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51. 이변(異變)들.
151. 이변(異變)들.
“속은 시원한데, 정말 저게 무슨 일이래?”
식당 벽에 걸린 tv를 보는 손창혁의 눈은 정말로 시원해하면서 복잡하다.일본 사태를 보도하는 뉴스에 다들 정신이 없는 상황이지만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일미군조차도 아무런 공격징후를 인지 못했다.
“북한에서 미사일 때린 건 아닌 게 확실하잖아?”
시선을 돌린 손창혁에게 최준후는 대답대신 다른 걸 물었다.
“동생 전셋집은 구했어?”“어? 그거? 음 뭐, 대충 뭐.”
어색한 얼굴로 얼버무리는 손창혁의 한숨을 최준후는 명확히 들었다. 왜 아니랴, 스물여덟 아가씨가 여섯 살 어린 남자 놈과 연애질 하다 결혼한다는 거다. 남자 놈은 여동생이 근무하던 회사의 알바생이었다고 한다.
“멍청한 년이, 그런 짓을 할 거면 돈이라도 좀 모아놨어야지.”
다 먹은 돈가스 접시를 포크로 때리는 손창혁, 편치 않은 화를 최준후는 달랬다.
“스물여덟에 누가 돈을 모아? 요즘에 그럴 수 있는 세상이기는 해?”“후아, 하긴 그렇지.”
거듭 한숨을 내쉰 손창혁은 각진 얼굴에 다시 분노를 드리웠다.
“그래도 그 자식을 생각하면 정말······!”“둘이 잘 살기만 바래라.”
손창혁의 얼굴에 곤두서던 분노는 스르르 주저앉았다.
“그래, 그래야지.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자면, 잘 살아내자면, 저희가 영악하게 굴고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아야지. 나도 해 줄건 다 해줬고.”
전셋집을 얻어줬다. 그동안 손창혁이 형사질 하면서 열심히, 더럽게 모은 돈이다. 부패경찰, 그건 최준후 자신도 마찬가지다. 살아가는 법이다.
‘이 세상에 적응한······’
느닷없는 소회는 손창혁의 이어진 말에 흩어졌다.
“최재원이 말이야? 그거 어떻게 된 거 같아?”
손창혁의 물음이 건너온 순간 tv에선 또 다른 속보가 나왔다.
-미국 우주군사령부가 개입했다는 소식입니다. 이 상황에 대한 추측과 짐작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과학계에선 일본의 공격 원점이 대기권 밖이라는 주장을 내고 있습니다. 공격당할 당시 번개가 친 것 같은 섬광이······
송창혁의 힘준 목소리가 거듭 건너왔다.
“현역 국회의원의 목을 따버렸잖아? 그 인간이 그런 일을 당할 원인이야 차고 넘칠 테지만 말이지, 이번 천지펀드사건 때문인 게 뻔하잖아?”“뻔해?”“아니야? 그 사기질에 당해서 돈 난릴 사람들이 한둘이야? 그건 정형적인 폰지사기지, 그런 수작에 넘어간 인간들도 탐욕 때문인건 분명하지만.”
미간을 찌푸리고 입맛을 다신 손창혁은 다시 입을 열었다.
“뭐, 그나마 없는 사람들이 당한 건 아니어서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겠지만, 그래서 나는 그들 짓인 거 같다 이거지. 당한 쪽에서 보복한 거야.”“킬러라도 고용했다고?”“그거지. 나름 돈 있는 자들이잖아. 당하곤 못살겠지.”
타당한 짐작이다.국회의원이란 신분을 이용해서 사기 친 사건이다.물론 최재원은 자신도 사기피해자일 뿐이라고 주장한다.검찰 고위직 출신의 그는 형식적인 조사만을 받았다.죽지 않았어도 그가 은팔찌 찰 일은 안 생긴다.
“정말 그런 거라면 천지펀드를 운용한 놈들도 전부 목이 잘리겠지.”“맞아, 그놈들, 정우찬대표하고 심대철 고문, 그것들도 위험하다고 봐.”
손창혁의 눈엔 강한 확신이 들었다.천지펀드의 대표 정우찬과 고문 심대철은 수배 중이다.그들이 안 잡히는 방법은 해외로 밀항하는 것뿐이다.때문에 경찰은 눈에 불을 켜고 움직이고 있다. 곧 잡힐 것이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손창혁은 더 말하려고, 최준후는 그만가자고 입술을 움찔거리던 순간이다.
-천지펀드사건의 주범 정우찬과 심대철이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속보입니다. 충격적인 내용은 두 사람도 최재원의원처럼 목이 잘린 채로······
경직한 눈으로 tv를 노려보는 최준후와 손창혁의 폰이 동시에 울어댔다.
* * *
용봉산, 산세가 용과 봉이 어우러진 것처럼 보이는지는 몰라도 공장들은 많다. 신명시가 커지면서 외곽으로 몰려난 업체들이다. 재대로 사업을 운용하는 업체들이 대부분이지만 일부는 범죄조직과 결탁한 업체다.
“창용이파를 공격한 게 한 놈이라던데?”
옅은 긴장을 품은 손창혁의 눈을 최준후는 돌아보지 않았다. 현장을 향해 달려가는 차의 스피드만 삼켰다. 비상을 알리는 경광등을 켜고 달리는 지금은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춘천에서 대전으로 도망치던 그때를.
‘그곳의 춘천과 대전은 이곳의 춘천과 대전이 아니지만.’
피식 냉소를 풀어낸 최준후는 상념을 몰아내고 현실에 집중했다.
“공격한 놈의 신원을 아직 모른다고?”“그렇다는데? 공격한 이유도 불명이고. 하, 이거 대박이잖아? 신창용이 새끼 조폭 똘마니들 데리고 사업가입네 하더니만 제대로 당하는 건가?”“기동대는?”“어, 현장을 포위중이야.”
그렇지만 최준후 네가 끝내야 할 일 아니냐는 손창혁의 뉘앙스.
“이번엔 수고비 좀 따로 더 달라고 해 봐. 험한 일은 늘 최형사 몫이잖아.”
몫, 그래왔다.강력범들의 폭력 현장에 늘 최준후 자신이 투입됐다.태권도와 합기도 유단자인 손창혁이 말하는 근본 없는 무술 실력 때문이다. 물론 그건 전복아저씨로부터 잔소리 들어가면서 배우던 무공이다.
‘보육원에 들어간 후부터 피나게 수련해 온······’
이 세상에 떨어졌을 때 보육원으로 가게 됐다. 신분도 없고 정신도 이상한 것 같은 아이였다. 최준후라는 이름으로 이곳의 신분을 새로 얻었다.
‘돌이켜 보면 전부 꿈같은 일들이야.’
망해버린 지구를 버리고 화성으로 이주한 세상, 지옥 같은 그 지구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있는 곳, 지옥사신 강흑성과 그 전쟁, 전부가 꿈을 꾼 게 아닌가 싶다. 이 세상에서 그런 스토리는 꿈이다.
“다 왔네.”
긴장 품은 손창혁의 목소리에 반응하며 최준후는 속도를 줄였다. 기동대가 포위망을 형성한 공장단지 앞에 차를 세우고 바로 움직였다. 장비는 손창혁이 권총을, 최준후 자신은 진압곤봉이다. 늘 똑같은 패턴이다.
“신창용이가 공장에 있었다고 하던데.”
창용이파 보스, 신창용이 공격자와 한데 있을 확률이 높은 상황이다. 어쩌면 이미 공격당했을 지도 모른다. 황당한 건 이 상황, 공격자의 정체다.
‘혼자서 창용이파 놈들을 공격했단 말이지?’
뜨거운 숨을 내쉬며 전진하던 최준후는 멈췄다, 공장거리 골목어귀에 쓰러진 자, 분명히 창용이파 조직원이다. 어깨부터 가슴까지 갈라졌다.
“헛!”
놀라며 욕을 뱉는 손창혁, 그가 무전으로 알리는 걸 들으며 최준후는 걸음을 다시 냈다. 마치 이곳으로 오라고 알려주듯이 시체들이 이어져 있다. 창용이파 조직원들, 확인한 것만 벌써 일곱구다. 초대형사건이다.
“경특을 투입해야 합니다!”
격앙된 목소리를 폰에 박아 넣는 손창혁을 뒤로 두고 최준후는 목표를 확인했다. 공장거리의 가장 끝에 위치한 공장이다. 뒤로 산자락이 이어졌다. 대형트럭이 들어갈 정도의 공장문이 얼려 있고 한 사내가 있다.
‘너구나.’
공장 안으로 사라진 사내를 향해 최준후는 전력으로 달려갔다.
“어? 최형사!”
손창혁의 놀란 부름을 무시한 최준후는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눈에 들어오는 것은 피바다다.피 냄새를 맡았기에 예상한 부분이긴 하지만 지옥도다.공장 마당에 널린 시체들, 창용이파 조폭들은 모조리 살해됐다.
“사, 살려줘!”
공포에 질린 신창용을 보며 최준후는 멈춰 섰다. 공장 마당 한가운데, 철제 의자에 묶여 있는 신창용은 피투성이다. 거듭 살려 달라 애원한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뭐든지 다하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이번의 호소는 최준후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만든 장본인, 눈동자에 붉은 빛이 가득한 남자에게 향한 거다. 남자는 아주 젊은 자다.
“살려 달라고?”
신창용의 어깨에 손을 얹은 젊은 남자, 눈동자의 혈기가 섬뜩하다.
“우리 형은 왜 안 살려 줬는데?”
공포로 물든 신창용의 얼굴에 의문에 떠올랐다.
“이기훈.”
젊은 사내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이름 하나에 신창용은 얼어붙었다.
“형은 네 돈에 손대지 않았어. 그래, 시키는 일만 하고 딴 생각은 할 줄도 모르는 등신이었지. 그런 형을 네놈들은 쥐새끼라면서 때려 죽였어.”
젊은 사내는 신창용의 앞으로 돌아서더니 자세를 낮추고 눈을 맞췄다.
“그날, 형이 죽어가는 모습, 난 옷장 안에서 봤어.”
신창용의 경직한 눈동자는 흔들렸고 젊은 사내는 슬픈 미소를 피워냈다.
“나도 죽을 까봐 입을 틀어먹으면서······”
신창용은 눈동자를 부들거렸다.
‘그날 거기에······!’
그랬다는 거다, 기훈이란 놈을 죽이던 그날 옥탑방엔 이놈이 있었던 거다. 허름한 비키니 옷장, 그 안에 동생 놈이 숨어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다.
“어떻게······!”
신음처럼 의문을 흘려내는 신창용, 젊은 사내는 다시 몸을 세웠다. 처음처럼 의자 뒤로 돌아갔다. 강한 눈빛을 내고 있는 최준후를 보며 말한다.
“신의 선물을 받았거든.”
뒤늦은 대답을 내며 젊은 사내는 오른 손을 옆으로 냈다. 그 손이 그레이 빛의 칼날로 변했다. 찰나의 변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괴변이다.
“너에게 복수하라는 신의 계시다.”
젊은 사내의 오른 손, 칼로 변한 그것이 신창용의 목을 갈랐다.천천히, 좌에서 우로, 살을 가르고 선혈을 뿌렸다.그 광경을 최준후는 바라봤다.
‘이종!’
머릿속에 울리는 그 단어를, 깨달음에 최준후는 전율했다.이기훈의 동생이라는 젊은 남자의 저 손, 저 변화는 분명히 그것이다.너무도 선명한 기억, 공격당하던 그날 밤을 잊지 못한다.그것이 지금 눈앞에 있다.
‘원대위와 같은······!’
그 밤에 최준후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죽을 운명이었다. 루카스중령과 이종이 돼서 온 원필성 대위, 그가 마지막 이성을 잡고 싸워 줘 살았다.
‘어떻게!’
그 무시무시한 존재, 이종이 여기 있다.이건 꿈이 아닌 엄연한 현실이다.
“저거 뭐야!”
등 뒤에서 손창혁의 목소리가 터졌다. 동시에 총성도 터졌다.그 순간 최준후는 움직였다.손창혁이 경악해 발사한 총탄이 소용없을 것을 알아서다.예상대로 젊은 남자는, 이종은 칼날의 손을 들어 총탄을 튕겨냈다.
“최형사!”
경악해 부르는 손창혁을 무시하고 최준후는 이종에게 쇄도했다. 움켜쥔 곤봉에 내력을 실어 내리쳤다. 육합도법의 일도진천, 이종이 막는다.불꽃이 튀는 순간 최준후는 곤봉을 휘돌려 쳐올렸다. 격돌의 반발력을 이용한, 상대가 예상치 못한 기격이다. 턱을 후렸다. 그런데 놈도 그랬다.
‘흑!’
화끈한 충격, 왼 어깨를 가르고 지나간 것은 놈의 팔꿈치에서 튀어나온 칼날이다. 상대역시 격돌의 반발을 이용해 팔을 굽히며 기격을 펼친 거다.
‘이게 끝이 아니다!’
왼쪽으로 몸을 휘돌리며 최준후는 횡격을 뿌렸다.물러나는 상대를 향해 팽이가 돌아가는 것처럼 따라가며 연속적인 타격을 안겼다.불꽃이 튀고 쇳소리가 퍼졌다. 그와 같이 곤봉과 칼날 조각들이 튀었나갔다.콰콰콰콱, 마침내 곤봉이 부러져 나간 순간.최준후는 돌개차기를 휘돌려 상대의 머릴 강타했다.옆으로 처박힌 놈은 오뚜기처럼 일어났다.그 찰나에 최준후의 무릎이 안면을 찍어 들어갔다. 놈은 점프하듯 넘어갔다.
“비켜!”
소리치며 달려온 손창혁이 권총을 발사했다. 실린더가 비어 공이가 철컥거렸지만 손창혁은 방아쇠를 당겼다. 그런 이유, 놈이 죽지 않고 있다.
“이 미친!”
흥분과 충격으로 안면을 부들거리는 손창혁을 밀어내고 최준후는 놈을 봤다. 미간과 눈알에 총탄을 맞아 엉망이 된 얼굴, 그런데도 살아 있다.
‘이대로는······!’
주변을 돌아본 최준후는 공장구석의 작두를 발견했다. 얇은 철판을 자르는 큰 작두다. 그걸 분리해 돌아와 이종의 팔다리를 내리쳤다. 그레이 컬러의 기이한 금속질근육이 꿈틀대는 육신,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
“크아아!”
팔다리가 잘린 채 버둥거리며 괴성을 토하는 존재, 이종 앞에서 최준후는 뜨거운 숨을 삼켰다. 손창혁의 놀람도 기동대의 경악도 느끼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자신이 살던 세상에 존재하던 것, 이종의 출현 앞에 선 최준후는 숨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