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44. 돌아가는 길.
144. 돌아가는 길.
“두 다리로 대지의 힘을 받아들인다고 생각해라.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호흡에 의식을 집중해야 한다. 철권과 철각은 의지에서 나온다.”
엄격한 목소리를 뱉어내며 그렉은 철수의 움직임을 응시했다. 권각법의 기초가 되는 보법을 연마중인 모습, 이제 시작이지만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뜨겁다. 강흑성처럼 강한 무인이 되겠다는 저 아이의 염원이다.
“숨이 고르지 못하다!”
빽 소리쳐 경각심을 준 그렉은 하늘로 시선을 올렸다.망루 옆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은 오늘도 맑고 푸르다, 그런데 저 하늘에 황금별이 있었다.그별이 뿜어내는 황금빛이 북쪽 멀리 어딘가의 대지로 내리꽂혔다.
‘황금안, 골든아이.’
박준이 그 이름을 언급했다.군대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라는 거다. 삼백년 전에 제작하다 포기한 전략무기의 이름이란 거다.그것일지 모른다고 했다.확신이 없는 가정이었지만, 황금별은 그것인 것 같다.
‘아우리엘을 상대하기 위해서.’
숨겨왔던 전략무기를 사용했을 가능성이다.그런데 그 무기가 아우리엘에게만 사용됐는가 하는 게 이 가슴의 돌덩이다.그래서 초조하고 두렵다.강흑성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지금 어떠한지 답답하다.아니 애초에 황금안이란 것이 정말 존재 하는 지부터, 그것이 정말로 사용됐는지, 그 대상이 강흑성인 것인지, 모든 것이 걱정되고 두렵다.
‘제발 무사하기를.’
간절한 심중의 기원을 하늘로 올리며 그렉은 두 손을 모아 잡았다. 단 한 번도 찾아본 적 없는 신, 그 존재의 이름이 무엇이든 기도했다. 강흑성이 타이그란 족의 전설인 타이그라툰이든 아니든, 무사만을 간구했다.
‘전설이니 뭐니, 그런 허울 따위 필요 없어.’
허망한 것이란 걸 이젠 안다. 그러한 전설은 그저 바람들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암울한 현재를 파훼해줄 존재를 기다리는 바람이다. 그러한 것에 의미를 둘 필요 없다. 강흑성이 한, 걸어간 길이 바로 답이다.
‘스스로 헤치고 만들어 가는.’
으르르 소름을 털어낸 그렉은 지난 기억 속의 강흑성을 다시 떠올렸다.
“부디, 무사한 모습으로 다시 볼 수 있기를.”
다시 하늘을 보며 기원을 중얼거리던 그렉은 의자를 밀고 벌떡 일어섰다. 푸른 하늘을 가르고 비행체가 날아오고 있어서다. 저건 분명 샤크다.
* * *
‘골든아이의 공격 자체를 이용했다는 건데······’
황당한 충격을 해소하지 못한 채 볼프는 물잔을 들었다. 벌컥대고 마시며 강흑성이 한 말을 다시 되새김질 했다. 골든아이를 파괴한 결과에 대한 말이다. 골든아이가 황금빔의 길을 열어줬기에 올라탔다는 거다.
“말이야 쉽지.”
허탈함을 숨으로 내며 볼프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강흑성과 마주 앉아 나눈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곱씹었다. 거의 일방적으로 볼프 자신이 말한 것이지만 강흑성은 묵묵히 다 들었다. 그리고 동료들에게로 갔다.
‘지금쯤이면 도착했을 텐데.’
산동농장연합에 샹그릴라출신의 동료들이 있다. 그들을 거쳐 한반도로 돌아갈 것이다. 산동농장연합의 위치를 알려주는 형국이지만, 숨긴다고 숨겨질 것도 아니기에 결정한 거다. 이젠 정말로 협력할 시간이다.
‘강흑성, 지옥사신······!’
그 이름의 무게를 새삼 곱씹은 볼프는 등골의 한기를 밀어냈다. 가라운이란 존재를 죽이고 골든아이를 파괴한 존재인 거다. 그와 손을 잡았다.
‘화성은 그의 생사를 몰라.’
골든아이 직격 직전에 화성으로의 송출을 끊었다. 3군단 왕중양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과연 어떠한 결론을 생각할까, 죽음으로 믿을 것이다.
‘골든아이의 실존을 봤어. 그 에너지를 맞고 산다고 여기진 않을 테지.’
붉은 엘프와 지옥사신이란 존재는 이제 소멸한 거다. 그렇지만 지구의 군부는 남아 있다. 그런데 그리샴은 죽었고 갈라져 싸워야 할 처지가 됐다. 총통과 치안총국이 바라마지 않던 그림이다. 이막이 시작될 터다.
“왕중양, 우선 너부터 해결해야겠지······!”
부드득 하는 소리를 내는 볼프에게 그 순간 참모가 상황을 알렸다.
“강흑성과 통신이 연결됐습니다.”
* * *
5군단 사령관 볼프장군과 통신하는 강흑성을 모두가 침 삼키며 바라봤다. 샤크를 타고 날아온 강흑성, 5군단 군인들과 같이 왔다. 몽골초원에서 이곳까지 날아오는 동안 통신기를 설치했다고 한다. 그 테스트다.
“아우리엘이 정말 죽은 거냐?”
박준이 참지 못하고 물음을 냈다. 강흑성이 볼프장군과 통신을 끝내자 마자다. 눈길을 돌린 강흑성은 저택 안의 동료들을 일일이 응시했다.
“죽었습니다.”
간명한 대답, 박준은 움찔했고 그렉은 허 하는 숨을 냈으며 박현과 무슬란은 어깨를 꿈틀했다. 그렇지만 그 죽음에 대해 더 이상 다른 물음을 내진 않았다. 강흑성이 이어 말하는 현실에 집중하며 주먹을 쥐었다.
“화성정부와 치안총국이 배후에 있습니다.”
볼프에게서 인지하게 된 내막, 지구라는 세상을 두고 벌이는 그들의 체스게임을 강흑성은 담담히 말했다. 그러나 그 담담함 속에 분노가 있다.
“그들의 뜻대로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동료들은 느꼈다. 강흑성의 가슴속에 든 거대한 분노다. 당하는 이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이는 힘 있는 자들의 탐욕과 유희, 용서 못할 죄악이다.
“그리샴장군은 살해됐습니다.”
짧지 않은 내막의 이야기 속에서 나온 충격, 박준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뭐라고? 그리샴장군이 죽어?”
강흑성은 다시 자세한 내막을 이어냈다. 3군단 사령관 왕중양이 7군단을 방문한 일, 그리샴장군을 살해한 결과, 현재 상황까지 담담히 말했다.
“왕중양은 마교의 마공을 연성했습니다.”
함께 온 군인들이 내민 단말기로 모두가 영상을 봤다. 왕중양이 그리샴의 참모들을 살해하는 광경, 삽시간에 미라가 돼 절명하는 참혹함이다.
“흡성대법?”
그렉이 기억하는 이름을 신음처럼 뱉었다. 마교라는 무시무시한 이름과 더불어 전설로서 전해지는 무공이다. 저 죽음은 그것이 분명한 결과다.
“허, 이런 개 미친 꼬라지가 있나?”“와 이게 무슨 일인 거냐?”
박현과 무슬란의 반응 위로 강흑성은 다시 입을 열었다.
“7군단은 그녀들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들이란 말에 박준을 비롯한 모두가 눈에 힘을 줬다. 일이 발생한 곳은 대전, 그곳엔 그녀들이 있음이다, 카이오를 비롯한 아이와 여자들.
“어떻게 됐는데?”
그렉이 반사적으로 물었고 강흑성은 차분한 눈으로 대답했다.
“현재까진 무사합니다. 백호부대와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녀들의 곁에 최창수씨 일행이 함께 있습니다, 모두 다함께 위험을 피했습니다.”
박준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최창수가 같이 있다고?”
강흑성은 일행이라고 했다. 그렇다는 건 전복도 함께란 소리다. 그들이 어떻게 그녀들과 함께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불행 중 다행한 소식이다.
“그들이 곁에 있다면 도움이 될 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박준, 그의 눈과 그렉과 박현과 무술란을 응시한 강흑성은 결론을 말했다.
“돌아갈 겁니다.”
모두가 숨을 멈췄다.강흑성이 지금 뱉은 말, 돌아간다는 의미를 알아서다.그녀들을 무사하게 만들기 위해서다.당연히 혼자 간다는 소리다.
“흑성아.”
그렉이 입을 열자 강흑성은 단호하게 잘랐다.
“각자 할 일을 하는 겁니다.”
* * *
“먹어.”
영희는 옥수수 삶은 걸 흑호에게 던졌다. 샤크 앞에 엎으려 있는 흑호는 무시하는 것처럼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영희는 두려움 보다 화가 났다.
“귀한 거야, 그것도 없어서 못 먹는 사람들이 있다고.”
흑호는 여전히 심드렁하다. 영희는 허리에 팔을 올리고 눈썹을 세운다.
“무시하는 거냐!”
흑호에게 달려가기라도 할 것 같은 영희 어깨를 철수가 잡았다.
“너 뭐하는 거야?”
황당한 눈에 두려움을 품고 철수는 영희를 잡아끌었다.
“이거 놔아!”“미쳤어!”
철수는 영희를 끌고 거리를 멀린 후 다그쳤다.
“저게 뭔지 몰라? 괴수라고!”
커다란 흑호, 지옥사신 강흑성이 내린 샤크에서 같이 내린 놈이다. 그 모습을 보고 농장 사람들은 기겁해 엉덩방아를 찧었다. 지금도 가까이 오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영희가 고양이 대하듯 하는 거다.
“그 아저씨하고 같이 왔잖아? 우릴 해치지 않을 거라고? 배고 고플까봐 먹을 걸 준 것뿐이야?”“무슨 헛소리야! 호랑이가 옥수수를 먹겠냐! 저런 괴수가 그걸 먹어? 고양이도 안 먹는 다고!”
그제야 영희는 흑호를 돌아보고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 순간 흑호가 일어났다. 어슬렁거리는 움직임으로 옥수수를 물더니 삼켜버렸다.
“먹었다!”“어?”
영희는 환호했고 철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영희가 흑호에게로 빠르게 달려갔다. 철수는 기겁한 얼굴로 영희를 잡으려 움직였다.
‘뭐?’
철수는 멈춰 섰다. 영희의 얼굴을 핥아대는 흑호를 보고서다.
“으, 간지러워.”
영희는 혹호의 목을 끌어안고 있었다. 흑호는 연신 핥아댄다.
“친구를 사귀었구나.”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철수는 경직에서 깨어났다.
‘지옥사신 강흑성.’
그가 왔다. 영희와 흑호를 바라보며 엷은 미소를 짓는다.
“네 동생은 흑호와 영성이 통하는 거다.”
무슨 소린지 몰라 철수는 동생과 흑호를 돌아봤다. 그렇게 의미를 깨달았다. 말 그대로 통하는 거다. 그런 게 아니면 저건 말이 안 된다. 작은 짐승도 무서워하는 동생 영희가 저런 괴수와 저럴 수는 없는 거다.
“무공을 배우고 있다 들었다.”
흠칫하며 강흑성을 다시 본 철수는 배에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가르침 받고 싶습니다.”
천천히 시선을 맞춘 지옥사신, 강흑성은 미소로 대답했다.
“할 일을 끝내고 나면 그렇게 하자.”
흑호는 영희를 등에 태우고 겅중겅중 뛰고 있었다.
* * *
“이거 아주 재밌는 일이 생겨 버렸는걸?”
영상에 눈을 박은 종리운은 술잔을 단숨에 넘겼다. 그러면서도 영상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3군단 사령관 왕중양이 그리샴의 참모들을 죽이는 광경이다. 저것은 마교의 흡성대법, 정말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다.
“저것이면 영생불사는 정말로 완성이지.”
와작, 술잔은 손안에서 부순 종리운은 철창 안의 묘진위에게 시선을 돌렸다. 짐승처럼 잡혀 있는 묘진위, 영상을 본 그의 눈에 든 것은 충격이다.
“어쩌나, 묘진위 네가 무용지물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쇠창살을 움켜쥔 묘진위는 저주를 쏟아냈다.
“악귀 같은 놈아! 네 놈 뜻대로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네 육신과 영혼은 신교의 신화(神火) 속에서 영원토록 타고 또 타오를 것이야!”
종리운은 차가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영원, 내가 바라는 것이 그것이지.”
시선을 돌린 종리운은 주변을 돌아보며 흡족한 미소를 피워냈다.
“데빌그라운드 안에 이런 시설을 만들도록 고생한 걸 생각하면 눈물이 날 지경이야. 땅 밑에 건설한 제 이의 연구소,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화성에서도 모른다. 알 필요도 없지. 그들은 나에 대해 결코 알 수 없어.”
거대한 지하광장, 연구소를 눈에 넣으며 종리운은 속삭이듯 뒷말을 냈다.
“세상이 내 것이 된 후엔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이종들의 울부짖음이 퍼지는 속에서 묘진위는 치를 떨었다.
* * *
화성연구소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샴은 그 일을 하고 있었다.
‘운악산을 버리고 놈들이 이동한 곳을 찾아야 해.’
미간을 강하게 찌푸린 왕중양은 통합테스크에 뜬 지도를 응시했다.운악산 일대는 폭격으로 불타고 있다.저곳을 버린 화성연구소 놈들이 간곳이 어디일지 모르겠다.그곳을 장악해야만 더 큰 힘을 가지게 된다.
‘이종······ 뭐가 더 있을지 몰라.’
어금니에 힘을 준 왕중양은 명령했다.
“화셩연구소를 찾아라, 운안삭 일대부터 데빌그라운드를 다 뒤져서라도 반드시 찾아내라.”
명을 기다리던 혈령위수장은 고개를 깊게 숙이고 돌아섰다. 마교의 무공으로 고수가 된 3군단의 정예들, 저들은 반드시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볼프, 네가 보일 수가 정말 궁금하구나.”
지도에 뜬 5군단의 위치를 응시하며 왕중양은 소리 없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