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68. 혼천마교.
168. 혼천마교.
혈의장포를 걸친 중년인이다. 진천궁 이화처럼 대궁을 지닌 자, 피처럼 붉은 혈궁이다. 이화를 응시하며 걸어오는 눈빛에 사이한 미소가 들었다.
‘혼천마교? 혈마궁 오융?’
진천궁 이화라는 중년인이 이가는 소리로 뱉은 이름을 되뇌며 최준후는 상황을 더듬었다. 분명 혼천마교라는 말과 무림맹이란 단어를 들었다.
‘전쟁?’
정마대전의 상황,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그것이다. 원래 살던 세상에서 전복아저씨가 들려주던 옛이야기 중에 있던 내용이다. 두 번에 걸쳐 넘어온 무림인들, 그들은 원래 살던 곳에서 정마대전의 전쟁을 했단 거다.
“진천궁 이화가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구나. 혈마궁 오융님을 대하게 되니 당연지사일터. 오체투지 하고 구명을 청한다면 살길을 열어주마.”
음산하고 거만한 목소리, 혈마궁 오융을 최준후는 흠칫하며 응시했다. 진천궁 이화를 도발하려는 수작이라고 생각되지만, 정말 자신 있는 얼굴이다. 혈마궁이 진천궁을 벌레 잡듯이 잡을 것이라는 확신의 기세다.
“오융······!”
부드득 소릴 내며 이름을 부른 이화가 냉정을 붙잡는다.
“마교의 주구에 불과한 놈이 하늘 높을 줄 모르는 구나. 네놈의 혈마궁이 어른애들 장난감보다 못하다는 건 천하가 다 아는 사실, 그동안 이 어른을 피해 다니며 헐뜯기만 하던 네놈이 오늘은 제 정신이 아닌 게구나.”
뒤에서 욕만 하던 놈이 얼굴을 내밀었으니 미치지 않고서야 제정신이겠냐는 소리.
“명년의 오늘이 네놈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남은 말을 던진 진천궁 이화는 흑궁을 올렸다. 그야말로 벼락같은 솜씨로 화살을 재어 겨눴다. 거의 같은 순간 혈마궁 오융도 혈궁을 겨눴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버럭 분노를 터트린 혈마궁 오융은 최준후를 힐긋 응시하며 뒷말을 뱉는다.
“방수를 곁에 뒀다고 오만방자를 떠는 구나! 그따위를 저어했다면 혼천혈시를 날리지도 않았을 터! 오늘 네놈의 모가지를 따고야 말 터이다!”
황당한 건 최준후다.
‘내가 방수?’
혈마궁 오융이란 인물은 분명 혼천마교의 일원이다. 거의 확실하게 진천궁 이화는 무림맹 인물일 것이다. 배경은 그런데 저들은 둘 다 오해를 하고 있다. 이화는 최준후 자신을 마교인으로, 오융은 무림맹으로다.
‘이게 무슨······’
최준후의 황당함을 무시하듯 둘의 접전이 시작됐다. 흑궁과 혈궁이 동시에 섬전을 터트렸다. 이화의 오융의 중간지점에서 격돌, 충격이 터진다.
‘헛!’
자신도 모르게 놀라며 최준후는 뒤로 물러났다. 겨우 화살의 충돌이건만 무서운 기파가 퍼진다. 그런데 겨우 화살이 아닌 거다. 아름드리나무를 관통하고 바위를 뚫는 화살, 고수의 내력이 실린 무서운 무공이다.
‘허!’
위험하고 무시무시한 격돌을 최준후는 넋을 놓고 바라봤다. 진천궁 이화와 혈마궁 오융이 만들어내는 접전의 광경은 현란하고 위험하다, 바람처럼 움직이며 상대를 향해 화살을 날린다. 화살은 마치 로켓포 같다.
‘이!’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오융의 혈시를 피한 최준후는 서 있던 곳을 돌아봤다. 땅을 파헤친 내력의 기세가 무섭다. 저걸 생각하니 이화의 흑시를 맞은 결과가 새롭다. 아머가 내력의 침습을 어느 정도 막아준 것이다.
‘프락시안의 갑옷을 착용 안했다면 피토하고 죽었겠구나.’
새삼 등골에 이는 소름을 털어내며 최준후는 다시 접전을 응시했다.두 인물은 검과 도를 뽑아 들고 어우러졌다.팽이처럼 돌아가는 격돌, 그런데 한순간 둘이 거리를 벌린다.흑궁과 혈궁이 서로를 향해 터진다.
‘정말 대단하구나······!’
거듭 감탄을 삼키던 최준후는 다른 변화를 감지했다. 솔숲을 헤치고 달려오는 한 무리의 혈의인들이다. 혈마궁 오융의 혈의장포처럼 붉은 복색의 무인들이다. 혈광이 도는 칼을 움켜쥔 자들 수십 명이 공격해 온다.
‘혼천마교.’
그들임을 직감한 최준후는 일순 혼란에 빠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다. 그런데 생각하고 자시고 할 새가 없다. 마인들은 눈앞이다. 혈도를 휘두른다. 피한다고 피하지만 못 피한 공격들이 불꽃을 피워낸다.
‘이런!’
마인들의 공격을 맞고 피하며 정신없이 물러나던 최준후는 한순간 오른 팔을 뻗었다. 갈등하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니다. 자칫하면 죽는다.
‘발사!’
마음속으로 외치자 비구가 푸른 벼락을 터트렸다. 눈부신 그 빛은 공격해오던 혼천마교 무인들의 중앙을 뚫고 나갔다. 무시무시한 결과가 났다.
“크아악!”
혈도를 휘두르던 팔이 먼지로 사라진 자가 비명을 지른다. 상반신이 사라진 자는 하체만 남아 무릎을 꿇는다. 몸의 절반과 머리의 반이 없어진 자는 경련하며 엎어진다. 완전한 먼지가 된 자들은 허공에 날리고 있다.가공할 결과.삼십여 명 중 절반이 사라진 광경에 혈마궁 오융이 물러났다.진천궁 이화도 신형을 날려 물러섰다.둘은 격렬히 눈을 흔든다.
“죽여라!”
처참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마교무인들은 공격을 다시 감행한다. 두려움을 없애는 대법이나 약물로 인한 것, 최준후는 알 길 없이 대응했다. 톱날 칼을 잡고 펼쳤다. 칼날은 남은 자들의 육신을 뚫고 갈라버렸다.
“이!”
충격과 분노의 숨을 토한 자, 혈마궁 오융이 신형을 날리며 소리친다.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천산이 마르지 않는 한 땔감 걱정은 안한다는 것인가, 다음에 볼 때는 반드시 죽이고야 말리라는 원한과 맹세를 남기고 오융은 도주를 택했다.
“그 칼은······”
흔들리는 시선을 감추지 못한 채 중얼거림을 낸 진천궁 이화는 최준후의 눈을 응시했다. 이젠 확실히 마교가 아니란 걸 안 눈, 뜨겁게 묻는다.
“그대는 누구인가?”
* * *
계주산(繫舟山)이란 산이었다. 산서 땅의 동북방으로 길게 뻗은 산맥이라고 할 산이다. 마교의 비의(秘意)가 드러난 곳이라는 거다. 혈금광이 사흘에 걸쳐 산을 뒤덮었는데, 그 때문에 혼천마교가 모여들었다는 거다.
‘사흘간이었다니······’
객잔의 창을 내다보며 최준후는 생각을 더듬었다. 자신이 팔문금벽의 조화에 휘말린 시간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곳에선 혈금광이 사흘이나 나타났다는 거다. 이 차이와 결과에 대해서 헤아림이 어렵다.
‘분명한 건 이곳에도 팔문금벽이 있다는 거.’
진천궁 이화가 들려준 이야기에 의하면 그렇다.혼천마교는 패천개벽신공으로서 천하를 제패하려고 한다는 거다.대법으로서 만든 것이 여덟 개의 기둥, 팔문금벽이다.그런데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천하를 제패하게 해주는 게 아니야, 다른 세상으로 문을 여는 거지.’
혼천마교는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팔문금벽을 발동할 때마다 나타나는 혈금광의 장소에 신교의 주신이 내려주는 비의가 있다고 여긴다.그것으로서 천하를 제패한다는 것, 신교의 광영으로 개벽한다는 거다.
“하아.”
자신도 모르게 큰 한숨을 내쉰 최준후는 새삼 현실의 암담함을 삼켰다. 전혀 다른 세상으로 넘어온 마당,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아니야, 분명한 게 있어.”
눈동자를 빛낸 최준후는 그것을 이에 물었다.
“팔문금벽······!”
그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이 세상으로 오게 했다.그렇다면 갈수도 있을 거다.방법을 찾는 거다.돌아갈 방법, 그것으로서 돌아가는 거다.
‘고향으로!’
어금니를 물던 최준후는 그대로 숨을 멈췄다.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몰라서다. 윤미령이 있는 세상으로인지 본래 가고자 했던 세상으로인지.그 순간 방 밖에서 기척이 다가왔다. 이내 문이 열리고 이화가 들어온다.
“식사는 하셨는가?”
엷은 미소를 지은 얼굴로 이화는 최준후를 살핀다. 혼천마교의 인물이 아니란 것은 알지만 아직 정확한 정체를 모르는 거다. 게다가 고수다. 푸른 장력을 뻗어내면 무시무시한 결과가 나온다. 그런 건 처음 봤다.
“무림맹 회의가 조금 길어졌군.”
양해를 구하듯 말하며 이화는 의자에 앉았다. 자연스레 최준후는 상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이곳까지 오면서 나눈 이야기를 다시 할 시간인 거다.
“자칭 신교라고 하는 마교의 만행으로 세상이 이만저만 혼란스러운 게 아닐세.”
도대체 어디서 살아 왔기에 그런 걸 모르냐는 의문, 그것도 모르는데 계주산에는 무슨 일로 걸음한 것이냐는 의혹을 억누르며 이화는 말했다.
“무림맹 산서지부의 전력이 많이 약해져 있네. 이러한 때에 자네와 같은 인재를 만난 것은 천우신조이지. 보았듯이 마교의 흉악무도함은······”“팔문금벽 때문입니다.”
최준후는 그 말을 뱉어냈다. 이화의 이야기를 자르고 낸 그 말의 의미를 이어냈다.
“그것이 이 세상으로 끌어왔습니다. 예, 제가 살던 곳은 이곳이 아닙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하며 미간 좁히는 이화에게 최준후는 이야기했다.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긴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진천궁 이화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그러나 결론은 하나, 이 황당한 이야기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다.
“허어 이 무슨 해괴한······”“이걸 보십시오.”
최준후는 의자를 밀고 일어서서 아머를 해체했다. 밸트부분에 손가락을 대는 것만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삽시간에 백팩의 형태로 바뀐 것이다.
“헛!”
놀라는 이화에게 최준후는 비구에 대해서도 말했다. 이모든 진실을 말해야 하나, 그로서 위험이 생기는 건 아닐까의 갈등을 밀고 결정했다.
“이것이 프락시안이라는 외계종족의 무기입니다.”
최준후는 망설이지 않고 객잔 벽을 향해 겨누고 발사했다. 푸른 벼락이 찰나에 터져나가 벽을 먼지로 만들었다. 그걸 본 이화는 얼어붙었다.
“무공이 아닙니다. 검이나 도와 같은 병기인 겁니다.”“그, 그, 그것이······”“사용자의 의지로서 사용하는 물건입니다.”“그, 그런 것이, 이, 있다는······”“믿기 힘든 일입니다만, 이렇게 엄연히 존재합니다. 프락시안이란 외계의 종족이 사용하는 무기입니다. 그들이 이 세상으로 침략해 올 겁니다.”
최준후는 확신하는 짐작을 말했다. 자신이 이곳으로 넘어온 인과로 인해서다. 분명히 윤미령이 사는 세상, 자신이 형사로서 살던 그 세상과 연결이 됐다. 이곳의 혼천마교가 팔문금벽을 발동, 그들로 인해 열렸다.
“재앙을 막을 방법은 혼천마교를 치고 팔문금벽을 제어하거나 파괴하는 겁니다만, 지금 당장 그런 결과를 만들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합니다.”
이화는 미간을 미세하게 경련하며 멈췄던 숨을 내쉬었다.
‘혼천마교의 준동과는 격이 다른 재앙이 온다고?’
최준후라는 인물, 눈앞의 젊은 사내가 하는 말의 결론은 그것이다. 거짓 같은 허황된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보고 겪은 것이 진실 되다. 은빛 갑주가 변한 것하며 벽뢰를 터트리는 비구, 저런 물건이 실재함이다.
“혼란스러우시겠지만 제가 드린 이야기는 모두 진실입니다.”
단호한 눈으로 결론을 다시 말하는 최준후, 그 눈을 응시하던 이화는 물었다.
“무엇을, 어찌해야 한다는 것인가?”
최준후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대답했다.
“팔문금벽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한다. 그것을 찾아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아직 결론을 못낸 것이 있다. 어느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가다. 그런데 그걸 선택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물론 짐작은 윤미령의 세상, 그곳과의 연결이다.
‘원래 살던 세상에서 휘말린 것과는 달라.’
이곳은 혼천마교가 팔문금벽을 운용하고 있다. 신교의 주신이 내린 비의를 찾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돌아갈 곳은 그곳, 형사로 살던 세상이다. 그곳엔 윤미령과 아이들이 있다. 최준후 자신이 돌아오길 기다린다.
“우선해야 할 일은 그것입니다만, 필연 일어날 프락시안과의 전쟁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합니다. 무림 전체의 뜻과 의지로서 대응해야 합니다.”이화가 바위 같은 얼굴로 시선을 내리던 그때였다. 북이 요란하게 울린다.
“무림맹이다!”
객관거리의 끝에 위치한 무림맹 산서지부의 북소리, 벽이 뚫린 하늘로 이유가 보인다.
‘혈금광!’
최준후는 눈을 치떴다. 계주산에 그 빛이 또 퍼져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