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48. 종말의 시간.
148. 종말의 시간.
“모조리 때려 엎어라!”
매머드의 통합데스크가 부서지지 않을까싶게 볼프는 주먹으로 내리치며 소리쳤다. 여태 입 안에만 물고 있던 명령이다. 이제 한반도로 넘어가 3군단을 타격하는 군사작전, 강흑성의 뒤를 이은 마무리를 하는 거다.
“마공에 물든 놈들이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거듭 소리치며 볼프는 으르르 어깨를 떨었다. 심중에 든 흥분과 분노와 희열, 모든 감정을 소름으로 털어냈다. 드디어 건곤일척의 승부, 그리샴의 복수를 할 시간이다. 그 일을 직접 하고 싶지만 강흑성의 몫이다.
‘오래 끌면 안 돼.’
현실을 곱씹으며 볼프는 레이더와 현장 영상들을 응시했다. 산동반도에 대기 중이던 항공전력이 비상하는 광경, 서해바다를 건너가는 고속정부대의 모습이다. 그러나 놈들도 마찬가지, 해남도에서 전함들이 오고 있다.
‘3군단 전함들이 전력을 펼치기 전에 왕중양을 해결해야 해.’
그래야 한다. 그래야만 피해를 최소화하고 전쟁을 마무리 하는 거다. 머리 잃은 뱀이 된 전함들이 혼란에 빠졌다가 각자도생으로 다른 선택들을 할 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을 때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겨주는 거다.
“혼란과 의구심은 이미 시작된 터.”
한반도의 남해로 접근 중인 3군단 전함들도 상황을 파악했을 터다. 대전을 점령한 저희 사령관의 정예부대가 개 박살 나는 모습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왕중양마저 강흑성에게 죽는 걸 본다면 끝나는 거다.
‘마공에 취해 하늘 높은 줄 모르던 것들.’
그들에게 강흑성이란 존재는 날벼락이다. 강흑성은 유성대협의 후인이다. 그런 사내와 대적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죽기 싫으면 달아나는 거다.
“허.”
자신도 모르게 볼프는 허탈한 실소를 흘려냈다.강흑성이란 존재 하나로 흘러가는 현재 상황, 허황되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어서다.상식과 이성으로 판단하면 거짓이다.그런데 현실이고 진실이다.그는 불가해다.
“다음은 화성.”
미간에 칼날 같은 선을 그린 볼프는 화성을 생각하며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정말로 무섭고 두려운 적은 화성인 것이다.그들과의 전쟁이 예비 되어 있다.그 싸움을 이기기 위해서 현재의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한다.
‘백두파의 경운이 정말로 문주의 아들이라면······’
꿈틀거리는 미간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볼프는 내막을 더듬었다. 더 이상의 자세한 내용을 알 길 없는 내막이다. 경운이 문주의 사생아라면 그들로 인한 문제는 닥쳐 올 것이다. 그러나 그건 진정 지엽적인 문제다.
‘총통.’
그가 이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화성의 전력을 끌고 와서 짓밟으려 할지, 아니면 유희를 더 즐길 것인지······’
총통 자신을 이용하고 있는 치안총국과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있다. 드러나진 않았지만 서로 알고 있는 싸움, 화성에선 그 전쟁이 진행 중이다.
“어떠하든 닥친 일부터 하나씩 해결하는 게 답이겠지.”
한반도로 출격하는 부하들을 영상으로 보며 볼프는 강흑성의 승리를 기원했다. 그런데 역시 그 화면 영상이 눈에 거슬린다. 붉은 토네이도다.
‘기세가 잦아들고 있긴 하지만······’
5군단 기지가 있던 곳을 차지한 붉은 회오리, 한없이 커져 몽골초원을 덮을 것 같던 기세는 이제 없다. 오히려 작아지고 있다. 그런데 그게 소멸로 가는 게 아니라 단단하게 영그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찝찝하다.
‘저건 대체······’
화면을 응시하며 볼프는 곤혹을 삼켰다.
* * *
“게틀러 안으로!”
백호부대 지휘관의 격한 외침을 따라 일행은 게틀러에 탑승했다. 강흑성에게 당해 흩어져 기동중인 3군단 지상부대와 항공부대가 공격당하고 있다. 대륙에서 날아온 5군단전력이다. 피격된 기체들이 추락중이다.
“꺄악!”“엄마야!”
놀란 아이들의 비명소리, 게틀러 옆에 추착한 기체의 폭발 때문이다. 피격 당할까봐 게틀러를 나가 엄폐해 있던 상황과는 또 다른 위험, 그러나 이번은 적들이 당하는 거다. 여인들은 아이들을 안고 달래며 설명한다.
“이제 끝장내기지?”
전복의 눈에 든 희열을 응시하며 최창수는 고갤 강하게 끄덕였다.
“그래, 끝장내기야.”
강흑성이 왕중양을 찾아갔다, 그에 맞춰 대기 중이던 5군단 전력이 들이닥쳤다. 전투의지가 꺾인 3군단은 이제 끝장이다. 피날레가 곧 올 거다.
‘강흑성, 부탁한다······!’‘지옥사신이 누군지 처절하게 알려줘라!’
최창수와 전복의 심중 외침이 울리는 가운데 백호부대 게틀러들은 무섭게 기동했다.
* * *
3군단 기지 정문을 응시하며 강흑성은 걸음을 멈췄다. 눈부신 조명이 빔을 발사하듯이 꽂혀들고 있다. 그 빛 너머의 군인들, 마인들이 보인다.
“무기를 버리고 물러서는 자는 산다.”
나지막하지만 사위로 퍼져나가는 목소리.강흑성은 최후통첩을 던지고 걸음을 다시 냈다. 그 순간 공격이 시작됐다.중화기와 개인화기를 비롯한 모든 화력이 터져 나왔다.철혼으로서 그 에너지를 가르며 나아갔다.흑청빛 흐름이 된 강흑성은 길을 열었다.마인이 된 3군단 군인들의 모든 화력의 에너지를 가르고 흘러나갔다.하늘과 땅, 모든 것이 흩어졌다.
* * *
“오너라.”
혈기가 팽창하는 음성을 뱉은 왕중양은 영상 속 강흑성을 보며 웃었다. 벙커 안에 널린 아이들의 무수한 시신 속에서 절대마력을 만끽하면서다. 흡성대법을 통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경지마저도 깨고 나갔다.
“강흑성, 네 덕분이다. 이제 진정한 마교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마.”
지옥의 미소를 흘려내며 왕중양은 소리 없이 웃었다.
* * *
화성에서 온 메시지를 확인한 종리운은 코웃음을 흘려냈다.
“아직도 내가 종으로 보이는 모양이구나.”
통합데스크를 가볍게 터치해 전원을 꺼버린 종리운은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새로운 화성연구소, 거대한 지하광장을 한눈에 조망하며 웃었다.
“나는 왕이 될 것이야.”
한 없이 기꺼운 미소를 풀어낸 종리운은 하나하나 눈에 넣었다. 자신이 심혈을 기울인 역작, 이종들을 각인하듯 응시했다. 지난날의 노고가 새삼스레 떠올라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결과를 얻었기에 눈을 뜬다.
‘영생 불사.’
그것은 꿈이 아니다. 이종의 연구와 마교의 혼천무상대법을 통해 가능하다. 거기에 흡성대법까지 얹는 다면 더할 나위없다. 그러나 그 마공을 가진 왕중양은 지금 전쟁 중이다. 과연 놈이 살지 죽을지 모르겠다.
‘지옥사신 강흑성.’
유성대협의 후인이라는 놈, 그놈이 왕중양을 죽일 것이다. 그 결과를 확신한다. 그러나 그놈이 종리운 자신을 죽이진 못한다. 그건 불가능하다.
“난 이미 혼천무상대법을 완성했다.”
진득한 미소를 흘려낸 종리운은 시선을 돌렸다.
“넌 네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은 한 것이다. 그래도 고맙구나.”
종리운의 치사를 받는 자, 캡슐 안에든 묘진위는 역할을 다했다. 그래서 쥐어짜버린 걸레 같은 몰골이다. 이제 곧 마지막 숨도 끊어질 것이다.
“내가 원하는 젊고 강한 육신은 얼마든지 있지.”
그렇기에 강흑성이 찾아온다고 해도, 그에게 죽음을 맞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아니 애초에 그럴 일이 없다. 강흑성은 화성에게 죽을 것이다.
“이 전쟁 후엔 그 전쟁이 기다리고 있단다.”
강흑성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다정히 말한 종리운은 레이더로 시선을 고정했다.
‘저것은 대체······’
대륙 북부 몽골초원에 생겨난 에너지다. 5군단 기지가 있던 자리다.그곳에 기이한 에너지가 생겨났다. 확산하다 응축중이다.저것이 뇌리를 잡아끈다.뭐라고 해야 할지 모를 예감, 운명 같은 이끌림이 불붙고 있다.
“넌 뭐냐······”
중얼거림을 삼키는 종리운의 눈은 칼날처럼 빛을 냈다.
* * *
철강지기로 갈라버린 벙커를 향해 강흑성은 다가갔다. 쪼개진 강철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그 걸음 뒤로 폐허가 된 기지의 화염이 거세다.
“어서 오너라.”
환영의 인사, 목소리의 주인 왕중양을 보며 강흑성은 멈춰 섰다. 군복을 느릿하게 벗는 왕중양, 그의 눈에 든 가공할 혈기와 마기를 확인했다.
“아이들을 제물로 마귀가 됐구나,”
감정을 알 길 없는 강흑성의 목소리에 왕중양은 반응했다.
“마왕이다. 나는 마왕이 된 것이다.”
나신이 된 왕중양의 몸은 기이한 소리를 내며 변하기 시작했다. 비대함이 사라지고 강철 같은 근육이 몸을 덮었다. 체구는 머리 하나가 커졌다.
“데바족의 뿔이라도 잘라 달지 그러냐?”
이어 나온 강흑성의 무심한 조룡, 왕중양은 분노하지 않았다. 아니 드러내지 않고 눈동자의 혈기로서만 반응했다. 그렇게 걸음을 내며 웃는다.
“진정한 힘이 뭔지, 죽음으로 알려주마!”
소리치는 웃음으로 걸음을 내는 왕중양은 지옥의 중심에서 타오르는 피의 화염이 됐다. 벙커의 벽과 내딛는 바닥과 접촉하는 대기까지, 주변의 모든 것들을 소멸하는 불덩이다. 그 힘이 빛의 속도로 강흑성을 쳤다.같은 순간, 강흑성은 철혼을 가슴 앞에 세웠다.닥쳐오는 파멸의 에너지를 응시하며 심중의 검과 손에 잡은 검을 하나로 만들었다.무원 진격.위에서 아래로 갈라 내렸다.그저 베기다.수직의 그 가름이 베었다.
* * *
화면을 가득 채운 혈기의 확산, 아니 폭발에 볼프는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강흑성이 들어간 벙커로부터 퍼져 나온 에너지다. 저 안에 왕중양이 있었다. 그들이 격돌한 결과다. 누가 이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더 가까이 접근해!”
현장에서 영상을 전송하는 기체를 향한 외침, 볼프는 자신의 실태를 깨달으며 흥분을 다스렸다. 어떠하든 지금 저곳은 치열한 접전 중에 있다.
‘제발······!’
기원을 품고 볼프는 화면을 응시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벙커, 그 자리마저도 소멸해 버린 공간이다. 안개처럼 퍼진 먼지 속에서 뭔가 보인다.
‘저······’
눈에 힘을 주던 볼프는 순간 얼어붙었다.걸음을 옮기는 존재가 누군지 알았다.강흑성, 지옥사신, 바로 그다. 왕중양을 죽이고 걸어 나온다.
“해냈구나······! 으하, 으하하하!”
볼프의 웃음소리에 이어 5군단 군인들의 함성이 대륙을 울렸다.
* * *
“감사합니다······!”
두 손을 모아 잡고 감사기도를 하는 카이오,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의 뜨거움을 최창수와 전복도 느끼고 있다. 여인들과 아이들의 곁에서 연신 두 팔을 들어 올리고 있는 삼백이의 기쁨, 모두의 것이다.
“이겼어!”
뜨거운 숨을 토해낸 전복은 준후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최창수는 혈기가 피어오른 곳을 응시했다. 강흑성이 왕중양을 제거한 곳, 7군단이 있던 자리다. 3군단 병력들은 이제 도망치기 바쁘다.
‘장하다, 아니 눈물겹게 고맙다.’
강흑성에게 감사인사를 마음으로 전한 최창수는 전복과 눈을 맞췄다. 그 순간 시선을 맞춘 전복은 고갤 끄덕였다. 진짜 전쟁은 이제 부터라고.
‘화성.’‘그래.’
둘이 시선을 주고받는 주변에선 승리한 자들의 환호가 천지를 흔들었다.
* * *
흑호가 포효를 터트리고 있다. 그래서 놀란 영희가 어쩔 줄 몰라하고 철수는 당황했다. 그런데 흑호의 그 행동이 왜인지 바로 알게 됐다. 5군단과 연결된 통신기를 통해 들어온 영상과 내용, 강흑성이 승리한 것이다.
“이겼다!”“잔치를 벌이자!”
박현이 소리치고 무슬란은 덩실덩실 춤을 췄다. 그 꼴을 본 박준이 걷어차며 타박했지만 기쁨은 퍼져나갔다. 모두가 웃으며 잔치준비를 했다.그 순간에도 몽골초원의 붉은 회오리는 휘돌았다. 숨죽인 빛을 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