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59화 (160/172)

혹성강호. 159. 살아남기.

159. 살아남기.

여명이 밝고 있다. 어둠은 푸르스름한 빛으로 변하며 사위를 드러낸다. 새카만 암흑으로 모든 걸 감춰뒀던 밤,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끔찍하다.

‘죽일 것들······!’

소총을 움켜쥔 최준후는 사방에 널린 괴물들의 흔적 사이를 지나갔다. 보육원 지하실에서 아이들과 숨죽이고 들어야했던 지난밤의 싸움 결과다. 프락시안들이 나타나 이 주변의 괴물들을 소탕하듯이 사냥했다.

‘이들도 원래 사람이었는데······’

참담한 감정이 차올라 최준후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괴물이건 아니건 이 세상의 존재였다. 그런데 프락시안이란 외계침략자들에게 죽는 거다.괴물을 만든 것도 그놈들이다.무엇인가 그렇게 만든 원인이 있다.

‘어떻게 한 거지?’

괴물이 된 사람들, 그들에 대해 아는 거라곤 분노와 원한이다.가슴 깊은 곳에 치유하지 못할 상처를 가진 이들, 분노의 불을 품은 이들이었다.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거의 전부다.세상 사람들 모두 그런 것이 있다.

‘분노와 원한이 원인이라면······’

그걸 에너지로 괴물로 변하게 한 매개체가 있을 거다. 그게 뭔지, 과정이 어떤지를 모른다. 정말로 그런 거라면 사람들 전부가 괴물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은 건······ 원한과 분노의 크기 때문? 다른 조건?’

답답하다, 헤아려지질 않는다. 보육원 아이들이야말로 괴물이 되기 딱 좋은 조건이다. 태어나게 해준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아이들, 저 가슴이 품은 슬픔과 분노는 추측하기 어렵다. 그런데 경철이만 괴물이 됐다.

‘원장엄마의 사랑이 막았다?’

윤미령의 지극한 애정 속에 아이들은 살고 있었다.그 사랑이 아이들의 가슴에 든 슬픔과 분노를 녹여버린 것인지도 모른다.뭔지 모를 괴물화의 침투를 막았다.그러나 그중 한 아이, 최경철은 그렇지 못했다.

‘가정이고 예상이지만······’

떠오르기 시작한 아침 해를 응시하며 최준후는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어젯밤 김일우 국장과의 행운 같은 통화로 현재 상황을 파악했다.국정원은 남산 벙커에 존재한다. 대부분의 시설이 파괴됐지만 살아는 있다.그렇지만 청와대는 사라졌다.서울내의 주요시설과 인물들이 다 그렇다.

‘남태령.’

수방사의 전시작전본부가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군대는 핵심시설과 장비들이 초토화된 상황이라고 한다. 그래도 아직 존재하는 거다.

‘이동을 해야 하나······’

김일우가 준 정보, 왕정터널 안에 피신처가 있다는 거다. 국정원과 군대만 아는 곳이다. 그곳으로 가면 안전하다. 그러나 가는 것이 문제다.

‘열아홉.’

자신과 윤미령, 열일곱의 아이들의 숫자를 생각하며 최준후는 미간에 깊은 골을 그렸다. 시선은 아침 해를 받아 더 참혹한 주변을 더듬는다.

‘이런 일이 반복되겠지.’

프락시안들과 괴물들의 싸움, 그걸 피해 보육원 지하실에 언제까지나 숨어 있을 순 없다. 발각되는 때가 오면 참혹한 결과를 피할 수 없다.

‘이동한다면······’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가는 것이 가장 빠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다. 왕정터널은 서울과 신명시의 경계를 만든 왕정산에 있다. 산을 뚫은 자동차전용도로에 있는 거다. 거길 가자면 도심부를 가로질러야 한다.

‘차 소리를 듣거나 이동광경을 포착한 괴물들의 공격을 피할 수 없어.’

아이들을 다 태우자면 미니버스여야 한다. 학원차량들이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이동은 다른 문제다. 소리 없이, 보이지 않게 가야 한다.

‘역시 도보밖에 없나.’

찌푸린 미간을 손가락으로 눌러 펴며 최준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윤미령이 나왔다. 경직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레 다가온다.

“뭐해?”“음.”

뭐하는지 몰라서 묻는 물음이 아니고 대답역시 그렇다. 지난밤의 두려웠던 시간 후로 위험이 아직 상존하는지 살피는 거고 대답은 없다이다.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가자.”

최준후가 다시 입을 열자마자 나온 윤미령의 대답.

“여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잖아.”

그러니까 고민하지 말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자는 말, 윤미령의 눈은 단호하게 빛을 낸다. 최준후가 뭘 생각하는지 고민하는 지 다 알고 있다.

“그래도 군대가 아직 건재하다는 게 다행이야.”

미소 짓는 윤미령의 눈을 응시한 최준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건재라는 말을 쓴 윤미령의 마음만 더듬었다.군대는 정말로 건재한 것인가, 아니다.그렇지만 그렇길 바라는 거다. 이 거짓 같은 현실을 벗어나길.

“애들한테는 말해놨어. 준비 중이야.”

이어 나온 윤미령의 침착한 목소리에 최준후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가 있을 때 움직이는 게 좋겠어.”

해를 보며 최준후는 독백처럼 말했다. 어둠을 밀어내고 광명을 뿌리는 저 태양, 저것의 가호를 받아야 한다는 마음이다. 확실한건 모르지만 프락시안들은 밤에 움직였다. 어제 낮에는 그들의 출현이 전혀 없었다.

‘어제 시작된 일이지만.’

겨우 하루다, 그 시간에 세상은 뒤집혔다. 그걸 생각하면 황당한 숨만 떨려 나온다. 그러나 현실, 살 방법을 찾고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프락시안들은 분명 지구 전체를 공격했다. 밤이 돼서야 사냥에 나선 것이다.

‘삼백년 전에도 그랬다고 한 것 같아.’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어 최준후는 가능성을 잡았다.프락시안들이 침공초기에 밤에만 활동했다는 이야기다.그래야 한 이유가 그들의 장비적응이라고 했던 것 같다.보이지 않게 해주는 무기, 그것의 적응이다.

‘프락시안들을 제외하고 괴물들만이라면······!’

멀리 보이는 왕정산을 응시하며 최준후는 경로를 머릿속에 그렸다.왕정터널로 가는 길, 역시 우회밖에 없다.야산지대를 주파해야 한다.아이들에게 무리한 루트가 되겠지만 다른 방법은 없다.이제 가야 한다.

“애들 데리고 나올게.”

돌아선 최준후는 윤미령이 들어가는 걸 바라보며 뜨거운 숨을 삼켰다.

* * *

손을 들어 아이들을 정지시킨 최준후는 전방을 응시했다.작은 공장지대다.염색공장들인 것 같다. 화공약품 냄새가 풍겨온다, 그렇지만 인적이 없다.아이들을 돌아보니 모두가 긴장한 채 웅크려 눈을 빛내고 있다.

‘잘들 해주고 있구나.’

저마다 작은 배낭과 가방을 멘 아이들, 용진이는 웅찬이가 업었다. 그 뒤로 윤미령이 소총을 움켜쥐고 있다. 후미를 책임진 눈동자가 단호하다.

“힘들겠지만 조금만 참고 견디자. 여기만 지나가면 터널이다.”

아이들에게 말한 최준후는 윤미령에게 바로 시선을 던졌다.

“살펴봐야겠어.”

윤미령은 걱정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떠하든 가야할 길, 위험해도 해야 할 일인 거다. 앞의 공장지대를 피해갈 방법은 없다. 우회해도 왕정산으로 접근하자면 도심부를 지나야 한다. 최준후가 가야 한다.

“조심해.”

뒤에서 들려오는 윤미령의 목소리를 들으며 최준후는 전진했다. 왕정산과 이어진 골짜기 분지에 형성된 작은 공장지대, 고요한 적막만 가득하다. 피해갈수 있다면 좋을 텐데, 옆으론 도로공사로 산자락이 절벽이다.

‘마지막 관문.’

여태 잘 왔다. 전진하다 멈춰 살피고 다시 전진하고, 어느새 해는 기울고 있다. 왕정터널은 이제 코앞이다. 이곳만 지나가면 안전해지는 거다.공장지대 앞으로 흐르는 개천가로 최준후는 빠르게 이동했다.폐수 때문에 지독한 악취가 나는 개천은 질퍽거린다.좁은 곳을 넘어가 공장지대로 들어갔다.역시 파괴된 흔적, 이곳에서도 괴물들이 출현이 있었다.

‘감각.’

청각과 시각과 후각에 최준후는 의지를 실었다.내력이라고 할 것도 없는 수준이지만 이십년간 호흡수련을 한 몸이다.프락시안을 만나 한단계 나아가면서 감각도 달라졌다.작은 소리도 흘려듣지 않고 집중했다.

‘음?’

움직임을 멈춘 최준후는 우측을 돌아봤다. 하얗게 표백된 섬유원단들이 쌓여 있는 곳, 천막으로 천장과 벽을 이룬 공장에서 순간 뭔가 빛났다.

‘괴물!’

인지한 순간 벼락처럼 튀어나오는 괴물, 이젠 이종변이자라는 말도 생각 안 나게 하는 존재의 공격을 최준후는 바라봤다. 놈의 살기를 느꼈다.

“육합진천.”

심중에 이 순간 떠오르는 의지를 최준후는 펼쳤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처럼 달려오는 괴물을 향해 마주 나가며 작두칼을 사선으로 갈랐다.짜릿한 감각이 칼을 통해 손에 느껴지고 전신에 퍼지는 순간, 최준후는 칼을 휘돌리며 돌아서 봤다. 자신을 스쳐간 괴물이 둘로 나뉘는 것을.

“후우.”

뒤늦은 호흡을 내쉰 최준후는 바로 돌아섰다.역시 그렇다. 놈들이 달려 나온다.

“와라.”

공장 안에서 튀어나오는 괴물들을 응시하며 최준후는 작두칼을 세웠다.

* * *

조명이 없는 터널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최준후는 전진했다. 터널 안의 뒤집히고 처박힌 차들엔 위험요소가 없었다. 그래도 조심하며 중심부의 철문에 다다랐다. 김일우가 알려준 비밀번호를 누르자 문이 열렸다.

“어서 들어가, 어서.”

아이들과 윤미령을 들여보낸 최준후는 터널 앞뒤를 살피고 철문을 닫았다. 터널 안 설비들을 제어하는 곳이 분명한 공간, 들은 대로 안쪽에 또 다른 철문이 있다. 그 문을 열자 아래로 철사다리가 이어져 있다.선두로 내려간 최준후는 김일우의 말대로 비상시를 위한 안가가 있음을 확인했다. 내려오는 아이들을 받아주고 보니 침실과 화장실을 비롯한 모든 것이 갖춰줘 있다. 식량과 물은 말할 것도 없다. 무전기도 있다.

‘군용인 것 같은데.’

윤미령이 아이들을 건사하는 동안 최준후는 무전기를 살폈다. 이걸로 김일우와 통신이 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위험한 짓이다. 전파를 포착한 프락시안을 불러들이게 된다. 차라리 지금처럼 우연한 연결이 낫다.

‘아직 폰이 터지는 동안은.’

그것도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지만 곧 일거다.

‘생존해 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폰 신호를 발산하겠지······’

그렇기에 프락시안들은 파괴된 이동통신망에 대해선 신경 안 쓸 거다. 그러나 군용무전기에 의한 통신은 다르다. 그러니 이걸 사용함은 무리다.

‘그것들, 그냥 다 즐기는 건지도 몰라.’

프락시안들의 유희다, 이 참혹한 현실이 그렇다. 지구인들이 뭘 할지 지켜보며 웃고 있을 것 같다. 개인이동통신이든 군 무전통신이든, 프락시안들은 개의치 않을 거다. 저희의 막강한 힘 앞에선 다 소용없을 테니까.

“개자식들······!”

이를 갈며 부들거린 최준후는 웅찬이의 시선을 느끼고 표정을 수습했다. 때마침 윤미령이 다가와 웅찬이의 등을 쓸어준다. 웅찬이는 돌아선다.

“다행이야.”

여기까지 무사히 온 것, 윤미령은 미소 지었다. 최준후 자신을 향한 고마움의 표시이고 격려하는 미소다. 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인 거다.

‘계속해서 살아남자면······’

심중의 생각과 감정을 거두고 최준후는 말했다.

“식량이 얼마나 있는지 체크해보자.”“그래.”

최준후는 윤미령을 데리고 식량창고로 이동했다. 그런데 귀에 박히는 소리에 경직했다. 통신기의 잡음, 벼락처럼 돌아보니 용진이가 보인다.

“안 돼!”

소리치며 달려간 최준후는 통신기 전원을 껐다. 놀란 용진이는 울음을 터트렸고, 윤미령은 아이를 안고 달랜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가 놀랐다.

‘으.’

이를 악문 최준후는 용진이가 켰던 통신기를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바로 움직였다. 윤미령이 들었던 소총을 잡고 사다리를 올라갔다. 철문을 나가 터널 밖으로까지 나갔다. 어둠뿐인 터널을 앞뒤로 살피며 움직였다.

‘헉!’

경직한 최준후는 바람처럼 몸을 던졌다. 터널 끝에 건쉽이 나타나서다.

‘프락시안.’

일톤 트럭 밑에서 최준후는 숨을 멈췄다. 건쉽이 터널 안으로 들어온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