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46. 대전의 밤.
146. 대전의 밤.
“통신전파를 포착하고 추적하면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한 후입니다.”
곤혹스러운 분노를 품은 참모의 얼굴을 응시하며 왕중양은 치킨을 먹었다.프라이드치킨에 맥주,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수백 년의 전통을 가진 이 음식은 시작이 한반도였다고 안다. 정말 행복한 식도락이다.
‘빌어먹을 것들이.’
기름 묻은 닭다리를 내려놓고 왕중양은 맥주잔을 벌컥대고 비웠다. 즐거움에 찬물을 끼얹는 보고, 차가운 맥주로 속을 밀어내려도 화가 난다.7군단 야전전술단 놈들은 저희가 누비던 지형을 이용해 화를 돋우고 있다.
“야전전술단 두 곳을 잡은 게 전부란 말이지?”
서른 개의 야전전술단 중에 두 개를 부쉈을 뿐이다. 나머지 스물여덟개의 전투부대가 게릴라전을 펼치며 기동중이다. 대전을 중심으로 퍼진 놈들은 수림을 이용해 치고 빠지며 약 올리는 중이다. 정말로 화가 난다.
“시간은 그놈들 편이 아니다.”
화를 다스린 왕중양은 차가운 살기가 번득이는 눈으로 참모를 응시했다.
“보급도 없이 무한정 그렇게 움직일 순 없어. 우린 그 점을 이용하면 된다.”
참모는 알아들었다.
“그렇군요. 놈들이 가진 걸 다 써버리도록 하면······”“놈들의 흔적이 포착된 곳에 화력을 퍼부어라. 수림이 에너지를 흡수하더라도 소이탄을 때려 부어서 불태워. 발가락 하나라도 보이면 성공이다.”
왕중양의 단호한 말에 참모는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 말처럼 소이탄으로 수림을 불태울 순 없다. 거대수들이 방사능을 흡수하듯이 화력을 흡수해 불이 번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지체 하지 마라.”
왕중양의 날선 음성에 참모는 경례를 붙이고 돌아섰다.
“음.”
다시 닭다리를 잡던 왕중양은 미간을 찌푸리고 손을 거뒀다. 의자를 밀고 일어서 통합데스크를 향해 돌아섰다. 불타버린 장비, 그리샴의 것이다.저 안의 기밀들을 들여다보려 했더니 불이 붙었다. 그리샴의 안배다.
‘그리샴.’
죽어버린 그의 그림자를 느끼며 왕중양은 미간을 강하게 찌푸렸다. 복종을 거부하고 반격중인 야전전술단, 그들을 그렇게 키운 것이 그리샴이다.그는 죽었지만 죽은 게 아니다. 그의 이름을 따르는 군인들이 있다.
‘그래, 시간문제일 뿐이야.’
승리를 의심치 않으며 왕중양은 손을 들었다. 흑빛으로 물든 손, 흑염수로 통합데스크를 내리쳤다. 콱, 하는 기음을 내며 데스크는 먼지로 변했다.
‘누구든지 대적하는 자는 죽인다······!’
경이로운 무공, 바로 이 힘이 있기에 꿈의 실현이 가능한 거다.마교의 무공, 헤아리기 힘든 경지의 것이다.극의를 달성하기 위해 분발하고 있다.나아가는 이 걸음을 누구도 막지 못한다. 볼프도 곧 죽일 터다.
‘결국 최종의 대적자는 화성.’
총통의 얼굴을 떠올린 왕중양은 싸늘한 미소를 피워냈다. 그 순간 뒤편의 기척을 인지했다. 느릿하게 돌아서니 혈령위들이 저녁식사를 가져왔다.
“두고 가라.”
가벼운 미소로 말한 왕중양은 돌아서 나가는 혈령위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봤다. 마교비전의 대법으로 심신을 바꾸고 단련한 부하들이다. 혈기를 풀어내는 눈동자만 봐도 믿음직스럽다. 그들이 가져온 식사는 아이다.
“살고 싶은 모양이구나?”
혈도를 제압당해 몸부림치지도 못하는 아이, 이제 열 살이나 됐을까 싶다. 죽음의 공포 속에 눈물만 흘리는 아이의 머리를 왕중양은 쓰다듬었다.
“넌 죽는 게 아니란다.”
아이와 눈을 맞춘 왕중양은 악마처럼 웃으며 속삭였다.
“내 안에서 나와 함께 하는 것이지.”
흑빛으로 물든 왕중양의 손은 아이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눈을 까뒤집고 움찔거리는 아이는 말라갔다. 수분 없는 장작처럼 변해 숨이 끊어졌다.
* * *
대전이다.7군단이 있던 대전의 경계선 안은 아니지만 바로 그 바깥지역이다.그런데 이젠 그 경계가 의미 없는 현실이다.7군단은 와해됐고 3군단은 점령군으로 살상을 자행중이다. 사람들에게 대전은 수림이 됐다.
“닥치고 열란 말이다!”
빔소총을 겨눈 군인이 격하게 소리치는 걸 강흑성은 어둠 속에서 지켜봤다. 살기와 악의로 충혈된 눈동자, 정상적인 군인의 눈동자가 아니다.
‘마공.’
이성이 내려앉고 폭력과 살상의 충동에 사로잡힌 눈이다. 3군단의 군인들이 전부 저렇다. 사령관 왕중양이 부하들을 저렇게 만들었다. 저들에겐 군인으로서의 긍지나 책무 같은 의식은 없다. 오로지 살의뿐이다.
“사, 살려주십시오!”
엎드려 두 손을 모아 비는 중년인, 그가 가로막은 것은 건물 지하로 통하는 문이다. 그런 중년사내에게 군인들은 총구를 겨누고 짐승처럼 외친다.
“살고 싶으면 열란 말이다!”“네 딸년 숨소리가 거기서 들린다고!”“냄새가 나! 으하하하!”
약탈과 방화로 사방이 불길이다. 너울거리는 그 불빛 속의 군인들은 악귀 같다. 벌써 여러 곳의 집과 건물들이 폭파됐고 불타고 있다. 저런 대피소를 발견한 군인들은 문을 열다가 반격이 오면 폭탄을 던지는 거다.
“여자 냄새 좀 맡아보자는데 왜 이리 징징거려!”“야! 꾸물거리지 말고 죽여 버려!”
군인들의 악의와 살기를 바라보며 강흑성은 고민했다.이 일을 모르는 척 돌아서야 하는 가다.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그녀들을 찾는 거다.그 일을 하고자 왔다. 그렇지만 카이오가 이 일을 안다면 뭐라고 할까.
‘카이오.’
전원을 꺼버린 멀티폰을 응시한 강흑성은 고개를 들었다.흑청빛이 응축한 눈동자의 기세를 풀어내며 움직였다.한줄기 바람이 돼 나아갔다.중년인에게 방아쇠를 막 당기려는 군인의 곁에 섰다.철혼을 그었다.뭐? 라는 의문을 품은 군인의 머리가 허공에 떠올랐다.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수급, 그 순간에야 현실을 인지한 군인들이 반응했다.같은 순간 강흑성의 손이 흔들렸다.벽뢰수의 바람이 군인들을 때렸다.퍼퍼퍼퍽. 동시에 터져나간 머리통들은 폭죽이 터지는 것 같다.어깨 위 물건이 사라진 몸뚱이들은 허수아비처럼 쓰러졌고, 중년사내는 기함했다.그에게 강흑성은 눈짓했다. 지하실의 딸을 데리고 어서 도망치라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중년사내와 딸이 도주하는 광경을 눈에 담고 강흑성은 그들에게 시선을 박았다. 약탈과 방화에 취한 군인들, 검을 뽑았으니 그냥 갈 순 없다.
“죽인다.”
밤바람 속에 그 한마디를 흘려낸 강흑성은 걸음을 냈다. 한줄기 벼락이 되어 검을 휘둘렀다.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하는 3군단 군인들을 도륙했다. 아니 마인들을 갈랐다. 그들의 무기건 장비건 육신이건 동강냈다.
* * *
“뭐야?”
치켜세운 눈썹을 가늘게 떨며 왕중양은 참모들의 얼굴을 노려봤다. 하나같이 시선을 피하고 있는 부하들, 그 뒤로 통제실 스크린영상이 보인다.부하들을 도륙하는 존재의 모습, 저건 분명히 강흑성이란 그놈이다.
“강흑성······!”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저놈은 죽었다.5군단이 숨기고 있다 사용한 골든아이의 직격을 맞았다.가라운이라던 붉은 엘프와 소멸했다.그런데 살아 있다.지금 이곳 대전에 있다.저 모습이 말하는 건 하나다.
‘볼프!’
그의 수작이다. 강흑성은 죽지 않았고 5군단과 손을 잡은 거다. 강흑성이 저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여기 나타난 게 답이다. 그렇다, 강흑성이 죽었다는 확실한 결과를 확인하지 않았다. 당연히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놈들이!’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놈들은 손을 잡았다. 그게 아니라면 죽이려한 5군단을 놔두고 강흑성이 이곳에 있을 까닭이 없다. 골든아이를 통한 공격이 속임수였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저들은 적대를 푼 것이다.
‘아니야, 그 공격은 진짜였어······!’
어마무시한 그 에너지 반응을 가짜로 꾸며낼 순 없다.그렇다면 강흑성은 그런 공격을 맞고도 살아났다는 건가?믿을 수 없다. 그런데 믿지 않을 도리가 없는 상황이다.저건 강흑성이다. 놈이 부하들을 죽였다.
‘왜? 어떻게 여기에?’
의문과 충격 속에서 왕중양은 전후를 파악하려 애썼다. 강흑성이 5군단과의 대적을 피하고 대전에 나타나야 했던 이유다. 도깨비처럼 출현한 이유가 분명 있는 거다. 물론 5군단과 손잡았다면 왕중양 자신이 목표다.
‘날 공격하려고 했다면 저런 식으로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겠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거다. 그게 뭔지 알아내야 한다.
“살려둔 놈을 데려와라!”
명령은 떨어지자마자 즉각 이행됐다. 피투성이 몰골의 그리샴 참모가 끌려왔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그의 머릴 움켜잡고 왕중양은 물었다.
“강흑성에 대해서 아는 걸 말해라.”
참모는 거부하는 눈빛을 드러냈지만 왕중양의 내력 침습을 막진 못했다. 마교비전의 혼천제령술, 이지를 상실한 혼이 되어 아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렇군.’
파악하지 못했던 내용을 알게 된 왕중양은 손을 풀고 일어섰다.지금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강흑성의 지인들이 이곳에 있다.샹그릴라라는 곳에서 함께 있던 여인들이다. 그리샴은 그녀들을 확보하고 있었던 거다.
“계집들을 찾으려고 왔단 말이지?”
섬뜩한 미소를 흘려낸 왕중양은 명령을 내렸다.
“강흑성이 찾기 전에 계집들을 찾아라!”
* * *
“대전 외곽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통신입니다.”
긴장한 얼굴의 참모가 전하는 내용, 강흑성이 분명하다고 볼프는 생각했다. 게릴라전에 돌입한 7군단 야전전술단 외의 교전발생이다. 물론 그들이 통신체널을 상시적으로 열어놓고 있지 않기에 정확한 건 아니다.
“거의 일방적인 파괴라고 합니다.”
이어진 참모의 눈빛에 든 것이 기쁨인지 불안인지 모호하다. 왜 그런지 볼프는 안다. 강흑성은 불가해한 존재, 손을 잡았지만 두려운 사내다.
“그 친구, 그렇게 할 때는 생각이 있어서 일거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려 볼프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강흑성에게 요구한 것은, 아니 부탁한 것은 하나다. 왕중양의 제거다. 그 일을 해야 할 자가 저렇게 존재를 드러냈다. 시선을 끄는 행동, 분명히 이유가 있을 터다.
‘강흑성인데.’
다름 아닌 그이기 때문이다.왕중양을 제거하는 일에 앞서 지인들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게 그의 목적이다.저 행동은 그 일에도 지장을 주는 거다.그럼에도 하는 건 분명 이유가 있다.강흑성인데 아닐 리가 없다.
“기지가 있던 자리에 생긴 토네이도가 심상치 않습니다.”
다른 긴장을 품은 참모의 목소리에 볼프는 화면을 응시했다.폐허가 된 5군단 자리를 비추는 영상이다.참모의 말처럼 회오리태풍은 더욱 강해졌다. 그런데다가 내부에선 뇌류도 발생하고 있다. 푸른빛이 번쩍거린다.
“저래봐야 모래폭풍이다. 아무 상관없어.”
볼프는 무시했다. 모든 장비와 무기들을 이동한 지금, 5군단은 새로운 기지를 형성한 거다. 전과 다른 점이라면 스페이스셔틀 이착륙장이 없다는 거다. 이곳을 모래폭풍이 덮친다고 해도 아무 피해를 입을 일이 없다.
‘저까짓 모래바람 따위.’
그런데 이상하긴 하다. 토네이도는 5군단 자리에서만 휘돌고 있다.
“강흑성에게서 통신이 오면 즉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라!”
강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 볼프는 다시 토네이도화면에 시선을 박았다.
* * *
손목의 멀티폰을 응시하며 강흑성은 수림 속을 이동했다. 대전의 남동방향, 이제부턴 백호부대가 신호를 포착하길 바라야 한다. 그런데 3군단의 공격을 피해 은신기동 중일 그들보다 놈들이 먼저 포착할 것이다.
‘와라.’
흑청빛 살기를 풀어내며 강흑성은 멈춰 섰다.사방에서 조여 오는 살기, 마공을 익힌 자들이다.이런 순간을 기다렸다. 아니 행동에 나선 순간부터 생각을 누르고 본능을 따랐다.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격류인 거다.
“너희를 살려둘 생각 없다.”
수림으로 강흑성의 그 목소리가 퍼진 순간 공격이 왔다. 혈령위, 왕중양이 양성한 마공 고수들이 벼락처럼 쇄도했다. 본원진기까지 끌어낸 그들은 폭신공으로 터졌다. 그 무서운 자폭 뒤로 공간폭탄이 날아와 터졌다.강흑성의 전신에서 흑청빛 철기가 폭발해 나간 것도 같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