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43화 (144/172)

혹성강호. 143. 돌아가야 할 곳.

143. 돌아가야 할 곳.

사령관의 의자를 말없이 응시하던 왕중양은 느릿하게 앉았다. 잠시 눈을 감고 감정을 다스렸다. 7군단 사령관의 자리, 영웅 그리샴이 앉던 공간이다. 그 이름에 밀려나 등을 보기만 하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강자가 이기는 건 천고불변의 진리.”

나직한 혼잣말을 흘려내며 왕중양은 다시 눈을 떴다. 부채꼴계단식으로 펼쳐진 통합전투정보센터, 7군단의 지휘부전경을 눈에 넣으며 명령했다.

“7군단의 모든 지휘관에게 통보해라!”

뒷말을 던지는 왕중야의 눈엔 혈광이 번득였다.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들은 사지육신을 잘라 괴수들의 먹이로 던져줄 것이다!”

부하들이 모든 통신채널을 열고 개별부대에 명령을 하달하는 광경을 왕중양은 지켜봤다. 7군단의 핵심에서 이런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곤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샴이 지키고 있는 7군단, 지구에선 불가능했다.

‘해 냈어. 이건 시작, 첫걸음이다.’

마교의 유진을 찾는 천운을 갖지 못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대법으로 내력을 갖추고 마공을 성취했기에 지금이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 제법 많은 희생을 치르긴 했지만, 대사에 피와 죽음이 따르는 건 고금진리다.

‘까짓 유랑자들의 생체에너지쯤.’

필요하면 얼마든지 더 취할 수 있다. 그들을 산채로 삶아서 그 물을 마셔야 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해야만 원하는 걸 이룰 것이다. 지금 이 자리, 그리샴이 앉았던 7군단의 차지가 다가 아니다. 돌아가야 한다.

“화성.”

낮지만 분명한 그 말을 뱉은 왕중양은 미소 지었다. 혈광을 눈동자로 풀어내는 끔찍한 미소, 유랑민들의 생령을 흡수할 때 전율하던 미소다.

“5군단에서 통신을 차단중입니다.”

상황 보고하는 참모를 힐긋 본 왕중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을 파악했을 터,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입가에 미소를 문 왕중양은 볼프장군을 떠올렸다. 천생 군인이라고 할 위인, 그리샴이 죽고 왕중양 자신이 이 자리에 앉은걸 이젠 알 것이다.

‘도주한 놈들로부터 현황을 파악했겠지만, 그래서 제가 지금 뭘 어쩌겠나?’

놀라고 화가 났을 거다. 하지만 제 코가 석자다. 대륙은 아수라장이다.

‘대륙에서 이곳으로 달려올 수 없지. 온다고 해도 어쩔 도리 없고.’

그리샴은 죽었다. 그를 따르던 놈들이 흩어져 행동하고 있지만 다 제압할 것이다. 3군단의 전력이 날아오고 있는 터, 7군단은 이제 3군단이다.

‘골든아이를 드러낸 이상 화성에선 가만있지 않을 것이고.’

없는 것으로 알았던 전략무기, 그것을 그리샴과 볼프는 숨겨두고 있었다. 총통과 치안총국이 칼날을 드러내자 마주 그 칼을 뽑아 잡은 거다.그런데 골든아이는 사라졌다. 그 괴물 같은 두 놈을 처리하고 폭발했다.

‘애초에 결함이 거론됐던 무기, 최대출력을 낸 게 화근인 게지.’

골든아이, 황금안의 폭발은 그런 것이 분명할 터다. 아우리엘이란 붉은 엘프와 강흑성이란 놈에게 마지막 힘을 뿜어냈다. 그리샴과 볼프의 입장에선 그래야 했다. 화성과의 대적은 그들을 해결한 다음 문제인 거다.

‘그것들은 그렇게 해결됐고.’

붉은엘프와 강흑성의 죽음을 왕중양은 의심치 않았다. 골든아이가 최대출력으로 타격한 결과다. 그 어마무시한 에너지 속에선 절대 살 수 없다.

“볼프, 깊이 생각해라. 그리고 서로 얼굴을 보자.”

눈앞에 있는 이에게 말하듯 미소를 던진 왕중양은 새로운 보고를 받았다.

“7군단 예하부대들이 통제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눈썹을 꿈틀 세운 왕중양은 강한 음성을 뱉었다.

“일벌백계, 타깃을 정해서 멸살해!”

참모는 긴장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현재 야전전술단 서른 곳을 추적중입니다만, 단 한곳도 정확한 위치가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전시 인비저블모드로 기동중인 걸로 판단됩니다. 그리샴 장군의 유고상황에서도 이런 행동을 하는 건 명령이 있었던 걸로······”

뒷말을 마무리 못하고 시선을 내리는 참모를 왕중양은 험악하게 노려봤다.참모의 잘못이 아니건만 분노가 일어나서다.말인즉슨 그리샴은 이런 상황을 가정해 작전명령을 내려놨고, 그런 훈련을 해 왔다는 것이다.

‘개 같은!’

의자 팔걸이가 으스러지는 걸 모르는 채 왕중양은 눈썹을 부들거렸다.이런 상황이면 7군단을 장악한 게 아닌 게 된다. 7군단 영내의 병력들이야 아우른다지만, 실질적인 전투부대들인 야전전술단은 전부 놓쳤다.

“상관없다!”

소리쳐 분노를 뱉은 왕중양은 섬뜩한 미소를 입가에 피워냈다.

“그놈들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한계가 있어.”

보급, 기장 기본이 되는 무기와 식량을 보급 받지 못하면 끝이다. 게릴라식 반격을 한다고 해도 발버둥에 불과한 것, 그런 시간도 끝이 온다.

“놈들을 끌고 와라!”

소리친 왕중양의 명령은 즉시 이행됐다. 그리샴의 참모부관들, 생포돼 순종을 거부한 이들이 왕중양의 앞으로 끌려왔다. 하나같이 피투성이다.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내게 순응하는 자는 살 것이다.”

여섯 명의 참모 중 하나가 퉤하고 침을 뱉었다. 왕중양의 부관이 바로 움직였지만 멈췄다. 왕중양이 환영처럼 이동해 그자의 목을 잡아서다.

“컥!”

삽시간에 흑빛이 되는 얼굴, 왕중양은 그 목을 잡고 사악한 미소를 피워냈다.

“그게 답이면 나도 답을 주마.”

왕중양은 오른 손을 상대의 가슴에 댔다.손이 진흙을 파고들 듯이, 두부를 파고들어가듯이 들어갔다.눈을 부릅뜨고 경직하는 상대를 보며 움켜쥔다.벌떡이는 심장, 그 뜨겁고 힘찬 생명의 요동을 느끼며 속삭인다.

“내가 식사하는 방법이란다.”

왕중양이 심장을 움켜쥐는 순간 상대는 경련했다. 눈이 터지고 코와 입으로 피를 흘려냈다. 그런 모습으로 말라갔다. 완벽한 미라가 돼 죽었다.죽은 자를 털어내듯 던져버린 왕중양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모든 자들이 이 광경을 보도록 전송해라.”

두 번째 상대의 목을 움켜잡은 왕중양의 눈동자에선 핏빛이 출렁거렸다.

* * *

“저 미친놈이!”

왕중양의 모습을 보며 볼프는 치를 떨었다. 형님 그리샴이 앉던 자리를 차지한 저놈은 참모들을 저렇게 죽이고 있다. 마공이다, 전설로만 듣던 흡성대법, 그것이다. 저 광경을 보도록 모든 통신채널을 열어 놓았다.

‘죽일 놈······!’

격노를 참지 못해 진저리를 친 볼프는 평정을 갖기 위해 큰 숨을 들이마셨다.일은 이미 벌어졌다, 이제부턴 상황수습과 대처다.불행 중 다행이라면 7군단 야전전술단들의 즉각적인 대응이다. 훈련해온 결과다.

‘형님, 부하들은 제대로 된 군인으로 만들어 놨구려.’

그리샴의 최후가 어땠을 지를 그리며 다시 이를 악물었던 볼프는 고개를 들었다.

‘개새끼들, 모조리 묵사발을 만들어 주마!’

3군단 왕중양이든 치안총국이든 화성연구소든, 그리고 화성정부의 수반 총통이든, 죽이겠다고 덤벼든 것들에게 죽음을 돌려줄 것을 맹세했다.

‘그러기 위해선 강흑성 네가 필요해.’

그럴 수 있다. 강흑성이 적이 아닌 협력자로 만들 방법이 있다. 7군단 내에 있던 강흑성의 지인들,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 중이다. 그렇게 연락이 왔다. 이 결과는 그래서 놀랍고 안타깝다. 형님 그리샴의 안배다.

‘이런 일이 생겨날 것을 예측한 것은 아니겠지만.’

강흑성에 대한 대응차원에서 조치한 것일 터다. 어떻든 그 덕분에 강흑성의 지인들은 무사히 7군단을 빠져나왔다. 야전전술단과 합류해 통신을 보냈다. 하늘상어를 날려 전송한 짧은 통신, 그렇지만 다 파악했다.

‘통신이 필요할 때마다 하늘상어를 쏴댈 수도 없고.’

그렇게 소비할 통신기도 없다. 안정적으로 통신이 가능한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강흑성이 도착했습니다.”

볼프는 흠칫하며 몸을 세웠다. 손짓해 매머드의 문을 열라고 했다. 그렇게 그를 봤다. 여명 빛을 받으며 서 있는 사내, 강흑성을 향해 나갔다.

* * *

어디쯤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대전을 벗어났다. 산비탈을 올라가는 현재 위치에선 7군단과 대전 시내의 불빛이 보인다. 눈에 띄는 교전의 불빛 같은 건 없다. 3군단에서 온 게 확실한 비행체들만 내려앉고 있다.

‘그리샴 장군이 죽다니.’

허탈한 심정으로 최창수는 현실을 곱씹었다. 대륙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은 이제 사라졌다. 그의 안배로 지금 이렇게 숨을 쉬고 있다. 물론 그의 이런 준비는 다른 의도가 있었을 것이지만, 결과는 안전이다.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3군단 사령관 왕중양의 손에서 어떤 고초를 겪을지 알 수 없다. 그냥 일반 사람들이라면 그렇지 않을 테지만, 자신들은 강흑성의 지인들이다.

‘백호부대.’

합류한 군인들을 돌아본 최창수는 기묘한 소름을 삼켰다. 일당백의 전사들로 알려진 이들이다. 최소한의 기본장비만을 지닌 저들은 산을 넘어 이동 중이다. 현재 상황에 대한 동요가 일체 없다. 그러나 싸울 것이다.

‘그리샴 장군은 부하들을 정말 제대로 양성해 놨어.’

전체를 다 알 순 없지만 이들의 모습에서 느낀다. 7군단은 3군단에게 점령당한 것이 아니란 거다. 그리샴은 죽었지만 그의 명령은 살아 있다.

‘실제 전력부대들은 영 외에서 기동중인 거야. 이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반격할 테지. 3군단이 이들을 소탕하자면 큰 손실을 감수해야겠지.’

그런데다 대륙엔 5군단이 있다. 볼프사령관은 반드시 반격할 것이다.

‘그리샴장군을 친형님처럼 여긴 사람이니.’

생각을 흩어놓는 전복의 긴장한 목소리가 그 순간 귀를 파고들었다.

“저들이 뭔가 보고 있어.”

미간을 깊게 좁힌 최창수는 전복과 시선을 교환하고 다가갔다. 통신 단말기를 잡은 장교들, 그들의 곁에 섰다. 장교들은 감추지 않고 보여줬다.

“저건!”

전복이 경악하는 반응을 냈다가 입을 다물었다. 백호부대원들이 업고 이동하던 아이들을 돌아봤다. 여인들과 함께 힘들고 두려운 얼굴들이다.

“마공이야.”

숨죽인 최창수의 한마디에 전복은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

“흡성대법, 그게 맞을 거야.”

3군단 사령관 왕중양, 그가 그리샴장군의 참모들을 죽이는 광경이다. 심장을 움켜쥐고 생체 에너지를 흡수한다. 기를 빨린 참모는 미라가 돼 죽고 왕중양은 더 없이 즐거워한다. 마치 지옥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공포심을 조장하려는 수작······!”

전복의 이가는 분노는 최창수와 백호부대 장교들의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공포심에 먹히지 않았다. 뜨거운 분노와 전의만 곤두섰다.

“곧 해가 뜰 거예요.”

목소리의 주인을 모두가 돌아봤다.카이오다, 빔라이플을 움켜잡은 그녀의 눈은 강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갈수록 더 강해지는 눈이 말한다.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어서 빨리 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그렇군.”“어서 갑시다.”

최창수의 전복의 말에 맞춰 백호부대 지휘관은 멈춘 이동을 다시 명령했다.

* * *

거대한 군용전술차량, 매머드의 몸통이 갈라졌다. 그 안에서 걸어 나오는 자를 강흑성은 고요히 응시했다. 사방에서 자신을 겨눈 군인들의 총구, 매머드에서 나온 인물이 손짓한다. 그 지시로 모든 총구가 돌아갔다.

“정식으로 인사하지. 5군단 사령관 볼프다.”

흑청빛 안광을 흘려내는 강흑성, 그 존재를 눈에 넣은 볼프는 뒤쪽을 넘겨다봤다. 5군단 영내, 가라운이란 거짓말 같은 존재가 스러진 장소다. 그런데 허황된 존재가 아니었다. 그에게 모든 것이 파되 돼 나갔다.

‘강흑성······!’

그 무서운 존재를 눈앞의 이 젊은 사내가 죽였다. 골든아이의 공격을 받고도 살아나 그렇게 했다. 불가해한 존재, 이렇게 마주서야 했다.

“제안을 받아줘서 고맙다.”

감사인사를 하는 자, 볼프사령관을 응시하며 강흑성은 그들을 떠올렸다.대전에 있는, 7군단이 보호하고 있다던, 카이오와 다른 이들이다.그들은 위험에 빠졌다.3군단으로 인해서다. 그렇지만 현재 피신중이다.

“내게 알린 내용에 거짓이 있다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

강흑성의 대답, 볼프는 흠칫하면서도 입을 열었다.

“7군단 사령관이 시해된 마당이다. 거짓을 말 할 이유가 없다.”

확성기를 통해 핵심을 말했다. 그 결과로 강흑성은 이렇게 걸음을 멈췄다.

“그들의 안전을 내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까지 협력하겠습니다.”

결론을 던진 강흑성을 보며 볼프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행동하자면 알아야겠지. 강흑성이란 존재를 화성에서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돌아서는 볼프장군, 그를 응시하던 강흑성은 매머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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