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61. 사냥꾼의 시간.
161. 사냥꾼의 시간.
-야전부대들은 개별적인 전투상황입니다. 그렇게 된 현실입니다. 지휘부의 전략을 적응할 수가 없는 겁니다. 현장에서의 판단으로 전투전술을 펼치고 있을 뿐입니다. 그나마도 수방사전시작전본부의 라인이 살아있어서······
통신상대방, 수방사 통신장교의 이야기가 맞다는 걸 김일우는 새삼 절감했다. 국가 지휘부가 사라진 마당이다. 전시통신라인이 겨우 연결돼 이렇게 소통하는 것도 행운이라고 할 현실이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갈까.
“알겠습니다. 상황을 주시하면서 다시 통신하도록 하지요.”
통신을 종료한 김일우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깊고 긴 숨을 내쉬었다. 새삼스레 자신이 들어앉은 이곳, 국정원 지하벙커의 암담함을 곱씹었다.
‘이 상태로 흘러간다면 전멸은 시간문제야.’
수방사에서 전한 야전부대들의 현황은 희망적이지 않다. 엄밀히 절망적이다. 변이자들로 인한 공격에 이젠 외부의 공격으로 죽어가고 있다.
‘외계인이라니······’
어처구니없는 마음에 김일우는 실소를 흘려냈다. 그렇지만 바로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이건 영화나 소설이 아닌 현실이기 때문이다. 삼각형모양의 비행체들이 날고 있다. 푸른 번개를 발사해 재로 만들어 버린다.
‘북한은······’
그들의 준동을 언제나 걱정하고 대비해온 나라가 대한민국이다.그런데 지금 휴전선 어디에서도 그들의 도발징후가 없다.그럴 수가 없는 거다.북한도 괴물이 된 변이자들과 외계인의 공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것이다.
‘평양 주석궁과 주요시설들이 모조리 사라진 순간부터.’
김일우는 등골에 피어나는 소름을 밀어내려 몸을 떨었다. 이 결과는 북한과 대한민국만의 것이 아니어서다. 전세계가, 지구가 당하고 있다. 한날한시에 방아쇠를 당긴 것처럼 뒤집힌 거다. 강대국은 다 거꾸러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수가 있지?’
해도 해도 또 하게 되는 질문,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김일우는 씹어 삼켰다.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이기는 더욱 힘든 현실, 하지만 겪고 있다.지구는 침략됐다.정체가 뭔지도 모를 외계인과 괴물들의 공격이다.
“국장님!”
통신실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온 부하의 모습에 김일우는 벌떡 일어섰다. 머리에 떠오르는 예감, 저런 얼굴로 소리칠 일이란 한가지뿐인 거다.
“벙커로 진입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즉시 움직인 김일우는 cctv룸으로 들어갔다.파괴된 국정원 내부를 보여주는 화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시체들을 밟으며 움직이는 건 변이자들이다.정확하게 벙커방향으로 이동 중이다. 이곳의 위치를 아는 거다.
“선두의 저 변이자, 외부에 계시던 1국장님이 분명합니다.”
네 개의 칼날 팔을 사마귀처럼 비비며, 불꽃을 피워내며 다가오는 괴물을 김일우는 응시했다. 부하의 말처럼 1국장이다. 늘 자랑하던 것이 목에 있다. 목을 조이는 저건 딸이 첫월급을 타 해줬다는 골드체인이다.
‘끊어지지 않은 게 신기하구나.’
괴물이 된 1국장의 짐승 목을 파고들 것처럼 매여 있다. 어떻게 보면 맹수를 제압하는 목걸이인 것도 같다. 정말로 그런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1국장은 무엇 때문에 저렇게 된 걸까.’
원한과 분노가 원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변이자들의 공통정이 그것임을 최준후형사와 알아냈다. 그런데 그것만이 전부가 아닌 거다. 불을 일으키는 불씨는 그것일지라도 타오를 장작으로 준비된 것이 있음이다.
‘아니 장작은 변이자들의 육신이고, 불씨를 불로 바꿔줄 바람.’
그런 것, 조건들이 있다. 그에 부합한 자들은 괴물이 됐다.
‘저렇게 변이한 이들을 다시 사람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 순간 헛된 생각이 든다. 변이자가 된 1국장, 딸을 보면 혹시 사람의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다. 헛되지만 그런 바람을 품게 된다.
“접근 못하게 대응해.”
김일우는 차갑게 명령했다. 명령은 바로 이행됐다. 벙커외부로 향해 준비된 화기시스템이 작동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화면에 생겨났다.
‘뭐!’
치뜬 눈을 경직한 채 김일우는 그것을 봤다.커다란 근육질의 괴물이다.온 몸이 털로 뒤덮였고 머리는 흉악한 맹수의 형상이다.왼손에 톱날 같은 칼을 들었고 오른손은 은빛의 금속비구를 착용했다.저건 또 뭔가.
‘변이자가 아니야! 외계인이야!’
외계인의 정체, 정확한 모습, 보고 깨닫는 순간 싸움이 시작됐다. 변이자들이 공격을 개시했다. 태연하게 걸음을 내던 외계인은 칼을 휘두른다.
‘저!’
김일우는 얼어붙었다. 외계인이 가볍게 휘두른 칼이 고무줄처럼 늘어나 변이자의 머릴 갈랐다. 반만 남은 머리로 휘청거리는 존재, 1국장을 향해 외계인이 오른 팔을 겨눈다. 푸른 번개가 터졌고, 1국장은 흩어졌다.
* * *
머리가 박살나버린 프락시안, 자신이 그렇게 만든 결과를 최준후는 새삼스레 바라봤다. 심호흡을 한 후 다가갔다. 제일먼저 오른팔의 비구를 살폈다. 역시 안쪽에 우묵한 부분이 있다. 조심스럽게 그곳에 손을 댔다.철컥, 소리를 내며 비구가 풀렸다. 기억하고 있는 것이 맞았다. 프락시안들이 침공해 왔을 때 사용한 무기, 옛이야기로 흘려들었던 부분이다.
‘역시.’
쾌재를 삼키며 최준후는 비구를 빼 들었다. 커다란 그것을 오른팔에 댔다. 우묵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만지자 촤륵 하며 팔에 감겨 착용됐다.
‘이런 느낌이구나.’
프락시안이 팔에 찼던 것과 같지만 크기가 달라진 최준후 자신의 무기다.
‘발사는 어떻게 하지?’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비구의 은빛 표면이 푸르게 물들었다. 앗, 하는 반응으로 최준후는 중지라는 생각을 했다. 비구는 바로 은빛으로 돌아갔다.
‘후.’
안도를 속으로 내쉰 최준후는 주변을 다시 살폈다.다른 프락시안은 역시 없는 것이 확실하다.이놈들은 호전적인 만큼 오만하다, 혼자서 사냥하는 거다.그런 부분이 행운이다. 다른 놈이 있었다면 이결과는 없다.
‘이건······’
톱날의 칼, 면도날 같은 칼날은 바닥에 늘어져 있다. 프락시안의 형상을 감싸고돌며 방어막을 만들고 빛을 굴절해 안 보이게까지 하는 무기다.
‘저게 손잡이구니.’
채찍의 자루처럼 생긴 부분을 최준후는 잡았다. 그 순간 짜릿한 전류 같은 게 뇌리를 관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즉각적인 반응으로 칼로 변했다.
‘단도를 생각했더니.’
잡는 순간 휴대가 편한 그런 거였으면 하고 생각했다.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 그냥 떠올린 거였다. 그런데 정확하게 그 형태로 변화했다.
“허.”
감탄을 숨으로 내쉰 최준후는 프락시안의 목에 걸린 은테를 응시했다. 대화가 가능하도록 한 게 저것이었다. 이음매를 찾아 손대자 풀린다.
‘이걸 목에 차면······’
기분 나쁜 생각을 밀어낸 최준후는 목에 댔다. 역시 비구처럼 변환 착용됐다. 착용결과로 머리에 떠오르는 건 건쉽과의 거리와 안전상태다.
‘그렇구나.’
다시 감탄과 흥분을 음미한 최준후는 그 순간을 곱씹었다. 프락시안이 멈칫거리던 순간이다. 차량 안 소화기가 터져 그 분말을 뒤집어썼다.
‘그렇다고 그렇게 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결과가 그렇다. 프락시안의 장비가 렉이 걸린 것처럼 됐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공격한 것이 생사를 구분 지었다.
‘사체를 이대로 두는 건 위험해.’
프락시안의 머리 없는 시신을 다시 응시한 최준후는 오른 팔을 겨눴다. 발사라고 생각하자 푸른 번개라 터졌고, 프락시안은 먼지로 번해버렸다.
‘됐어.’
주변의 정황을 다시 확인하고 살핀 최준후는 터널을 향해 달려갔다. 중간지점을 지나 터널 반대까지 달려가 건쉽 앞에 멈췄다. 프락시안이 내린 출구를 찾아보지만 역시 보이지 않는다. 열려 라고 생각하자 열린다.
‘죽이는군.’
건쉽 안에 들어간 최준후는 조종석에 앉았다. 비구와 은테처럼 저절로 크기와 형태가 맞춰진다. 눈앞에는 홀로그램 같은 화면이 떠올랐고, 뭐가 뭔지 머릿속에 다 들어온다. 그런데 그냥 생각만으로 건쉽은 떠올랐다.
‘터널 중앙으로.’
스르르 떠오른 건쉽은 천천히 날아 터널 중앙부에 내려앉았다. 전복되고 파괴된 차량들로 인해 터널 앞뒤에선 잘 보이지 않는 위치다. 출구를 열고 나가가자 문은 바로 다시 닫혔다. 아무리 봐도 흔적이 안 보인다.
‘좋아.’
뭔지 모를 흡족함을 안고 돌아선 최준후는 철문 앞에 서서 두들겼다.
“윤원장, 미령아, 나다, 문 열어.”
* * *
cctv화면만 보고 있던 윤미령은 흠칫하며 눈을 치떴다. 최준후가 터널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철문을 지나쳐 반대쪽으로 달려간다.뭣 때문인지 의문을 느낄 새 없이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를 드렸다.
‘하늘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외계인의 비행체를 끌어 왔다. 타고 날아왔다. 터널 중앙에 내려앉히더니 그 안에서 나온다. 저렇게 할 수 있는 건 외계인을 물리친 거다. 괴물들에 이어 그 일까지 해낸 거다. 최준후란 남자가 또 해냈다.
-문 열어!
최준후의 외침에 반응한 윤미령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 * *
경악의 충격 속에서 김일우는 이해했다.외계인, 저 무시무시한 형상의 존재는 싸움을 즐기고 있다.변이자들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하고 막아내며 하나씩 죽인다.괴이한 칼과 푸른 번개의 공격 속에 하나둘 흩어진다.
‘저런 무기를 가진 놈들······!’
삼각형 모양의 전투비행체를 타고 다니는 놈들, 푸른 번개 같은 저 광선 무기에 맞으면 대상은 먼지처럼 흩어진다. 저런 무기를 놈들은 지녔다.어딘가에 저놈들의 모함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지상을 공격한 거다.
‘일본과 러시아와 북한, 그리고 전세계를······!’
진저리를 친 김일우는 눈앞의 현실로 돌아왔다. 어느새 외계인이 변이자들을 다 해치웠다. 놈은 느긋함을 즐기는 것 같은 움직임으로 다가온다.
‘우리!’
벙커 안의 사냥감을 노리는 거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
“발포해!”
김일우가 외쳤고 반격은 시작됐다. 벙커외부로 육연장 벌컨 포신이 돌출해 탄자를 뿜었다. 맹렬한 회전 속에 터트리는 불벼락이다. 그런데 외계인은 그대로다. 놈의 톱날 칼이 회전하며 만든 보호막에 다 튕겨나간다.
‘미친!’
김일우가 눈을 치뜨는 순간 외계인으로부터 푸른 번개가 터져 나왔다.
* * *
윤미령과 아이들의 반가운 얼굴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던 최준후는 갑자기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자신이 알아낸 걸 전해야 한단 생각이다.
‘알려줘야 해!’
어금니를 악문 최준후는 윤미령의 당황한 시선 속에 다시 밖으로 나갔다. 사다리를 오르고 내부 철문을 지나 외부철문을 닫고 터널 밖으로 달려갔다. 손에 쥔 폰에 안테나가 뜨는 걸 보면서, 제발 연결되기를 바랐다.
‘연결돼야 해!’
간절한 마음으로 김일우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결이 되질 않는다. 산을 넘어가는 태양의 마지막 자취를 노려보면서 계속 걸었다.
‘제발!’
간절한 마음이 통했다. 김일우 국장이 받았다.
-이봐!
왜 그런지 다급한 외침 같은 목소리다. 최준후는 용건을 바로 소리쳤다.
“외계인들은 프락시안입니다! 그놈들을 상대하는 법을 찾았습니다! 소화기를 터트려야 합니다! 분무가 된 상태에선 그놈들 무기에 렉이 생깁니다!”
통화는 다시 끊어졌다. 제대로 전달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최준후는 계속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불통으로 이어진다.
* * *
‘소화기?’
황당한 마음이지만 김일우는 바로 명령했다.
“소화기를 놈에게 분사해라!”
이미 벙커의 일차게이트가 뚫렸다. 저놈이 푸른 번개를 발사하면 이차게이트는 이무 의미 없다. 놈에게 노출되는 순간 벙커 안 모두가 죽는다.
“소화기 분무와 동시에 집중사격이다!”
소총을 움켜쥔 김일우는 직접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