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66화 (167/172)

혹성강호. 166. 거대수.

166. 거대수.

“저거 좀 보셔야겠어요.”

웅찬이의 긴장한 얼굴을 보자마자 윤미령은 바로 모니터 앞으로 이동했다.터널 양쪽을 비추는 화면에 기괴한 광경이 들어 있다.짙푸른 덩굴줄기들이 출구를 뒤덮었다. 안쪽으로 뻗어 들어오고 있다.저게 뭔가.

‘무슨!’

황당한 놀람으로 윤미령은 비구부터 찾아 팔에 착용했다. 그 행동을 본 웅찬이와 혜진이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최준후가 외계인에게서 확보한 무기, 저것을 윤미령이 잡은 현실을 절감해서다. 또 위험이 닥친 거다.

“애들한테 가 있어.”

웅찬이와 혜진이에게 강하게 말한 윤미령은 모니터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러다 돌아보니 웅찬이가 남아 있다. 그 눈을 봤다. 성인에 가까운 유일한 남자, 자신이 해야 할 몫을 할 거라는 의지다. 인정해야 한다.고개를 끄덕인 윤미령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십분 이상 화면만 바라봤다. 하지만 덩굴줄기들이 퍼지는 것 외엔 별다를 게 없다.

“저게 뭘까요?”

어째서, 어떻게 저런 게 터널 안으로 확산해 들어왔는가의 의문.

“글쎄······”

윤미령 자신도 같은 생각과 마음이기에 해줄 말이 없다. 이 황당한 현실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다. 보이니까 보지만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저것도 괴물 같은 걸까요? 식인식물 같은 거요?”

웅찬이의 짐작에 윤미령은 미간을 좁혔다.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터널 안으로 퍼져 들어온 모습을 보니 더욱 가능성이 높다. 식인식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렇게 확산이동을 하는 식물인 거다.

“저런 건 본적도 들은 적도 없어요.”

웅찬이 말대로다. 저런 덩굴 식물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터널 양쪽을 메우듯이 퍼진 걸 안 지 십오 분이 채 안됐다. 그런데 어느새 터널 안에 다 퍼졌다. 지금 보니 별다른 변화는 더 없지만 이 자체가 위험이다.

‘터널을 메워버리면?’

뇌리를 채우는 불안한 생각에 윤미령은 입술을 물었다.만일 저 식물이 터널을 가득 채우게 된다면, 양쪽출구를 막아버린다면 꼼짝 없이 갇힌다.물론 여길 나가 달리 갈 데가 있는 건 아니지만 봉쇄당하는 거다.

‘이대로 있을 순 없어.’

결론을 내린 윤미령은 바로 돌아섰다.

“어쩌시려고요?”

불안과 걱정에 찬 웅찬이에게 미소 지어 보인 윤미령은 출구로 나갔다. 바깥 철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하는데 웅찬이가 소총을 잡고 따라왔다.

“너!”

웅찬이의 눈을 본 윤미령은 직전의 생각을 떠올렸다. 그 결론과 생각으로서 웅찬이를 봤다. 그런데 웅찬이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던진다.

“준후 아저씨가 알려줬어요.”

총 쏘는 법, 그걸 말함이다.웅찬이가 왜 저런 눈동자를 품게 됐는지도 이제 알았다.최준후는 떠나기 전 웅찬이와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눴다.

“탄약이 얼마 없어.”“알아요.”

웅찬이의 대답을 듣고 시선을 던지던 윤미령은 철문을 열었다. 그런데 잘 열리지 않는다. 그 이유가 덩굴이 달라붙어서란 걸 알고 비구를 썼다.푸른 광선을 약하게 발사하며 윤미령은 철문을 열었다. 다시 강력한 출력을 생각하며 철문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터널 안 공기의 신선함에 놀랐다. 마치 수목원에 있는 것 같은, 아니 강원도 깊은 산속처럼 싱그럽다.

‘이거 뭐······?’

황당한 놀람을 삼키며 윤미령은 조심스레 움직였다. 신선한 공기를 뿜어내고 있는 덩굴줄기들은 터널 벽과 천장을 비롯해 모든 곳을 뒤덮었다. 하지만 걱정한 것처럼 출구를 완전히 막고 터널을 메우진 않고 있다.

‘도대체······’

의문을 품은 윤미령은 웅찬이를 돌아보고 철문 앞을 떠나지 말라고 눈짓했다. 꿀꺽 소리가 나게 침을 삼킨 웅찬이는 소총을 옆구리에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윤미령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즉응태세를 갖췄다.웅찬이의 시선을 받으며 윤미령은 터널 출구로 이동했다. 덩굴들이 휘감은 차량들을 지나 터널 밖으로 나갔다. 보이는 광경에 얼어붙으면서다.

‘무슨······!’

나무들, 엄청나게 거대한 나무들이 뒤덮었다.왕정산을 본래 뒤덮고 있는 수목들 위로 거대한 나무들이 생겨났다.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그렇다.이해할 수가 없고 믿을 수도 없는 일이다.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하늘님······!”

아버지가 기원 드리던 존재, 그 이름을 부르며 윤미령은 눈을 떨었다.

* * *

“허.”

달리 지금의 감정과 충격을 표현 할 길 없어 김일우는 비구를 내렸다. 바깥에 이상이 생겼다는 걸 인지하고 직접 나와 살펴본 결과는 황당하다.남산을 거대한 나무들이 뒤덮었다. 저런 나무는 영화에서만 봤다.

“영화 같은 현실이라서냐?”

어처구니없는 자조의 물음을 흘려낸 김일우는 방독면을 고쳐 쓰며 현실에 집중했다.

‘분명 핵이 터졌어.’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한강 이남의 어디선가다. 그리고 저것이 드러났다.하늘 높은 곳에 떠 있는 프락시안의 전함이다.놈들의 건쉽처럼 삼각형이다. 그렇지만 벌떼를 품은 벌집처럼 거대하다. 저것을 맞췄다.

‘미군이야.’

분명하다, 그들이 핵미사일을 날렸다. 한반도에 핵은 없다고 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었던 터, 미군은 그것을 사용했다. 그런데 프락시안의 전함은 데미지가 없다. 연기를 내고는 있지만 멀쩡하다.

‘쉴드를 파괴하지 못했어. 핵폭발을 차단하는 보호라는 게 가능한 건가? 그건 그렇고, 미국에서도, 세계각지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주한미군 쪽과 통신이 이뤄지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새삼 커진다. 그렇지만 그들이 아직 건재하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아니, 희망은 아직.’

주한미군의 전력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른다. 최후의 몸부림으로 핵미사일을 날린 건지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드디어 반격한 거다.

‘이것이 거대수.’

주변을 다시 돌아보며 김일우는 최준후가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그가 살던 세상엔 이런 나무들이 있다고 했다.언제 어떻게 생겨난 건지는 최준후 자신도 정확히 모르지만, 이 나무들이 방사능을 흡수한다고 했다.

‘아직은 몰라,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어.’

경계를 다시 품으며 김일우는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 순간 뭔가가 숲에서 나왔다. 커다란 짐승, 흉포한 눈알을 번득이는 고양이과의 맹수다.

‘저게 뭐야?’

표범이나 퓨마를 확대해놓은 것 같은, 원형의 두 배가 넘는 대형맹수다. 김일우 자신을 보고 유연한 근육질의 몸을 움직이며 다가온다. 그 움직임이 한순간 질주로 변했다. 삽시간에 거리를 좁히고 도약해 온다.

“헛!”

헛바람 소릴 내며 김일우는 몸을 던졌다.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간 놈의 발톱에 하마터면 방독면이 날아갈 뻔했다. 굴러 일어나니 다시 덤빈다.

‘개 같은!’

분노와 두려움의 반작용으로 김일우는 비구를 발사했다. 푸른 벼락은 맹수를 정확하게 강타했다. 공격도약을 하던 놈은 허공에서 먼지가 됐다.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숲에서 다른 짐승들이 달려 나오고 있다.

‘저건 또 뭐야?’

영화에서 본 중형공룡, 무려 여섯 마리가 달려오는 걸 본 김일우는 뒤돌아 달렸다.

* * *

거대수들이 생겨나고 덩굴들이 뒤덮은 세상 속을 최준후는 맹렬히 이동했다. 동작대교에 올라 한강변을 보니 원래 살던 세상이 떠오른다. 그 모습과 다를 바 없게 됐다. 거대수의 수림이 도시를 뒤덮고 숨을 쉰다.

‘방사능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만······’

복잡한 감정을 숨으로 내쉰 최준후는 다시 이동했다. 동작대교를 넘어가 현충원을 살폈다. 군부대는 남아 있지 않았다. 공격당해 흔적만 있다. 그 속에서 수류탄을 찾아냈다. 소형배낭에 이것저것 넣고 돌아섰다.사당방향으로 다시 이동했다. 방배동을 도로로 건너다보는 서래마을을 지나 계속 전진했다. 쑥대밭이 된 주택가와 아파트촌, 백화점이 보인다.

‘이수역.’

4호선 지하철역명을 확인하며 지나가던 최준후는 멈춰 섰다.비명이 들려서다.근원은 지하철 역 안이다.예상했던 대로 생존자들이 피신한 거다.그들을 사냥하기 위해 괴물들이나 프락시안도 들어간, 그런 정황이다.

‘죽일!’

분노를 이에 물고 최준후는 이수역 안으로 내려갔다. 혼자서 이래봐야 사람들을 얼마나 구할 것이며 그게 이 상황에서 의미가 있겠느냐는 생각은 버렸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뭐든 하겠다고 이렇게 나온 거다.

“크웍!”

코너에서 튀어나오는 괴물, 기척을 감지하고 있던 최준후는 톱날 칼을 후렸다. 육합진천의 기세로 펼쳐진 칼날은 괴물의 몸을 사선으로 갈랐다.그렇게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괴물들 사이를 갈라 나갔다.

‘이렇게나 많을 줄은!’

육합도법을 펼치며 최준후는 이를 악물었다. 다시 빠져나가려고 해도 이 난관을 헤쳐야 하는 거다. 그런데 이속에 생존자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것들이 왜?’

더불어 드는 의문, 괴물들이 왜 지하에 숨듯이 몰려 있느냐다.바로 답이 떠오른다.

‘프락시안!’

그놈들의 사냥을 피해서다.

‘그래! 놀아보자!’

괴물들 사이를 가르며 나간 최준후는 등에 맨 소형 배낭 속 수류탄을 꺼냈다. 핀을 뽑고 괴물들을 향해 던졌다. 폭발과 진동이 지하를 흔들었다.

‘보자.’

자욱한 연기를 응시하며 최준후는 전철 안으로 들어갔다. 선로를 이탈해 멈춘 전철 안은 피와 시체로 가득하다. 그 속에서 닥쳐온 변화를 봤다.

‘프락시안.’

역시 나타났다.수류탄 폭발을 인지한 놈이, 인근에 있던 놈이 들어왔다.괴물들과 얽혀 싸운다.살육을 하는 놈의 눈은 광기와 희열로 번득인다.그 광경을 최준후는 숨어서 지켜봤다. 어느새 싸움은 끝나고 있다.

‘저걸 당할 수가 없어.’

푸른 벼락을 발사하는 오른 팔의 비구, 저것의 위력을 감당할 수 없다. 괴물들은 먼지와 재로 흩어져 날린다. 그런 속으로 프락시안 놈은 톱날 칼을 휘두른다. 피가 튀고 살이 갈라지는 느낌에 희열하며 웃는다.

‘죽이자면······!’

이미 해봤지만 프락시안의 아머를 가르진 못한다. 역시 안면뿐이다. 놈이 헬멧을 열고 있는 때가 기회다. 정확하게 미간을 타격해야 죽인다.

‘열어라!’

심중으로 외치며 최준후는 기다렸다.프락시안은 괴물들을 다 처치하고 주변을 살핀다.사당방향을 응시한다.헬멧이 열리고 얼굴이 드러났다.

‘그래!’

최준후는 전율 속에서 기다렸다. 프락시안 놈이 앞으로 지나가기를.그 바람대로 됐다.놈이 사방방향으로 걷는다.부서진 전철 문 앞을 지난다.온힘과 의지를 다해 최준후는 움직였다. 튀어나갔다. 프락시안 놈이 눈을 부릅뜨는 걸 보며, 놈의 비구와 칼이 반응하는 속에서 칼을 뻗었다.퓟, 번개가 작렬하듯 뻗어나간 칼끝은 프락시안의 미간을 뚫었다.

“거······”

부들거리는 경련을 내며 프락시안은 무릎을 꿇었다. 최준후는 칼을 뽑았다. 터져 나간 제 선혈이 바닥을 적신 위로 프락시안 놈은 무너졌다.

“후우.”

뒤늦은 숨을 내쉰 최준후는 비구를 벗겨냈다. 그러다 문득 아머를 생각했다.

‘이것도?’

예감의 강렬함 속에서 최준후는 살폈다. 엎어진 프락시안을 뒤집어 가며 살핀 결과 아머의 벨트 부분이 키임을 알았다. 손가락을 대자 아머가 풀린다. 크기가 줄어들더니 자그마한 백팩처럼 됐다. 그걸 착용했다.

‘엇!’

등에 배낭처럼 맨 후 손가락을 키부분에 대자 아머가 다시 펴졌다. 프락시안이 아닌 최준후 자신의 신체조건에 맞게, 비구처럼 역시 그렇다.

‘정말 무서운 놈들이야.’

새삼 프락시안에 대한 두려움을 되새긴 최준후는 주변을 살폈다. 비명소리의 주인공은 없다. 이미 죽은 거다. 그러나 다른 생존자들이 있다.

‘사당역방향.’

프락시안이 응시하던 그곳으로 최준후는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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