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57화 (158/172)

혹성강호. 157. 또 다른.

157. 또 다른.

왕정역주변은 폐허처럼 변했다. GTX 확정으로 개발호재를 기대하던 현수막들은 다 찢어져 걸레가 됐다. 그 아래 찢어진 사람들 시체도 널렸다.

‘전철이······!’

선로를 이탈한 전철은 역 밖으로 튀어나왔다. 옆 앞 도로로 떨어진 형상이 비현실적이다. 왕정역 앞뒤로 이어진 교각도 무너졌다. 전철차량을 도로 아래로 늘어뜨린 것 같은 저 결과는 사건 당시 상황을 보여준다.

‘기관사는 정차하지 않고 내쳐 달리려 한 거야.’

이종변이자들의 전철 내 출현이다. 전철역 밖의 상황도 마찬가지, 그렇지만 기관사는 왕정역을 지나가지 못했다. 저렇게 모두가 참혹하게 됐다.

‘아파트단지도······’

왕정역에서 도보로 5분이 채 안 걸리는 대형아파트단지, 불바다로 어둠을 밝히고 있다. 어림잡아 오천세대가 넘는 곳이다. 가가호오 불길이 치솟아 나오고 있다. 단지 끝 쪽을 보니 동전체가 파괴된 곳도 있다.

‘경찰이나 군대는······!’

절로 악물리는 이의 힘을 풀려 애쓰며 최준후는 거리를 돌아봤다. 왕정역 인근 주택가 도로에 경찰차들이 보인다. 하나같이 파괴된 모습이다.

‘우선 필요한 것부터.’

현실에 집중하며 최준후는 다시 움직였다. 자신이 이렇게 어둠을 이용해 신명시 도심으로 나온 이유,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서다. 전화와 인터넷이 연결됐다 안됐다 하는 상황, 김일우 국장과도 연락이 끊어졌다.

‘왕정마트.’

기억속의 마트를 향해 최준후는 은밀하고 빠르게 이동했다.멀리서 파괴의 소음들이 들려온다.어둠을 파도처럼 흔드는 저 소리는 사람들이 살려는 몸부림이고 괴물들이 살육을 기뻐하는 소리다.지옥의 세레나데다.

‘차가 괜찮을지 모르겠군.’

보육원 옆 농장에서 타고 온 픽업트럭, 골목길에 세워뒀지만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있으란 보장이 없다. 물론 지금 이 거리를 보건데 살육의 파도가 치고 지나간 것 같다. 하지만 숨어 있는 사람들과 괴물들이 있다.

‘하나씩 해결하자.’

마트와 생필품에 정신을 집중하며 최준후는 이동했다.역을 바라보는 대형오피스텔을 막 지나갔다. 그런데 위에서 검은 그림자가 터져 나온다.정확히 모르겠지만 5층 안팎, 그림자는 도로에 착지해 포효한다.

“크워어!”

이종변이괴물, 팔 네 개를 펼친 놈은 붉은 눈알을 번득이며 돌아본다. 그 순간 귀를 때리는 연속적인 파괴음, 다른 놈들이 튀어나오는 걸 최준후는 인지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았다. 저놈들이 숨어 기다린 거다.

‘이것들이!’

황당한 분노 속에서 최준후는 움직였다.움켜쥔 작두칼로 공격을 받아냈다.농장에서 건초를 썰 때 사용하건 것, 소총은 윤미령에게 주고 이걸 가져왔다.우연한 익숙함, 공장에서도 철판 자르는 작두로 끝장냈었다.쾅, 팟, 불꽃이 피어나는 공방 속에서 최준후는 골목으로 후퇴했다. 여섯이나 되는 놈들을 혼자서 상대할 수 없다. 게다가 한놈당 칼이 네 개다.

‘제길!’

낭패함을 삼키며 물러나던 최준후는 그 순간 도로를 달려오는 차량을 봤다. 그냥 차량이 아니다. 장갑차다. 괴물같이 달려와 기관총을 난사한다.콰르르르릉, 굉음으로 화염을 뿜어내는 장갑차의 공격, 최준후는 몸을 던졌다. 이종변이괴물 여섯 놈이 춤추며 흩어지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허.”

감정을 알 길 없는 숨소리를 흘려낸 최준후, 경직된 눈으로 장갑차를 응시했다. 포탑의 중기관총이 연기를 피워 올리며 멈췄다. 뒷문이 열리고 군인들이 나온다. 꿈틀거리고 있는 괴물들을 향해 최후사격을 한다.총성과 함께 괴물들의 머리통이 부서졌다. 더 이상 움직이는 놈은 없다.

“괜찮습니까?”

중사 계급장을 단 젊은 군인이 다가와 묻는다.

“다행입니다. 사람이 있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발포했다는 소리, 어떻든 괴물 여섯 놈을 해치웠다.그런데 이 순간 의문이 든다.괴물이 된 이들이 전부 남자일까? 여자들도 있지 않나?그럼 놈들이라는 건 아닌데? 그렇지만 괴물 모습은 똑같다.

“군대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겁니까?”

몸을 일으키며 최준후는 그것부터 물었다.중사는 인상을 구기며 대답한다.

“아니요, 엉망진창입니다.”

엉망진창, 그 말에 든 정확한 의미가 뭔가 최준후는 다시 물으려 했다.

“국방부, 합참, 어디도 정상인 곳이 없습니다. 군대의 지휘라인이 사실상 붕괴됐습니다. 개별군부대의 상황은 더 형편없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중사는 거기서 말을 그쳤다. 장갑차 옆에 모여선 군인들 일곱 명, 그들을 돌아본 얼굴이 일그러진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를 참담함이다.

“안전한 곳으로 피하시라는 말밖에 못하겠네요.”

중사는 그 말을 던지고 돌아섰다. 최준후 자신에게 같이 가자는 말도 안한다. 저들이 품은 현실이다. 각자도생, 이 세상에 펼쳐진 지옥이다.그래서 새삼 황당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하루 만에 이렇게 된단 말인가.

‘대한민국의 모든 시스템이 무너졌다고······?’

정치경제사회문화, 대한민국을 이루던 모든 것이 파괴된다, 파괴되고 있다.거짓말 같다.탕하고 출발신호음이 울리자마자 이렇게 된 형국이다.그런데 이건 대한민국만이 아닌 거다.전세계가 동시에 겪는 지옥이다.

“이거 봐요······”

장갑차에 오른 군인들에게 최준후는 뒤늦은 목소리를 다시 던졌다.그 순간 도로에 생긴 밝은 빛덩어리를 보고 경직했다.원형전구가 전류를 산란하는 것 같은 형상, 장갑차는 즉각 반응하며 기관총을 발포했다.어둠을 찢어발기는 중기관총의 포효.대구경탄자들은 이종변이괴물들의 육신을 흩어놓은 것처럼 빗덩어리를 강타했다.그런데 튕겨나간다.눈부신 불꽃을 만들어내며 빛덩어리는 출렁거린다. 그리고 반격한다.푸른 뇌전 한줄기.빛덩어리로부터 터져 나온 그 힘이 장갑차를 터트렸다.

* * *

인상 쓴 얼굴로 윤미령은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정부는 궤멸상태입니다. 청와대와 외교부와 국방부를 비롯한 모든 곳이 무너졌습니다. 괴물들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괴물들은 우리내부에서 생겨났습니다. 이웃들이었습니다.

방송을 하고 있는 이의 목소리엔 참담한 비통이 들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게 무슨 일인지 아는 사람이 업습니다. 분명한 것은 전세계가 동시에 당했다는 겁니다. 종말이 닥쳐온 상황입니다.

종말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윤미령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안전한 곳에서 절대 나오지 마십시오, 물과 먹을 것을 확보하고 가다리십시오. 희망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살아 있는 한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율배반적인 말을 흘려내며 라디오 방송은 끝났다.

‘희망.’

마음속으로 그 말을 곱씹으며 윤미령은 주먹을 쥐었다.

“그래, 살아 있는 한 포기하지 말아야지. 이렇게 무너질 세상이 아니잖아.”

스스로에게 격려하듯 말한 윤미령은 혜진이가 다가오는 기척을 들었다. 원장실 문 앞에서 잠시 머뭇거린 혜진이는 책상 앞으로 다가와 말한다.

“용진이가 열이 더 오르고 있어요.”

지하실로 다시 들어간 아이들, 그중에 가장 어린 용진이는 놀라서 그런지 열이 나고 있다. 상비약이 든 비품실이 파괴돼서 약을 못 먹이고 있다. 그래서 최준후가 어서 돌아와야 한다. 그가 무사하길 바랄뿐이다.

“하아.”

자신도 모르게 큰 한숨을 내쉰 윤미령은 흠칫하며 혜진이를 봤다.이제 열여덟의 소녀 혜진이, 덩치만 어른이지 아직 아이다.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실수했다. 그런데 혜진이 눈에는 다른 슬픔이 들어 있다.

“경철이······”

문 앞에서 머뭇거린 이유다. 최경철의 취후에 대해 묻고 싶었던 거다.

“혜진아.”

슬픔을 억누르며 혜진을 부른 윤미령은 뒷말을 냈다.

“경철이는 이제 우리 곁에 없어.”

눈썹을 가늘데 떨던 혜진은 흠칫했고 윤미령은 계속 말했다.

“그 일은 그냥 일어난 거야. 우리가 지금 겪고 있듯이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야. 경철이를 잊으면 안 되겠지만 우린 지금 우리를 돌봐야 해.”

윤미령은 일어나 혜진의 어깨를 잡았다.

“나 혼자서는 힘들어, 네가 도와줘야 해.”

혜진은 눈물을 떨구며 윤미령의 품에 안겼다.

* * *

오피스텔 현관 안으로 달려 들어간 최준후는 빛덩어리의 정체를 봤다. 푸른 번개를 터트려 장갑차를 한순간에 파괴해 버린 것의 진실한 형상이다. 기어가 돌아가듯이 빛줄기가 돌아가는 속에 있는 존재, 저걸 안다.

‘프락시안!’

경악으로 숨도 쉬지 못한 채 최준후는 부들거렸다.저 존재는 바로 그것이다.최준후 자신이 원래 살던 지구, 그 세상을 침공한 외계종족이다.흉악한 맹수에 성성이를 합친 것 같은 커다란 존재, 분명 그것이다.

‘미친!’

부들거리는 몸을 돌린 최준후는 오피스텔 안쪽으로 뛰었다.프락시안이 눈길을 던진 순간이다.푸른 번개가 날아오는 걸 인지하며 다이빙했다.벽이 터져나갔다.오피스텔 뒤쪽 주택가 골목이 훤히 보인다. 그곳으로 달려갔다.그런데 골목에서 괴물들이 뛰어온다.진퇴양난, 그대로 달려갔다.장도를 내리치는 괴물에게 마주 달려간 취준후는 작두로 받아치며 비껴나갔다. 바로 그 순간 프락시안의 푸른 번개가 날아와 괴물을 강타했다.화르르, 재로 휘날리는 이종변이괴물, 그 흔적이 날리는 자리에 프락시안이 섰다. 끔찍한 울음을 터트린다. 그에 호응하듯 괴물들이 달려온다.

‘이!’

주택가에서 튀어나오는 괴물들을 보며 최준후는 경직했다. 그런데 괴물들은 최준후 자신은 본 척도 안 한다. 프락시안을 향해 달려가 공격한다.

‘뭐!’

무시무시한 접전이 벌어졌다. 푸른 번개를 터트리던 프락시안, 놈의 팔에 장착된 있는 은빛 비구가 연신 번개를 터트린다. 다른 손엔 흉측한 칼이 잡혀 있다. 놈의 형상을 휘감고 돌던 것, 기어가 아니라 톱날이다.

‘미친!’

경악과 충격 속에서 최준후는 전투를 바라봤다.프락시안 한놈과 이종변이괴물 십여놈의 싸움이다.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은 흉악한 전투다.프락시안은 혼자서 십여놈을 처치하고 있다. 죽일 때마다 즐거워한다.

‘저놈들! 정말이구나!’

프락시안들이 얼마나 호전적인지 알고 있다.놈들은 싸우는 걸 좋아하는 종족이다.무조건적인 투쟁, 싸우고 죽이기 위해 사는 놈들이다.저놈들을 눈으로 직접 본 건 지금이 처음이지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프락시안이라니······!’

외계공격설, 그것이 사실로 판명된 순간이다.일본을 시작으로 러시아와 북한에 이르기까지, 그 이변사태는 프락시안들이 만든 것이다.그런데 이종변이괴물은 뭔가?저놈들이 한 짓이라면 저렇게 죽이며 좋아할까?

‘프락시안이니까.’

최준후는 답을 찾았다, 저들이어서다.호전적인 외계종족, 저놈들이니까 저러는 거다.어떻게 한 것이지 모르지만 지구인들을 괴물로 변하게 했다.

‘저렇게 싸우기 위해서, 사냥하기 위해서.’

확신을 이 사이에 문 최준후는 그 순간 등 뒤의 기척을 감지했다.인지한 순간 다가오는 벼락같은 공격, 괴물의 장도를 피해 몸을 돌렸다. 이 순간에 차오르는 분노, 그 밑으로부터의 깨달음으로 작두를 후렸다.환영처럼 괴물의 머리가 날아갔다.귀 위로 반이 잘린 놈은 휘청거리다 쓰러진다.단 일격에 그렇게 만든 작두칼, 자신의 손을 최준후는 응시했다.이십년이 넘게 수련해온 육합도법의 묘리가 이 순간 너울진다.

‘그런가······ 그렇군.’

천천히 돌아선 최준후는 괴물들과 싸우고 있는 프락시안을 향해 걸음을 냈다. 세 걸음 째에 달렸고 이내 질풍이 됐다, 그때 프락시안이 돌아봤다. 놈의 오른 손이 돌아온다. 푸른 번개가 폭발한다. 몸을 날렸다.푸른 번개가 머리는 스치는 순간 최준후는 프락시안의 등 뒤로 지나갔다.

“크아아!”

프락시안은 괴성을 터트리며 휘청거렸다. 등에선 피가 터졌다.

“크워어!”

괴물들이 달려든다. 프락시안은 휘청거리며 반격하려 하지만 허리가 갈라져 주저앉고 만다. 그렇게 만들어 버린 최준후는 차갑게 지켜봤다. 괴물들은 프락시안의 형상을 뜯어내면서 발광한다. 어둠은 출렁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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