갈 수 없다. 창을 통해 본 군인들의 경비는 아주 삼엄하다.

‘좋아 할 일이 아니야.’

현실의 무게를 인식한 카이오는 아이들의 즐거운 웃음을 들었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샤워장에서 씻으며 장난 하는 소리다. 명희엄마를 비롯한 여인들도 마찬가지다. 뜨거운 물로 씻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호사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카이오는 안타까움을 삼켰다. 저들이 언제 이런 행복을 누렸겠는가, 앞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좋은 숙소에서 온수로 샤워할 수 있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인 거다. 그런데 이면이 있다.

‘두 분의 말씀이 맞는 거야.’

최창수와 전복, 두 사람은 현상황에 대해 말했다. 인질이 된 것 같다는 소리다. 당연히 강흑성을 상대로 한 인질이다. 그에게 짐이 되고 있다.

“제발, 모두가 무사히 이 난관을 지나갈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하며 카이오는 눈물을 흘렸다.

“은공, 부디 무사하셔야 합니다······!”

간절한 카이오의 목소리를 모두가 씻으러 간 숙소의 허공을 맴돌이 쳤다.

* * *

창을 통해 밖을 보던 전복은 미간을 찌푸렸다. 기이한 것을 봐서다. 깊고 어두운 바다 같은 밤하늘에 황금광이 명멸해서다. 서북쪽 하늘이다.

“저게 뭐야?”

놀란 눈을 한 전복의 곁으로 최창수가 다가섰다. 탈출할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며 밖을 보던 차에 이상한 반응이어서다. 밤하늘을 보고 있다.

“왜 그래?”“저기 말이야? 저 별 보이지?”

전복이 가리키는 밤하늘을 향해 최창수는 눈동자에 힘을 줬다.

“저런 별이 있었나?”

별을 관찰하는 취미 같은 건 없다. 대륙전쟁 당시 별로서 위치를 확인하는 방법을 습득했을 뿐이다. 그런 상식에 입각해 보면 저 별은 이상하다. 원래 있던 별이 아니다. 난데없는 별이다. 황금빛으로 반짝거린다.

“저게 방금 전에 황금광, 빔 같은 걸 지상으로 뿜어냈거든?”

정말 이상하다는, 이게 뭐냐는 전복의 눈을 본 최창수는 미간을 가득 좁혔다.별이 지상으로 빛을 뿜다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자연계에서 일어날 일이 아니다.그런 게 가능하다면 인공위성 같은 것에서다.

‘뭐!’

흠칫한 최창수는 한 가지 이름을 떠올렸다.

“황금안!”

발작처럼 그 이름을 뱉은 최창수는 별을 봤다. 서북쪽 밤하늘에서 찬연히 빛을 내는 별, 저것이 정말로 그것인지, 실제인지, 눈을 부들거렸다.

“골든아이라고?”“정말로 황금광을 발사했다고? 분명히 봤나?”“봤다니까! 그런데 저게 정말 골든아이란 말이야?”“나도 몰라!”

소리친 최창수는 창밖의 별을 보며 떨리는 뒷말을 냈다.

“그런 건, 지상으로 황금광을 뿜어 내리는 건, 그것 밖에 없어······!”“그것일 리가 없잖아? 그건 실재하는 게 아니잖아?”

최창수의 놀란 얼굴과 밤하늘의 별을 번갈아 보며 전복은 황당한 충격을 삼켰다. 심중에 들어차는 불길한 예감, 밀어내려 부정을 거듭 뱉었다.

“폐기된 전략무기 아냐? 군대에서도 전설처럼 이야기만 내려오는 거잖아? 정말 있어서 적을 쓸어버렸으면 하고 바라던 그거잖아? 저게 그거라고?

최창수가 떨리는 입술을 다시 열려는 그때, 황금별은 황금광을 토해냈다.

“헛!”“저!”

직전의 빛이 패튼일행을 향한 것이고 지금 빛이 아우리엘을 직격하는 것이란 걸 두 사람은 모른다. 그러나 저 하늘아래 강흑성이 있음을 안다.

* * *

얼어붙은 몸을 풀지 못한 채 볼프는 화면을 응시했다. 붉은 엘프와 강흑성, 두 존재의 충돌은 필설로서 형용할 수 없는 것이다. 붉은 엘프가 뿌리는 푸른 기운과 강흑성이 뿌리는 쇠빛이 주변을 초토화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군영 자체가 사라지겠다······!’

부르르 몸을 떨어 진저리를 친 볼프는 명령을 뱉었다.

“군단 내 모든 인원에게 알린다! 접전으로부터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물러난다! 기지 밖이라도 상관없다! 필수 장비들을 챙겨서 서둘러 움직여라!”

볼프의 명령이 막 떨어진 순간 그리샴 장군의 통신이 왔다.

-스페이스셔틀을 폭파해라.

이게 무슨 소린가 하며 눈을 치뜬 볼프는 이유를 이어 들었다.

-붉은 엘프가 화성으로 간다면 막대한 피해가 생길 거다.

막대한 피해, 화성시민들의 피해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거다.

“알겠습니다, 형님.”

볼프는 다시 소리쳐 명령했다.

“모든 셔틀에 폭파장치를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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