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52화 (153/172)

혹성강호. 152. 신의 계시.

152. 신의 계시.

구치소 문을 통과하는 순간까지도 최준후는 한 가지만 생각했다.이종.도대체 어떻게 그것이 이 세상에 출현한 것인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자의 정체는 이기범, 이기훈의 동생으로 올해 스물넷의 청년이다.

‘나와 같은 경우가 아니야.’

차문을 열고 내리며 최준후는 어금니를 힘주어 물었다.자신은 팔문금벽에 휘말려 이 세상으로 넘어온 존재다.이기범은 원래 여기 살던 자다.근원이 전혀 다르다. 그런데 이종으로 변한 그 모습, 그건 같은 거다.

“하아.”

짐작 안 되는 현실에 깊은 한숨을 내쉰 최준후는 절차를 밟고 구치소 안으로 들어갔다. 조준구, 자신을 이렇게 부른 놈을 만나기 위해서다.

‘계속 찝찝하더라니.’

다른 피해자들이 더 있다고, 그걸 자백하겠다는 거다. 최준후 자신에게 말하겠다고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조준구 그놈 얼굴을 다시 봐야 할 이유다.

‘개새끼.’

구치소 면회실로 들어간 최준후는 차가운 콘그리트벽을 응시하며 다시 그 생각을 했다. 용봉산 아래 공장단지를 피바다로 만든 이기범, 아니 이종이다. 그는 죽지 않았다. 경특의 특수호송차에 실려 어디론가 갔다.

‘국정원에서 개입하는 것 같은데.’

총탄을 맞고도 안 죽은 자다. 손창혁이 얼굴에다 세발을 때려 박았다. 그런데도 안 죽고 버둥거렸다. 그 팔다리를 최준후 자신이 잘라낸 거다. 도끼질하듯이 내리치던 그 순간의 흥분과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상적인 사건이 아니니까. 아니 황당한 괴변.’

원인을 밝히기 위해 국정원에서 나선 거다. 그렇게 생각되는 건 자연스러운데, 어쩐지 빠른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국정원이 인지하고 있었던 게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종에 대해서, 이런 괴변사건에 대해서.

“최형사님.”

상념을 깨는 소리에 최준후는 현실로 돌아왔다. 웃는 얼굴로 다가오는 조준구를 봤다. 테이블로 다가와 태연하게 앉는 놈의 눈이 하얗게 빛난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눈빛과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은 미소의 조준구, 절 잡아넣은 장본인을 보는 건데 감사 따윈 개소리다. 놈을 보고 앉으며 최준후는 물었다.

“시간 절약하자.”“뭐 그러죠, 바쁘신 짭새님인데.”“피해자가 더 있다고?”“궁금하죠?”“아가리 놀음 할 생각이면 간다.”“워, 흥분하지 말고 들어보세요. 영양가 있습니다.”

최준후가 강한 눈빛을 던지자 조준구는 히죽 웃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왜 죽였는지 안 궁금합니까?”

최준후는 반응하지 않았다.조준구의 범행내용을 다 안다. 강도질을 하던 놈이 성폭행과 살인으로 발전했다.유흥업소 종사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행이었다.혼자 사는 여자들, 손쉬운 목표였다.일곱이나 희생됐다.

“저런, 역시 보이는 것만 보고 있네요.”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찬 조준구, 그 얼굴에 한방 먹여주고픈 충동을 최준후는 참았다.

“난 말이죠, 죽여야 할 년들을 죽인 겁니다.”

최준후는 깊은 숨을 몰아 내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결국 이런 개소리인거다.

“내가 한 일은 고귀한 일이었습니다.”

꿈틀거리는 주먹을 움켜쥐는 최준후의 귀에 조준구의 목소리를 계속 들어갔다.

“계시를 받았거든요. 그것들을 죽이라는 신의 계시를요.”

더는 참지 못해 최준후는 일어섰다.

“최재원 의원하고 다른 놈들, 누가 죽인 것 같습니까?”

흠칫한 최준후는 선채로 조준구의 눈을 응시했다. 득의한 미소를 품은, 칼날처럼 날이 선 눈빛을 흘려내는 눈동자, 이어내는 목소리도 그렇다.

“신탁을 받은 자가 행한 일입니다.”

혈기가 어른거리는 눈동자로 조준구는 계속 말했다.

“기도에 답한 신의 계시를 따른 거지요. 모가지를 따라고 하는 계시, 나한테도 들립니다. 더러운 삶을 살며 세상을 더럽히는 년들을 죽이라는 계시와 같습니다. 속임수로 남을 등쳐먹은 놈들을 응징하란 명이지요. 예, 그 일을 한 자들은 나와는 다릅니다. 그들은 신의 칼을 가졌습니다.”

최준후는 다시 경직했다. 최재원의원 사건을 언급해서 긴장했던 정신이 이어지는 이야기로 풀어지려는 순간에 나온 단어, 신의 칼이란 말이다.

“그들은 신의 전사로 선택된 자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칼입니다.”

최준후가 눈썹을 꿈틀하는 순간 조준구는 뒷말을 이어냈다.

“그런 자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왜냐고요? 더러워진 세상을 신의 뜻으로 정화하기 위해서죠. 그들은 처단대상의 목을 칠겁니다. 그걸 피할 수 없습니다. 죽여야 할 죄를 지은 자들은 모조리 목이 잘릴 겁니다.”“그 칼이라는 거!”

왁 소리쳐 조준구의 입을 닫게 한 최준후는 당황과 의혹을 누르며 물었다.

“더 자세히 말해 봐라.”

조준구는 인상을 구긴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말했잖습니까? 그들 자체가 칼이라고요.”

이 상황 자체가 웃기는 일이라고 여기면서도 최준후는 폰을 내밀었다. 너무나 강렬한 예감, 이렇게 조준구를 만나서 듣게 된 현실을 삼키면서다.

“혹시 이런 거냐?”

폰 사진을 본 조준구는 눈동자를 경직했다가 환하게 미소를 피워냈다.

“바로 그겁니다. 신의 전사.”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걸 느끼며 최준후는 의자에 다시 앉았다. 설마 하던 예감, 보여줘선 안 되는 건데 보여주고 만 현장사진, 이종을 알아봤다.조준구는 이종을 알고 있었다.신의 칼, 신의 전사라고 말하고 있다.

“경찰이 신의 전사를 체포했군요. 그래선 안 됩니다.”

다시 입을 연 조준구는 엄숙한 얼굴로 경고의 말을 낸다.

“어차피 앞으로는 그럴 수 없을 테지만, 신의 뜻을 거스르면 벌을 받게 될 겁니다. 이제 우리가 겪게 될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해주려고 최형사님을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특별하니까요.”

특별하다, 최준후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다.

“뭐가 특별하다는 거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조준구는 대답을 냈다.

“혼이 다른 사람이니까요.”

이건 무슨 소린가 하는 최준후에게 조준구는 뒷말을 미소로 이어냈다.

“최형사님, 당신의 혼은 색이 다릅니다. 내 눈에 보이는 이 세상 사람들과 달라요. 그 이유가 뭔지 신께 기도 드렸지만 아직 답이 없네요.”

조준구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하던 최준후는 이 가는 숨을 뱉었다.

“개소리 마라. 네가 날 부른 이유는 보복하고 싶어서야, 널 잡아 처넣은 나라는 존재에게 겁을 주고 싶은 거지. 이런 것들이 설칠 테니까.”

폰 속의 이종, 조준구는 차가운 미소를 피워냈다.

“뭐든, 최형사님이 현실을 받아들이긴 했네요. 신의 전사를 알아보는 눈인데요? 역시 혼이 달라서인가?”

최준후는 조준구의 목을 잡았다.

“컥!”

번개처럼 빠른 손, 피하지 못한 조준구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갔다.

“잘 들어, 너 같은 인간 말종은 죽이는 게 답이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평생 감옥에서 썩게 될 거다. 만에 하나 감옥문이 열린다면······”

숨죽인 목소리로 최준후는 뒷말을 뱉었다.

“내가 널 죽일 거다.”

* * *

신명시북쪽에 외치한 국군병원은 삼엄한 경비 속에 고즈넉했다.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지만 겨울의 자취가 남은 밤바람이 제법 세게 불고 있다. 그 속으로 차를 몰고 들어간 최준후는 주차장에 파킹하며 한숨 쉬었다.

‘뭔가 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머릿속이 뒤죽박죽인 채 불안한 예감만 커져가고 있다.조준구를 만나고 나니 더 그렇다. 놀랍게도 그놈은 이종을 알고 있다.신의 칼, 전사라고 했다.그런 자들이 더 생겨날 거라고 했는데, 이종의 출현을 말한다.

‘신의 계시라고?’

조준구는 황당한 개소리를 지껄였다. 신께 기도하자 대답을 들었다는 거다. 그래서 사람을 죽였다는 거다. 이종들도 그런 일을 한다는 거다.

‘중요한 건 조준구가 그들을 알고 느낀다는 거.’

조준구의 말대로라면 신의 계시를 행하는 자들이다.

“후.”

무거운 한숨을 내쉰 최준후는 차문을 열고 나갔다. 병원 로비로 들어가는데 손창혁이 손을 든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모습, 바로 묻는다.

“조준구새끼 뭐래?”

미간을 찌푸리는 걸로 대답을 대신한 최준후는 병원상황을 물었다.

“여기로 데려온 거야?”“어, 국정원 직원들이 기다려.”

굳은 표정을 만들며 최준후는 손창혁과 같이 안쪽으로 이동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니 한눈에 봐도 국정원 직원들인 남자들이 옆으로 섰다.뭐라고 말을 하기도 어색하고 기묘한 상황, 그들을 따라서 움직였다.엘리베이터는 지하 3층으로 내려갔다.앞서는 국정원 직원들을 따라가자 큰 수술실 같은 공간이다.유리벽으로 안쪽이 보이는데, 이종이 있다.수술대 위에 재질이 뭔지 모를 와이어 같은 걸로 고정된 모습이다.

“코끼리 마취제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옆으로 다가오는 목소리에 반응하며 최준후는 시선을 돌렸다. 국정원 직원, 자신을 밝히지 않은 중년남자는 미소 지은 얼굴로 계속 이야기 한다.

“팔다리를 절단하지 않았으면 제어가 힘들었을 거라고 하더군요. 현장에서 제대로 대응해준 덕분입니다. 상황을 알고 있지만 확인차원입니다.”

그래서 불렀다는 거다. 이종을, 아니 이기범을 잡은 최준후 자신과 손창혁을 직접 불러 이야기 들으려는 거다. 한편으로 놀람을 확인하는 거다.

‘이종을 잡았으니까. 이런 것들을 이미 알고 겪었어.’

사내, 국정원 직원을 응시하던 최준후는 물음을 던졌다.

“얼마나 더 있는 겁니까?”

쑥 찌르고 들어온 최준후의 물음에 남자는 미간을 꿈틀했다. 잠시 동안 시선만 받아내며 반응을 내지 않았다. 그 얼굴에 다시 미소가 생겨났다.

“국정원 김일우 국장입니다.”

뒤늦게 자신을 밝힌 남자, 김일우 국장은 처음처럼 정중하게 이야기 했다.

“현재까지 여섯 건의 사례가 있습니다. 전국각지에서 일어났습니다.”

유리벽 너머 이종에게 시선을 돌린 김일우국장의 눈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극비로 사건을 처리중이긴 하지만 보안이 힘들어 질 걸로 판단합니다. 신명시에서 사건이 발생하던 시간, 경기 남부에서도 동일 사건이 터졌습니다. 다행한건 신명시 경찰이 제대로 신속하게 처리해줬다는 겁니다.”

그래서 현장 형사인 최준후와 손창혁을 만나려 한 건데 라는 김일우의 눈.

“이런 사건이 더 있을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이번 물음에도 최준후는 대답대신 되물음을 던졌다.

“최재원의원 사건, 같은 케이스입니까?”

김일우 국장의 눈에 심각한 힘이 들어찼다. 그 변화를 보고 있는 손창혁은 불안한 마음으로 침을 삼켰고, 최준후는 자신이 인지하게된 걸 말했다.

“조준구라는 연쇄살인범이 있습니다.”

오늘 만난 조준구에 대한 이야기를 최준후는 김일우에게 했다. 황당한 이야기, 곁에서 듣는 손창혁형사의 얼굴까지 충격과 놀람으로 물들었다.

“신의 칼?”

눈썹을 세운 김일우에게 최준후는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게 뭔지 아실 겁니다.”

김일우는 시선을 유리벽 너머로 돌렸다. 이기범의 침대 옆에 놓인 팔다리, 그중 팔은 커다란 칼이다. 그레이빛 금속질 근육으로 이어져 있다.

“그러니까······”“조준구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게 뭔지 모르지만 그런 생각을 가진 존재들이란 겁니다. 공통적인 부분이 뭔지 모르겠지만 그런 게 있는 겁니다. 약물로 인한 것이든 사교(邪敎)적인 것이든 뭐든, 현실로 범행이 일어났고 저런 이상한 존재들이 범인이라는 게 팩트입니다.”

손창혁이 끼어들었다.

“조준구를 데려다 심문해야 할 것 같은데?”

바로 그 순간 최준후의 폰이 울었다. 불안한 눈빛을 흘린 최준후는 폰을 받았다. 그리고 표정을 경직했다. 손창혁과 김일우는 불안을 삼켰다.

“조준구가 자살했다고 합니다.”

폰을 내리며 말한 최준후는 유리벽 너머로 눈길을 넣었다. 된숨을 내쉬는 김일우도, 쓴 입맛을 다시는 손창혁도 의식 못하고 이종만 바라봤다.

‘뭐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주먹을 움켜쥐고 감정을 삼키던 최준후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국정원 직원이 급하게 다가와서다. 김일우 국장의 귀에 대고 은밀히 속삭인다.

‘뭐?’

황당한 충격으로 최준후는 눈을 치떴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선 아무리 작게 말한다고 해도 들린다. 그런데 그 내용이 너무 엄청난 것이다.

“러시아 크렘린 궁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눈썹을 떨며 말한 김일우, 손창혁형사는 허 하고 숨을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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