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47. 마교의 숨결.
147. 마교의 숨결.
게틀러의 장갑위로 퍼진 화기를 최창수와 전복은 여실하게 느꼈다.백린소이탄이다.마치 물을 끼얹듯이 그 불길이 덮친 거다.하지만 백호부대는 맹렬하게 기동하고 있다. 꺼지지 않는 저 불도 수림이 해결할 터다.
“지독한 놈들, 화력을 미친 듯이 퍼붓고 있어.”
숨죽인 전복의 분노에 최창수는 고개만 끄덕였다. 달리 현상황에 대해 할 말이 없기도 하지만, 불안과 분노가 가슴을 채우고 터질 듯해서다.
“지금은 이렇게 피하고 있다지만, 이게 계속 가능하진 않을 텐데.”
곁의 준후와 여인들이 들을세라 정말 숨죽인 전복의 목소리엔 초조가 들었다. 강흑성이 건재함을 알았고 이곳으로 온다는 걸 알기에 그렇다.
“5군단과 다시 통신을 열어야 정확한 걸 알 텐데······”
이어낸 전복의 말은 현실이다.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다. 정확한 위치가 적에게 특정되면 지금처럼 기동할 수도 없다.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한 곳에서 통신을 해야 하고, 바로 닫고 움직여야 한다.
“온다고 했으니 올 거야.”
작은 음성을 흘려낸 최창수는 카이오를 넘겨다봤다. 아이들의 곁에서 총을 움켜잡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단단한 바위 같다. 그 눈에 든 것은 다스리고 있는 기쁨이다. 강흑성이 무사하고 이곳으로 오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시간.’
최창수는 확신을 삼켰다.강흑성, 그는 반드시 나타나서 일행을 구할 것이다.5군단에게 그렇게 이야기 했다.그런데 황당한 이야기다.한 남자가 3군단의 군대를 상대 하는 거다. 그렇지만 그럴 수 있는 사내인 거다.
‘이제까지 대륙으로부터 넘어온 소문들이 진실이라면, 아니 진실이지.’
의문을 품을 일이 아니다. 대륙에서 여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짐작은 간다. 황당하다고 할 엄청난 일인 거다. 골든아이가 출현했던 일이다. 그러했던 모든 위험으로부터 강흑성이 돌아온 거다.
‘5군단의 군대가 아니라 강흑성이 온다는 사실 자체.’
그리샴장군이 살해당했다. 7군단은 와해돼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다. 5군단이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펼쳐야 하는 거다. 그게 당연한 순서인데 강흑성이 먼저다. 그러한 이유가 있음이다. 강흑성이 치명적인 무기다.
‘핵을 먼저 터트리는 것 같은.’
볼프장군의 5군단이 택한 전술은 그것이다. 물론 과거와 달리 현 세상의 환경에선 핵이 유효하지 않다. 핵분열의 에너지를 수림이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핵은 비유일 뿐이지만, 강흑성은 그러한 존재인거다.
-전방 차단! 뚫고 간다!
갑자기 귀를 파고든 내부통신음에 최창수와 전복은 눈을 치떴다.내용처럼 게틀러는 급정거했고 모두가 휘청거렸다.원형창으로 밖을 보니 적들이 보인다.수림에서 걸어 나오는 자들, 피처럼 붉은 슈트의 군인들이다.
-신호포착!
이어 나온 내부통신음이 무슨 의미인지 파악 못한 채 최창수와 전복은 무기를 움켜쥐었다.
* * *
“꼬리를 잡았다는 보고입니다.”
침 삼키는 목소리로 보고하는 참모를 왕중양은 돌아보지 않았다. 강흑성이 사라진 현장 화면만 뚫어지게 응시했다. 혈령위들이 폭신공으로 산화한 자리, 공간폭탄까지 사용했건만 역시 그놈의 옷자락도 못 잡았다.
‘마교의 무공이라면 작은 데미지라도 줄 거라 생각했건만······!’
소용없었다. 혈령위들은 헛되이 사라졌다. 후위 혈령위들은 폭신공을 사용하기도 전에 놈의 검에 동강났고 공간폭탄의 화력마저 놈은 갈랐다.
‘폭발범위가 미치는 공간을 소멸하는 무기거늘, 역시 네놈에겐 그렇구나······!’
골든아이의 공격 속에서 살아난 존재인 거다. 그렇기에 5군단의 볼프는 놈을 보냈다. 화가 치친다. 그놈을 어떻게 대적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디로 사라진 거지?’
미간을 꿈틀거리며 분노와 초조를 삼키던 왕중양은 참모의 보고를 그때야 알아들었다. 꼬리를 잡았다는 소리, 강흑성의 지인들을 찾은 거다.그렇다, 방법은 그것이다. 애초부터 그러기 위해 찾으라고 명령했다.
“어디냐?”
움찔한 참모는 바로 대답했다.
“동남방 식장산 인근입니다. 역시 백호부대와 함께입니다. 계집들이 탄 게틀러가 따로 있습니다. 현재 공습타격 후 혈령위들이 접근 중입니다.”
왕중양은 뜨거운 숨을 이에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리샴의 참모에게서 뽑아낸 정보대로다.7군단 최정예 백호부대가 그것들과 함께다.수림속의 이동로를 파악하고 있거나 만들어둔 정황, 놈들의 기동을 막았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부들거리는 목소리를 토한 왕중양은 두 손을 봤다. 새카만 암흑의 빛으로 문든 손, 흑염수를 보는 순간 충동이 곤두선다. 강흑성이란 존재와 싸우고 싶은, 그 결과가 어떠할지에 대한, 피 끓음이다.
“신호 하나가 잡혔다는 보고입니다!”
새로운 상황에 왕중양은 현실을 직시했다.
“혈령위들의 작전지역으로 이동 중인 신호입니다! 아군의 신호가 아닙니다! 엄청난 스피드로 접근 중입니다! 아군장비 중엔 저러한 게 없습니다!”
눈썹을 곤두세운 왕중양은 화면을 봤다. 녹색점으로 표시된 신호, 정말로 엄청난 속도로 이동 중이다. 혈령위들이 있는 식장산, 계집들도 있다.
‘강흑성!’
으스러져라 이를 물었던 왕중양은 명령했다.
“모든 화력을 혈령위 작전지역으로 모아라!”
* * *
“제기랄······!”
부들거리는 숨을 흘려내며 볼프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지금 막 들어온 통신내용, 백호부대의 현재 상황이 위급하다. 3군단의 정예가 분명한 붉은 슈트의 군인들에게 꼬릴 잡혔다는 거다. 분명 마공의 고수들이다.
‘최후통신이 돼선 안 돼······!’
백호부대 지휘관은 그런 상황임을 절감하고 통신채널을 열어 알린 거다.저 위기를 파훼해줘야 하건만 그럴 수가 없다.그러기 위해 강흑성이 가고 있는 건데 그는 아직이다.이대로 끝나고 마는 것인지 미치겠다.
“강흑성의 신호를 포착했다는 통신입니다!”
흥분한 참모의 목소리에 볼프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매머드의 천장이 높긴 하지만 머리로 받을 뻔했다. 다시 자리에 앉아 명령했다.
“항공침투조의 준비상황 다시 체크해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지만 다시 점검이다. 산동반도의 끝, 한반도와의 최단거리에 청룡부대가 대기 중이다. 강흑성이 지인들을 구하고 나면 즉시 날아갈 것이다. 3군단 항공전력의 기동에도 대응 준비를 마쳤다.
‘왕중양, 네놈 모가지만 잘라내면······!’
강흑성이 이뤄낼 결과를 생각하며 볼프는 부드득 이를 갈아 부쳤다. 그런데 그 순간 또 그 보고가 올라왔다. 5군단 기지에 생겨난 토네이도다.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토네이도의 기세와 범위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화면에 뜬 거대한 회오리를 응시하며 볼프는 불안을 삼켰다.
‘저거 아무래도······’
무시할 것이 아니다, 정말로 심상치 않게 변하고 있다.
‘응?’
눈에 힘을 준 볼프는 기이한 것을 봤다.회오리가 치솟아 오른 하늘, 그곳에 붉은 빛이 생겨나고 있다.눈에 더욱 힘을 주는 데 확산한다.저것은 마치 붉은 하늘이 열리는 것 같다. 그 붉은 빛이 회오리를 물들인다.
“뭐야 저게?”
이젠 확연한 불안으로 볼프는 다시 또 일어섰다.
* * *
마기를 향해 강흑성은 무원신풍보를 전력으로 전개했다. 산자락을 타고 흘러오는 마기, 폭신공으로 동귀어진을 시도했던 마인들과 같은 거다. 그들을 향해 가며 멀티폰을 켰다. 반응신호가 잡힌 곳도 저곳이다.
‘손끝 하나라도 건드렸다면!’
흑청빛의 살기를 전신으로 풀어내며 강흑성은 뇌전의 바람이 됐다. 그렇게 당도했다. 마기를 흘려내는 마인들이 공격하는 야전부대, 카이오와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는 백호부대다. 그 접전의 사이로 파고 들어갔다.흑청빛 검이 된 강흑성은 혈령위들을 치고 지나갔다.전투대검으로 마교의 지옥마검을 펼치는 자들, 똑같은 지옥마검으로 지옥을 안겨줬다.아무도 막지 못했다.초부가 휘두르는 낫에 쓸린 풀잎들처럼 휘날렸다.일백이 넘는 숫자의 혈령위들이 허무하게 동강나던 순간, 머리 위에서 공격이 떨어졌다.하늘상어와 공간폭탄의 벼락, 강흑성은 벽뢰수를 뿌렸다.하늘로 솟구쳐 올라간 푸른 장력은 폭탄들을 터트리고도 올라갔다.상공을 날던 샤크들이 터졌다. 벽뢰수의 힘에 뭉개졌다.놀라 날아가는 기체들은 철혼이 쫓아갔다. 새처럼 날아오른 검은 모조리 갈라버렸다.
* * *
영상에 눈을 박은 왕중양은 돌부처가 돼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지 못했다. 지옥사신 강흑성이 만들어 내는 저 접전의 결과가 그렇게 만들었다. 이기어검, 저놈은 그걸 펼치고 있다. 지옥마검까지 펼쳤다.
‘네놈은······!’
부들거리며 나오는 숨을 이 악물어 잡은 왕중양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명령을 내린 대로 대부분의 전력이 저곳으로 이동했다. 7군단의 야전전술단을 쫓으며 퍼붓던 화력을 퍼붓기 위해서다. 그런데 소용없다.
‘저놈에겐, 저런 존재에게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긴 숨을 들이마신 왕중양은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전부 들여라.”
명료한 한마디, 왕중양의 명령을 받은 참모들은 흠칙 경직했다.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왕중양은 벙커로 이동했다. 모든 감정을 다스리고 기다렸다. 명령의 결과로 들어오는 아이들을 돌아보며 붉은 미소를 지었다.
* * *
전율, 그런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충격 속에서 최창수와 전복은 강흑성을 봤다. 피부를 아릿하게 만드는 마기를 뿜어내던 마인들을 도륙했다. 검을 날려 상공의 샤크들을 파괴했다. 몰려드는 3군단을 분쇄중이다.
“미치겠구나······!”
전복의 떨리는 음성에 담긴 감정을 공유하며 최창수는 지휘관을 봤다. 그 역시 충격이 사로잡힌 게 분명하지만 즉각 반응중이다. 흩어져 기동중인 야전전술단과 통신하고 대륙의 5군단과 통신하며 대응하는 거다.
‘이곳으로 몰려드는 3군단 전력의 뒤를 치겠지.’
당연한 순서고 대응이다. 3군단도 그걸 알고 잇다. 그렇기에 유인이라고 할 수도 있을 터다. 그렇지만 강흑성이란 존재가 있기에 성립 안 된다.
“5군단이 치고 들어오겠지?”
희망이 아닌 현실을 이야기하는 전복의 눈이 빛난다. 최창수는 대답 대신 강흑성을 응시했다. 1인 군단, 저 청년은 그렇게 밖에 얘기 못할 존재다.
“3군단 놈들 혼비백산 하는 것 봐라!”
전복은 흥분해 소리쳤다. 말대로 몰려들고 있던 3군단 병력들은 우왕좌왕 혼란과 충격에 빠졌다. 대단위의 야전부대와 교전하는 것도 아니고 단 한사람과의 싸움이다. 그런데 모든 화력과 무기가 소용없는 거다.
‘카이오.’
그녀에게 시선을 돌린 최창수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게틀러 밖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그녀는 엎드려 총을 겨누고 있다. 눈먼 공격이 날아오는 것에 백호부대가 대응하는 것처럼이다. 그 눈이 빛난다.
‘드디어 만났으니.’
저 심정이 어떨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리워하기만 하던 이를 다시 보는 기쁨이다. 숨 쉬는 것조차 떨리고 행복할 것이다. 정말 잘된 일이다.
‘아니, 싸움을 끝낸 후에.’
현실로 의식을 돌린 최창수는 3군단 군인들을 향해 빔소총을 발사했다.
* * *
상공으로 몰려든, 그러나 거리를 벌리고 있는 모든 비행체들을 인지하며 강흑성은 움직임을 멈췄다. 철혼을 가슴 앞에 모으고 눈을 감았다. 갑작스러운 그 행동에 3군단 병력들이 눈을 좁힐 때 의지를 발산했다.
‘무원의 의지로. 철강의 힘으로.’
강흑성으로부터 흑청빛 철강의 힘이 폭발해 나갔다.정확히 철혼으로부터다.수백, 수천의 검이 된 그 의지가 하늘과 땅을 누볐다.하늘의 비행체들을 가르고 지상의 전차와 게틀러들을 뚫었다.그저 한순간이었다.대전 동남방 식장산은 파멸의 빛으로 물들었다.얼마의 시간이 흘러갔을까.산 자들이 감았던 눈을 뜨고 움츠렸던 몸을 폈다.천지가 개벽하는 것 같은 빛과 폭풍이 지나간 후의 결과를 눈에 넣으며 부들거렸다.하늘에서 내리는 불비, 비행체들의 파편을 피해 산 자들은 아우성쳤다. 3군단의 군인들, 마공에 물든 그들이지만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혔다. 등 돌려 도망치는 그들이 밟는 것은 죽은 동료들, 파괴된 전차들이다.강흑성은 검을 내렸다.살아 도망치는 자들을 바라보다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카이오, 자신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려내는 여인, 고갤 끄덕인다.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걸 안다는, 그걸 하고 오라는 인사다.
“갔다 오겠소.”
카이오에게 그 말 한마디를 전한 강흑성은 삼백이에게 말했다.
“부탁한다.”
카이오 뒤에서 붉은빛의 눈길만 던지던 삼백이는 손을 들었다. 잘 알았으니까 다녀오라는, 어제 집나갔다 들어왔지만 다시 일보러 나가는 형제에게 하듯이다.강흑성은 몸을 돌렸다. 백호부대원들과, 최창수와 전복과 준후의 아이들과 여인들의 시선을 받으며 걸음을 냈다 왕중양, 그의 목을 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