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60화 (161/172)

혹성강호. 160. 우리가 한 일.

160. 우리가 한 일.

윤미령은 주저 없이 철문을 닫아걸었다. 내부철문마저 닫아걸고 사다리를 내려갔다. 하지만 채 다 못 내려가고 멈췄다. 입술을 악물고 떨었다. 밖으로 나간 최준후, 그의 생사안위를 도외시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우린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자괴와 슬픔이 가슴을 헤집는다.최준후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그런데 윤미령 자신은 그 위험을 자르기 위해 이런다.물론 최준후가 바라는 바다. 그러나 그 혼자만이 위험 속에 드는 건 옳은가.

‘이!’

참을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힌 윤미령은 숨마저 부들거렸다. 그러나 그 순간 들려온 혜진의 부름, 두려움에 사로잡힌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원장 엄마······”

뒤돌아보며 사다리를 마저 내려온 윤미령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냈다.

“걱정 마, 준후 아저씨가 살펴보고 곧 돌아올 거야.”

혜진이의 뒤로 다가온 웅찬이의 경직한 얼굴을 보고 윤미령은 뭔가 잘못된 걸 깨달았다. 웅찬이는 말없이 눈짓과 움직임으로 상황을 알려줬다.

‘뭐?’

돌아서는 웅찬이를 따라간 윤미령은 터널 안을 비추는 cctv 화면을 봤다. 본 순간 얼어붙었다. 터널 입구에 삼각형의 비행체가 내려앉고 있다.

‘저게!’

최준후가 말했다. 외계인들 침공했다고, 전세계가 놈들에게 당했다고. 처음엔 믿지 않았다. 그렇지만 하루 만에 뒤집혀버린 세상을 겪고 있다.

‘준후씨!’

윤미령은 소리 없이 최준후를 불렀다.비행체는 터널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 * *

트럭 밑에 엎드린 상태로 최준후는 주시했다. 프락시안의 건쉽이 터널 안으로 들어와 내려앉는 광경, 문이 열리고 프락시안놈이 나오는 모습이다.저놈은 근처에 있었다. 용진이가 켠 통신전파를 탐지하고 온 거다.

‘이대로는 안 돼.’

악문 숨을 흘려내며 최준후는 결심했다. 저 놈을 터널 안에서 유인해 나가야 한다. 윤미령과 아이들을 찾아내지 못하도록 끌고 나가야 한다.입 안에서 부득소리가 나온 순간 최준후는 움직였다.트럭 밖으로 굴러나가 일어섰다.갑작스러운 그 움직임을 발견한 프락시안 놈이 멈춰 섰다.팔에 달린 은빛 비구를 보던 놈, 분명 열상장치 같은 게 있을 거다.

“네놈들이 누군지 안다.”

철갑탄이 든 소총을 겨누고 최준후는 가라앉은 목소리를 거듭 던졌다.

“프락시안.”

그 단어가 최준후의 입을 떠난 순간, 프락시안의 눈동자가 섬뜩한 빛을 냈다. 역시 헬멧과 아머를 착용하지 않은 놈, 그만큼 쉽게 여기는 거다. 장비를 완벽하게 착용하지 않아도 위험할 게 없다는 놈들의 판단이다.

“그 이름을 말하는 지구인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

명확한 발음과 어투로 놈이 말했다. 놈의 목에 감겨 있는 은빛 테로부터 나오는 거다. 놈이 저희말로 한 것을 저 장치가 지구의 한국말로 냈다.

“어떻게 알았지?”

맹수의 눈빛을 흘려내며 묻는 놈, 프락시안은 어깨를 꿈틀거린다.

“우리 중의 누군가 말해준거냐?”

거대 고릴라와 같은 육체를 가진 놈들이다. 아니 그보다는 스타워즈 영화의 털북숭이에다 근육갑옷을 플러스 해놓은 것 같은 존재다. 물음을 던진 놈은 바로 인상을 구긴다. 그런 일이 있다면 이란 눈빛이 험악하다.

“설마 우리 동료를 죽였다고?”

멈췄던 걸음을 확 내밀며 뱉는 프락시안의 물음, 아니 흉포한 기세는 은빛 비구에 푸른빛을 물들였다. 저게 뭘 의미하는지 최준후는 알아봤다.

“내가 죽인 게 아니다. 너희가 뿌려놓은 괴물들이 죽였지.”

담대하게 대답하는 최준후를 응시하며 프락시안은 더 이상 걸음을 내진 않았다. 푸른빛으로 물든 비구의 팔을 꿈틀거리며 무서운 눈길만 던진다.

“변이자들에게 당했다?”

믿을 수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반응으로 프락시안은 다시 묻는다.

“정말로, 당한 놈이 있다고? 그놈에게서 들었단 말이냐?”

어떻게? 라는 프락시안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최준후는 대답했다.

“들은 게 아니다.”

그렇다면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는 소리, 프락시안의 눈은 더 험악해진다.

“나랑 놀아보자는 거냐?”

이번엔 은색의 비구가 푸르게 물들지 않았다. 프락시안은 허리에 찬 벨트에서 뭔가를 잡아 뽑았다. 촤르르르 하는 소리로 풀려나오는 건 그거다.

‘톱날.’

프락시안들의 형상을 감싸고 회전하며 안 보이게 해주는 것이다. 손에 잡으면 칼이 되는 무기다. 저것이 명확하게 보인다, 면도날처럼 얇다. 그래서 채찍처럼 여겨진다. 실제로 칼만이 아니라 그렇게 사용할 터다.

“믿고 안 믿고는 자유다.”

한치도 두려움이 없는 기세, 최준후는 담담히 말했다.

“너희가 침공해 왔었다. 세상은 하나로 뭉쳐서 너희를 물리쳤지. 물론 그 중엔 너희의 심장을 갈라버린 대영웅이 두 분 계셨다. 유성대협과 천웅대협, 그들에게 두들겨 맞은 너희는 개처럼 도망쳤지. 알고 있나?”

프락시안의 눈은 혼란과 분노로 번질거린다. 전혀 알지 못하는 눈이다.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프락시안의 눈이 변했다. 흉포한 분노가 아니라 흥미다. 재밌는 걸 발견한 조소다. 지금 들은 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로 여기는 거다.

‘역시 그런가.’

최준후는 짐작을 삼켰다. 마주 선 프락시안의 눈빛과 반응으로 답을 알았다. 저들은 최준후 자신이 살던 세상을 침공한 프락시안이 아닌 거다.다른 세상의 침략자들, 그러나 저들도 역시 지구라는 세상을 침공했다.

‘어떻게 이뤄지는 건지 헤아리지 못할······’

원래 살던 세상에서의 일도 그렇고 이곳의 일도 그렇다. 분명한건 프락시안의 침략이다. 저들이 다르건 같건 그것이 팩트다. 싸워야 한다.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최준후는 현실을 물었다. 괴물이 된 사람들, 그 원인에 대해서다.

“그건 우리가 한 게 아니야.”

프락시안의 끔찍한 얼굴에 미소 같은 게 생겨났다. 맞다, 확실히 미소다.

“너희가 한 거다.”

미간을 찌푸리는 최준후에게 프락시안은 톱날이 변한 칼을 가볍게 겨눈다.

“너희는 세상을 망치고 있었다. 멸망은 정해져 있고 멀지 않았지.”

무슨 소린지 최후는 알아들었다.

‘환경오염, 전쟁.’

지구는 병들어 신음하고 있었다. 극지대가 녹아 영구동토가 드러났다. 전쟁은 단 한순간도 끊이질 않았다. 이 문명화된 세상에서도 야만은 극을 치달았다. 결국 인간세상은 문명이 아니라 야만, 그 속에 있던 거다.

“너희가 뿌린 재앙이 너희에게 돌아온 것뿐이다.”

겨누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프락시안의 칼, 최준후는 긴장한 채 들었다.

“새로운 병이 너희를 휩쓸었지. 너희는 그걸 물리치기 위해 약을 만들었고, 그건 이제까지 없던 종말의 임계점이었다. 거기에 우리가 손을 보탠 것뿐이야. 그래, 비구름에 씨를 넣었지. 너희의 약과 작용하는 씨를.”

최준후는 숨을 멈춘 채 침을 삼켰다.

‘그랬다고?’

명확하게 들은 게 아니지만 알겠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원인이라던 가설이 맞은 거다. 그걸 막으려 급히 만든 백신을 투약한 인류다. 그 위로 프락시안이 변이자의 씨앗을 파종했다. 비, 사람들이 마시는 물인 거다.

“개별차이가 생겨나는 건 당연하고 개의치 않을 결론이지.”

프락시안은 흉악한 이를 드러내고 미소 짓는다. 누군 괴물이 되고 누군 아니고, 그게 백신접종유무에 의한 것이든 타고난 유전자 차이에 의한 것이든 결과가 그러할 것이 당연했고 상관없단 거다. 사냥만 하면 되니까.

‘아니, 그 결과엔 다른 것이 있어.’

원한과 분노, 인간의 내면에 있는 그것과 괴물의 씨앗은 결합했다.

“우리를 안다면 네가 어떻게 될 지도 알겠구나?”

프락시안의 흉악한 미소는 소리 없는 웃음으로 커졌다.

“사냥.”

그 말을 흘려낸 최준후는 마지막 물음을 던졌다.

“너희는 그것만을 위해 사는 족속이냐?”

프락시안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흉포한 살기가 들어찬다.

“그거 말고······ 할 게 뭐가 있지?”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프락시안은 움직였다. 그 찰나에 최준후는 몸을 날렸다, 서 있던 자리가 갈라지는 걸 터널 벽을 차고 휘돌며 봤다. 승용차 지붕에 착지했다가 점프한순간 터져온 칼빛이 승용차를 동강내다.

‘미친!’

분노와 놀람 속에서 최준후는 정신없이 움직였다.간발의 차이로 스쳐가는 프락시안의 톱날 칼은 모든 걸 갈랐다.터널 안 차량들을 토막 내고 벽과 바닥을 가른다.그 기세에 몰린 최준후는 렉카 뒤로 넘어 굴렀다.섬뜩한 가름이 곁을 스치는 찰나, 도약하며 몸을 돌리고 소총을 발사했다.투르르륵, 철갑탄의 섬광을 프락시안의 눈동자에 꽂아 넣었다.그러나 놈의 톱날 칼이 펼쳐지며 회전막을 형성했고, 총탄은 튕겨나갔다.

* * *

‘제발!’

윤미령은 온몸을 부들거리며 화면을 응시했다. 최준후가 괴물 같은 외계인과 싸우고 있다. 보는 것도 무서워 떨리지만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죽지 마!’

최준후에게 마음으로 소리치며 윤미령은 뒤를 돌아봤다. 웅찬이와 혜진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간 방, 말한 대로 아무도 안 나오고 있다.

‘준후씨······!’

눈물을 흘리고 떨면서도 윤미령은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저 무서운 외계인, 악몽이라고 해야 할 존재를 상대로 최준후는 싸우고 있다. 터널 밖으로 유인해 나가고 있다. 저러는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다.

‘아아, 하늘님······!’

두 손을 모아잡고 윤미령은 간절하게 기원했다.

* * *

뒤집힌 suv를 차고 도약한 최준후는 터널 출구를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프락시안 놈이 들어온 반대방향, 중간의 은신처 출입구도 지나왔다.

‘거의 다 됐어!’

이제 놈을 터널 밖으로 끌어낼 것이다. 그렇지만 처치할 방법이 없다.

‘죽일 놈이!’

프락시안은 이제 칼을 휘두르지 않고 푸른 번개를 발사하고 있다. 오른 팔에 찬 은빛금속재질의 비구, 푸른 번개가 차량들을 먼지로 만든다.몸을 던진 최준후는 어깨를 스쳐간 푸른 번개를 느끼며 소름을 삼켰다. 그렇지만 끝내 나왔다. 터널 밖의 밝음 아래를 달렸다. 하지만 해가 저물어 간다. 프락시안은 광견처럼 쫓아온다. 이대로는 곧 죽을 것이다.

‘방법을 찾아야 해!’

결사적으로 달리던 최준후는 폭음을 들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달렸다. 그런데 푸른 번개가 멈췄다. 뒤집힌 차 하나를 넘어가 뒤를 돌아봤다.

‘뭐야?’

흰 연기 속의 프락시안 형상이 보인다. 그런데 놈의 톱날 칼이 회전하는 게 여의치 않아 보인다. 쉴드역할로 돌아가는 날이 멈칫 거리고 있다.

‘소화기?’

그것이다. 차량 내에 비치돼 있던 소화기가 터진 거다.프락시안은 그걸 뒤집어썼다.그런데 저런다. 마치 컴퓨터가 렉이 걸린 것처럼 보인다.

‘소화기 분말이 저놈의 장치에 영향을 줬구나!’

어떻게 그런 건지 따질 겨를 없다.최준후는 전력으로 달려갔다.프락시안 놈이 소화기 분무 속에서 눈을 치뜨는 걸 봤다.오른 팔을 겨누는 것도 봤다.그런데 비구는 전류를 파직거릴 뿐 번개를 토해내진 못했다.프락시안이 겨눈 팔 아래로 미끄러진 최준후는 톱날의 칼 사이로 들어갔다.이루를 스틸하고 반동으로 일어나는 주자처럼 일어섰다.그 움직임으로 소총을 놈의 얼굴에 댔다.놈이 반응하는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투르르르륵.남은 탄약을 모조리 퍼부은 최준후는 숨을 내쉬었다.프락시안의 짐승 같은 머리통이 부서져 휘날리는 최후, 놈의 몸이 쓰러진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