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70. 정마무림연맹.
170. 정마무림연맹.
“헉, 헉, 헉.”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최준후는 하늘을 봤다. 수목들 사이로 드러난 푸른 하늘엔 프락시안의 건쉽들이 날고 있다. 지상을 향해 푸른 광구의 기총사격을 뿜어내는 비행체들, 강호무림인들은 덧없이 흩어지고 있다.
‘제길!’
분노에 치를 떨며 최준후는 전황을 헤아렸다. 십만대산을 코앞에 둔 지금 정마무림연맹의 무인들은 치열하게 전진 중이다. 누구보다 이곳지리를 잘 아는 마교인들이 앞장서고 그 뒤를 무림맹 무인들이 따르고 있다.
‘건쉽들의 공격을 차단하거나 막지 않는 이상······!’
자신과 같이 프락시안의 아머를 걸치고 무기를 지닌 자들이 선두에서 싸우고 있다. 하지만 상공의 저 공격은 뚫고 갈 수가 없다. 수백 대의 건쉽이 하늘을 누비는 현실, 프락시안의 모함이 곧 넘어올 상황이다.
‘팔문금벽이 그것마저 끌어당긴다면 끝장이야.’
아득함으로 최준후는 눈을 감았다.어떤 장애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팔문금벽은 아직 프락시안의 모함까지 내 놓진 않았다.그것의 크기와 질량 때문인지도 모르겠다.어떻든 결국엔 이뤄질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저놈들이 저렇게 접근을 막는 이유도 그래서야.’
다시 눈을 뜬 최준후는 프락시안의 건쉽들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낮게 날아온 놈들에게 비구를 발사하면 격추가 가능하지만, 그 즉시 다른 놈들의 공격으로 죽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웅크리고 있을 순 없다.
‘방법을······!’
그 순간 상공에서 폭발하는 건쉽을 보고 최준후는 눈을 치떴다. 화염으로 변해버리는 삼각형의 기체, 그것이 하나가 아니다, 연속해서 터진다.
‘뭐?’
황망한 충격으로 최준후는 원인을 봤다.
‘검!’
검이 날고 있다.뇌전처럼 비상하며 프락시안의 건쉽들을 가르고 있다.저럴 수가 있나?아니, 저것이 뭔지 안다.전설의 경지, 이기어검이다.
‘누가?’
검이 한 자루가 아니다. 그것을 날리는 인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도복을 입은 노인과 승복을 걸친 노승이다. 그들 곁에 다른 인물들도 있다.
‘경지를 초월한 고수들!’
어검술을 펼치는 인물들을 본 순간 최준후는 형용 못할 전율에 휩싸였다. 노도사는 무당의 인물이 분명하고 노승은 소림의 인물이 확실하다. 그 외의 인물들은 구대문파라 일컫는 곳의 사람들, 은거 고수들이다.
‘무림맹주의 청원이 통했구나······!’
프락시안과의 전쟁이 천하를 뒤덮는 현실, 최준후 자신이 알린 진실은 진천궁 이화와 혈마궁 오융을 통해 정마무림을 깨워냈다. 전쟁을 멈추고 정마무림연맹을 이끌어내도록 했다. 온 무림이 합심해 싸움에 나섰다.그러나 의지와 투기만으로 프락시안을 상대하기는 힘겨웠던 전황, 무림맹주는 구대문파에게 도움을 청했다. 세속과 떨어져 있던 진정한 무림, 그들이 드디어 나선 것이다. 천하에 드리운 재앙과 싸우기 위해서다.
와아아!
함성에 떠밀리듯 최준후는 일어섰다. 어검술에 추락하는 건쉽들의 화염을 피하며 다시 전진했다. 정마무림연맹의 무인들과 함께 미친 듯 달렸다.
“무기부터 확보해!”
고함치며 최준후는 추락한 건쉽을 목표로 달렸다. 십만대산의 산자락이 시작되는 위치에 추락한 건쉽, 프락시안이 밖으로 나온다. 무당고인의 어검술에 기체의 삼분지 일이 잘려나갔다. 놈은 결과를 황망히 돌아본다.
“이놈!”
어느새 달려온 진천궁 이화가 흑시를 날렸다.다급한 상황을 인지한 프락시안 놈이 돌아서는 순간 가슴을 강타했다.기체에 부딪치고 넘어진 놈에게 최준후는 쇄도했다.정확하게 놈의 인후룰 향해 칼날 뻗었다.켁, 소리를 내고 주저앉는 프락시안, 놈의 눈에 든 경악과 불신을 최준후는 걷어찼다. 쾅 소리로 놈의 머리통이 넘어갔고 경련 끝에 늘어진다.
“누구든 와라!”
이화가 소리치자마자 무림맹 무인 하나가 달려왔다. 기대와 흥분이 가득한 눈이다.
“어떻게 하는지는 알고 있겠지?”
침을 삼키며 고갤 끄덕이는 무인에게 이화는 고갤 끄덕였다. 무인은 아머의 벨트에 손을 댔다. 모양이 변해 해체된 그것을 착용하고 무기도 들었다.
“생각만으로 작동됩니다. 아군을 향해서는 조심해야 합니다.”
최준후의 경고에 무인은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가자!”
이화의 결론으로 세 사람은 다시 전진했다. 구대문파 고인들의 어검술로 추락한 건쉽들을 목표로 공격, 살아남은 프락시안들을 제거하고 장비를 확보했다. 여태까지의 싸움에서 한 것 처럼이다. 어느새 산자락이다.
“어? 정상 쪽에 변화가 있습니다!”
주변 무사의 놀란 외침에 최준후와 이화는 산정상을 바라봤다.혈금광이 파동치고 있었다. 마치 심장 고동에 맞춘 것처럼, 북을 치는 것처럼이다.
‘저거?’
최준후는 기억해 냈다. 자신이 살던 세상에서의 일이다.그곳의 팔문금벽이 작동할 때 저랬다고 안다.뭔가 큰 변화가 나타날 조짐이 분명하다.
‘프락시안의 모함.’
그것을 예감한 최준후는 이화에게 소리쳤다.
“모함이 넘어 오려는 게 분명합니다!”
눈을 치뜬 이화는 지니고 있던 단소를 불었다.가파르고 위험한 소리가 퍼져나갔다.비상 상황을 알리는 경고다.정마무림연맹의 고수들은 미친 듯이 산을 차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 속을 최준후도 함께 달렸다.
‘제발!’
누구에겐지 알 수 없는 기원을 올리며 최준후는 산을 올랐다. 아머의 힘으로도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육신의 고통을 무시하고 달렸다. 자신을 앞서 비상하듯 올라가는 고수들을 보며, 그들을 쫓아 사력을 다했다.
‘저!’
비탈에 멈춘 최준후는 봤다.혈금광이 파동처럼 퍼지는 속에서 머리를 내민 것, 프락시안의 모함이다.건쉽과 같은 형태지만 거대한 전함, 그 끝이 모습을 드러냈다.혈금광의 범위를 넓히며 밀고 나오는 것 같다.
‘안돼!’
최준후는 다시 달렸다. 가파른 산비탈을 차고 올라가는데 프락시안 놈들이 막아선다. 추락한 건쉽에서 튀어나온 놈들, 비구의 광선을 발사한다.
‘익!’
몸을 던져 피한 최준후는 즉각적인 반격상황을 목도했다. 이화의 진천궁과 오용의 혈마궁이 날아갔다. 강타당한 놈들이 휘청거리고 쓰러진다.
“우와아!”
고함을 기합으로 터트리며 최준후는 달려갔다.일어서는 놈의 안면을 향해 도약해 무릎을 박아 넣었다.항아리가 박살나는 느낌 속에 칼을 쑤셨다.뒤로 넘어가는 놈의 얼굴을 향해서다.칼날이 박혀 돌아간다.믹서기로 갈아버린 과일처럼 프락시안의 머리가 갈려 흩어졌다. 그 최후를 내려다 본 최준후는 다른 최후를 돌아봤다. 소림승려의 일권이 만든 죽음이다. 아머를 입은 채로 프락시안이 날아간다. 피를 뿜으면서다.
‘소림!’
그곳의 고수다. 어떠한 무공인지 모르지만 프락시안의 아머를 무시하고 내부를 강타했다. 풍선을 때린 것과 마찬가지, 프락시안은 즉사했다.
‘저럴 수가!’
최준후는 거듭 경악했다.소림승들이 장력과 권력을 날리고 있다.말 그대로다. 직접 타격이 아니라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다.보이지 않는 그 힘이 프락시안들을 강타한다.비구를 발사하던 놈들은 펑펑 쓰러진다.
‘저것이 진정한 무공! 소림의 힘이구나!’
그들만이 아니다. 무당의 도인들은 표홀한 바람처럼 움직인다. 프락시안들이 터트리는 푸른 벼락을 피해 나가 검을 낸다. 태극조화의 검이다.
‘저럴 수······!’
프락시안들은 갈라진다. 아머고 비구가 톱날 칼이고 할 것 없이 쪼개진다. 무당고수들의 철검이 만든 결과, 저들의 검은 그냥 검이 아니다.
‘저들은 화산.’
푸른빛의 도복을 걸친 도인들이 매화를 피워내고 있다. 매화에 휩싸인 프락시안들은 흩어진다. 그 곁엔 종남파가, 청성파가 검을 펼치고 있다.
‘역시······!’
이들이라면 가능하다. 윤미령이 사는 세상을 구할 수 있다. 그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그 전에 목전의 상황부터 해결해야 한다. 프락시간의 모함 월경을 막는 거다. 모함엔 어떤 강력무기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어검술을 펼치는 고수들이 나서야 해!’
방법은 그것뿐이란 생각으로 최준후는 산을 박차고 올라갔다. 말하지 않아도 정마무림연맹의 수뇌부는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구대문파의 고인들은 벌써 산정상으로 이동했다. 그들의 경공신법은 바람을 탄 것 같다.
‘공격이 시작됐구나!’
머리를 내민 모함의 형상에서 화염과 연기가 치솟는다. 고인들의 어검술공격에 당해서다. 하지만 원체 거대한 전함이라선지 끄떡없어 보인다.
‘다 왔어!’
마지막 힘을 다해 산을 오른 최준후는 순간 경직했다.여덟 개의 기둥, 팔문금벽이 눈에 들어온다. 혈금광을 파동처럼 풀어내고 있다.아니 파동이 치는 혈금광 속에 오연히 서 있다.머리 위론 전함을 두고서다.
‘저걸 파괴할 방법이, 뭘로 어떻게?’
다시 전함으로 시선을 돌린 최준후는 이화와 오융의 접근을 인지했다.
“화기를 사용할 걸세.”
혈마궁 오융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화가 부연 설명한다.
“마도 팔대가문 중의 한곳인 벽력신화가에서 벽력진천뢰를 가져왔네.”
그걸 사용할 거란 소리다. 그런데 의구심이 든다. 과학문명이랄 것도 없는 이 세상에서 만든 화기로 프락시안의 전함에 타격을 줄 수 있는지.
“벽력진천뢰는 산을 날려버릴 위력의 화기지.”
최준후의 의구심을 알았는지 오융이 자랑처럼 말했다. 그렇지만 최준후의 입장에선 과장으로 여겨진다. 그걸 말할 새 없이 상황이 흘러간다.
“사대금강이 던질 모양이군.”“저들이라면 되지.”
이화의 오융의 신뢰하는 목소리너머 그들이 보인다. 프락시안들에게 격공장력을 펼치던 소림승들이다. 그들이 사슬에 매단 항아리를 돌리고 있다.
‘저것이 벽력진천뢰?’
사대금강은 빙글 빙글 돈다, 육상경기의 해머던지기 선수처럼이다. 팽이처럼 맹렬히 돌던 그들로부터 항아리가 날아갔다. 전함을 강타했다.
“엎드려!”
오융이 소리치는 순간 최준후는 엎드렸다. 상공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는 걸 느끼면서다. 하늘이 흔들리고 산이 흔들리는 충격이 닥쳤다.
‘이 정도라니!’
예상치 못한 화력이다. 뜨거운 열기가 퍼지고 있다. 대비한 정마무림연맹의 모든 이들이 엎드리고 피한 채 하늘을 본다. 벽력진천뢰로 타격한 목표, 프락시안의 모함은 보이던 부분이 안 보인다. 화염에 뒤덮였다.
‘저럴 수가!’
경악하며 최준후는 일어섰다.프락시안의 전함이 파괴됐다.아니 저 정도로는 파괴라 말할 수 없지만, 보이던 부분이 화염으로 뒤덮였다.균형을 잃고 기우뚱하고 있다, 분명히 내부로 폭발의 화력이 퍼지는 거다.
‘사대금강이 날린 벽력진천뢰가 시간차 공격을 한 거구나!’
외부를 강타하고 그 위로 또 터지고, 그렇게 생긴 균열 안으로 다시 터지고 또 터지고, 그런 결과인 거다. 프락시안의 전함은 가라앉고 있다.
“떨어진다!”
오융이 전율처럼 말하자마자 함성이 터졌다.정마무림연맹의 무인들이 내는 승리의 포효, 십만대산을 다시 흔들고 있다.그 속에서 최준후는 눈을 빛냈다.전함의 침몰과 더불어 혈금광이 만들어내는 다른 변화다.
‘터널!’
프락시안이 모함이 밀고 나오려던 것, 세상과 세상을 연결하는 웜홀이다.그것이 아래로 밀려 내려온다.혈금광이 소용돌이처럼 도는 그곳으로 다가갔다.뒤에서 이화가 오융이 불렀지만 홀린 것처럼 걸음을 냈다.
‘돌아갈 길!’
최준후는 거침없이 터널을 향해 걸음을 냈다. 뒤에서 여전히 오융과 이화가 불렀지만 이순간의 충동에 사로잡혀 나갔다. 정마무림연맹의 전력과 함께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이 순간은 망각했다. 오로지 걸음만 했다.
‘미령아, 얘들아, 내가 간다.’
회전하는 혈금광의 터널을 최준후는 달려갔다.달리다 보니 프락시안의 전함이 옆에 있는 것을 인지했다.자신이 달리는 터널과는 다른 거대한 터널이다.선명히 보이지 않지만 그 안이 보인다, 불이 퍼지고 있다.
‘개자식들아, 그게 너희 최후다.’
다시 터널 앞쪽을 향해 최준후는 달려갔다.끝이 보인다.밝은 빛이 들어오는 웜홀의 끝이다. 그것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얼어붙어 버렸다.
‘이곳이······’
폐허다.불타고 파괴되어 잿더미가 된 도시다.분명 이곳은 서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