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50. 최준후.
150. 최준후.
나는 경찰이다.새롭게 시로 승격된 신명시의 중앙경찰서 강력계 소속이다.서울 바로 머리 위로 위치한 신명시는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 곳이다.이곳에서 형사질을 한다는 건 피곤한 동시에 짜릿한 일이다.그런데 나는 엄밀히 이곳 사람이 아니다.신명시 출신도 아니고 서울은 고향이 아니며 대한민국은 낯선 곳이다.이 세상 자체가 그렇다.왜냐하면 나는 다른 세상에서 왔기 때문이다.웃기는 개소리 같지만 정말이다.
“으, 목말라.”
고통스러운 얼굴로 눈을 뜬 최준후는 손을 뻗어 더듬었다. 침대 옆 협탁 위에 물병이 있었다. 잔에 따를 새 없이 입에 박고 벌컥대며 마셨다.
“후, 살 거 같네.”
알콜로 엉망이 된 몸에 들어간 물은 감로수 같다. 속이 뻥 뚫리며 화기가 가라앉는다. 그렇지만 망치로 맞은 것 같은 두통은 여전하다. 아무래도 빈속을 채워줘야 할 것 같다. 그건 역시 선지해장국만한 게 없다.
“헤, 갔냐?”
침대 옆을 돌아본 최준후는 밤을 불태운 자취를 더듬었다. 신명시 최고의 유흥가 새빛거리의 랜드마크 ‘뭉치’ 에서 만나 밤을 보낸 여자는 갔다. 정확하게는 뭉치의 지배인과 마담이 신입이라면서 인사시킨 거다.
“우리가 아침을 같이 먹긴 그렇지.”
사라진 여자의 자취를 보고 웃은 최준후는 샤워실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로 몸을 씻고 옷을 입은 후 모텔을 나섰다. 차를 두고 걸었다. 모텔거리를 돌아가면 나오는 해장국집으로 향했다. 구수한 냄새가 끌어당긴다.
“사장님, 선지해장국 특으로 하나요.”
자리를 잡고 앉으며 주문한 최준후는 신문을 펼쳤다. 오늘도 코로나 기사와 대통령선거 기사가 전부다. 그 속에 러시아가 벌인 전쟁 기사가 있다.
“야이 개놈새꺄!”
갑자기 터진 욕설에 최준후는 눈썹을 확 세웠다. 안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장년인이 벌떡 일어서며 맞은편에 앉은 장년인의 멱살을 잡았다.
“나라 망치려고 작정했냐! 너 같은 새끼들이 있어서 나라가 이모양인거야!”
멱살 잡힌 장년인은 불콰한 얼굴로 마주 소리친다.
“너야 말로 개소리 마라! 누가 나라를 망쳐! 그건 네놈덜이지!”
본격적인 드잡이질로 나선 두 사람, 테이블이 엎어졌다. 그 순간 주방에서 사장님이 나왔다. 소매 걷어 부친 두 팔로 잡은 건 커다란 물대야다.
“나가!”
여사장님이 뿌린 대야의 찬물이 두 사람을 강타했다. 아무리 춘삼월에 접어들었다지만 아침에 맞는 찬물이란 당연한 반응을 일으켰다. 으헉 소릴 내며 두 장년인은 떨어졌다. 그런 두 사람을 여사장은 내쫓는다.
“나가! 다신 우리 집에서 술 처먹을 생각하지 마!”
멱살잡이 하던 두 장년인은 가게 밖으로 쫓겨났다.삽시간에 일어났다가 삽시간에 종결된 일, 여사장은 다른 테이블 손님들에게 웃으며 사과한다.
“죄송해요 호호홍. 야유 저 사람들이 원래 저렇거든요, 친구사이에요.”
그렇다는 거다, 저런 다고 칼부림 같은 걸 하고 그러진 않는 다는 거다. 육십 줄이 넘은 게 확실한 해장국집 여사장도 저들과 친분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러니 저렇게 쫓아내는 거고 저들도 그냥 쫓겨나는 거다.
“으이그 그놈의 선거가 뭐라고.”
주방으로 돌아가며 짜증을 뱉는 여사장의 목소리로 최준후는 짐작했다. 임박한 대통령 선거 때문이다. 지지하는 후보가 달라서다. 이 아침부터 해장국집에서 해장술을 먹으며 나눈 대화가 저렇게 멱살잡이가 됐다.
“훗.”
허탈한 실소를 최준후는 흘려냈다. 동료들이 기분 나쁘다고 지적하는 특유의 냉소다. 언제부터 이런 버릇을 갖게 된 건지 모른다. 아마도 이 세상으로 넘어와 적응하던 때부터가 맞을 거다.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다들 잘 있는 건지.’
원래 살던 세상을 떠올리니 가슴이 복잡하고 무거워진다.그곳은 버려진 지구다.다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들 지내는지 모르겠다.
‘괴수들이 들끓는 세상.’
하루하루의 안전을 생각해야 하고 매일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세상.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지만.’
최준후 자신이 살던 세상은 그런 곳이다.전혀 다른 세상, 이곳은 안전하다. 먹을 것 걱정도 없다.그렇지만 사람들이 사는 세상, 근본은 같다.여기서도 누군가는 죽고 굶고 있으며 괴수보다 흉악한 인간들이 있다.
‘잡긴 잡았는데······’
신문을 내려놓고 최준후는 놈을 생각했다. 연쇄강도에서 연쇄살인범으로 발전한 놈, 조준구를 잡았다. 놈이 살해한 피해자 중에 뭉치에서 일하던 여성이 셋이나 된다. 그걸 해결한 감사인사를 어젯밤에 받은 거다.
‘조준구 그 새끼 뭔가 찝찝해.’
혼자 사는 젊은 여성을 일곱이나 살해한 살인마, 신명시는 물론 전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놈은 피해자들의 인체 일부를 먹었다. 그건 놈이 카니발리즘같은 것에 경도돼서가 아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그게 뭔지······’
미간을 꿈틀거리던 최준후는 때마침 나온 선지해장국에 정신을 뺏겼다. 냄새를 음미한 후 수저를 들고 정신없이 먹어댔다. 아침은 그렇게 갔다.
* * *
“아, 마이 스위트 홈.”
휑한 거실에 발을 들일 때마다 해보는 소리지만 역시 허무하다. 누군가 있어 피곤한 퇴근을 행복한 웃음으로 바꿔주면 좋겠지만 그냥 꿈이다.
‘돌아가야 해.’
베란다창밖을 응시하며 최준후는 결심을 되새겼다. 원래 살던 세상으로, 그리운 이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아니 결심은 이렇게 날마다 조금씩 깎여나가고 있다. 진실은, 돌아갈 길이 없다는 거다.
‘팔문금벽.’
그것이 이 세상으로 보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모른다.
‘여기서 살다 죽는 게 내 운명인가.’
어둠이 깔린 아파트를 내다보던 최준후는 피식 실소를 흘렸다. 그게 정해진 운명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발바둥쳐도 다른 방법이 없는 현실이다.
“후, 모르겠다.”
점퍼를 벗은 최준후는 소파위로 던지려다가 안주머니를 뒤졌다.두툼한 현금봉투, 아직 금액을 확인하진 않았다.뭉치에서 준 사례금이다.강력1팀 전부에게 돌아간 돈이지만 최준후 자신에겐 특별히 더 넣어줬다.
“오백이나 넣었네.”
피해여성들이 뭉치에서 일하던 이들이었기에 뭉치는 당연히 주목을 받았고 수사대상이 됐다. 그 와중에 뒤따르는 각종 문제들을 커버해줬다.
‘팀장도 오백 받았겠군.’
현금봉투를 허공으로 던졌다가 받은 최준후는 문득 미간을 좁혔다.
“왜 이름이 뭉치야? 혹시 현금뭉치?”
클럽과 룸살롱을 비롯해 모든 유흥시설이 한 빌딩 안에 밀집해 있는 곳, 뭉치란 이름이 그렇게 해서 현금을 긁어모은 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날 보면 뭐라고들 하실까?”
서른둘의 강력계형사, 그 삶을 그들은 볼 수 없다. 그렇지만 본다면 다르게 말할 것이다. 전복은 아주 잘하고 있다고, 최창수는 바로 서라고.
“바로 서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휘청거리다 쓰러지지 않으려고요.”
현금봉투와 점퍼를 소파에 던진 최준후는 저녁준비를 했다. 피곤하다며 회식을 거부하고 들어온 터, 물을 끓여 컵라면 하나로 저녁을 대신했다.
“어디 오늘 뉴스 좀 보자.”
보나마나 뻔한 거지만 습관처럼 리모컨을 누른 최준후는 소파에 앉았다.
-야스쿠니 신사를 비롯한 일본 내 주요 시설들이 원인모를 공격에 의해 파괴······
컵라면을 후룩거리던 최준후는 동작을 멈췄다.tv를 켜자마자 나온 뉴스전문체널의 보도는 황당한 것이다.뉴스속보라고 붉은 자막이 떠 있다.
‘뭐야?’
입 안에 든 라면을 삼켜 넘기지 못한 채 최준후는 뉴스에 눈을 박았다.
-이 시간 현재 황궁은, 아니 일왕의 거처인 ‘고쿄’는 불타고 있습니다. 오사카성과 히메지성을 비롯한 일본 내 주요 유적지도 폐허가 됐습니다. 야스쿠니 신사는 흔적을 알아 볼길 없이 사라졌는데 원인을 알 길 없는······
컵라면 용기를 거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최준후는 뒤늦게 입 안에 든 것을 씹어 삼켰다. 맛 같은 건 전혀 느끼지 못한 채, 물을 벌컥댔다.
-일본은 현재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가운데 원인 파악과 대응에 나섰으며, 일각에선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인한 공격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외부공격을 받았을 거란 면에선 설득력이 없는 주장으로 치부되고 있으며, 북한도 부인하고······
꿀꺽 소리는 내며 침을 삼킨 최준후는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야스쿠니 신사가 정말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아니 거대한 분화구처럼 된 흔적은 남았다.그 자리에 원래 있어야 할 신사의 모습은 없어졌다.
‘뭐야 이게?’
황당함의 극치 속에서 최준후는 짜릿한 희열도 삼켰다. 야스쿠니 신사,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이를 갈게 만드는 이름이다. 때만 되면 일본 총리를 비롯한 극우정치인들이 참배니 공물헌납이니 하며 자극하는 곳이다.싸그리 불타서 없어졌으면 하는 곳, 정말로 사라졌다. 그런데 저 안에는 조선인 전사자들의 유해도 있다고 들었다. 이만명이 넘는 넋이 합사되어 있다는 거다. 그것마저도 사라진 결과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를 시도하던 사도광산도 파괴됐다는 소식입니다. 이미 등재된 군함도 역시 파괴됐습니다. 현장 영상을 긴급 입수했습니다.
tv에 뜬 영상은 군함도가 사라진 바다다. 원래 존재하던 영상과 사라진 현재를 비교해서 내고 있다. 마치 지우개로 지워버린 것 같은 결과다.
-충격과 혼돈 속의 일본은 현재 전시내각으로 돌입해 긴급······
컵라면이 식어가는 줄 모르고 최준후는 뉴스만 봤다.
* * *
“고마워.”
감사인사를 하는 여자, 윤미령에게 최준후는 툭 반응했다.
“말로만 고맙다지.”
믹스커피를 탄 잔에 티스푼을 넣고 젓던 윤미령은 역시 언제나처럼 받는다.
“꿈만 꾸셔.”
커피 잔을 내주고 돌아 일어선 윤미령, 그녀가 원장책상으로 돌아가 앉는 동안 최준후는 눈길을 떼지 않았다. 저 여자를 정말로 원하는 자문한다.
‘뭐 그냥.’
달라고 줄 여자도 아니지만 최준후 자신도 언제나 말뿐인 걸 윤미령은 안다.
“확 저지를까 생각도 있어.”
갑자기 귀를 파고든 소리에 최준후는 커피를 뿜을 뻔했다.
“서른이라는 젊은 나이가 아깝잖아.”
이어 나온 한숨, 맞는 말이다. 윤미령은 올해 서른이다. 한 미모 한다. 그런데 연애 같은 건 꿈도 못 꾸고 있다. 보육원을 꾸려가는 원장이어서다. 그렇다고 다 연애 못하는 건 아니겠지만, 윤미령의 삶은 그렇다.
“애들 봄옷도 사줘야했는데, 요긴하게 쓸게.”
오백이 든 현금 봉투를 윤미령은 책상서랍에 넣었다. 최준후가 이렇게 내놓는 돈이 어떤 돈인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주저 없이 받아쓴다. 어떤 돈이든 필요한 곳에서 잘 쓰이면 되는 거다. 돈은 늘 절실하다.
“아 빨대 꽂힌 게 확실해.”
뿜을 뻔했던 커피를 삼킨 최준후는 지레 한숨을 쉬었고, 윤미령은 코웃음쳤다.
“누가 나랑 인연 맺으래?”“야, 그게 맺고 싶어서 맺은 인연이냐?”
윤미령은 뭐래냐 하는 얼굴로 펜만 놀리고 있다. 그렇지만 삼년 전 사건을 더듬는다. 보육원을 나가 범죄를 저지른 아이로 인해 맺은 인연이다. 아니 그 이전부터, 오래전부터다, 끊어졌던 연이 다시 이어진 거다.
“애들 자립할 때 확실하게 지원해 주면 그런 일은 없겠지.”
심정을 드러낸 윤미령을 최준후는 힐긋 응시했다.
“맞는 말이다. 열여덟 되면 나가라고 하고, 겨우 오백인가 삼백인가 쥐어주고 뭘 하라는 거야? 뭐, 요새는 원하면 스물 넘어서도 있는다지만.”
“됐고, 안가?”“뭐래? 커피도 아직 다 안마셨잖아? 너무 한 거 아니냐?”
등 밀어도 안 간다는 얼굴을 한 최준후는 리모컨을 잡았다.
“tv켜지 마.”
윤미령의 목소리가 날아오는 순간 최준후는 tv를 켰다.
-일본사태로 인해 동북아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또 다른 사건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통합자유당의 최재원 의원이 살해됐습니다. 자택에서 목이 잘린 채로 발견된 최의원은 천지펀드 사건에 연루된······
최준후는 커피잔을 놓고 경직했다. 윤미령은 펜을 쥔 채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