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56화 (157/172)

혹성강호. 156. 임계점.

156. 임계점.

사방에서 들리는 총성을 들으며 윤미령은 경찰서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데 바깥도 안과 다를 바 없다. 괴물, 아니 괴물로 변한 이들이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다. 아수라장, 갑자기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고 있다.

‘헉!’

옆으로 날아온 사람을 피해 윤미령은 엎드렸다.경찰차뒷문을 우그러뜨리고 쓰러진 남자는 꿈틀거리다가 늘어진다.가슴이 갈라진 죽음이다.왜 저런지 안다. 괴물이 손으로, 칼로 한 거다. 여기저기 다 그렇다.

‘하늘님!’

입술을 깨물며 윤미령은 눈을 감았다. 경찰서 안에서의 일이 생생하다. 조서를 꾸미던 범죄피의자가 갑자기 괴물로 변하던 모습, 거짓 같은 충격이다. 눈이 세 개 달린 맹수의 얼굴, 팔 네 개의 칼로 살육하는 광경.

‘이건 꿈이야!’

윤미령은 현실을 부정했다. 그런데 명확한 현실임을 안다.최경철이 괴물이 돼서 아버지를 죽였다.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다.유치장 안의 수감자들이 괴물이 돼서 튀어나왔다. 경찰도 괴물이 된 이들이 있다.

“크워어!”

바로 옆을 달려가는 괴물, 그 소리에 놀란 윤미령은 경찰차 아래로 기어 들어갔다. 앞쪽을 치고 지나가는 괴물로 인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얼른 일어나서 운전석 문을 열었다. 정말 다행히도 키가 놓여 있다.시동버튼을 누른 윤미령은 악셀을 거칠게 밟았다. 회전하며 다른 차를 추돌했지만 개의치 않고 차를 돌렸다. 사람들을 해치다 달려오는 괴물들을 인지하며 경찰서를 나갔다. 그렇게 본 거리는 경찰서 안과 같다.

‘미친!’

삼성역을 향해 달려가며 윤미령은 치를 떨었다.보이는 모든 곳이 아비규환이다.빌딩과 지하철역과 배후의 주택가, 모든 곳에 괴물이 있다.괴물이 된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공격중이다.거리가 피로 물들고 있다.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멈춰서 불타는 차량들을 피하며 윤미령은 차를 달렸다. 신명시 햇빛보육원, 그곳으로 가야 한다. 아이들이 떨고 있을 거다. 어서 가야 한다.

* * *

맹렬한 속도로 달려온 승합차를 피해 최준후는 핸들을 꺾었다. 스치듯 지나간 승합차는 인도를 차고 올라 상점유리창을 부수며 들어갔다. 펑 소리와 함께 화염이 터졌다. 그런데 그 불속에서 나오는 것은 이종이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거였나?’

분노와 충격을 삼키며 최준후는 한남대교를 향해 달려갔다. 윤미령이 있는 강남경찰서를 향해서다. 그런데 도로가 거의 마비상태다. 추돌로 얽힌 차들로 인해 뚫고 갈 수가 없다. 이면도로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다.

‘일시에, 둑이 터지듯이 이렇게!’

변이자들의 출몰, 이종들의 대거 출현은 그런 꼴이다. 활시위를 당겼다가 놓아버린 결과다. 잠재되어 있는 이종들이 일시에 변이해 사람들을 해치고 있다. 사회의 모든 곳, 대한민국의 어디에나 있던 시한폭탄이다.

‘대처가 가능할지······!’

김일우와 헤어지던 순간을 생각하며 최준후는 절망을 삼켰다. 강남경찰서로 가야 한다는 자신에게 어서 가보라고 한 그의 얼굴에 있던 것이다. 사태에 대응해야 할 국정원에서도 변이자들이 출현한 상황인 거다.

‘어디든 마찬가지!’

새삼 치미는 분노에 최준후는 이가는 숨을 흘려냈다.이것이야말로 지옥이다.대한민국 모든 곳에서 이종들이 출현하고 있다.옆집 남자가, 편의점 알바아가씨가, 경찰관이, 딱하고 손가락을 튕긴 순간 괴물이 된 거다.

‘누가? 어떻게?’

과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이종은 화성연구소에서 만든 건데, 저들은 그것과 달라!’

소리치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며 최준후는 헤아리고 더듬었다. 자신이 아는 이종과 이곳의 변이자들이 어떻게 다른가, 저들의 발생배경이 뭔가다. 확실한 차이는 이들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저절로 변한 다는 거다.

‘마치 씨를 심어 놓은 것처럼, 시한장치가 돼 있던 것처럼······!’

그런 현상이다. 간을 보여주듯이 출현하던 이종이 이렇게 한날한시에 터진 둑처럼 출현하고 있다. 아니 이건 해일, 쓰나미라고 해야 할 거다.

‘저!’

최준후는 핸들을 강하게 꺾었다. 상가건물에서 튀어나온 괴물을 피해서다. 놈은 일톤탑차를 우그러뜨리며 점프했다. 놈이 나온 상가는 폭발했다.폭발풍의 힘에 밀리며 골목을 질주한 최준후는 연속적인 폭발음을 들었다. 도시가스의 폭발이다. 여지저기 화염이 솟구친다. 마치 전쟁터 같다.

‘이런!’

골목길과 이면도로도 막혔다.불타는 차들과 건물들로 인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어떻게든 강남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미칠 노릇이다.

‘응?’

폰의 몸부림을 느낀 최준후는 바로 귀에 대고 눈을 치떴다.지금 달려가야 할 목적, 윤미령이 전화했다.다리를 넘어 강북으로 간다고 한다.

‘햇빛보육원.’

그곳으로 가는 거다. 그렇다면 자신도 그곳으로 가야 한다.

“조심해!”

한마디를 던진 최준후는 차를 돌려 거칠게 달려 나갔다.

* * *

신명시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상황이 그래도 나아졌다. 서울처럼 밀집된 지역이 아니라서 도로 사정은 훨씬 좋다. 그래도 여기저기 아비규환이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안타길 잘했어.’

오른쪽을 힐긋 본 윤미령은 불타는 교각 위 차량들을 눈에 넣고 입술을 물었다. 서울과 신명시를 이어주는 자동차전용도로, 저곳은 항시 차량들이 넘치는 곳이다. 그래선지 괴물로 인한 피해도 가장 심해 보인다.

“제발······!”

안타까운 바람을 신음처럼 내며 윤미령은 속도를 더 높였다.보육원에 전화했는데 아무도 안 받고 있다.아무 일도 없길 바라지만 현실이 그렇질 못하다.이제 곧 도착한다. 제발, 아이들 전부 무사하길 소원한다.

‘하늘님.’

기원을 올리며 윤미령은 마지막 도로를 주파했다.햇빛보육원으로 이르는 외길이 드디어 시작됐다.여름이면 플라타너스가 푸르게 춤추는 길,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다.이 길의 끝에 보육원이 있다. 아이들이 있다.

‘저!’

눈에 들어오는 광경에 경직하며 윤미령은 차를 세웠다. 햇빛보육원 정문과 담장이 사라졌다. 뭐가 이랬을지는 안보고 안 들어도 알 현실이다.

‘이······!’

피나게 입술과 이를 문 윤미령은 경찰차를 뒤졌다. 트렁크에서 찾은 건 삼단봉 하나다. 그걸 움켜잡고 보육원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을 지나는 동안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두려움을 밀어냈다. 부서진 현관 앞에 섰다.

“혜진아.”

작지만 분명한 소리로 윤미령은 불렀다. 최경철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독립해야 할 아이, 황혜진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다시 또 불렀다.

“혜진······”

채 다 부르기 전에 안에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인지한 순간 윤미령은 옆으로 몸을 던졌다. 화끈한 감각에 왼팔에서 피어오른다.

“크워어!”

괴물, 흉측한 맹수의 눈을 붉게 빛내는 괴물이 돌아선다. 저것이 휘두른 칼에 왼팔이 베어졌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이 날 뻔했다. 그런데 큰일은 진행 중이다. 저놈이 다가온다. 기다란 칼을 곤충처럼 비벼댄다.

“크르르르.”

소름끼치는 그릉거림을 내며 다가오는 괴물을 보며 윤미령은 절망을 삼켰다. 그런데 괴물이 휘청한다, 거의 동시에 귀를 파고든 소리는 총성이다.

‘뭐?’

괴물이 돌아서는 순간 윤미령은 봤다. 보육원 밖, 자신이 세운 경찰차 옆에 멈춘 차량이다. 최준후가 상반신만 내밀고 소총을 겨누고 있다.탕, 다시 총성이 울리고 괴물은 무릎을 꺾었다. 정확하게는 무릎 관절이 터져서다. 그 순간 최준후가 차를 달려왔다. 비키라고 소리치고 있다.본능적으로 몸을 굴리며 피한 윤미령은 괴물과 차의 충돌을 봤다.최준후가 차를 달려와 받아버린 거다.괴물은 보육원 벽을 뚫고 들어갔다.최준후는 차문을 박차고 나와 괴물이 뚫고 들어간 곳에 총격을 한다.

투르르르.

연발사격의 총성을 들으며 윤미령은 일어섰다. 그리고 봤다.칼날의 팔 네 개로 안면을 감싸고 튀어나오는 괴물, 최준후를 공격한다. 그렇지만 최준후는 귀신처럼 피하며 반격한다. 그러면서 소리친다.

“아이들을 찾아!”

윤미령은 후드득 정신을 차리고 움직였다. 보육원 건물 안으로 들어가 방방마다 뒤졌다. 괴물이 난입해 파괴한 흔적이 여실하다. 그런데 아이들은 안 보인다. 핏자국 같은 것도 없다. 예감하면서 지하실로 갔다.정신없이 지하실 계단을 내려간 윤미령은 소리쳐 불렀다.

“얘들아! 거기 있니? 혜진아!”

강철 방화문을 두들기던 윤미령은 대답을 들었다.

-원장엄마!

빗장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황예진을 비롯한 아이들이 울며 달려든다.

“그래 미안해······!”

내가 너무 늦게 와서란 말을 오열로 삼키며 윤미령은 현실로 돌아왔다.

“여기서 나가자.”

황혜진이 안고 있던 용진이, 세 살배기를 받아 안고 윤미령은 돌아섰다. 계단을 오르는 그 뒤를 아이들이 두려움에 떨며 따랐다. 그러다 모두가 들었다. 괴물이 내는 괴성, 모두가 얼어붙었다. 하지만 다시 움직였다.

“어서!”

아이들을 독려하며 뒷문으로 나가던 윤미령은 부름을 들었다.

“윤원장.”

멈칫하며 고개를 돌린 윤미령은 최준후를 봤다. 소총을 늘어뜨린 그가 손을 흔든다. 후두득 고개를 흔들어 다시 봤다. 그렇게 깨달았다. 최준후가 괴물을 처치한 거다. 어릴 때부터 수련하던 그만의 무술실력이다.

‘해치웠구나.’

역시 라는 말을 윤미령은 감격으로 삼켰다.새삼 어린 시절의 최준후가 떠오른다.자신이 여덟 살이던 때, 열 살의 사내아이가 보육원에 들어왔다.부모도 모르고 고향도 모르는 아이, 이상한 말만 하던 아이였다.최준후, 오직 이름 하나만 명확히 알던 아이는 매일 무술을 연습했다. 먹고 잘 때 빼고는 그러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말없이 지켜 보셨었다.

“고마워.”

그때처럼 윤미령은 고맙다는 말을 했다. 보육원 딸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공격 받던 학창시절, 일진들의 유희감으로 찍혀 위험했던 날 최준후가 나타났다. 혼자서 열둘이나 되는 애들을 부쉈다.그렇다, 그건 부순 거였다. 최준후는 언제나 상대를 부숴버린다. 그래서 결국 퇴학당했다. 소년원에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들어갔고, 경찰시험에 합격해 형사가 됐다. 아버진 좋아하셨다.

“치울 테니까 애들 데리고 있어.”

돌아서는 최준후를 보며 윤미령은 미소 지었다.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린 건 모르는 채로.

* * *

머리통을 부순 괴물 사체와 부서진 차를 치운 최준후는 주변을 돌아봤다.신명시의 상황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저기 연기가 치솟고 있다.농지와 농장들인 보육원 주변에 비해 역시 도심지역의 피해가 큰 것이다.

‘농장 인부였던 것 같은데.’

해치운 변이자의 정체를 짐작하며 최준후는 농장 쪽을 봤다. 바람이 저편에서 이편으로 불면 지독한 축사냄새를 안겨주던 곳, 인적이 없다. 소들의 울음도 안 들린다. 이유를 물어볼 것 없다. 변이자가 다 죽인 거다.

“후.”

무거운 숨을 내쉰 최준후는 소총에 남은 탄약을 확인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원장실에 모여 있는 윤미령과 열일곱 명의 아이들과 눈을 맞췄다.

“이것 좀 봐.”

윤미령이 책상 위 모니터를 돌린다. tv뉴스다. 다가가 보니 현재 상황이 보인다. 변이자들의 출몰로 인한 피해와 혼란이 생각보다 엄청나다.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한 가운데 군대를 동원하고 있습니다만, 군조차도 변이자들이 속출하는 상황이어서 혼란이, 위험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윤미령은 다른 채널로 변경했다.

-대재앙의 상황입니다. 변이자들의 출몰로 세상이 아비규환에 빠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미국과 영국과 유럽연합을 비롯한 전 지구촌이 변이자들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갑자기 용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이제 세 살, 뭘 느낀 것일까.

-국민여러분은 정부의 방송에 귀기울이면서 안전한 곳을 찾아······

울음은 전염처럼 번졌다. 아이들 전부가 울기 시작했다.

“예들아, 울지 마.”

혜진이가 용진이를 안고 달래는 걸 보며 윤미령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런 윤미령과 아이들의 모습을 눈에 담던 최준후는 중얼거렸다.

“이게 전부가 아니야.”

보육원 밖 하늘은 노을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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