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53화 (154/172)

혹성강호. 153. 대혼란.

153. 대 혼란.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 지도자들이 사라진 러시아는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던 군대는 본국으로 귀환중입니다. 러시아 군부는 현재 머리가 사라진 뱀과 같은 처지로 우왕좌왕 하며 사태수습······

tv를 보던 손창혁이 황당한 숨으로 걱정을 말했다.

“저게 더 위험한 거 아냐? 그 많은 핵폭탄을 누가 관리하는데?”

맞는 말이다. 러시아는 미국보다도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머리 잘린 뱀이 꿈틀거리다가 사달이 날 수도 있는 거다. 생각만 해도 떨린다.

“야야, 어쨌든 전쟁은 끝난 거잖아?”

그건 잘 된 거 아니냔 동료형사의 말, 손창혁이 대꾸하는 걸 보며 최준후는 복잡한 숨을 다스렸다. 일견 저 말은 맞는 거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전쟁의 발발자체가 그렇지만 이 일엔 조준구가 말한 게 있다.

‘누군지 알 수도 없는 적에게 공격당한 거야.’

이 엄청난 상황이 그러함을 최준후는 확신했다. 상대도 모르고 무엇으로 당했는지도 모른다. 러시아는 대통령궁을 포함한 국가 주요 시설들이 파괴됐다. 국가지도층이 사라졌다. 일본이 당한 것보다 훨씬 강력 하다.

‘도대체 뭐야? 정말로 신의 행위라고?’

조준구가 말한 내용을 전제로 하면 그렇게 된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의 전쟁범죄를 응징한 일인 거다. 그런데 그게 맞는 건지 뭔지도 모른다. 조준구의 주장, 그가 살해한 여성들은 범죄자들이 아니었다.

‘그 미친놈의, 가치관이라고도 할 수 없는 비뚤어진 생각.’

유흥업소에서 일한다고 나쁜 인간은 아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삶을 산 것 뿐이다. 남을 해치고 강탈하는 것들, 진짜로 나쁜 인간들은 따로 있다. 조준구의 비정상적인 정신만이 그녀들을 그렇게 여길 뿐이다.

‘중요한 건, 핵심은 이종이 존재한다는 것. 이런 공격이 있다는 것.’

분명 연관이 있는 현실이란 확신으로 최준후는 뉴스를 다시 봤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주요국들은 충격 속에서 긴급 대응에 나선 모습입니다. 러시아 사태의 원인과 배경파악에 집중하며 또 다른 이변사태가 생겨날 것에 긴장하는 상황입니다. 일본과 러시아의 사태가 우연이 아닌 외부공격에 의한 결과임을 확신하며 미국 우주군사령부는 단서를······

지구내부의 공격에 의한 사태가 아니란 것이다. 때문에 미국을 중심으로 외부의 원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외계의 공격으로 추정함이다. 그런데 현재까지 상대의 정체는 물론 어떠한 공격인 건지도 모른다.

“하, 종말이 오는 거냐?”

옆으로 다가온 목소리, 팀장의 얼굴을 돌아본 최준후는 이어지는 물음을 들었다.

“어제 국정원놈들한테 뭐 들은 거 없냐?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른데?”

팀장 원철우의 눈에 든 불안과 흥분을 최준후는 무겁게 읽었다.

“보고서 올린 내용뿐입니다.”“그게 다라고? 누굴 등신 곁다리로 아냐? 아무리 보안이네 기밀이네 해도 상황이 상황인데, 러시아가 저지경인데 그런 괴물들 일이 기밀이냐?”

괴물, 팀장은 이종이 된 이기범을 괴물이라고 한다.맞는 말이다.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니까 괴물이다.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이냐가 핵심이다.조준구 말처럼 신에게 기도해서 응답을 받은 결과는 아닐 거다.

“그런 사건이 여섯 건이 더 있다면서?”

팀장 원철우의 눈은 강한 빛을 냈다.

“사건발생지역 경찰들도 빙다리 아니거든? 내부적으로 이미 다 퍼졌어. 국정원처럼 기밀이긴 하지만, 씨바, 그거하고 저거하고 무관한 게 아닌 것 같은데? 정말로 종말이 오는 건지 뭔지 몰라도 분명 관련 있어.”

이종사건과 러시아 일본의 사태가 무관치 않다는 팀장의 확신은 이어진다.

“조준구가 너한테 했다는 이야기, 믿냐?”

서장실로 직접 올라간 보고서를 팀장도 본 모양이다.

“신의 사자라고? 계시를 받았단 말이지? 이기범이 같은 괴물들이 더 있다는 거잖아? 앞으로 그것들이 설칠 거라는 거지? 그 개소리가 뭐 같냐?”

정말로 진지하게 묻는 팀장 원철우, 그 눈을 응시한 최준후는 입을 열었다.

“조준구의 말이 맞을 겁니다.”

꿈틀, 눈썹을 곤두세운 팀장 원철우는 뜨거워진 숨결로 다시 묻는 다.

“신의 칼이란 것들이 정말 신의 계시를 받아 그런다고?”

옆의 의자를 끌어다 앉는 팀장 원철우의 눈길을 받으며 최준후는 대답했다.

“그건 모르겠지만 그것들이 더 있고 사건을 일으킬 거란 건 확실합니다.”

원철우가 다시 입술을 움직이는 순간 뉴스속보가 나왔다.

-긴급상황입니다! 평양 주석궁이 사라졌다는 속보입니다!

최준후를 비롯한 강력계 전체가 얼어붙었다. 폭행사건 용의자를 앞에 두고 조서를 꾸미던 형사도, 탕비실에서 커피를 타 나오던 이도, 침 튀기며 의견을 주고받던 손창혁과 동료도, 팀장 원철우도, 모두 경직했다.

“비상! 신명백화점에 인질사건 발생!”

연이은 원투펀치처럼 비상이 걸렸다.

* * *

신명중앙역과 연결 된 신명백화점은 자랑거리 중 하나다. 재벌 기업에서 건립한 곳으로 신명시의 이름을 사용해 더 사랑 받는 곳이다. 그런 곳이 지금 피칠갑 됐다. 칼에 맞아 쓰러진 사람들이 여기저기 널렸다.

“이······!”

분노와 욕지기를 참기 힘들어 하는 손창혁의 반응, 최준후도 마찬가지다. 멈춰 있는 에스컬레이터 앞으로 이동하는 동안 본 시체만 다섯이다. 범인은 백화점 내의 불특정 다수를 공격했다. 완전 미친 개자식이다.

‘일본도를······!’

범인이 사용한 흉기다. 백화점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칼을 휘둘렀다. 경비원들이 대응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영상을 보면 무술을 익힌 놈이다.

“최형사. 범인 차를 발견했단다.”

바싹 붙은 손창혁은 폰 사진을 보여준다. 백화점 주차장에 파킹된 승합차다. 삼국검법이란 로고가 붙은 도장 차다. 역시 검술을 익힌 놈이다.

“경특이 협상전문가하고 곧 도착할 거야. 우린 차단만 하면 돼.”

혹시 최준후가 튀어나가기라도 할까봐 손창혁은 강하게 말했다. 하지만 최준후는 에스컬레이터 위쪽을 노려보며 뜨거운 숨을 흘려냈다.

‘느껴져, 이종의 기운.’

이기범과 맞닥뜨렸을 때의 기이한 느낌, 감각이라고 하긴 기묘한 것이 잡힌다. 일종의 흥분이라고 해야 할지 예감이라 할지 모를 감흥이다.

“간다.”“뭐? 어? 야! 최형사!”

숨죽인 부름을 던지는 손창혁을 두고 최준후는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갔다.삽시간에 이동해 위층에 발을 디딘 순간 봤다.의류매장의 범인이다.백화점 직원들과 손님들을 한 곳에 모아 놓고 술병을 입에 박고 있다.

“후아!”

위스키병을 단숨에 비운 놈이 숨을 토하는 순간 눈이 마주쳤다. 혈광이 확 팽창하는 눈동자, 이기범의 눈알과 같다는 것을 최준후는 확인했다.

“뭐야? 경찰이냐?”

술병을 던진 남자는 섬뜩한 미소를 피워냈다. 곧바로 곁에 주저앉아 있는 여자의 머릴 움켜잡았다. 비명도 못 지르는 아가씨, 매장 직원이다.

“해 봐.”

여직원 목에 장도를 대고 웃는 놈, 최준후는 두 손을 들어보였다.

“할 게 없다.”

무장하지 않은 상태임을 확인한 놈이 눈을 번득인다.

“뭐하는 새끼야? 영화에 나오는 그런 놈이냐? 나하고 협상하려는 거야?”“그건 아니고, 난 그냥 신명서 강력계형사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지.”“뭐?”“너 말이다. 신의 계시를 받은 거지?”

여직원의 목에 댄 장도가 움찔하도록 놈이 반응한다.최준후는 계속 말했다.

“보통사람들은 신의 계시를 받는다든지, 그런 거 못하거든. 그렇지? 네가 특별하니까 그런 거잖아? 난 그게 궁금하단 말이지. 네가 특별해진 거.”

혈광이 흘러나오는 눈을 번득이던 인질범은 차가운 미소를 피워냈다.

“뭘 좀 아는 놈이구나?”

최준후는 어깨를 으쓱한 후 진지하게 물었다.

“말해 줄래?”

묵직하게 번득이는 최준후의 눈, 마주 응시한 인질범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날 조롱하고 괴롭히는 것들을 베어죽이라는 명령이었지. 내가 허덕이고 힘든 건 내 탓이 아니라 세상 탓이라고 했어.”

인질범의 눈동자가 무섭게 혈광을 흘려내는 걸 최준후는 봤다.

“도장 임대료조차 못 내고 하루하루를 걱정하는 나를 조롱하는 것들, 이 화려한 백화점에서 수백만원짜리 옷을 화장지 사듯이 사는 것들, 이것들을 베어죽이라는 명이었다. 이것들이 세상을 더럽힌다는 계시였어.”

최준후는 황당한 놀람과 충격을 삼켰다.저 자가 왜 백화점에서 묻지 마 칼부림을 벌인 건지 이유를 알았다.상대적 박탈감이다.그런데 그건 저자의 잘못도 피해자들의 잘못도 아니다.이 세상의 구조적인 문제다.

‘그걸 베어버리라는 계시?’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최준후는 바로 밀어냈다. 세상의 구조적인 불평등과 불균형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로인한 폐해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해결될게 절대 아닌 거다.

“이거 봐. 무슨 말이고 어떤 마음인지 알겠는데 말이지, 내가 정말로 궁금한 건······”

그 순간 인질범의 머리가 홱 돌아갔다.피를 뿜어내는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찰나 총성이 뒤늦게 귀를 때린다.이게 뭔지 최준후는 깨달았다.

‘경특!’

그들의 저격이다.인질범은 정확하게 머리가 관통돼 쓰러졌다.인질들은 비명을 지르며 흩어진다.그곳으로 다가가던 최준후는 멈칫했다. 인질범이 움직여서다.

‘이종!’

역시다. 저격으로 관통된 인질범의 머리가 메워지고 있다.눈동자는 폭발할 것처럼 도드라져 혈기를 뿜어낸다.우드득거리는 소리로 몸이 커진다.두 팔은 그레이빛 장도로, 두 다리는 짐승의 뒷다리로 변해버렸다.

“크워어!”

괴성을 터트리는 인질범의 머리가 뭔지 최준후는 알았다.

‘트라이울프!’

삼목늑대, 그것이다. 미간에 눈 하나가 더 생겨나 명확하다. 그런데다가 옆구리에서 또 다른 팔 두 대가 불거져 나온다. 정확하게 이종이다.

투르르르륵.

경찰특공대의 기관단총 소리가 귀청을 찢는 가운데 최준후는 옆으로 몸을 던졌다. 이종이 발로 걷어찬 일본도가 스치고 지나갔다.

‘흣!’

바닥을 차고 휘돌아 균형을 잡은 최준후는 눈을 부릅떴다. 특공대를 향해 비호처럼 달려간 이종, 트라이울프놈이 네 개의 팔, 장도를 휘두른다.참혹하고 충격적인 광경, 특공대원들은 생선처럼 동강난다. 트라이울프놈은 달려가며 모조리 베어 넘긴다. 특공대의 총격은 놈에게 소용이 없다.

‘개자식이!’

최준후는 기둥에 꽂힌 일본도를 뽑았다.트라이울프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갔다.특공대를 토막 내는 놈의 등으로 쇄도해 칼을 내리쳤다.불꽃이 튀는 순간 돌아온 놈의 팔, 장도를 피해 자세를 낮추며 발을 후렸다.트라이 울프가 허공을 돌아 처박히는 걸 보며 최준후는 굴러 일어났다. 놈이 제대로 일어서기 전에 쇄도했다. 두 손으로 잡은 칼을 뻗어냈다.콱, 세 개의 눈 중 가운데 눈을 쑤시고 들어간 일본도.본래 제것이었던 칼을 움켜잡고 놈은 몸부림친다.끔찍한 괴성을 지르며 발광한다.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최준후는 움직였다. 놈의 칼들을 피해 어깨로 받았다.미식축구선수가 받아버린 것처럼 트라이울프놈은 휘 떠서 처박혔다.그 몸 위로 점프한 최준후는 일본도 위로 착지했다.온 체중을 실은 천근추의 수법으로 칼날을 박았다.관통 하는 느낌을 인지하며 옆으로 굴렀다.

“소방도끼!”

최준후는 소리쳤고 손창혁이 달려왔다. 백화점 내에 구비돼 있던 비상용 소방도끼를 던졌다. 그걸 잡은 최준후는 힘차게 내리찍었다. 트라이울프로 변한 자의 팔다리를 잘랐다. 그런데도 놈은 버둥거리며 포효했다.

“죽어!”

트라이울프의 머리를 향해 최준후는 도끼를 내리찍었다.

* * *

-정부는 북한을 주시하며 초긴장상태입니다. 평양 주석궁을 비롯한 북한 내 주요 시설들이 사라진 지금, 돌발사태로 이어질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중입니다. 북한 지도부는 사실상 궤멸한 것으로······

뉴스를 응시하며 최준후는 허탈한 숨을 내쉬었다.러시아에 이어 북한이다.북한 내 핵심 거점이 모조리 파괴된, 아니 사라진 괴변이다.무슨 무기에 당한 건지 모른다. 잔해조차도 남지 않은 파괴가 소름끼친다.

‘저런 무기가······’

재봉합한 어깨의 통증도 잊은 채 최준후는 소름을 삼켰다.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어서다. 골든아이, 황금안이라고 하던 그 무기가 저런 거다.황금빔을 고공에서 발사해 내려 대상을 증발시킨다. 이게 그것 같다.

“최형사.”

팀장 원철우의 부름에 상념을 밀어낸 최준후는 그를 봤다.팀장 원철우의 뒤로 걸어 들어오는 남자, 국정원의 김일우 국장이다.저 굳은 얼굴과 눈빛을 보고 현실을 새삼 깨닫는다.엄청난 혼란이 세상에 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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