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54. 신의 칼 1.
154. 신의 칼 1.
“후.”
한숨을 내쉰 윤미령은 보육원 마당을 내다봤다.날이 따듯해져서 아이들이 나와 놀기에 좋아졌다.햇빛 보육원, 아버지가 지은 이름처럼 따사로운 햇빛이 가득 내리치고 있다.그 속에서 노는 아이들은 천사 같다.
‘내 보내야 할 아이가 셋이나 되는데······’
독립해야 할 아이들이다. 더는 보육원에서 함께 살 수 없다. 자립하도록 넉넉하게 지원해주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난망한 일이다. 그 아이들 생각만 하면 한숨이 나온다. 그런데다 뭐가 어떤 건지 세상이 시끄럽다.
‘무슨 일일까?’
일본과 러시아에 이어 북한도 괴이한 일이 생겼다.지금도 뉴스에서 침 튀기며 떠드는 사건, 대한민국 사람들이면 다 놀라 넘어갈 일이다.북한지도부가 사라졌다.북한 각지의 핵심시설과 인사들이 증발한 사건이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거라던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림을 흘려낸 윤미령은 그게 어느 정도로 심각한 건지 가늠을 하려 미간을 찌푸렸다. 정확하게 알진 못해도 대단히 중대한 상황이란 것은 모를 수 없다. 북한과 자칫하면 전쟁을 하는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아이들 걱정 같은 건 하고 있을 시간도 없겠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뉴스를 매일 보고 있었다. 국가들 간의 알력과 국제질서란 이름의 역학관계에 대해 잘 모르지만,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겪는 비극적인 현실의 참상을 모를 수 없다. 그곳은 지옥이다.
‘신명시 같은 곳은 북한 장사정포에 초토화된다던데.’
발을 딛고 사는 이곳, 신명시는 경기 북부지역이다. 북한 장사정포의 사거리는 대전까지 이른다고 한다. 전쟁이 발발하면 이 지역은 불바다가 될 것이다. 휴전선에 배치된 북한의 그 엄청난 화력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게 사는 거다.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미약한 한 개인, 한 인간으로서 그저 처분만 기다리며 사는 거다. 세상의 처분이다. 과연 어떻게 될까.
“어?”
창밖을 보며 복잡한 숨을 삼키던 윤미령은 경철이를 보고 눈썹을 세웠다. 어디를 가는지 빠르게 보육원을 나가고 있다. 창문을 열고 불렀다.
“경철아!”
보육원 정문에서 걸음을 멈춘 한경철, 이제 보육원을 나가 독립해야 할 아이는 돌아본다. 그런데 눈동자가 새빨갛다. 마치 피를 머금은 것처럼.
‘뭐?’
뭔가 잘못된 것을 직감한 윤미령은 소리쳐 불렀다.
“경철아! 어디 가는 거야! 가지 마!”
창문에 매달린 윤미령의 애탄 부름을 무시하고 민경철은 걸어간다.
* * *
“머리를······”
신음처럼 들리는 중얼거림을 흘려낸 김일우 국장, 그가 보는 사진을 최준후는 보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결과, 신명백화점의 이종을 처치한 사진이다. 도끼로 머리통을 쪼개버렸다. 그러지 않았으면 놈은 안 죽었다.
“아무튼 대단합니다.”
여전히 존대를 하며 미소 지은 김일우국장, 표정이 다시 굳어진다.
“국가비상사태가 내려질 겁니다.”
브리핑 룸에 울려 퍼진 김일우국장의 목소리, 그 속에 든 위기감은 최준후는 절감했다. 대한민국의 머리 위 북한에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원인과 배경조차 모를 이변상황, 거대한 그 흐름 속에 이종들이 날뛰고 있다.
“국정원을 중심으로 대응체제를 편성하고 있습니다."
다시 이어진 김일우국장의 이야기를 최준후는 무거운 눈빛 속에 들었다. 말인즉슨 현재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원인을 파악하는 조직이다. 그 조직에 최준후 자신을 넣겠다는 거다. 물론 이종과 싸운 결과다.
“하겠습니다.”
흔쾌히 참여를 선언한 최준후는 뒷말을 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 원인 파악입니다. 그들이 변하게 된 원인이 분명히 있습니다.”
김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신명백화점에서 난동을 부린 자, 삼국검법도장 관장인 유진범, 그 자는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이야. 교통범칙금 딱지 하나 없는 인물이지.”
이미 신원파악을 마친 상황, 유진범이란 인물의 대략적인 정보는 최준후도 안다. 문제는 그가 왜, 어떻게 이종이 됐느냐 하는 부분이다. 당연히 집중하는 김일우는 존대를 버린 상사의 위치로서 말을 이어냈다.
“마약류 복용도 아니고 특이한 병력도 없어. 건강한 자라 병원 근처에도 안 갔지. 그런 남자가 갑자기 괴물이 된 일, 다른 사례들도 비슷해.”
최준후는 이기범을 생각했다. 이기철의 동생, 그는 창명이파 조직원도 아니었다. 제형과 달리 전과도 없고 알바로 살아가는 청년이었다. 그런 인물이 이종이 된 거다. 그렇게 된 원인이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른다.
“변이자들의 거주지를 비롯한 모든 곳을 털고 있으니 곧 뭔가 나올 거야.”
김일우의 기대어린 눈빛보다 단어 하나에 최준후는 반응했다.
‘변이자.’
그들을 부르는 호칭이다.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이종이란 말이 이 사이에 물려 있다. 그들의 본래 정체성을 이르는 단어, 그건 자신만 아는 거다.
“북한 상황은 어떻습니까? 통제나 대응이 가능하겠습니까?”
당신정도면 그런 일은 알겠지, 하는 최준후의 물음에 김일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대답이 곤란한 질문이군.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야. 정부에선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을 지키는······”
그 순간 브리핑 룸을 벌컥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김일우의 부하다.
“상황발생입니다!”
* * *
“아저씨! 더 빨리 좀 가주세요!”
윤미령의 재촉에 택시기사는 난감한 표정이지만 악셀을 밟았다. 쫓아가던 택시를 놓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목적지를 안다. 한세병원이다.
‘경철아 제발······!’
간절한 마음으로 윤미령은 두 손을 모아 잡았다.눈물이 흘러내린다.민경철이 가는 곳은 역시 한세병원이다.그곳은 가선 안 되는 곳이다. 하지만 가고 있다.경철이를 고아로 만든, 가슴에 화인을 새긴 이가 거기 있다.
‘아아 제발······!’
뜨거운 숨을 오열로 삼키던 윤미령은 폰 메시지를 확인했다.
[곧 도착.]
최준후가 온다. 정말 다행이다. 혼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일, 무작정 민경철의 뒤를 따라왔지만 최준후가 온다면 나쁜 일을 막을 거다.
“병원입니다.”
택시기사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 윤미령은 허겁지겁 요금을 치르고 내렸다. 단거리선수처럼 병원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런데 피바다다.
‘뭐!’
강남요지에 위치한 종합병원, 입구의 경비원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다. 로비는 텅 비었다. 엘리베이터 앞과 에스컬레이터 앞도 시체다.
‘이게 무슨······?’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윤미령을 그 순간 누가 불렀다.
“거기서 나와요!”
한쪽어깨가 피투성이인 경비원복장의 남자다.
“괴물이 있어요! 어서 나와요!”
병원 밖으로 나오라고 소리치는 경비원, 그 외침과 더불어 병원 안쪽에선 비명이 들려온다. 그 소리에 홀린 사람처럼 윤미령은 달려 들어갔다.
‘경철아!’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민경철과 관계있다는 확신이 든다. 그 아이는 그를 찾아갔다. 생명을 준 존재, 그런데 그걸 부정한 사람.
‘개자식!’
그를 생각하며 윤미령은 이를 갈았다.바로 이 병원의 원장이다.그는 민경철의 아버지다. 젊은 시절 간호사와의 애정, 민경철이 태어난 배경이다. 그러나 모자는 버려졌다. 민경철의 엄마는 자살하고 말았다.
‘더러운 병원 싸그리 불타 버렸으면!’
민경철의 아버지가 선택한 것이 이것이다. 심류드라마 스토리처럼 갑부의 딸을 선택한 결과다. 뿌리를 찾아온 아들을 매몰차게 외면한 자다.
‘경철아 제발!’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심중의 외침과 달리, 더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분노의 용암을 윤미령은 느꼈다. 민경철이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하는.
‘다른 사람들이 다치고 있어!’
피 맛이 나는 입의 악묾을 삼키며 윤미령은 복도로 올라섰다. 원장실이 저 앞에 보인다. 피투성이로 쓰러져 신음하는 병원직원들도 보인다.
“경철아!”
소리쳐 부르며 윤미령은 달려갔다.그 순간 원장실문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함께 터져 나온 것이 벽에 부딪쳤다.피투성이가 된 원장이다.
“크어······ 제발······!”
부들거리며 살려달란 애원의 눈빛을 내는 자, 원장의 앞으로 민경철이 다가갔다. 원장실에서 나오는 모습은 괴물, 윤미령은 눈을 부릅떴다.
‘저!’
민경철은 분명 민경철이다.그런데 두 팔이 기다란 칼이다. 두 다리는 짐승의 그것이다.저걸 뭐라고 할까?켄타우로스? 아니 라이칸슬로프다.그런데 그것도 아니다. 팔이 네 개다, 그런데다 미간이 눈이 또 있다.
‘눈이 세 개에 팔이 넷, 그것도 칼!’
얼어붙은 윤미령을 돌아보지 않는 존재, 민경철은 원장 앞에 멈춰 말한다.
“무서워? 내가 무서워?”“제, 제발······!”“키헤!”
붉은 눈을 번득이며 민경철은 소름끼치는 웃음소릴 냈다. 그리곤 팔을 뻗었다. 기다란 장도가 된 팔, 그 끝이 원장의 어깨를 파고 들어갔다.
“으어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원장, 그 모습을 보며 민경철은 말한다.
“난 이제 독립해야 해. 그래서 하는 거야.”
무슨 의미일까.
“사, 살려줘!”
마지막 애원을 토해내는 원장, 그 몸에 민경철의 팔 네 개가, 장도 네 자루가 쑤시고 들어갔다. 목과 심장과 팔다리와 복부와 생식기, 민경철의 칼들은 쉬지 않고 쑤셨다. 원장의 형상이 흩어질 때까지 쑤셨다.정적이 찾아왔다.민경철이 움직임을 멈추고서다.윤미령은 그때 깨어났다.충격 속에서 현실로 돌아온 찰나, 민경철이 돌아보더니 달려온다.
“경철······”
윤미령은 쓰러졌다.바닥을 굴러 벽에 부딪치고서야 알았다.최준후가 왔다.그가 허리를 잡고 굴렀다.그러지 않았으면 저 벽처럼 됐을 거다.민경철의 공격으로 갈라진 벽을 본 윤미령은 최준후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괴물이 된 민경철과 어우러져 싸우고 있다. 보고 있지만 꿈같다.
‘하늘님,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건가요······!’
* * *
“진입해!”
타격팀이 아파트 내로 들어가는 걸 보며 김일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아파트 단지 내에 널린 시체와 피가 정신을 다시 어지럽게 한다.
‘이런 일이······!’
생겼다. 아파트 경비원이 주민들을 상대로 무차별 살상을 벌이고 있다. 한 채에 백억을 찍을 날아 올 거라는, 강남의 노른자위 중 노른자위 아파트다. 이곳에서 경비원들에게 갑질한 사건이 보도가 돼 시끄러웠다.
‘최준후, 그 친구가 간 곳도 같은 상황.’
여기서 멀지 않은 한세병원이다. 괴물이 사람들을 해치고 있다는 신고, 최준후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개인적인 연락도 온 것 같았다.
“머리를 부숴야 한다!”
무전기에 대고 김일우는 다시 소리쳤다. 타격팀에게 주는 경고다.
‘최준후가 한 것처럼.’
지급한 철갑탄이면 단숨에 머리를 박살낼 거다. 상황종결이다.그런데 이 살상의 원인에 대한 생각이 든다.하인처럼 경비원들을 대한 아파트 주민들의 피살, 이것은 인과응보인가 하는 생각이다.복수가 분명하다.
‘당한 것에 대한······!’
귀를 때리는 총격음에 김일우는 흠칫했다.타격대가 진입한 아파트 건물에서 뭔가 튀어나온다.아래로 떨어져 바닥을 뭉개고 들어갔다.그런데 일어선다.경비원 옷이 걸레처럼 붙어 있는 존재, 칼이 손인 괴물이다.
“제압해!”
김일우의 발작적인 외침과 동시에 대기 중이던 대원들이 총격을 가했다. 괴물, 변이자는 팔 네 개가 변한 장도로 얼굴을 가리며 휘청거린다. 철갑탄이 몸통을 관통하며 지상에 주차한 차들을 벌집으로 만들고 있다.
‘저 미친!’
김일우는 죽지 않는 변이자를 보며 치를 떨었다.
“머리를 노려! 머릴 박살내라고!”
휘청거리며 물러나던 괴물이 괴성을 터트리며 달려 나온다. 그러나 그 순간 틈이 생겼다. 조준하고 있던 저격팀에서 발포했다. 머리통이 터졌다.멈췄던 숨을 다시 이어내던 김일우는 또다시 경직했다.
“국회의원회관에 상황발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