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67화 (168/172)

혹성강호. 167. 터널 속으로.

167. 터널 속으로.

감당하기 힘든 심정을 다스리려 애쓰며 윤미령은 큰 숨을 거듭해서 들이 내쉬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을, 또 다른 변화를 절감했다. 자신처럼 충격을 품은 웅찬이가 옆에 다가왔다. 신음을 내듯 중얼거린다.

“저게 뭔지 알 것 같으세요······?”

불길한 예감, 웅찬이가 보는 곳으로 윤미령은 시선을 바로 돌렸다. 터널 밖으로 이어진 자동차전용도로 우측, 산비탈과 이어진 곳에 그게 있다.

‘뭐!’

토끼다.저건 분명히 토끼가 맞다.그런데 거대하다.거의 황소만하다. 아니 황소 중에서도 특별히 큰 청도 싸움소, 그런 육신을 가진 토끼다.

‘저런 게 있을 리가!’

없는데 있다. 괴물도 마찬가지고 프락시안이란 외계인도 마찬가지다. 이제 나와서 본 저 거대한 나무들도 그렇다. 저런 게 없으리란 게 없는 거다.그게 지금 세상이다. 진저리나게 무섭고 끔찍한, 지옥 같은 현실이다.

“저놈이 움직여요!”

웅찬이의 놀란 반응 속에서 윤미령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했다. 산비탈을 타고 거대 토끼가 내려오고 있어서다. 앞을 막는 작은 나무들을 짧은 앞발로 후려친다. 그러며 소름끼치는 울음을 내는데 이빨이 흉악하다.

“뛰어!”

소리친 윤미령은 돌아서 달렸다. 웅찬이가 미친 듯이 앞서 달리는 뒤로 전력질주 했다. 그러다 돌아보니 거대한 토끼가 터널 안으로 들어왔다.분명히 윤미령 자신과 웅찬이를 노리는 거다. 이건 정말 악몽이다.

‘이대로는!’

입술을 악문 윤미령은 달리던 몸을 멈추고 돌아섰다. 괴수처럼 닥쳐오는 거대한 토끼를 향해 오른 팔 비구를 내밀었다. 그런데 뭔가 더 있다.거대한 토끼의 뒤로 바람처럼 닥쳐온 그림자, 그것이 토끼를 덮쳤다.

‘헉!’

경악으로 숨을 멈춘 윤미령은 그것의 움직임을 봤다.거대한 토끼의 목을 물고 뒹군 커다란 맹수다.잿빛 털이 온몸을 덮은 고양이과의 짐승, 표범이나 퓨마 같다.그런데 크기가 원래 알던 것의 두 배가 넘는다.

‘저게 혹시? 캬이엔?’

저런 짐승에 대해 최준후가 짧게 이야기 했다. 자신이 살던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에, 그곳의 괴수들과 이종족들에 대해 말할 때 있었다.퓨리엔트족이라는 야수족이 부리는 맹수, 저것이 그 형상과 거의 같다.

“원장님!”

웅찬이가 외치는 소리에 현실로 돌아온 윤미령은 터널 반대편을 보고 눈을 치떴다. 거기서도 뭔지 모를 짐승들이 달려 들어오고 있다. 덩굴에 휘감긴 차량들을 획획 뛰어넘어 온다. 그 모습은 흡사 타조인 것 같다.

‘타조 같은 게 아니야!’

두려운 확신을 삼키며 윤미령은 다시 달렸다. 웅찬이가 기다리는 철문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마주 달려오는 짐승들이 뭔지 분명히 봤다.

‘공룡!’

영화에서 본 그런 놈, 무리지어 사냥한다는 흉악한 육식공룡이다.다섯 마리가 지척이다.있는 힘을 다해 철문 안으로 몸을 던졌다.웅찬이는 즉각 철문을 닫았다. 그 위로 공룡들이 부딪쳐 발톱을 그어대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

웅찬이에게 소리치며 윤미령은 내부 철문을 닫았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모니터실에서 상황을 파악했다. 공룡들은 철문에서 떨어져 맹수에게 달려갔다. 거대한 토끼를 물어죽이던 맹수는 포효하며 놈들과 얽혔다.

‘세상에······!’

캬이엔이란 이름으로 짐작되는 맹수와 육식공룡들의 혈투, 무시무시한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대 일이라는 숫자가 결과를 정해 놓았다.맹수는 공룡들에게 처참하게 뜯기고 찢겼다. 공룡들은 만찬을 즐긴다.

‘준후씨······!’

최준후를 마음속으로 부르며 윤미령은 부들거렸다.

* * *

사당역으로 이어진 지하철로엔 냉랭한 적막만이 가득하다. 뒤로 두고 온 이수역처럼 파괴된 전철과 사람들의 최후가 안보여선지 고요하다.그렇지만 느껴진다. 이제 다다르게 될 사당역으로부터 위험이 불어온다.

‘환승역이라서 사람들이 더 많았을 텐데.’

예감을 삼키며 최준후는 걸음을 옮겼다. 그러며 보니 전철 터널 안 여기저기 뿌리가 보인다. 거대수들이 뻗어 내린 뿌리다. 정말로 기괴하다.

‘붕괴하지 않은 게 신기해.’

저런 뿌리들이 파고 내리면 지하구조물들이 견디기 힘들다. 그런데 전철선로가 뻗어나간 터널은 무사하다. 거대수 뿌리는 드릴처럼 들어온 것 같다.

‘지금 모습이면 원래 살던 세상이란 그닥 다를 게 없어.’

참담한 심정을 억누르며 최준후는 계속 걸었다. 거대수가 덮친 이 변화 속에 있을 윤미령과 아이들이 걱정이다. 아무 일 없이 무사해야 할 텐데.그 순간 엄청난 충격이 덮쳐왔다.

‘헉!’

공간이 뒤틀리는 것 같은 충격 속에서 최준후는 쓰러졌다.삽시간에 자욱한 먼지와 뜨거운 열기가 메웠다.몸을 일으키며 보니 터널이 뒤틀렸다.

‘뭐가?’

알지 못하지만 짐작이 간다.지하공간을 이렇게 뒤틀어버린 물리적인 힘이 작용한 거다.엄청난 폭발이다.그런 거라면 이미 터진 그것일 거다.

‘핵.’

확신을 품은 최준후는 이어지는 변화를 봤다.뒤틀린 터널 앞에서부터 찰나에 밀려온 빛이다.혈광과 황금광이 섞인 빛, 혈금광이 닥쳐왔다.

‘이건!’

기억하는 빛, 겪어본 빛이다.최준후 자신이 원래 살던 세상에서 휘말린 빛이다.이 빛으로 인해 이 세상으로 넘어 왔다.그 빛이 지금 생겼다.

“팔문금벽······!”

신음처럼 그 이름을 흘려낸 최준후는 변화를 응시했다. 혈금광이 가운데를 비워내고 있었다. 원래 있던 전철선로의 터널처럼 터널을 만든다.

‘이게······’

기이한 예감을 삼키며 최준후는 걸음을 옮겼다. 혈금광이 만든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또 변화가 이뤄졌다. 터널이 돌며 뒤가 사라진다.

‘앞으로 갈 수밖에 없구나.’

소멸하는 등 뒤에 밀려 최준후는 앞으로 계속 이동했다. 혈금광의 터널은 계속 회전했다. 그 속을 백 걸음 정도 걸어가자 출구가 드러났다.밝은 대낮의 광경, 숲이 보이는 곳이다. 그 곳으로 최준후는 나왔다.

‘사라지는······!’

역시 혈금광의 빛터널은 사라졌다. 그것이 있던 자리는 아무 것도 없는 빈공간이다. 최준후 자신은 생뚱맞은 곳으로 밀려나온 것이다. 이곳이 사당역으로 이어지는 그 세상의 공간이 아니란 것을 분명하게 느낀다.

‘미령아.’

마음속으로 그녀의 이름을 부른 최준후는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었다.또다시 팔문금벽의 조화에 휘말린 거다.윤미령이 사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빛터널에 든 순간 알았지만 홀린 듯 전진했다.

‘원래 살던 세상도 아니야.’

그렇다는 걸 깨달으며 최준후는 고개를 들었다.눈에 들어오는 전경은 숲과 산이다.그야말로 심산유곡 속에 들어온 꼴이다.산정상에 올라가야 알겠지만 도심의 흔적은 안 보인다. 우선 그런 확인부터 해야겠다.

‘높이가 상당해 보이는데.’

가장 높은 산봉오리를 찾아 바라본 최준후는 지체 없이 움직였다. 숲을 헤치며 산 위로 이동했다. 그런데 바람을 타고 피 냄새가 날아온다.

‘응?’

미간을 좁힌 최준후는 피 냄새의 근원을 찾아갔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곳이다. 중앙의 공지에 시체들이 널렸다. 수십 구의 시체다. 그런데 생소한 복장이다. 곁에 떨어져 있는 무기는 칼과 검이다. 싸움이 있었다.

‘뭐야 이건?’

죽은 자들 곁에 선 최준후는 놀람과 예감을 동시에 움켜잡았다. 사극을 촬영하는 현장과도 같은 공간, 죽은 자들의 복장은 하나같이 옛것이다.

‘여기가······’

답을 예감하며 최준후는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중원무림······?”

최준후의 목소리가 흩어지는 그 순간, 숲에서 벼락이 날아왔다.

“윽!”

등에 충격을 받은 최준후는 앞으로 꼬꾸라지듯 쓰러졌다. 시체들 속을 굴러 일어나는데 섬광이 또 날아온다. 가까스로 피하고 보니 화살이다.뒤쪽 소나무를 관통한 검은 화살, 그걸 날린 주인이 숲을 헤쳐 나온다.

“마교의 주구!”

흑색장포를 걸친 사내다. 관운장처럼 수염을 기른 중년인, 흑궁을 겨눴다.

“마공을 연성한 놈이구나!”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무슨 말인지 최준후는 깨달았다. 상대는 자신을 마교인으로 아는 거다. 게다가 방금 전 화살 일격을 등에 맞았는데 무사하다. 프락시안의 아머를 착용하고 있어서지만 상대에겐 마공인 거다.

“오해입니다!”

최준후는 즉각 소리쳐 부인했다. 그 순간 또 깨달았다. 상대와 자신이 의사소통이 되는 이유다. 프락시안읜 장비, 목에 두른 은테로 인해서다.

“헛소리 마라! 나 진천궁 이화는 요설에 현혹되지 않는다!”

진천궁 이화라는 이름과 별호를 밝힌 자, 중년무인의 손에서 시위가 울었다. 섬광 같은, 검은 벼락이라고 해야 할 화살이 날아와 가슴을 강타했다.

‘헉!’

뒤로 굴러간 최준후는 내부로 퍼지는 상대의 내력을 절감했다. 피하기도 힘든 공격이었지만 아머가 몸을 보호해 줄 것이기에 맞았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피할 걸이란 후회가 든다. 내력의 침습이 정말 대단하다.

‘첫 번째 공격을 맞고 멀쩡한 걸 보고······!’

상대는 두 번째 화살에 더 강력한 내력을 실었다. 이게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바위 같은 것은 깨부수고 뚫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요물 같은 놈이로구나!”

이번에도 최준후가 무사한 걸 본 상대, 진천궁 이화는 검을 뽑았다.오척장검, 시린 검광을 토하며 공간을 갈라온다.그 순간 최준후도 움직였다.오른 팔 비구를 겨눈 최준후는 발사를 외쳤다. 마음으로 외친 그 공격은 푸른 벼락이 되어 터져나갔고, 진천궁 이화는 허공을 돌아 물러났다.경악한 눈으로 숲을 돌아본 진천궁 이화를 눈자위를 부들거렸다.

‘이 무슨!’

간발의 차이로 피한 푸른 섬광, 뇌전 같은 마교놈의 공격이 솔숲을 휩쓸었다. 벽뢰가 지나간 자리가 휑하다. 소나무들이 먼지로 변해버렸다.

‘이런 마공이 있다니!’

경악스럽다. 허술하게 판단한 상대는 엄청난 마공의 고수다.

‘오늘이 제삿날이 될 수도 있겠구나······!’

오척장검을 가슴 앞에 세운 진천궁 이화, 그의 눈빛이 변하며 육중하게 가라앉는 걸 최준후는 확인했다. 어떻게든 오해를 풀어야 할 상황이다.

“다시 말하겠습니다. 마교인이 아닙니다. 물론 오해할만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여기 죽어 있는 사람들을 알지 못합니다. 지금 봤습니다.”“비루한 변명을!”

버럭 소리치며 반응한 진천궁 이화는 즉각 냉정을 다시 품었다. 깊은 호흡으로 상대를 응시하며 상황을 더듬었다. 저렇게 부인하는 게 이상하다.

‘무림맹 무인들을 이렇게 도륙한 자가, 저런 마공을 구사하는 자가 왜?’

그제야 눈에 보이는 걸 이화는 확인했다. 시신들에 난 상흔, 죽음의 원인이다. 도검에 의한 최후다. 그런데 상대는 칼이나 검을 지니지 않았다.

‘은빛 갑주를 걸치고 마공장력을 펼치는 것 외엔······’

기괴한 혼란이 차올라 이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순간 최준후가 다시 말했다.

“분명히 말하겠습니다. 이곳에 처음 왔습니다. 지리도 모릅니다. 이 사람들이 왜 여기 죽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더욱이나 마교인이 아닙니다.”

찌푸린 미간에 골을 그리며 이화는 물었다.

“정녕 혼천마교의 악귀가 아니란 말이냐?”“아닙니다.”“그런 네 놈은 누구냐?”“최준후, 그게 이름입니다.”“이름 말고 속한 곳이 어디냔 말이다? 당연히 무림맹은 아닐 테고, 사문이 어디냐?”“그런 건 없습니다.”“뭐라? 지금 나를 희롱하자는 수작이렷다?”

최준후가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진천궁 이화가 벼락처럼 몸을 돌렸다. 오척장검을 섬전으로 그어 내렸다. 그렇게 갈라져 떨어진 것은 혈시다.

“혈마궁 오융······!”

이가는 이화의 목소리, 뱉어낸 이름의 주인이 분명한 자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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