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41화 (142/172)

혹성강호. 141. 죽음의 무게.

141. 죽음의 무게.

숙소 밖의 정황을 살피려 전복은 창가 벽에 붙었다. 새벽도 거의 흘러가는 시간, 숙소를 경비하는 군인들은 조금 전 교대했다. 그런데 아무리 이목을 곤두세우고 살펴도 물샐 틈이 없다. 이 숙소는 완벽한 감옥이다.

“빌어먹을.”

작게 욕설을 흘려내는 전복, 최창수는 그 심정을 알기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렇게 현재의 상황을 곱씹고 헤아렸다. 분명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이다. 강흑성이 있는 대륙에서다. 7군단은 긴장상태다.

‘전쟁을 앞둔 것 같은.’

대륙전쟁의 한복판에 있었기에, 한 때 군인이었기에 안다.7군단은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분위기다.숙소경계를 서는 군인들의 눈은 칼날처럼 곤두섰다. 물론 원대위와 루카스중령을 처리한 타격대는 더 했다.

“화성연구소 위치를 찾으려고 했다더니······”

중얼거린 전복은 힘이 들어간 시선을 최창수에게 던졌다.

“이게 다 한데 얽혀 돌아가는 판때기지?”

강하게 고개를 끄덕인 최창수는 당장 처한 현실을 거론했다.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해.”

전복은 눈가를 움찔거리다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벗어난다, 그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7군단 속에 있는 지금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7군단이 길을 열어주고 가라고 하지 않는 이상······!”

이 악문 숨으로 나온 전복의 분노에 최창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그것 밖에 없지.’

숙소의 사방을 군인들이 에워싸고 있다. 바닥을 팔수도 없고 지붕을 뚫고 나갈 수도 없다.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군인들에게 바로 잡히고 만다.

‘방법을······’

그 순간 힘차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목소리도 들린다.

“사령관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카이오의 목소리다, 전복과 최창수는 눈을 치뜨고 바로 나갔다. 복도 끝 출입구 앞에 커이오가 있다. 다시 문을 두들기면서 강하게 요구한다.

“그리샴장군을 만나게 해 주세요!”

아이들과 여자들이 깰까봐 뒤를 돌아보며 전복과 최창수는 카이오 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그 순간 출입문 유리창 밖으로 눈부신 빛이 보였다.서북쪽하늘의 황금빛, 지상으로 또 내리꽂힌다.

* * *

숨죽인 얼굴로 그리샴은 통합데스크화면을 응시했다. 골든아이가 최대출력으로 직격한 현장, 강흑성과 아우리엘의 흔적을 더듬었다. 거대한 먼지구름이 피어나고 있어 식별이 어려운 상황, 대지는 증발해 버렸다.

‘저런 속에서 살 수 있을 리가······’

커다랗고 깊은 분화구가 생겨 버린 것이 보인다. 출력의 범위를 조정한 결과, 분화구의 크기는 축구장만한 크기다. 그러나 깊이는 깊다. 파멸과 압살의 파워로 대지를 파고들었다. 저 크기와 깊이만큼 증발시켰다.

‘강흑성, 그대에게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진심으로 사죄하며 그리샴은 눈을 감았다. 그렇지만 해야 했던 일, 그리샴 자신은 결정하는 자리에 있는 자다. 누군가 대신해 주지 않는다.

‘후회 같은 건 없어, 이로 인한 결과가 무엇이든 내가 받는 거지.’

다시 눈을 뜬 그리샴은 참모의 긴장한 보고를 받았다.

“도착했습니다.”

도착, 3군단 사령관 왕중양이다. 그리샴 자신의 결심에 놀라고 당황한 그가 끝내 찾아왔다. 5군단의 볼프와는 다른 인물, 끝까지 신중하다.예상 밖이다. 볼프처럼 전적으로 지지하고 동참할 줄 알았는데 아니다.

‘굳이 찾아올 것 까진 없을 텐데.’

옅게 찌푸린 미간으로 그리샴은 왕중양을 떠올렸다. 대머리 독수리처럼 머리카락 한 올 없는 얼굴, 점점 비대해져가는 몸은 관리가 시급하다.

‘해남도에서 뭘 그렇게 잘 먹기에.’

그게 문제가 아니라 왕중양이 찾아오는 그의 마음이 문제란 걸 그리샴은 새삼 자각했다. 5군단에서 벌어지는 일, 여태 일어난 상황이 그를 움직였다. 화성과 대적하게 된 그리샴 자신과 직접 대면하고자 찾아온 거다.

‘만류 따위가 들어먹을 상황이 아니고 내가 그런 자가 아닌 걸 알 텐데.’

그런데도 오겠다 했고 결국 왔다. 왕중양이 화성정부와 무슨 교감이 있었던 건지는 모른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정말 중요한 핵심은 왕중양의 마음, 불안한 두려움이다. 수습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거다.

“카이오란 여자가 대면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참모의 보고, 그리샴은 미간을 좁혔다. 참모는 다시 말한다.

“아주 완강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할까 묻는 눈길, 그리샴은 지시했다.

“데려오도록.”

돌아서는 참모의 등에 시선을 던졌던 그리샴은 제법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 잠시 후면 보게 될 왕중양을 생각하면서 화면에 눈을 고정했다.

* * *

눈을 부릅뜨는 것처럼 힘을 준 볼프는 화면을 뚫어지게 봤다.먼지구름이 가라앉고 있다.커다랗게 생겨난 분화구를 보며 침을 삼켰다.자세한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드론들이 접근하고 있다. 아직은 먼지뿐이다.

‘살수 없어. 저런 에너지를 맞고 산다는 건 있을 수 없어.’

심중의 불안을 밀어내며 볼프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골든아이의 직격을 맞고도 붉은 엘프가 살았었기에 꿈틀거리는 불안, 동시에 부정이다.그런데 이 순간 3군단 사령관 왕중양의 행보가 거슬림으로 떠오른다.

‘뭐하겠다고 형님을 찾아가?’

점점 비대해지는 왕중양의 모습을 떠올리며 볼프는 인상을 구겼다. 매사에 신중론을 펼치는 그이지만 이번 행보는 정말 맘에 안 든다. 전후사정이 명백한 현실인데 뭘 좌고우면 할게 있나. 형님은 뭐 하러 만나는가.

‘다시 생각해 보라고 회유할 거라면 헛걸음 하는 거다.’

결국 왕중양도 대세에 순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화성정부는 지구군부를 쳐 없애려 한다는 현실, 하기 싫어도 그들과 싸워야 하는 현실이다.

“분화구 내부가 보이고 있습니다.”

긴장한 참모의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온 볼프는 눈동자에 힘을 줬다. 드론들이 촬영해 보내는 영상, 먼지구름이 걷힌 분화구 내부의 모습이다.

‘없어.’

그렇다, 강흑성도 아우리엘도 안 보인다. 등골에 소름이 돋아 오른다.

‘당연한 거야!’

골든아이의 에너지를 맞았으니 흔적도 없는 게 마땅하다. 저렇게 대지를 증발시켜 분화구를 만든 힘이다. 그 안에 뭔가 남았을 리가 없는 거다.

“으하, 으하하! 으하하하!”

볼프는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다.

* * *

회의실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 문을 닫은 군인들은 정말로 날선 칼과 같은 기세다. 그런데 그렇기는 카이오도 마찬가지다. 그리샴 장군과 대면하게 해달라고 소리쳐 요구하던 모습이 그랬다.

“어쩌려는 걸까?”

전복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카이오를 돌아보며 최창수에게 물었다.최창수는 난감하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카이오와 함께 오긴 했지만 당혹스러운 현실이다. 7군단 측에서 이렇게 나온 것도 그렇다.

“그리샴장군이 우릴 만나 준다는 게 그래도 희망적인 거겠지?”

카이오에게서 시선을 거둔 최창수는 전복의 눈을 응시했다.

“카이오도 황금안을 본거야. 골든아이가 뿜어낸 파멸의 빛을 본거지.”

지금 물음의 답이 아닌 직전의 말에 대한 최창수의 대답, 전복은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도 예감하던 것이다. 자신들이 본 골든아이를 카이오도 본 거다. 강흑성에 대한 생각과 염려로 저 여인은 이렇게 행동했다.

“어떻게 됐을까?”

서북쪽, 골든아이가 빛을 발한 대륙, 그곳에 있을 강흑성, 전복의 의문에 최창수는 현실로 답했다.

“그리샴장군과 마주하게 되면 알게 되겠지.”

최창수와 전복은 카이오를 다시 돌아봤다. 간절히 기도하는 여인을.

* * *

드론들이 분화구로 내려가 흔적을 찾는 영상, 그리샴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가운데 바라봤다. 그런데 왕중양이 모습을 보였다. 병실에 설치한 통합전투정보실, 스윽 둘러보더니 다가온다. 안타까운 얼굴이다.

“그런 지경으로 참 열심이십니다.”

비꼬는 것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염려하는 마음이란 걸 그리샴은 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소.”

준비한 생수를 내미는 그리샴을 한숨짓고 바라본 왕중양은 물잔을 받았다.

“5군단 상황은 어떤 겁니까?”

그리샴은 다시 통합데스크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골든아이가 성공한 걸로 판단되기는 하오만······”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왕중양은 미간을 깊게 좁혔다. 드론들이 분화구 안을 날며 흔적을 찾고 있다. 그렇지만 그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붉은 엘프가 끝내 죽은 것 같군요.”

안도하는 얼굴빛의 왕중양, 그리샴은 신중하게 반응했다.

“아직은, 더 살펴봐야 할 겁니다.”

왕중양은 쥐고 있던 물잔을 옆에 내려놓고 다시 입을 열었다.

“확인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리샴은 왕중양에게 시선을 돌렸다.확인하기 위해 왔다는 말의 의미를 더듬었다.대륙의 남쪽 끝 해남도에서 날아온 3군단 사령관 왕중양, 저 마음속에 든 것이다.그리샴 자신의 결정과 의지를 확인한단 거다.

“군인이 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죽이는 거였소.”

그리샴은 허공을 보며 이야기했다. 그 얼굴을 왕중양은 바라봤다.

“이종족들, 사람들, 명령을 받아 죽이고 죽였소. 무감각하던 그 시간을 지내면서 책임지는 자리가 됐을 때 깨달았소. 죽음에는 무게가 있다는 것.”

그리샴은 왕중양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무게의 값을 셈할 때가 온 것이오.”

말없이 그리샴을 응시하는 왕중양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나 그것은 짧은 순간, 눈동자를 강하게 응축한 왕중양은 서글픈 미소를 지어냈다.

“안타깝습니다. 사령관에겐 저울을 들 시간이 없을 겁니다.”

의미모를 소리, 그리샴은 왕중양의 눈을 보고 깨달았다. 이 순간 강렬한 살의로 번득이는 눈동자, 저것은 기억하고 있는 왕중양의 눈이 아니다.

“잘 가시오.”

왕중양이 손을 드는 순간 그리샴은 통합데스크를 터치했다. 자폭장치, 그것이 발동하는 찰나 왕중양의 손에서 암흑의 섬광이 날아와 박혔다.

‘헉.’

형용키 어려운 가슴의 감각, 그 위로 덮치는 폭발 속에서 그리샴은 날아갔다.

* * *

“뭐야?”

볼프는 벌떡 일어섰다.7군단과의 통신 연결이 끊어져서다.분할화면 하단에 보이던 그리샴과 왕중양의 비대한 모습이 사라졌다.뭔가 일이 생겼다.분화구 영상에 집중하느라 흘려보던 그리샴과 왕중양의 상황이다.

“폭발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참모의 흥분한 목소리, 볼프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통신 연결해!”

소리친 볼프는 주먹을 쥐고 몸을 부들거렸다. 그 순간에도 드론들은 분화구 속을 날고 있었다. 그러던 한순간 화면을 보던 누군가 소리쳤다.

“분화구 중앙에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볼프는 부들거리는 시선으로 영상을 응시했다.

* * *

벽이 폭발해 들어왔다. 그 힘에 밀린 채 최창수와 전복은 뒹굴었다. 고개를 흔들며 몸을 일으키고 보니 카이오가 쓰러져 있다. 화급히 달려가 살피니 상처는 없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벽이 폭발해 들어온 게 문제다.

“뭐야 이거?”

전복은 살기와 충격이 뒤섞인 눈으로 움직였다. 폭발한 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총격전의 빔들이 날아 들어왔다. 몸을 던져 벽 아래 붙었다.

“싸움이야!”

전복의 외침과 보고 겪는 현실로 최창수는 당혹을 삼켰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그리샴장군은 보러 왔는데 갑자기 전투가 발생했다. 그것도 7군단 내에서, 그리샴 장군의 있는 곳에서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나가야 해!”

전복이 소리친 순간 최창수는 흠칫했다. 카이오가 먼저 움직여서다. 이 당찬 아가씨는 눈앞의 현실에 움츠러들지 않는다. 투쟁하는 여인이다.

“먼저 나간다! 뒤따라와!”

전복의 뒤를 따라 카이오와 최창수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