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65화 (166/172)

혹성강호. 165. 세상이 망했다.

165. 세상이 망했다.

“이런 제기랄!”

김일우는 소릴 질렀다. 가슴 속에서 화산처럼 터지는 지금의 이 감정을 주체할 길이 없다. 수방사 전시지휘본부와의 통신이 완전히 끊어졌다.

‘죽일 것들이······!’

부들거리는 분노를 이 악문 숨으로 삼키며 김일우는 최악을 상상했다.수방사에 그나마 존재하던 전력들이 전멸한, 정말로 최악의 최악이다. 그게 아니길 빈다. 단순히 수방사와의 통신선이 끊어진 것이길 바란다.

‘애초에 수방사는 그놈들의 타깃이었어.’

흥분을 밀어내고 냉철함을 잡으려 애쓰며 김일우는 현실을 곱씹었다. 대한민국을 물론이고 전세계의 머리통을 잘라버린 외계인놈들이다. 반격의 거점이 될 시설과 인물들을 지워버리듯이 타격했다. 거기도 그런 데다.

‘여태 버틴 게 행운이었을 지도······’

허탈한 숨을 내쉰 김일우는 통신장비들만 바라봤다. 힘이 사라진 시선은 더 깊은 허무로 가라앉는다. 가슴속의 의지마저 뽑아내는 것 같다.

‘아니, 포기해선 안 돼. 이곳 국정원도, 나도 살아남아 있어.’

다시 어금니를 문 김일우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불룩해진 아랫배의 힘으로 새로운 의지를 품었다.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결과로 전의를 세웠다.

‘최준후, 그 친구처럼 하는 게 맞아, 아니면 죽는 거고.’

싸우는 거다, 살 길을 만드는 거다, 포기하면 죽는 거다.결코 포기 할 수 없다.살아 있는 한 살기 위해 싸우는 거다.그놈들도 죽는 것들이다.최준후가 죽였고 김일우 자신과 부하들도 함께 죽였다.그게 답이다.

‘소화기 분무액, 그 효과가 퍼져나갔어야 하는데.’

수방사와 직전 통화 시에 그 내용을 알렸다. 프락시안이라는 외계인들의 정체, 놈들의 무기와 장비에 대해 파악한 정보, 상대할 방법이다. 소화기 분무가 어떤 작용을 하는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분명한 효과가 있다.

‘살아남아 싸우고 있는 군부대들에게도 내용이 알려졌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 김일우는 돌아 일어섰다. 통신실 밖에서 불안한 시선과 숨을 흘려내고 있는 부하들, 살아남은 국정원직원들에게 말해야 한다. 명확하게 현재 상황을 알리는 거다. 거짓은 절망만 낳는다.

“다들 들어라.”

시선을 모으는 부하들, 쉰두명의 남녀를 향해 김일우는 다시 입을 열었다.

“수방사와의 통신이 끊어졌다.”

소리 내진 않지만 확연한 술렁거림, 김일우는 바로 뒷말을 던졌다.

“맞다! 세상은 망해버렸다!”

버럭 터져 나온 김일우의 목소리에 모두가 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우린 살아 있다!”

경직하는 눈동자들을 싸울 듯이 노려보며 김일우는 거듭 소리쳤다.

“우릴 도와줄 곳은 없다! 아직 살아 있는 곳이 있다면 자기 살기 바쁠 거다! 우릴 살릴 사람은 우리다! 살아 있는 한 싸우고 살 길을 찾는 거다! 절망하지 마라! 그걸 가슴에 품는 순간 이미 반은 죽은 거다!”

김일우는 보는 쉰두명의 눈동자에 각기 다른 빛이 들어찼다. 그 중 하나가 튀어나온다.

“국장님, 가족들을 보러 가고 싶습니다.”

이름도 모를 직원, 삼십대의 남자다. 가늘게 떠는 눈자위에 독기가 어렸다.

“어머니 혼자 계십니다.”

명료한 말, 그래서 가겠다는 소리다. 어머니의 생사안위를 확인하기 위해서, 세상이 망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기에 어머니를 찾아가겠단 거다.

“저도 보내주세요.”

두 번째로 튀어나온 부하는 이십대 후반의 여자다. 내근부서의 직원, 강한 눈빛을 흘려내고 있다. 이어내는 말에는 나가야 할 이유가 확고하다.

“약혼자를 찾고 싶어요.”

사랑하는 이,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사람, 죽었는지 살았는지 찾아가겠다는 거다. 이렇게 틀어박혀서 불안과 분노만 삼킬 순 없다는 거다.나가서 죽게 되더라도 간다는 거다.사랑하는 이 옆에서 죽겠단 거다.

“나도 나가고 싶다.”

김일우는 시선을 내렸다. 바닥을 응시하며 잠시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느릿하게 품을 뒤져 지갑을 꺼냈다. 그 안의 사잔 한 장을 꺼냈다.

“내 딸이다.”

환히 웃고 있는 여학생사진에 모두가 시선을 고정했다.

“이제 중2됐다. 그 무서운 중2병의 나이지.”

피식 실소를 흘려낸 김일우는 사진 속의 딸을 응시하며 눈자위를 떨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몰라.”

사진을 잡고 손을 떠는 김일우, 그 모습을 모두가 지켜봤다. 나가겠다고 나선 남녀 직원도, 제각기 같은 마음을 품은 전체가 고개를 숙였다.그렇다, 누구하나 다르지 않다.다 나가고 싶다.그러나 그럴 수 없다.

“세상이 망했으니 모든 게 부질없고 의미 없는 건 아니야.”

나직한 목소리를 내며 김일우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모두를 향해 말했다.

“참고 견디자.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세상은 망한 게 아니다.”

* * *

‘이놈들은 통일된 명령체계가 없는 건가?’

한남동 거리를 지나며 최준후는 그 부분을 생각했다. 프락시안들은 개별사냥을 하지 부대단위로 움직이지 않는다. 해치운 놈들의 결원을 모집단에서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알아도 무시하는 건지 모를 흐름이다.

‘사냥하다 죽는 놈들은 그놈 능력이 그런 거라서 무시한다?’

이 예상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다. 놈들의 능력이나 무장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렇겠다는 생각이다. 이건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다.

‘그런 폭발을 막아내다니······!’

벨트에 착용한 손잡이, 프락시안의 톱날 칼을 새삼 만지며 최준후는 뜨거운 숨을 삼켰다. 건쉽의 폭발로부터 자신을 보호한 결과가 신기할 정도다. 면도날 같은 칼날이 펼쳐져 회전하며 완벽한 쉴드를 만들어냈다.

‘이걸 멈추게 하는 게 소화기분무.’

소총을 잡은 손에 힘을 실은 최준후는 파괴된 상가들을 뒤졌다. 잔해 속에서 소형소화기들을 찾아냈다. 두 개를 허리 뒤로 달고 다시 이동했다.한남동 거리를 벗어나면서 돌아봤다. 처참한 광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상은······’

망했다.그 결과가 보인다. 한남대교를 등지고 선 지금, 오른쪽의 부촌은 잿더미가 됐다.엄청난 고가의 아파트촌도, 부유층의 저택들도 파괴됐다.왼쪽으로 보이는 보광동과 이태원쪽도 마찬가지다. 다 부서졌다.부득 소리 나게 이를 문 최준후는 의문을 품었다. 사람들은 어디로 숨은 것일까다. 전부다 괴물로 변한 것은 아닐 텐데, 생존자들이 궁금하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이나 지하철 같은데 숨은 걸까?’

괴물들의 공격을 피해 숨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공간들이 있다. 하지만 괴물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는 곳이다. 지금도 산 사람들은 도망치고 있고 괴물들은 쫓고 있을 거다. 그리고 그 뒤로 프락시안이 사냥한다.

“후우.”

감정을 몰아내려 깊은 숨을 내쉰 최준후는 다시 움직였다. 한남대교를 향하는 방향으로, 도로를 향해 이동했다. 다리를 타고 강변북로에 들었다. 괴물들의 접근을 피하기 위해 오른 고가도로는 차들의 무덤이다.

‘어?’

서빙고방향으로 이동하던 최준후는 움직임을 멈추고 잠실 쪽을 봤다.높다랗게 존재하는, 어디서나 보이는 랜드마크빌딩이 보인다.그런데 뭔가 이상하다.망원경을 꺼내 보니, 빌딩 한가운데 뚫린 구멍이 휑하다.

‘장난질 하는 것처럼······!’

새삼스러운 분노에 최준후는 어깨를 떨었다. 그렇게 드는 생각은 성남서울공항이다. 그곳은 특전사가 있는 곳인데, 그들은 어떠할지 모르겠다.고개를 세차게 흔든 최준후는 다시 걸음을 냈다.목표는 반포대교를 지나 동작대교다. 거길 넘어가면 현충원, 그곳에 군부대가 있다.그들을 우선 살핀 후에 남태령으로 가는 거다. 경특본부도 있고 수방사가 있다.

‘응?’

빠르게 고가 위를 이동하던 최준후는 움직임을 멈췄다. 신음소리가 들려서다. 전방의 suv가 분명하다. 다른 차들과 얽힌 그 안에서 흘러나온다.즉시 반응하며 움직인 최준후는 차들 위로 올라가 suv 위에 섰다.깨진 썬루프 안으로 보이는 건 피투성이몰골의 여자다.뒷자리엔 어린 남자애가 타고 있다.절명했다. 그 아이를 향해 운전석에 낀 여자가 버둥댄다.한눈에 보이는 전후배경에 최준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그 순간 뭔가 위험한 기운이 엄습했다. 눈을 뜨니 여자가 변이하는 게 보인다.

“크아아!”

여자는 괴성을 지른다. 몸부림치는 눈동자의 혈기가 섬뜩하다. 장도의 팔 네 개가 생겨나는, 삼목울프로 변모하는 과정, 여자의 분노가 느껴진다. 어째서 자신과 아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의 격노와 원한이다.

“크와악!”

흉악한 괴성을 터트리며 여자는 몸을 뺐다. 추돌로 운전석에 끼어버린 몸, 괴물로 변이한 육신으로 차에서 나왔다. 이미 몸을 날린 최준후를 향해 달려든다. 안타까운 마음을 버린 최준후는 톱날 칼을 뻗어냈다.번개처럼 뻗어나간 칼날은 변이자의 목을 잘랐다.머리 없는 육신은 도로에 쓰러졌다. 그런데 일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고가 위아래 여기저기 괴물들이 나타났다.최준후를 발견한 놈들은 미친 듯이 달려든다.

‘제길!’

분노를 씹을 사이 없이 최준후는 달렸다. 앞쪽에서 달려오는 괴물을 가르며 전력으로 질주했다. 고가 아래선 괴물들이 교각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고 있다. 멈춰 놈들에게 소총사격을 가했다. 하지만 다시 달렸다.

‘총성이 더 끌어 모을 뿐이야!’

현재 완전 개방된 공간 속에 있다. 위치를 바꿔 놈들의 추적을 잘라내야 한다.

‘그럴만한 곳이······!’

최준후는 다시 멈췄다. 상공에 프락시안의 건쉽이 나타났기 때문이다.즉각적인 반응으로 몸을 던져 굴렀다. 교각 난간에 반쯤 걸린 트럭 밑에 굴러 들어갔다. 그 직후 건쉽의 사격이 날아왔다. 괴물들을 부순다.푸른 섬광, 헬기의 기총사격처럼 퍼져 나왔다. 그것에 맞은 괴물들은 인형처럼 분해 됐다. 그것만으로 성에 안차는 지 건쉽은 고가도 파괴했다. 그 때문에 트럭이 흔들리며 떨어졌고, 노출된 최준후는 다시 달렸다.

‘밑으로!’

고가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최준후는 미친 듯이 뛰었다.예상대로 프락시안의 건십이 공격해 온다. 괴물들에게 퍼붓던 푸른 섬광의 기총사격이 따라온다. 고가가 구멍 나고 무너진다. 이제 곧 등 뒤다.

‘죽일!’

고가 아래로 몸을 던지며 최준후는 톱날칼의 보호막을 펼쳤다. 허공에서 건쉽의 기총사격을 맞았다. 그 힘에 배구공처럼 아래로 처박혔다. 도로를 까뒤집으며 굴렀다. 하강한 건쉽은 쉬지 않고 공격을 퍼붓는다.눈부신 빛이 터진 것은 그때였다.

‘뭐?’

보호막 속에서 굴러가다 멈춘 최준후는 건쉽이 물러나는 걸 깨달았다.

‘뭐야?’

지금 본 눈부신 빛이 예삿일이 아니란 거다.한강 건너에서 빛이 터졌다.어디쯤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저 빛의 확산이 뭔지는 알겠다.

‘핵!’

그게 터진 거다.상공으로 치솟는 저 버섯구름이 말해 준다.이제야 저것이 터진 건지에 대한 의문과 감정에 섞여 저래도 되는 건가의 두려움이 든다.핵은 종말의 무기다. 드디어 저것이 터진 거다. 또 터진다.

‘하늘!’

구름 위 어디선가에서 터졌다. 핵미사일이 날아가 뭔가를 맞춘 거다. 그게 분명하다는 결과가 보인다. 구름이 흩어진 곳에 거대한 전함이 있다.

‘프락시안의 전함!’

의심할 여지없이 그것이다. 놈들의 건쉽처럼 삼각형의 형상으로 거대하다. 한쪽 귀퉁이에서 화염이 퍼져 나오고 있다. 핵미사일이 격중돼서다.안보이던 저것을 찾아내 핵미사일로 타격했다. 아직 그럴 힘이 있다.

‘그래! 이제부터 제대로 반격하는 거야!’

주먹을 불끈 쥔 최준후는 환호를 삼켰다. 그러다 다른 걸 봤다. 프락시안의 건쉽들이다. 전함에서부터 퍼져 나온 삼각비행체들은 뭔가를 뿌린다.

‘저게······’

눈처럼 흩어져 내려오는 무엇, 그것이 최준후의 머리 위에서도 떨어진다. 녹색의 작은 결정, 5미터 앞에 떨어진 그것이 뭔지 보려고 다가갔다.

‘어!’

놀란 최준후는 물러섰다. 땅에 떨어진 녹색결정이 지면을 파고 들어가서다. 아스팔트 도로를 파고 들어간 그것이 균열을 일으킨다. 땅속에서 뭔가가 퍼져나가는 것처럼 표면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뭔가가 솟아오른다.

‘저건!’

녹색결정이 파고 들어간 자리에서 솟아나오는 것은 나무다. 점점 커진다. 잭과 통나무의 그것처럼 쑥쑥 자란다, 어느새 거대한 나무로 변했다.

“거대수······!”

신음 같은 목소리를 흘려낸 최준후는 거대수를 보며 눈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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