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63. 진실.
163. 진실.
두 대의 건십은 파괴된 국정원 건물 지하주차장 출구로 들어갔다. 느린 비행은 붕괴된 곳을 피해 차량들 사이에 내려앉았다. 각기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최준후와 김일우, 긴장한 얼굴의 둘은 내부로 들어갔다.벙커에 이르러서야 얼굴은 편 김일우는 부하요원들과 눈길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뒤따르는 최준후를 데리고 소회의실 테이블에 앉았다.
“자세하게 얘기 해 봐,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다급한 물음을 던지는 김일우, 저 심정을 알기에 최준후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우리처럼 프락시안의 침략을 받아 망해버린 세상이 있습니다.”
미간을 찡그리듯 좁히는 김일우의 눈을 응시하며 최준후는 이야기했다. 자신의 이야기, 살던 세상의 이야기, 황당한 거짓 같은 진실을 말했다.긴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김일우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마침내 최준후의 이야기가 끝났고, 듣고 있던 김일우는 참았던 숨을 쉬었다.
“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표정을 수습하지 못하는 김일우다.
“그런 소리를······”
나더러 믿으라는 거야, 라고 말하려던 김일우는 입을 다물었다. 최준후의 저 강렬한 눈빛 때문이고, 외계인에 대해 알고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두 번의 침공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데바족, 그들은 지구에 융화 돼 살았습니다. 그 후 삼백년이 지나 프락시안이 쳐들어 왔습니다. 지구는 망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화성으로 이주했습니다. 이건 진실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해 이야기 한 최준후는 김일우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런······”
김일우는 입술이 떨리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너무나 황당한 이야기여서다.그런데 최준후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그렇긴 한데 정말이라면 최준후는 다른 세상에서 넘어온 존재인 거다. 그렇게 된 원인도 말했다.
‘팔문금벽.’
마교의 대법비기에 가라운이란 존재의 사후에너지가 합해졌다는 것, 그 기운에 휘말렸다는 거다. 최준후 자신도 이 세상으로 넘어오게 된 경위를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다. 정말로 이해 못할 이야기다.
“야수족, 이종족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확인하듯 김일우는 물음을 던졌다. 하지만 이 가슴의 황당함은 여전하다.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대표적인 종족이 타이그란과 라이피언족, 퓨리엔트족과 츄란족, 캐리언 족과 베어족등, 그들을 비롯해서 엘프종족과 괴수들이 사는 세상입니다. 어떤 괴수들인지 말하자면 날을 새야 할 겁니다.”
“데바족이라는 종족은 지구의 핵심주류층으로 살고?”“정확하게는 화성이죠.”
그렇다는 거다, 프락시안의 침공으로 황폐화되고 망가진 지구를 버리고 화성으로 옮겨 갔다는 거다. 괴수들이 날뛰는 세상이 되어서란 거다.그래서 지구에 남겨진 사람들은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이게 무슨 영화 같은······’
영화가 아닌 것이 현재의 현실이다. 몸으로 겪고 있다. 괴물로 변한 존재들을 공격을 받고 있고, 프락시안 외계인과 싸워 죽였다. 그놈의 무기를 확보했고 건쉽도 숨겨 놨다. 그런 명확한 증거들이 심장을 조인다.
“중원무림인들이 나타났다는 건······”
또 한 가지 황당한 부분을 소리 내 말한 김일우는 최준후를 응시했다.
‘이 친구의 무술실력이······’
결과를 믿기 힘들게 괴물들을 해치운 실력자다.그 세상의 것, 중원무림인들로부터 나왔다는 무공이란 거다.그렇다고 말 안했지만 그런 것이다.그런데 이건 정말 황당의 극치다. 중원무림은 또 어디란 말인가.
“우리 역시 헤아리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다시 입을 연 최준후는 담담한 음성을 이어냈다.
“중원무림인들은 두 번에 걸쳐 우리 세상으로 넘어왔습니다. 첫 번째는 육백년 전 데바족 침공 시, 그때엔 백두산이 있던 초전도 연구소의 폭발과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두 번째인 삼백년 전 프락시안 침공 시의 중원무림인들은 짐작도 없습니다. 어쨌든 그들이 왔습니다.”
그렇다는 거다, 중원무림이란 곳은 김일우 자신이 언 듯 떠올리는 중국과는 무관한 세상이란 거다. 육백년 전과 삼백년 전의 그들은 각기 다른 중원무림이란 거다. 그렇지만 그들은 정체성의 근원으로 하나가 됐다.
“유성대협과 중원무림에서 넘어온 천웅대협이 손을 잡고 프락시안을 물리쳤습니다. 그 결과가 없었다면 지구는 완벽하게 망해 사라졌을 겁니다.”
이젠 무의식적으로, 무비판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김일우는 물었다.
“그 유성대협의 아들이, 강흑성이란 사람이 지구의 전란을 막았다고?”
들은 이야기를 복기하듯 하는 김일우의 표정을 응시하며 최준후는 대답했다.
“그분입니다. 그 형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대답 후 최준후는 테이블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팔문금벽의 에너지에 휘말려 이 세상으로 넘어온 후에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다.
‘화성은 그 후로······’
화성은 내전에 휩싸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강력하다. 그들이 지구의 반란을 정벌한다는 명분으로 공격해 왔다면 더 큰 위험에 휘말렸을 터다. 물론 지구에 남은 군부와 강흑성도 가만 안 있겠지만.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묵직한 숨으로 나온 김일우의 목소리에 최준후는 시선을 들었다.
“우리가 사는 이세상이 거의 망했다는 게 핵심이겠지.”
절망의 눈길을 테이블에 고정하는 김일우, 그 입에서 현황이 나온다.
“대한민국의 지도층은 다 사라졌어. 주요시설들은 먼지가 돼서 흩어졌고, 군대는 살아남은 일부만 숨어 있는 상태야, 전세계가 마찬가지겠지.”
김일우처럼 최준후는 황당함을 새삼 삼켰다. 정말 어떻게 이런 결과가 생겨날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자신이 그런데 김일우 같은 사람들이야 말할 것 없다. 프락시안은 일거에 지구를 파국으로 몰아넣었다.
“우선 파악한 내용부터 공유해야겠지.”
의자를 밀고 일어선 김일우는 수방사에 통신을 넣었다. 최준후로부터 파악한 프락시안이란 정체에 대해 알렸다. 그들이 파괴와 살육을 즐기는 호전적인 외계종족이란 것, 영화에서나 나오는 행성 사냥을 한다는 것.
“후, 최형사한테서 들은 이야기들을 돌려서 말하려니 쉽지 않군.”
최준후가 겪은 진실,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할 순 없다. 진위확인이 안되기에 믿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가지를 치고 핵심만 전한 거다.프락시안이란 외계종족의 정체, 그들의 목적과 장비 등에 관한 것이다.
“반격은 어려운 겁니까?”
최준후의 기대 섞인 물음에 김일우는 찌푸린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나도 정확히 모르겠군.”
반격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안 되는 거다. 일단은 무기가 있어야 하고 적이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두 가지 다 파악이 안 되는 거다. 전술핵같은 무기를 사용해야 할 텐데, 운용체계가 무너진 거다.
‘프락시안 놈들, 그런 위험 요소를 사전에 다 제거한 거야.’
어금니를 악문 최준후는 절망을 새삼 삼켰다. 희망이 안 보이는 현실이다. 이대로 라면 프락시안의 사냥감으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아니, 그렇게 죽진 않는다!’
더 지옥 같은 세상에서도 살아남았다. 그건 싸웠기 때문이다. 그래야 한다.
“싸워서 물리쳐야 합니다.”
뜨거운 숨으로 뱉어낸 최준후의 말, 김일우는 시선을 맞추고 이만 악물었다. 그 끝에 대답을 냈다.
“그래야지, 살아 있는 한.”
최준후와 김일우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보며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최준후가 떠나고 난후부터 요동치는 가슴의 불안을 달래고 억누르며 용진이 곁에서 비몽사몽 새벽을 보냈다. 침대에서 일어나 보니 아이들 숨소리가 고르다. 다행히 잘 잠들었다.
‘아침을 준비해야지.’
피곤을 밀어내며 윤미령은 움직였다. 식량창고에서 즉석식품들을 꺼냈다. 쌀이 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는 자신을 피식거리게 된다.
‘이 마당에······’
회의실로 사용하는 방의 테이블에 음식을 차렸다. 기다란 테이블이라 아이들이 다 앉아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접시와 포크등도 넉넉히 있다.
‘여긴 뭐하려고 만들어 둔 공간일까?’
새삼 의문을 삼키던 윤미령은 회의실 밖 무전기를 응시했다. 용진이가 잘못 건드려 큰일이 날 뻔했던 것, 저것을 보노라니 복잡한 감정이 든다.
‘바깥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장비.’
그런데 사용할 수가 없다. 바깥이 어떤지 알고 싶은데 알 수가 없다.
‘짐작은 하지만······’
아수라장 아비규환 속을 헤쳐 이곳에 왔다.그렇게 답을 안다.소통할 곳이 없다. 소통하려는 것 자체가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다.그래서 슬프다.왜,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 건지, 속 시원하게 듣고 싶다.
‘알 수가 없어.’
최준후도 모른다. 무슨 우주의 조화속인 건지, 아니면 신의 장난이나 징벌인 건지, 인과에 대해 따져볼 길이 없다. 그냥 날벼락처럼 닥친 일이다.아니 어쩌면 프락시안에게서 들었다는 이야기가 맞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인간 세상이 초래한······’
프락시안이 최준후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괴물이 된 인간들은 스스로 그렇게 된 거라는 이야기다.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는 인간들이 초래한 모든 재앙, 그것에 프락시안들은 씨만 뿌렸다는 거다.
“하아.”
절망어린 숨을 내쉰 윤미령은 휘뜩 고개를 들었다. 통신기 옆 모니터들에 뭔가 나타나서다. 후다닥 회의실을 나가 모니터 앞에 붙어 봤다.
‘괴물!’
터널 안으로 그들이 들어오고 있다. 셋이다. 사자의 뒷다리와 같은 다리를 가진 존재들, 그 뒤로는 놀랍게도 차량 한 대가 굴러 들어온다. 터널 중앙까지 느리게 이동해온 그 차의 운전석에서 내린 자는 인간이다.
‘뭐?’
놀란 눈을 치뜬 윤미령은 깨달았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반은 괴물이다. 반만 변이한, 반변자라고 해야겠다. 그가 철문을 바라본다.수상히 여기는 눈길이다. 돌아서더니 차에서 뭔가를 꺼낸다. 폭약이다.
‘저!’
윤미령은 바로 움직였다. 침대 옆에 숨겨둔 프락시안의 비구를 팔에 착용했다. 사다리를 다고 올라가 내부철문을 열고 외부 철문 앞에 섰다.
‘미령아! 할 수 있어! 해 내야 해!’
가슴속으로 외치며 자신을 격려한 윤미령은 철문의 빗장을 풀었다. 그 소리에 분명 놀라며 반응할 바깥의 존재들을 그리며 철문을 확 열었다.역시 놀라며 뒤로 물러나는 존재들, 인간의 얼굴인 반변자가 소리친다.
“죽여!”
곁에 선 괴물들이 벼락처럼 움직이다. 그걸 바라보며 윤미령은 오른 팔을 겨눴다, 발사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외치기 전에 물든 푸름이 터진다.퓟, 용진이가 가지고 놀란 장난감 총의 반동정도다.그걸 느낀 순간 괴물 하나가 흩어졌다.거의 동시에 두 번째 발사가 터져나갔다.먼지로 흩어지는 놈의 곁에서 달려들던 두 놈, 위치가 겹친 그들의 형상이 터졌다.
“헉!”
반변자가 뒤돌아 달린다.차에 올라타려는 그를 향해 달려 나간 윤미령은 비구를 발사했다.푸른 번개가 아찔하게 덮친 형상은 먼지로 터졌다.
“하아.”
뒤늦게 숨을 내쉰 윤미령은 터널 앞뒤를 빠르게 살펴봤다. 반변자가 타고 온 차를 역시 빠르게 확인했다. 소총과 탄약과 폭약류가 상자에 있다.눈을 빛낸 윤미령은 상자를 꺼내 들고 들어가 철문을 닫았다.
* * *
아침이 됐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최준후는 갈등했다. 김일우에게 알려야 할 것은 알렸고 들어야 할 것도 들었다. 한마디로 절망적이다. 그렇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싸울 것을 맹세했다. 그런데 어떻게냐다.
‘여기 웅크려 있는 건 답이 아니야.’
결심한 최준후는 김일우와 이야기했다. 밖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겠다고, 그렇게 방향을 잡아야하겠다고, 그리고 무기를 더 확보하겠다고.만류하고 걱정하는 김일우를 뒤로 하고 최준후는 벙커를 나왔다.지하주차장으로 가보니 건쉽은 그대로 있다. 그런데 안에서 본대로 괴물들이 있다.외부에서 움직이던 놈들, 건쉽 곁에 서서 눈을 번득거리고 있다.
‘총은 다른 놈들을 더 불러들여.’
총소리가 아닌 다른 방법을 생각하며 최준후는 다가갔다. 대형 승용차 뒤에 바싹 붙을 때까지, 바로 뒤에 접근할 때까지 놈들은 눈치 채지 못했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세고 최준후는 비호처럼 도약했다. 승용차를 넘어가며 톱날의 칼을 찔러냈다. 섬광처럼 뻗어나간 칼날은 괴물의 머리통을 뚫었다. 다른 놈들이 반응하는 순간 착지와 더불어 돈 최준후는 육합도를 펼쳤다.맹렬하게 회전하는 팽이와 같은 최준후의 주변에서 괴물들은 휘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