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40화 (141/172)

혹성강호. 140. 누군가는 죽는다.

140. 누군가는 죽는다.

‘아우리엘.’

이름을 속으로 뇌이며 그리샴은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붉은 엘프, 저 존재의 이름이 그것임을 이제 알았다.강흑성이 삼대문파 인물들에게 알린 이름이다. 싸우기 직전 그들이 나눈 현장의 대화를 다 들었다.

‘화성 삼대문파.’

그들은 2차 출정대를 잃었다. 고심 끝에 보낸 고수들, 소수의 최강정예들이 죽었다. 강흑성이란 존재에게 그들은 범에게 덤비는 하룻강아지였다.

‘유성대협의 후인, 당연한 결과겠지.’

그 사실엔 이제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 확인하려던 자들은 다 죽었다. 유성대협의 진전을 이은 존재, 그가 붉은 엘프 가라운과 싸우고 있다.

‘아버지라고?’강흑성이 한 말을 이해할 수 없어 그리샴은 미간을 강하게 찌푸렸다.강흑성은 유성대협을 아버지라고 했다, 그 말이 액면그대로의 말인지 다른 함의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유성대협은 삼백년 전 인물.’

그런 존재가 강흑성의 아버지일 수가 없는 거다. 삼백년이란 시간을 건너 뛰어 강흑성을 존재케 했다는 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강흑성이 아버지라고 한 말의 의미는 생물학적인 것이 아닌 거다.

‘어떠하든 유성대협의 후인. 그 의미겠지.’

움찔하는 반응으로 그리샴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시선을 박고 있는 통합데스크의 화면, 엄청난 폭발의 빛이 터져나와서다. 화면을 벗어나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화력, 홀로그램이었다면 뒤로 물러나게 했을 파워다.

‘제 2 무기고······!’

5군단 내엔 총 다섯 곳의 무기고가 있다, 그 중 제 3 무기고에 이어 지금 제 2 무기고가 폭발했다. 강흑성과 아우리엘, 불가해한 두 존재의 격돌로 인해서다. 저들의 저 싸움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무서운 존재들······!’

눈자위를 떨며 그리샴은 자신을 생각했다.화성정부로부터 미움을 받는 자다.처음부터 그렇진 않았다. 군인으로서 충성을 맹세한 자신이다.그래서 죽을 곳을 찾아다니며 싸웠다. 그 결과가 전쟁영웅 그리샴이다.그런데 총통은 자신을 위험으로 여겼다.평생을 몸 바쳐 싸우고 충성했건만 제거대상으로 정했다.충성, 그 대가가 죽음인 거다.물론 그리샴 자신이 충성을 바친 대상은 총통이 아니다.언제나 충성한건 사람들이다.

‘모두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

마음속의 염원은 그것이다. 그런 세상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평생을 싸워왔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군대란 조직을 희생해도 된다고, 군대는 그렇게 거름이 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 일을 이젠 정말 해야 할 때다.

-형님! 폭파장치장착이 끝났습니다!

볼프장군의 흥분하고 긴장된 목소리에 그리샴은 화면 하단에 시선을 고정했다. 무시무시한 싸움을 이뤄내는 두 존재 영상 아래 볼프가 보인다.

“폭파해라.”

단호하게 명령한 그리샴은 바로 덧붙여 말했다.

“골든아이를 저들에게 고정해 놔라.”

분할화면 속 볼프장군의 눈동자가 응축했다. 무슨 소린지 알기 때문이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그리샴은 폭발을 확인했다. 5군단 중앙의 스페이스셔틀 이착륙장이 불바다로 변하고 있다. 모든 셔틀과 관제탑이 폭발했다.

* * *

거대한 해일이 밀려오는 것만 같다.푸른 뇌전의 해일이다, 그런데 그 속엔 끔찍한 혈기와 마기가 요동친다.아우리엘의 뇌전도, 그 힘이 육신을 친다.그러나 방어하지 않았다. 절로 일어나는 철강지기로 받아냈다.던져버린 공처럼 강흑성은 날아갔다.물수제비를 뜬 조약돌처럼 바닥을 튕기고 굴러갔다. 하지만 불타는 대지를 찍으며 일어섰다. 흑청빛을 발산하며 날려 온 방향으로 돌아갔다.아우리엘을 향해 철혼을 내리쳤다.아우리엘은 환히 웃는 얼굴로 뇌전도를 마주 후려친다.그 뇌전의 칼을 가르고 철혼은 어깨를 강타했다.그 찰나 자홍빛이 아우리엘을 물들였다.철혼을 통해 나간 절대지독, 뒤로 날려간 아우리엘은 굴러 일어난다.

“지독해.”

자홍빛으로 물든 얼굴로 아우리엘은 웃는다, 그러나 찡그린 웃음이다. 푸른 뇌전의 기운이 일어나 자홍빛 절대지독을 몰아낸다. 아우리엘의 몸은 연기를 피워낸다. 절대지독을 태우는 연기, 주변이 독으로 물든다.

“우린 왜 만났을까?”

문득 떠오른 게 그것이란 얼굴, 아우리엘은 공격대신 다시 입을 연다.

“뭐가 우리를 만나게 했을까? 그런 게 있기는 한 걸까?”

철혼을 가슴 앞에 세운 강흑성은 반응 없이 아우리엘만 봤다.

“널 만나지 않았다면 난 이렇지 않았을 거야.”

맞는 말이다. 아우리엘은 금교어족 때문에 만났고, 칸타의 죽음으로 인해 저렇게 됐다. 아니 근원은 강흑성 때문이다. 마기를 흡수해 간 거다.

“너에게서 얻은 힘, 너는 그런 걸 어떻게 속에다 쌓아두고 있었던 건지 모르겠어. 그것이 내게로 왔잖아? 그럼 너는 준비된 그릇 같은 건가?”

날 이렇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라는 물음은 아우리엘의 눈에 들었다.

“모른다.”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다는 강흑성의 눈동자, 아우리엘은 다시 웃는다.

“그래, 중요한건 아니야. 우리가 이렇게 마주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

강흑성은 한마디를 던졌다.

“누군가는 죽는 거다.”

오직 그것만이 중요하다는 것, 그걸 위해 왔다는 의지.아우리엘은 더없이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푸른 파멸지력을 풀어냈다.그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5군단의 중앙, 스페이스셔틀 이착륙장의 모든 것이 터진다.

“저런.”

가볍게 혀를 찬 아우리엘은 강흑성에게 다시 눈길을 던졌다.

“화성으로 갈 길은 여기만이 아니니까.”

걸음을 내는 아우리엘은 이미 푸른 마신의 존재, 강흑성은 마주 걸음을 냈다. 두 존재는 찰나에 충돌했고, 파멸의 힘은 사방으로 퍼져 나왔다.

* * *

멀티폰에서 점 두 개가 사라졌다. 빅풋 두기가 파괴된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부하들도 마찬가지다. 곁을 따르는 숫자는 다섯뿐이다. 스무 명 한팀의 정찰대 중 열다섯이 죽었다. 추적대는 바로 뒤에 오고 있다.

‘내가! 패튼이! 이런 곳에서! 절대로 죽지 않아!’

이를 악물고 패튼은 수림을 헤쳐 달렸다. 치떨리는 분노를 삼키면서다.

‘개죽음하려고 여태 살지 않았어!’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레드스콜피온 정찰대장이 되기까지 얼마나 피땀을 흘렸던가.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다. 절대로 안 된다. 던져버린 장기말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죽음은 뒷덜미를 잡고 있다.

‘엿 같은!’

귓가를 스쳐가는 빔줄기에 목을 움츠리며 패튼은 달렸다. 곁에서 달리던 부하 하나가 고꾸라지는 걸 인지하면서, 분노와 치욕을 삼키면서 달렸다.

‘조금만 더!’

샤크들이 날아오고 있다. 무인비행을 가동했다. 정상적으론 멀티폰의 송수신범위 밖의 거리, 하지만 출발 전에 증폭장치를 설치해뒀다. 로웰 모르게 빅풋을 뒤따르게 한 것과 같은 조치, 만일을 대비한 수가 오고 있다.

‘거의 다 왔어!’

순간 어깨를 치는 충격에 패튼은 고꾸라졌다. 앞으로 굴러 일어서 보니 슈트 어깨가 파괴됐다. 제로원 복합소총의 위력, 하지만 몸은 무사하다.

‘됐어!’

패튼은 몸을 던지며 소리쳤다.

“엎드려!”

넷 남은 부하들에게 알리는 외침, 그 순간 상공에서 불벼락이 쏟아졌다. 장성 부근에서부터 날아온 육기의 샤크가 토해내는 벌컨의 불벼락이다.수림은 삽시간에 초토화됐다, 그런데 상공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뭐!’

부릅뜬 눈을 올린 패튼은 봤다. 추적대를 향해 벌컨을 쏘아대던 샤크들, 육기가 연속해서 터졌다. 이유를 알았다. 샤크들의 비행을 5군단에서 인지하고 있었던 거다. 수림위로 스텔스비행을 했다지만 발각됐다.

“헉!”

폭발한 샤크들의 잔해가 떨어진다. 다급하게 움직인 페튼은 다시 달렸다. 그런데 멈춰 섰다. 그래야 했다. 앞이 막혔다. 추적대가 막아섰다.

‘청룡부대.’

그들이다. 7군단엔 최강 백호부대가 있고 5군단엔 저들이 있다. 저들은 총을 겨누고 있지 않다. 전투대검을 움켜쥐고 있다. 눈동자는 고요하다.

“그런가······”

의미모를 중얼거림을 흘려낸 패튼은 시선을 내렸다. 옆으로 다가서는 부하들, 넷만 남은 그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이 순간을, 최후를 곱씹었다.천천히 다시 고개를 든 패튼은 부하들에게 말했다.

“레드스콜피언답게 죽자.”

총을 버리고 검을 잡는 패튼처럼 부하들은 검을 움켜잡았다.

“우린 귀신대가리다!”

수림을 울리는 외침을 터트리고 패튼은 달려 나갔다. 그 뒤를 부하 넷이 따라 달렸다. 그 모습은 청룡부대원들이 풀어내는 검광 속에 묻혔다.

* * *

“시신을 수습해 오고 있습니다.”

추적대가 끝을 냈다는 보고, 볼프는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저들은······!’

가라운이라는 존재, 아우리엘이란 이름의 붉은 엘프와 지옥사신 강흑성의 싸움은 영혼을 얼어붙게 만든다. 저들이 만든 격전의 여파가 소름끼친다. 주변에 살아 있는 생명체가 있다면 흔적도 남기지 못할 에너지다.

‘싸워라, 둘 중 누가 죽고 누가 살지 모르겠지만, 아니, 그건 아니다.’

골든아이로 만들 최후를 그리며 볼프는 작게 중얼거렸다.

“너희 둘 다 죽을 것이다.”

골든아이의 작동버튼 위에 손을 얹은 볼프는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 * *

새벽이 옅어진다. 밤을 흘려보내더니 새벽마저 가고 있다. 그런데 저들의 싸움은 아직이다. 5군단의 흔적을 거의 지워버린 어마무시한 싸움, 이제 아침으로 달려가고 있다. 과연 승부가 나기는 할 것인지 모르겠다.

“강흑성, 아우리엘.”

두 존재의 이름을 나직하게 부른 그리샴은 물잔을 들어 벌컥대고 마셨다.

* * *

“헤어, 지치는데?”

숨을 몰아 내쉬며 움직임을 멈춘 아우리엘, 그 눈을 응시하며 강흑성은 떨리는 숨을 다스렸다. 검을 움켜잡고 서 있기도 힘든 지경, 그런데도 승부는 그대로다. 새벽도 스러지고 있다. 그렇지만 저 별은 거기 있다.

“저게 신경 쓰이지?”

헐떡이는 숨으로 아우리엘은 별을 가리켰다. 강흑성 자신이 펼친 철강진기의 공격으로 낭패한 몰골, 그렇기는 마찬가지다. 온전한 곳이 없다.

“기다리고 있는 거야. 우리 숨통을 끊을 순간을.”

손을 뻗어 황금별을 가리키는 아우리엘, 그의 말이 맞음을 강흑성은 안다.

“저거부터 처리하는 게 어때?”

너무 멀리 있어서 어쩔 수가 없다더니 이건 무슨 말일까.

“저 별이 공격하게 하는 거야. 황금광이 뻗어 내리면 우리도 힘을 쓰는 거지.”

무슨 소린지 강흑성은 알았다. 역류다. 황금별이 터트린 황금광의 줄기를 타고 올라간다는 거다. 성공을 확신 할 수 없지만 가능한 방법이다.

“해놓고 끝내자.”

환한 미소를 피워내는 아우리엘, 강흑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둘은 싸움을 중지하고 황금별을 보고 섰다. 그러자 별에 황금광이 맺혔다.

* * *

-형님, 발사해야 할 걸로 판단합니다.

어금니를 문 문소리로 볼프는 결론을 말했다. 강흑성과 아우리엘이 골든아이를 바라보며 싸움을 중지한 상황, 다른 기회를 기다리긴 어렵게 됐다. 저들은 이쪽의 의도를 알고 있다. 저들이 지쳐 있는 지금뿐이다.

“발사해라.”

그리샴은 강한 눈빛을 뿜어내며 명령했다. 볼프는 명령을 따랐다.

* * *

황금광이 터져 내려온다.강흑성과 아우리엘을 범위에 넣은 광선, 파멸의 빛이다.그 빛을 향해 아우리엘은 푸른 마신의 힘을 뿜어 올렸다.강흑성도 지체 없이 철혼을 움직였다.태양을 찌르는 무원일격이다.황금광은 아우리엘과 강흑성을 덮었다.두형상은 황금빛에 먹혀 사라졌다.그런데 황금별로 이어진 황금광의 속으로 두 줄기 기운이 올라갔다.푸르고 흑청빛을 가진 기운, 황금별의 속으로 스며들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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