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42. 최후의 승부.
142. 최후의 승부.
흙더미를 밀어내고 몸을 일으킨 강흑성은 아우리엘을 봤다.자신처럼 일어선 그가 제일먼저 시선을 던진 곳이 하늘인 것도 봤다.그 하늘로 눈길을 돌렸다.황금 별, 화려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한순간 확산한다.
“해냈어.”
미소로 눈길을 돌리는 아우리엘, 아이처럼 천진한 얼굴의 그 시선 속에서 강흑성은 다른 것을 봤다. 파멸과 피를 갈구하는 마신의 얼굴이다.
“다시 해야겠지?”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 아우리엘은 두 손을 떨쳤다. 그로부터 폭발하듯 이탈해 나간 푸른 벼락들은 드론들을 강타했다. 화염이 흩어져 내린다.
“여긴 그렇잖아?”
아우리엘은 가볍게 발을 굴렀다.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분화구 가장자리에 착지했다. 그 모습을 강흑성은 아무런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같은 공격을 해 봐야 같은 결과뿐이야.’
밤을 흘려보내며 싸운 기억을 강흑성은 곱씹고 더듬었다.아우리엘을 쓰러뜨릴 방법이 무엇일지 궁구했다.길은 있다, 황금별을 가른 길이다.
‘무원(武元).’
철강진기의 패도지력이 아니다.그런 힘으로는 아우리엘을 쓰러뜨릴 수 없다.모든 것의 근원이고 으뜸이 되는 힘이어야 한다.무원진력의 근본의미가 그것이다.폭풍이 아니라 미풍, 거목이 아니라 흔들리는 갈대다.
‘격류를 거슬러 나아가는 잉어와 같이.’
내딛는 발 하나, 뻗어내는 주먹하나, 그 시작의 의지여야 한다.
‘한다.’
스르르 눈을 감았다가 뜬 강흑성은 발을 굴렀다. 비상하는 새처럼 분화구 밖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착지하는 순간 옆으로 거리를 벌리는 아우리엘에게 걸음을 냈다. 푸른 에너지로 휩싸이는 그에게 나직이 말했다.
“승부다.”
아우리엘의 손에서 뇌전도가 터져 나왔다.뱉어낸 말이 흩어지기도 전에 쇄도한 그 힘을 강흑성은 흘려냈다.철혼이 아닌 벽뢰수의 두 손으로 밀어냈다.그 모습은 마치 격류를 거슬러 나아가는 잉어의 형상 같다.
‘뭐야?’
강흑성의 대응이 다른 걸 인지한 아우리엘은 눈을 부릅떴다. 검으로 받아치고 가르는 반격이 아니다. 두 손으로 뇌전지력을 흘려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다가온다. 물결을 거스르는 것처럼, 아니 쐐기처럼 파고든다.
“이!”
아우리엘은 격하게 힘을 터트렸다. 이순간의 분노와 당혹을 담은 공격, 푸른 마력은 혈광을 품은 채 폭발해 나갔다. 소용돌이치면서, 그 무엇이라도 뚫어버릴 드릴이 되어 뻗어나갔다. 강흑성이란 형상을 강타했다.푸른 마력은 새벽여명을 뚫고 날아갔다. 그러나 강흑성은 아니다.깃털과 같이 흘러버린 모습은 휘도는 바람이 되어 나아갔다.치뜬 눈의 아우리엘에게, 그의 전신에서 푸른 칼이 폭발하는 찰나에 주먹을 내질렀다.
벽뢰일권.
아우리엘은 뒤로 날아갔다.가슴에 스며든 미풍에 숨이 막힌 채, 지금까지 맞선 강흑성의 힘과는 다른 힘을 깨달으며 뒹굴었다.바로 일어섰다.그런데 그 순간 강흑성이 눈앞이다.휘돌아 나오는 발을 못 피했다.전차장갑이 파괴되는 소리를 내며 아우리엘은 또 날아갔다.땅바닥을 패고 굴러가는 동안 제대로 현실을 분간할 수 없었다.이게 무슨 일인지, 왜 갑자기 강흑성의 손과 발에 맞아 뒹구는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처절한 격노를 전신으로 발산하며 아우리엘은 다시 일어섰다.그런데 순간 강흑성은 또 눈앞이다.벌컨의 포화처럼 손과 발이 터져 나온다.
“크흑!”
끝내 신음을 토해낸 아우리엘, 그러나 이번엔 구르지 않았다. 두 팔을 십자로 공격을 막아냈다. 찰나에 몸을 강타한 손과 발의 충격을 두발로 풀어냈다. 그렇게 물러난 거리, 고랑을 만든 땅을 보고 강흑성을 봤다.
“이건······ 뭐가······ 다른 거지?”
의문을 중얼거린 아우리엘은 그 순간 봤다. 강흑성이 지닌 물건들이다.
‘그대로?’
목에서 흔들리는 팬던트, 허리벨트에 찬 단도, 그대로다. 머리카락도 눈썹도 아무런 손상이 없다. 황금별의 에너지를 맞았는데 처음 그대로다.
‘나보다도?’
아우리엘 자신은 완전하지 않다. 모발에 손상이 있고 의복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황금별이 토해낸 에너지는 가공한 것이었다. 그런데 강흑성은 그걸 견뎠다. 견딘 정도가 아니라 아우리엘 자신보다도 무사한 거다.
‘그 순간에도 강해졌구나!’
결론을 찾은 아우리엘은 으르르 몸을 떨었다. 알 수 없는 전율, 형용키 어려운 분노의 감정,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솟구치는 힘과 의지를 발산했다.
“으아아아아!”
괴성을 터트리는 아우리엘로부터 무시무시한 마력의 에너지가 퍼져 나왔다. 세상을 불살라버릴 것 같은 힘, 혈기를 품은 푸른 뇌전의 에너지다.거대한 칼이 되어 버린 아우리엘.제가 가진 모든 힘을 끌어내는 형상을 강흑성은 바라봤다.고요하게 가라앉은 눈동자, 그 중심이 한순간 빛났다.강흑성은 오른 손을 천공으로 찌르듯 올렸다.그 순간 분화구 안에서 검이 날아올랐다.철혼, 주인의 손에서 놓여 있던 검은 주인의 의지를 따라 비상했다.강흑성의 손끝이 가리키는 아우리엘을 향해 날아갔다.푸른 칼이 된 아우리엘의 형상이 눈부신 빛을 발산했다.핵무기가 터지는 것과 같은 순간.강흑성의 의지를 담은 철혼은 그 형상을 관통했다.
* * *
“저런.”
안타까운 시선으로 혀를 차는 왕중양, 그 뒤로 불길속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그러한 현실을 자각하며 그리샴은 왕중양의 건재함으로 깨달았다. 폭발에도 멀쩡한 모습, 왕중양은 여태까지 본 모습을 숨겨왔다.
“흑염수(黑炎手)라네.”
흐릿해지려는 의식을 붙잡으며 그리샴은 또 깨달았다.
“마교······!”
왕중양은 흡족한 미소를 지어냈다.
“맞아, 그 무공이지.”
가슴에 물든 흑염수의 죽음이 퍼지는 걸 느끼며 그리샴은 시선을 떨었다. 전후를 묻는 그 눈길에 왕중양은 잔잔한 미소를 피워낸 후 입을 열었다.
“천운이 닿은 것이지.”
천운, 마교의 무공을 얻었다는 소리다. 아니, 단순히 흑염수라는 절세마공을 습득한 것이 아니다. 겨우 그런 무공 하나로 이런 짓을 할리 없다.
“헤아림이 든 눈이군. 그래, 마교의 핵심 진전을 찾았지. 혼천무상대법과 패천개벽신공, 마교의 정화를 얻었지. 누가 알았겠나, 해남도의 골짝에 그런 게 있을 줄 말이야. 변경에 처박혀 살던 내게 천운이 든 것이지.”
천운, 그렇다면 정말로 그런 거다. 왕중양의 말대로 해남도에 마교의 유진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나. 그걸 손에 넣은 왕중양은 칼을 갈아온 것이다. 언젠가 때가 이르면 이렇게 하려고, 모든 자의 위에 군림하려고다.
“화성과의 분쟁, 붉은엘프의 분란, 모든 조건이 완벽해.”
다시 흡족한 미소를 피워내며 왕중양은 목소릴 이어냈다.
“이런 기회를 놓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지. 그래서 온 것이야. 이 기회의 중심에 있는 그리샴 자네를 해결하려고 말이야.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하지. 그리샴 자네가 없어져야 해. 자네가 있으면 일이 힘들어져.”
그리샴은 왕중양 너머의 상황을 인지하려 애썼다. 왕중양을 수행하고 온 놈들은 마공을 사용하는 고수들이다. 그놈들에게 모두가 당하는 거다.
‘7군단의 핵심을······!’
지휘부가 사라진 7군단은 왕중양의 3군단에 흡수될 것이다.
“힘들어 보이는군. 그만 쉬게나.”
눈자위의 경련이 전신을 번진 그리샴은 손을 들었다, 뻗어서 왕중양의 멱을 잡고자 했다. 그러나 그건 마음뿐, 마지막 숨결이 코로 새어나갔다.경직하는 그리샴을 내려다보며 왕중양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전쟁양웅도 죽으면 다를 게 없지.”
눈동자에 혈광을 드리우며 왕중양은 돌아섰다.
* * *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경악 속에서 볼프는 레이더를 응시했다.골든아이가 사라졌다.아우리엘과 강흑성을 흩어버린 직후, 기이한 빛과 에너지를 발산하다가 사라졌다.폭발해 소멸한 것이다.그렇게 만든 것이 강흑성과 아우리엘이다.
‘형님은!’
강흑성과 아우리엘이 골든아이를 파괴했다는 것 보다, 지금 화면에 다시 잡힌 광경처럼 싸우고 있는 현실보다, 그리샴의 안전이 어떤지 두렵다.갑작스러운 폭발과 통신두절 상태, 3군단 왕중양의 방문과 함께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설마 왕중양이?’
심중에 들어차는 의혹과 예감을 고개 흔들어 밀어내던 볼프는 얼어붙었다. 강흑성과 아우리엘의 싸움, 양상이 달라져서다. 강흑성의 공격에 아우리엘이 뒹굴고 있다. 분노한 아우리엘은 최후의 힘을 발산하고 있다.
‘저런 걸!’
아우리엘이란 존재의 형상 위로 생겨난 거대한 칼, 푸른 마기의 뇌전지도를 본 볼프는 숨을 멈췄다. 그런데 강흑성이 손을 흔든다. 그에 따라 검이 날아올랐다. 아우리엘이 힘을 폭발하는 순간 검이 날아가 충돌했다.
‘관통!’
영혼마저 얼어붙은 볼프는 결과를 봤다. 거대한 칼이 푸른 안개처럼 흩어지는 광경, 강흑성의 검이 새처럼 날아가 주인의 손이 잡히는 모습이다.
“설마?”
부지간에 목소리를 낸 볼프는 명확한 결과를 봤다.아우리엘이 쓰러졌다.
* * *
“왜지?”
심장이 갈라진 가슴을 보며 아우리엘은 의문을 말했다. 그 앞에 선 강흑성은 대답했다.
“난 돌아가야 하거든.”
느릿하게 시선을 든 아우리엘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래서라고?”
강흑성은 더 대답하지 않았다. 흑청빛의 그 눈동자를 응시한 아우리엘은 미소 지었다. 더는 의문이 없는, 이제 이결과를 받아들인다는 미소다.
“재밌었어.”
아이처럼 웃음 짓는 아우리엘은 타올랐다. 푸르고 붉은 마기의 불길 속에 재가 됐다. 그 흔적은 바람에 날렸고, 기이한 호곡성이 세상에 퍼졌다.강흑성은 느릿하게 돌아섰다. 5군단 지휘부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 * *
“이쪽으로!”
앞서 길을 인도하는 자, 그리샴 장군의 참모를 따라가며 전복과 최창수는 당혹과 충격을 삼켰다. 그리샴은 참모에게 자신들의 안전을 특별히 당부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걸 안건 아니겠지만, 전담참모를 뒀다.
‘게틀러에 다 태우고 대기 중이란 말이지?’‘비상시를 항시 준비했다는 게 놀랍군.’
역시 그리샴장군이란 말이 나온다. 그의 준비 덕분에 지금 구명도생하고 있다. 물론 아직 7군단 내에 있지만, 이제 곧 위험은 벗어날 것이다.
‘3군단 사령관 왕중양이 그리샴장군을 죽이다니······!’‘그 미친 쉐이가 제대로 미친 거야!’
각자의 심정과 흥분을 품고 최창수와 전복은 새벽여명 속을 달려갔다. 그러며 카이오의 강단에 새삼 놀랐다. 그 혼란의 와중에 총을 주워 잡은 아가씨는 힘차게 달리고 있다. 지켜야 할 이들을 향해 가는 길이다.
“저깁니다!”
앞서 달리는 참모가 가리킨다, 정말로 게틀러가 대기 중이다. 삼백이가 나와 손을 흔든다. 카이오와 최창수와 전복은 남은 힘을 다해 달려갔다.
* * *
“강흑성이 접근 중입니다!”
지휘본부로 사용 중인 매머드로 강흑성이 온다는 외침이다. 5군단의 핵심전력이 에워싸고 있는 형국, 그렇지만 강흑성에겐 소용없을 전력이다.
“7군단과 통신이 연결됐습니다!”
흠칫하며 반응한 볼프는 화면 속 그리샴의 참모가 전하는 말을 들었다.
-사령관이 돌아가셨습니다! 3군단 사령관 왕중양이 공격했습니다!
볼프는 호흡을 잊은 채 얼어붙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