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49화 (150/172)

혹성강호. 149. 팔문금벽(八門金壁).

149. 팔문금벽(八門金壁).

분노와 충격으로 떨리는 숨결을 종리운은 가까스로 다스렸다. 남이당하는 것을 보는 것과 직접 당하는 차이, 지금의 심정이다. 강흑성이 들이닥쳐 그동안 양성한 이종자산들을 진흙인형처럼 부수고 있는 현실이다.

‘강흑성······!’

부들거리는 분노를 긴 호흡으로 풀어낸 종리운은 레이더로 시선을 돌렸다. 몽골초원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던지고 있는 것, 저것의 부름을 더는 거부할 수 없다. 혼이 반응하는 이 부름을 좇을 때다. 그것이 운명이다.

“팔불(八佛)은 준비해라!”

결연하게 명령을 터트린 종리운은 마지막 시선을 그에게 던졌다.묘진위.캡술 안에서 마지막 숨을 흘려내고 있는 저 자에게서 마지막 퍼즐을 뽑아냈었다. 의식과 무의식을 쥐어짜낸 결과, 그 덕에 현재를 이뤘다.

“예상을 넘어 갔구나, 사는 게 원래 그렇지.”

가슴 속의 심회를 종리운은 묘진위에게 던졌다.정말로 사는 게 그렇다.모든 것을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게 맞도록 설계했다고 해도 틀어짐이 생긴다.계획과 예측 범위 밖의 것, 강흑성이란 존재와 같은 것이다.

“사는 게 그러니 장단을 맞추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야.”

흐릿한 미소로 종리운은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새삼 사는 것이란 의미를 곱씹으면서다.육신이란 껍데기를 벗어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마음만 먹으면 현재 육신을 버리고 더 젊고 강한 육신으로 살 수 있다.

‘영생불사.’

그 의미를 되새기며 종리운은 소름을 삼켰다.그 순간 폭음과 진동이 덮쳤다.강흑성의 공격 뒤로 닥쳐온 5군단의 폭격이다.이젠 떠날 때다.

“팔문금벽을 열어라!”

격한 감정으로 터트린 종리운의 명령을 팔불이 이행했다.지하광장의 중심에 세운 여덟 개의 돌기둥에 에너지를 주입했다.거대한 지석묘와 같은 석주들, 혈광을 발한다, 표면에 새긴 패천개벽신공의 구결들이다.거대한 진동과 공명.여덟 개의 석주들이 만들어내는 현상이 지하광장을 덮었다.눈을 멀게 할 혈금광이 가득 찼다.그 속에 주문이 퍼진다.유부의 저주와도 같은, 이세상의 그림자로 붙은 어느 곳인가의 숨결이다.

‘드디어!’

희열의 소름 속에서 종리운은 걸음을 냈다.혈금광과 진동의 파도를 풀어내고 있는 팔문금벽을 향해서다.저것을 이루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마교의 흔적을 이잡듯이 찾아다녔다.그 노력 끝에 묘진위를 얻은 거다.이 결과는 어느 하나만으로는 되지 않을 일이었다.피땀의 노력으로 거둬들인 모든 것들이 퍼즐처럼 들어맞아 이룩한 결과다.묘진위도 그 중 하나다.그러니 자랑스럽다, 종리운 자신의 위대함이 만든 결실인 거다.

‘정해진 일인 거야,’

이제 가야 할 곳, 닥칠 일을 예감하며 종리운은 걸음을 들였다. 종소리처럼 퍼져 나오는 팔문금벽의 파동을 맞았다. 그 순간 느꼈다. 아니 보인다.좌표를 맞춰놓은 곳, 몽골초원의 에너지다. 어서 오라고 웃고 있다.

‘아아.’

한없는 벅참 속에서 종리운은 나아갔다.

* * *

“저게······!”

붉은 토네이도 영상을 응시하며 볼프는 눈가를 떨었다. 엄습하는 불안을 떨쳐내려고 해보지만 잘 되지 않는다. 승리를 쥐자마자 닥친 불안이다.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어.’

확신을 뜨겁게 삼킨 볼프는 현재 상황을 점검했다. 데빌그라운드 안의 화성연구소 폭격이다. 저기 숨은 놈들의 근거지를 마침내 찾았다. 투항한 왕중양의 참모로부터 취한 정보, 혈령위들이 찾고 있다던 곳이다.

‘강흑성이 저놈들까지 결국 찾긴 했는데······’

마공고수들로 이뤄진 3군단의 정예병력, 왕중양의 친위부대인 혈령위 마지막 부대를 강흑성이 쫓아갔다. 그 걸음을 내쳐 꼬리를 잡은 거다.그래서 지금 폭격중이다. 곧 끝장을 낼 것이다. 그런데 불안이 커진다.

‘기지가 있던 저리에 생겨난 저 토네이도는, 아니 붉은 에너지는······’

볼프는 순간 흠칫했다. 토네이도가 혈광을 발산해서다. 응축하고 있던 에너지를 방출하듯이, 아니 심장이 벌떡이듯이 붉은 빛을 확 터트렸다.

‘뭐!’

경직한 볼프에게 데빌그라운드, 화성연구소 폭격현장 보고가 들어왔다.

“강흑성이 진입했습니다!”

* * *

파편들이 떨어져 내리는 지하광장으로 강흑성은 걸음을 들였다. 개떼처럼 달려들던 이종들은 이제 없다. 철혼으로 갈라버려서기도 하지만 도망쳤다. 데빌그라운드 안으로 달아난 그들이 아니라 머리통을 잘라야 한다.

‘저건?’

혈금광을 발사하고 있는 여덟 개의 석주, 강흑성은 눈썹을 세웠다. 긴장한 채 뒤따르고 있는 5군단 청룡부대원들의 놀람과 긴장이 느껴진다.

‘마공진법이구나.’

여덟 개의 석주가 그러함을 강흑성은 깨달았다.마교의 비전이다.혈금광을 토해는 표면의 글자들로 알겠다.저것은 패천개벽신공, 그것이다.

‘관문을 열고 다른 곳으로 갔어.’

그러함을 깨달으며 강흑성은 석주로 다가갔다. 그 걸음을 인지한 것인지 석주들은 반응한다. 살아 있는 존재의 심장고동처럼, 종을 치듯이 혈금광의 파동이 강해진다. 육신과 영혼을 치는 그 감각 속에서 확인했다.

‘팔문금벽.’

석주에 각인된 진법의 이름이다. 패천개벽신공 안에 숨겨져 있던 천지간의 비밀, 이제 인지했다. 화셩연구소의 수괴는 이것을 완성해 떠나갔다.

“여기 산자가 있습니다!”

청룡부대원의 외침, 강흑성은 바로 반응해 몸을 돌렸다. 이형환위처럼 움직였다. 캡술 안의 존재, 짜버린 탕약찌꺼기 같은 이가 누군지 알았다.

‘묘진위.’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상태, 묘진위는 무엇 때문인지 죽음의 끝에서 버티고 있는 거다. 그러나 이제 더는 안 된다. 혼이 떠나가고 있다.

“편하게 가십시오.”

강흑성은 묘진위의 머리에 손을 댔다. 그렇게 깨달았다. 묘진위가 종리운에게 잡혀 당한 일, 그자가 사는 동안 해온 일, 그의 염원을 알았다.마침내 묘진위가 떠났다. 손을 떼고 물러선 강흑성은 다시 돌아섰다.

* * *

현장 지휘관의 보고를 통해 볼프는 상황을 인지했다.마교의 진법이다.팔문금벽이란 이름이라고 강흑성이 말했다고 한다.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르지만 토네이도 에너지와 관련이 있다. 아니면 저럴 이유가 없다.

‘저 빌어먹을 게······!’

심장의 벌떡임처럼 혈기를 방출하던 저것은 이전처럼 커졌다. 강흑성이 정체를 확인하기 전부터 그러더니, 강흑성이 사라지고 나서 더 저런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건 강흑성이 화성연구소를 떠났다는 거다. 먼저 떠나버린 수괴를 쫓아서다. 그놈의 이름이 종리운이란 것이 처음 알았다.

‘팔문금벽, 저걸 통해서 가능하단 말이지?’

황당하지만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종리운이 그랬고 강흑성이 그랬다.팔문금벽은 마교의 비전대법, 일종의 워프게이트다. 그게 이뤄진 거다.

‘출구가 바로 저기······!’

붉은 하늘을 열고 있는 토네이도, 저 안에 그들이 있다.

* * *

데바족, 퓨리엔트족, 타이그란족, 라이피언족, 베어족, 파이곤족, 캐리언족, 그리고 인간이다. 종리운이 팔불이라고 부른 자들이 벌려서 있다. 저들과 종리운, 강흑성 자신이 딛고 선 이곳은 어딘지 모를 기이한 공간이다.

“나는 이 안에서 신이 됐다.”

찬연한 혈기의 미소를 풀어내는 자, 종리운은 주변을 돌아보며 뒷말을 냈다.

“시공의 개념이 없는 곳, 이 안에 들어차 있던 에너지를 받아 들였지.”

강흑성은 고개를 끄덕였다.안다, 자신이 죽인 아우리엘의 에너지다. 아니 본래 자신이 품고 있던 것이다.마검으로부터, 지하수로의 원령들로부터다.그 힘이 이렇게 변했다.종국엔 마주 선 저자, 종리운에게 갔다.

“그게 뭔지 너는 모른다.”

무감정하게 목소리를 낸 강흑성은 철혼을 세웠다.

“아무려나.”

혈광의 미소로 반응한 종리운은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죽여라.”

팔불이 움직였다. 시공이 없는 속을 나아왔다. 그들이 풀어내는 미증유의 공격을 강흑성은 무심히 응시했다. 그저 검을 앞으로 뻗어내기만 했다.무원일격.철혼의 찌름은 모든 것을 관통했다.데바족의 심장을, 퓨리엔트족의 배를, 라이피언족의 미간을, 팔불의 형상과 존재를 관통했다.경악으로 눈을 부릅뜬 자, 종리운이 움직였다.제 의지 대로 모든 것을 움직였다.산이 생겨나 덮쳤고 바다가 생겨나 삼켰다.우주의 에너지가 모인 용암이 들끓었다.그 속을 무연히 나가며 강흑성은 손을 냈다.벽뢰수.암흑의 산과 혈기의 바다를 지난 그 손이 종리운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 * *

한 달이 지났다.붉은 토네이도는 사라졌다. 그것이 열던 붉은 하늘도 흩어졌다.그러나 그 자리에 기이한 공간이 생겨났다.여덟 개의 석주, 팔문금벽이다.한반도 데빌그라운드에, 화셩연구소에 있던 것이 서 있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볼프는 그녀를 봤다.카이오.강흑성의 여인, 저렇게 기도를 드리고 있다. 그녀의 곁에는 다른 이들이 있다.최창수와 전복과 삼백이란 로봇과 아이들과 여인들이다.그리고 샹그릴라 일행도 있다.모두가 한마음으로 기원하고 있다. 강흑성이 돌아오기를,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중이다. 저들처럼 볼프 자신도 이곳에 있은 지 한 달이다.

‘강흑성, 어떻게 된 거냐.’

여덟 개의 기둥을 보며 한숨을 던진 볼프는 화성을 떠올렸다.

‘내전이라니.’

어처구니없지만 언제라도 가능했던 일이 생겨났다. 총통과 치안총국의 전쟁이다. 그곳에서 벌어진 내전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진 못한다. 그렇지만 이곳 입장에선 다행한 일이다. 지구로 올 전화가 거기서 터진 거다.

‘강흑성, 자네만 돌아오면 되는 거야······!’

간절한 바람을 숨으로 토해내던 볼프는 누군가의 외침을 듣고 시선을 들었다.

“기둥이 빛을 내요!”

준후란 아이다. 놀란 아이의 말처럼 석주들이 혈금광을 토하고 있다.

‘팔문금벽이!’

혈금광은 강렬한 파동으로 퍼져 나온다.그때처럼이다.살아 있는 짐승의 심장이 벌떡이는 것처럼 확산한다. 너무 강렬해서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으!”

손으로 눈을 가리고 뒷걸음질 한 볼프는 팔을 내렸다. 혈금광이 사라져서다. 눈동자를 터트릴 것 같던 기세가 사라졌지만 초점은 아직이다.볼프는 눈물이 나오는 눈을 껌벅였다. 이내 시야를 회복했다. 그렇게 얼어붙었다.

‘강흑성!’

그다, 돌아왔다.무심한 얼굴로 걸어 나온다.두 팔을 벌린다.그 팔에 달려가 안기는 여인은 카이오다.기다리던 이들 모두가 함성을 지른다.

“하, 하하, 하하하하.”

볼프는 웃었다. 하늘은 파랗고 초원의 바람은 시원했다.

* * *

“후.”

가벼운 숨으로 피로를 밀어낸 철무진은 현황을 다시 점검했다.적호문이 장악했던 도시들을 탈환하고 있다. 놈들은 서쪽으로 패주중이다.이런 결과가 전부 강흑성과 5군단과 협력한 것이지만, 정말 열심히 싸웠다.

‘3군단의 패주세력과 결착했단 말이지?’

적호문과 3군단의 잔재세력은 손을 잡았다. 한반도로 이동하다 배를 돌린 전함의 병력이다. 그들은 애초부터 관계가 있었다. 적호문이 사용한 군무기들이 증거다. 물론 정확한 내막은 아직도 모르지만 이젠 상관없다.

‘모조리 때려잡아주마.’

계획을 점검하던 철무진은 뜻밖의 보고를 들었다. 긴장한 채 온 총관 마테오의 이야기, 팔문금벽이 작동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사람들이 실종했다는 건데, 그중엔 강흑성의 지인 준후란 아이도 있다는 거다.

‘무슨!’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강흑성과 5군단은 화성의 공격에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퓨리엔트혁명군과도 협력중인데, 이건 무슨 일인가.철무진의 무거운 숨소리 뒤로, 창을 들어온 바람은 가파른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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