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69화 (170/172)

혹성강호. 169. 팔문금벽을 찾아서.

169. 팔문금벽을 찾아서.

경공을 전개하며 산을 차고 오르던 이화는 뒤를 돌아봤다. 은빛갑주가 행낭처럼 줄어든 것을 등에 멘 사내, 최준후가 열심히 달려오고 있다.

‘경공의 수준이······’

최준후의 무공 수준은 생각했던 것이 아니다.그 자신의 말대로 무공이 아니라 병기였던 거다. 그것이 생각할수록 황당무계하다.세상의 어떤 무기가 그런 위력을 낸단 말인가?전설의 금강저라면 그럴 것이다.

‘다른 세상······!’

믿기지 않지만 믿지 않을 도리가 없는 이야기, 최준후는 다른 세상에서 월경해 온 존재다. 팔문금벽의 조화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그런데 더 중요하고 황당한 이야기가 있다.이 세상에 올 침략자들이다.

‘프락시안.’

그런 이름의 외계종족이 침공해올 거란 소리다. 갑주와 비구를 기본병기로 가진 자들이라 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인 칼 한 자루를 받았다.

‘이것이······’

허리춤에 착용한 손잡이를 이화는 어루만졌다. 한자가 조금 못되는 크기의 팔각 쇠기둥 같은 것이다. 이것을 잡고 의지를 펼치면 칼이 된다.

‘하아.’

시전했던 기억과 감각을 떠올리며 이화는 복잡한 숨을 내쉬었다.톱날이자 면도날인 도신이 3장이나 되는 길이로 늘어난다.펴지는 속도는 섬전이다.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호신강기처럼 활용된다는 거다.

‘생각만으로.’

이런 무기를 최준후는 이화 자신에게 줬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가 진실임을 말해주는 증거다. 정말로 최준후의 말대로 외계종족이 침략해 올지는 모르겠지만, 마교의 팔문금벽으로 인한 흉사가 생길 것은 확신한다.

‘무림맹에 진실을 알려야 해.’

그러기위해 최준후와 같이 계주산을 오르고 있다. 백 마디 말보다 한번 보고 겪는 것이 확실하다. 함께 움직이는 산서지부가 먼저 보게 하는 거다. 힘들여 설명 안 해도 무림맹 전체가 최준후와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우선 눈앞에 닥친 일부터!’

이화는 흑궁을 움켜잡은 힘을 더해 산을 차며 올라갔다.

안 그래도 따라잡기 힘든데 더 빨리 올라가는 이화를 보며 최준후는 곤혹을 삼켰다. 주변으로는 무림맹 산서지부의 무인들이 비호처럼 달리고 있다. 흑색무복으로 통일된 모습, 가슴엔 무림맹이란 글자를 박아 넣었다.

‘저 정도 한자는 읽을 수 있지만.’

프락시안의 장비가 아니었다면 의사소통도 안 됐을 터다. 놈들을 생각하자 다시 두려운 긴장과 불안한 분노가 솟구친다. 지금 오르는 계주산에 퍼지는 혈금광은 분명 재앙을 가져올 것이다. 프락시안이란 재앙이다.

‘날 끌어 왔듯이 그것들을 끌어들일 거야.’

확신의 예감, 이게 지금 그렇게 흘러가는 판이란 것을 의심치 않는다. 그러니 제대로 돼야 한다. 이 세상의 무림인들을 한데 모아 대적케 해야 한다. 그렇게 돌아가는 거다. 옛날이야기처럼 프락시안과 싸우는 거다.

‘해야 해. 그게 방법이야.’

결의를 숨으로 삼키던 최준후는 산정상 쪽의 변화를 보고 멈춰 섰다.엄청난 혈금광이 하늘로 뻗어 오르고 있다.용오름 같은 기세, 주변으로 확산한다.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괴이, 위험한 변고가 생기고 있다.

‘뭐가······!’

흉악한 접전의 함성과 병장기 소리를 들으며 최준후는 다시 움직였다. 혈금광의 근원이라고 할 산 정상 쪽으로 달려 올라가며 상황을 파악했다.

‘왔구나!’

프락시안, 그들이 왔다.놈들의 비구가 발사하는 푸른 벼락이 번쩍인다.정상 쪽을 등지고 달려 내려오는 자들은 혈의인들, 혼천마교 무인들이다.번쩍하는 순간 먼지로 흩어지는 마교무인들을 보며 최준후는 소리쳤다.

“맞서지 마! 흩어져!”

무림맹 산서지부 무인들은 놀라고 경악하며 주춤거렸다. 그 선두에 진천궁 이화가 있었다. 그를 향해 은빛 갑주로 완전무장한 프락시안이 간다.

‘저!’

프락시안이 푸른 번개를 발사하는 순간 이화가 귀신처럼 움직였다. 서 있던 자리와 소나무가 먼지로 흩어질 때, 이화의 신형은 프락시안의 우측에 있었다. 놈이 놀라며 몸을 돌릴 때 이화의 톱날 칼이 터져나갔다.

“켁!”

아머의 흉갑과 헬멧 사이, 목 앞쪽 연결부위가 비어 있는 위치를 정확히 파고 들어갔다. 프락시안은 주춤거리며 물러났고 이화는 칼을 후렸다.피가 튀며 프락시안의 목이 갈라졌다. 엄청난 선혈을 뿜어낸 놈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모습을 진천궁 이화가 넋 나간 사람처럼 바라본다.

‘과연 무인! 고수!’

감탄하던 최준후는 또 다른 프락시안의 공격을 보고 움직였다. 본능적인 반응으로 달려가며 비구를 겨눴다. 놈이 알아채고 같이 비구를 겨눈다.최준후는 앞으로 몸을 던지며 발사했다. 프락시안이 마주 발사한 푸른 번개가 곁을 스치고 마교무인을 먼지로 흩을 때, 놈의 형상이 터졌다.밀가루 넣은 풍선을 터트린 것처럼 흩어진 프락시안,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 최후를 보며 최준후는 몸을 일으켰다. 이화와 눈빛을 주고받았다.그런데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산정상의 혈금광으로부터 프락시안들이 밀려 나오고 있다.놈들의 공격에 마교도 무림맹도 흩어지고 있다.

“엇!”

하늘을 본 최준후는 얼어붙었다. 하늘을 가르고 비행하는 기체, 프락시안의 건쉽이다. 삼각형의 형상을 정확히 드러낸 기체들이 공격을 해 댄다.계주산을 쑤시며 내리치는 건쉽의 공격 속에서 최준후는 정신없이 뛰었다.

* * *

“죽일 놈들이······!”

부들거리는 격노를 이에 물고 오융은 상대를 응시했다. 팔척이 넘을 것 같은 체구를 가진 놈, 은빛 갑주로 전신을 무장한 적은 마귀와 같다.세상이 신교인들을 일러 마귀라고 하지만 진정한 마귀는 바로 저것이다.

‘금강저와 같은 무기를 가진 놈들.’

정체를 알 길 없는 저 존재들은 무시무시한 병기를 사용한다.

‘그놈도 저런 것을 가졌어.’

진천궁 이화의 방수, 그놈도 벽뢰를 터트렸다. 그 힘에 휘말린 신교의 형제들이 먼지로 흩어졌다. 저렇게 무시무시한 무기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 게다가 기괴한 칼을 가졌다. 채찍처럼 낭창이고 벼락처럼 뻗는다.

‘팔문금벽이 저런 것들을 토해내고 있어······!’

그것이 현재상황의 원인임을 오융은 명확히, 새삼 되새겼다.십만대산에 설치한 신교의 비원이 팔문금벽이다.패천개벽신공을 마침내 해석한 결과다.팔문금벽은 천하 각지로 옮겨 다니는 신이(神異)로서 환희를 안겼다.이적, 주신의 은총을 전하는 기적을 보인 것이다.그 비의를 받기 위해 신교의 형제들은 움직이고 있다.오늘 이곳 계주산에 그 비의가 다시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팔문금벽의 혈금광 안에서 저것들이 몰려 나왔다.

“눈알을 굴리는 걸 보니 살고 싶은 모양이구나?”

소름끼치는 목소리, 짐승의 숨소리로 귀를 파고드는 말에 오융은 소름을 밀어냈다.

“금수 같은 놈이 사람의 말을 하는 구나.”

혈궁을 휘어지게 겨눈 채 오융은 천천히 옆으로 움직였다. 그 움직임을 응시하며 프락시안은 비웃음을 지어낸다. 쉴드가 돌아가고 있는 속에서.

“네놈들은 연결된 세상의 인간들보다 확실히 강하다. 그래서 더 피가 끓지.”

비릿한 비웃음을 터트린 프락시안은 쉴드를 더 빠르게 돌린다.

“그렇지만 우리의 무기와 장비를 당할 순 없다. 그게 너희들의 한계, 최후다.”

오융은 분노로 눈자위를 떨었다. 하지만 저 맹수 같은 존재의 말이 사실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혈마궁이란 별호로 강호에 공포를 주는 존재가 자신이다. 그런데도 저놈들의 저 기이한 호신강기를 파훼하지 못한다.

‘뭔지 모를 소릴 지껄이는 놈, 저런 것이 나타나서 싸우게 될 줄은 정녕 예상치 못했거늘, 이것이 신교의 주신께서 내려주신 비의란 말인가?’

참담함을 삼키던 오융은 벼락처럼 돌아섰다.뒤에서 다른 놈이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혼천혈시를 날렸지만 역시 주춤거리게 할 뿐이다.마주보던 놈이 벽뢰를 날린다. 다급하게 피하며 놈에게도 혈시를 날렸다.

‘죽일놈들이!’

그러고 싶지만 죽이지 못하는 상대들의 협공, 오융은 프락시안들의 벽뢰를 피해 이리저리 신형을 날렸다. 그런데 한순간 허공에 뭔가 떴다.붉은색의 통이다. 생전 처음 보는 물체다. 그것을 흑시가 섬전처럼 강타했다. 그 결과가 퍼진다. 프락시안들 머리 위에서 흰연무가 확산한다.

‘진천궁 이화!’

그를 떠올리며 뒤로 몸을 물린 오융은 희한한 광경을 목도했다.흰연무를 뒤집어쓴 놈들이 당황하고 멈칫거린다.놈들의 형상을 싸고 돌던 호신강기, 기이한 칼날이 돌아가다 멈추다 하고 있다.그때 그들이 왔다.

‘이화! 그자!’

진천궁 이화와 그의 방수, 둘이 칼을 뻗어낸다. 맹수 같은 적들이 사용하는, 호신강기로 펼쳐지는 그 칼이다. 그것이 놈들의 인후를 뚫었다.

* * *

가지고 온 소화기가 이렇게 유용하게 사용될 줄은 정말 몰랐다. 아니 그러기 위해 지녔던 거지만 정말 필요한 때에 제대로 사용했다. 그 덕을 본 혈마궁 오융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다. 손 안의 비구만 보고 있다.

‘이젠 받아들일 때가 됐는데.’

오융을 응시하던 눈을 돌린 최준후는 동굴 밖의 어둠을 바라봤다. 계주산줄기의 골짜기로 내리친 어둠은 달빛과 별빛만 허용하며 칠흑 같다.

“이것 보라고. 아직도 믿지 못하겠나?”

답답한 얼굴의 이화가 입을 열자 오융은 휘뜩 시선을 들었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이화의 얼굴을 보고 동굴 앞의 최준후를 본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내려 비구와 칼자루를 응시한다. 이어서 은빛 갑주도 본다.프락시안을 제거하고 획득한 그들의 장비, 그 위력을 떠나 신이함을 보고 겪었기에 숨이 떨린다. 그런데 최준후가 한 말은 그보다 더한 것이다.

“그들이 프락시안이라고 했나?”

힘겹게 숨을 토하듯 물음을 던진 오융, 그의 장포가 정말로 피로 물든 것을 최준후는 안다. 자칭 신교인들, 혼천마교의 무인들이 희생된 피다.

“다시 말하겠습니다. 마교가, 아니 신교의 팔문금벽이 그들을 끌어 들였습니다. 하늘을 나는 그들의 비행체가 전부가 아닙니다. 그보다 몇백배가 큰, 거대한 모함이 있습니다. 그것마저 온다면 지옥이 될 겁니다.”

이미 들어서 상상을 하던 내용, 오융은 새삼 눈썹을 떨었다.

‘벌집에서 벌들을 내어놓듯이······!’

그런 형국이 될 거란 거다. 그 무시무시한 비행체가 중원하늘을 뒤덮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지옥이다. 저 젊은 친구의 이야기는 진실이다.

“신교의 비의가······”“그런 건 없습니다.”

단호하게 잘라 말하는 최준후를 오융은 반사적으로 응시했다.

“팔문금벽은 다른 세상으로의 문을 열 뿐입니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겪는 겁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진실을 알리고 대적해야 합니다.”

대적, 프락시안이라는 침략자들과의 싸움이다.

“선택의 여지도 없고 좌고우면할 일은 더욱 아니지.”

강한 힘을 실어 나온 진천궁 이화의 결론, 오융은 눈을 감고 숨을 떨었다. 그렇게 다시 뜬 눈에는 결론과 결의가 들어찼다.

“싸워야지.”

오융이 던지는 눈길을 받은 진천궁 이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두 인물이 주고받는 이심전심을 최준후는 읽었다. 정마대전이 아니라 프락시안과 중원무림의 전쟁이다. 그 결의가 지금 맺혔다. 두 사람은 마교와 무림맹에 진실을 알릴 것이다. 무림전체가 하나로 뭉치는 거다.

“정확히 알려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의 시선을 모은 최준후는 프락시안의 장비에 대해 설명했다.

“아머, 아니 갑주는 이 부분에 손을 대서 착용과 해체를 하는 겁니다.”

오융을 일어서게 한 최준후는 백팩의 형태로 변해 있는 아머를 착용시켰다. 삽시간이 전신을 감싼 갑주에 놀란 오융은 손을 대고 다시 해체했다.

“허.”

감탄인지 경악인지, 숨소리만 내는 오융은 착용과 해체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본 이화도 일어서 똑같이 했다. 둘에게 비구 사용법을 알렸다.

“비구도 마찬가집니다. 이 부분에 손을 대면 됩니다. 격발장치 같은 건 없습니다. 마음으로서 발사하는 겁니다. 이 칼 역시 의지로 사용합니다.”

설명하던 최준후는 미간을 좁혔다. 자신의 비구에 색다른 것이 나타나서다. 상부의 표면이 액정화면 같은 것이 생겨났다. 녹색점이 움직인다.

‘이건?’

레이더, 위치추적발신, 그런 거다. 왜 갑자기 이게 발동했는지 알았다. 비구를 장착하고 해체하는 부분을 연거푸 접촉해서다. 새로운 기능이다.

“프락시안 놈들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최준후의 긴장한 음성에 오융과 이화는 경직했다.

“이 부분을 연속해서 만져보십시오.”

최준후의 말을 따라 비구를 만진 두 사람은 녹색점들이 뜬 표면을 확인했다.

“범위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이걸로 놈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놈들도 마찬가질 겁니다. 우리 위치를 포착하고 접근하고 있는 겁니다.”

눈동자에 살기를 드리운 오용이 혈궁을 잡았다.

“죽여야지.”

이화도 흑궁을 발로 걷어 올려 잡았다.

“당연지사.”

두 고수의 기세를 응시한 최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진정한 싸움을 시작하는 겁니다.”

진정한 싸움, 그 의미를 가슴에 새긴 오융과 이화는 동굴 밖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들을 따라 달려 나간 최준후는 몸을 던지며 비구를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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