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71화 (172/172)

혹성강호. 171. 돌아왔다.***[완결]***

171. 돌아왔다.

오늘도 괴물들이 터널 안까지 들어왔다. 역시 그들을 사냥하기 위해 프락시안들이 쫓아 들어왔다. 처참하고 무서운 광경이 모니터를 통해 고스란히 보인다. 괴물들은 저항했지만 프락시안들의 사냥감으로 죽었다.

‘하아.’

소리 내지 못한 숨을 흘려내며 윤미령은 고개를 숙였다.절망을 삼키며 다시 고개 들어 보니 프락시안은 터널 밖으로 사라졌다.이번에도 무사히 넘겼다. 하지만 언젠가 끝이 올 거라는 예감은 확신이 되고 있다.

‘전기도 곧 끊어질 것 같은데······’

하루에도 몇 번씩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벌써 끊어졌어야 정상이다. 프락시안의 침공을 받은 지 한 달이 지났다. 아직까지 전기가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다.

‘비상발전기를 사용하기가 무서워.’

최준후가 알려주고 간대로 하면 된다. 하지만 그러기가 정말로 두렵다. 기름을 태워 돌아가는 발전기, 그것으로 인한 프락시안의 공격이 예상된다. 터널 안이고 나름 안전하다지만 결과를 확신할 수는 없는 거다.

‘용진이가 통신기를 켰을 때처럼······’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정말 끝장인 거다. 그러니 발전기를 돌리는 건 아니다. 최후의 최후까지 참아야 한다. 전기가 없다고 죽진 않는다. 초도 있고 랜턴도 있다. 물론 그것들마저 한계가 올 테지만.

‘날이 점점 더워지고 있지만, 참을 수 있어. 참고 견뎌내야 해.’

다시 한 번 생존의 결의를 붙잡고 윤미령은 절망의 그늘을 밀어냈다. 혼자만의 목숨이 아닌 거다.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절망은 죽은 후에다.

“준후씨, 살아 있는 거지?”

작은 소리로 가슴 깊은 곳의 감정을 흘려낸 윤미령은 입술을 악물었다. 최준후가 제발 살아 있기를 바라고 기다리는 마음, 날이 갈수록 엷어지는 희망은 눈물 한 방울로 흘러내린다. 그걸 씻어내고 모니터를 봤다.

“돌아와, 멀쩡한 꼴로 내 앞에 나타나란 말이야.”

최준후를 향해 강한 명령을 하듯 독백을 던지며 윤미령은 일어섰다. 괴물들과 프락시안의 문제가 해결됐으니 이제 아이들 식사를 차려줘야 한다. 웅찬이와 혜진이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아이들과 눈을 맞춰야 한다.

‘응?’

돌아서던 윤미령은 모니터에 퍼진 붉은 빛을 인지했다. 얼핏 본 그빛을 확실히 응시했다. 뭔지 모르겠다. 파동이 치는 것처럼 붉은 빛이 왔다.

‘뭐?’

미간을 깊게 좁힌 윤미령은 즉시 움직였다. 비구를 착용하고 밖으로 나갔다. 외부 철문을 열고 괴물들의 최후를 응시하며 터널 밖으로 이동했다.

‘저게 뭐지?’

푸른 하늘에 붉은 빛이 퍼지고 있다.퍼져 나오는 곳은 분명히 서울 방향이다.대낮에 노을빛이 퍼진 것 같은, 파도처럼 출렁이는 광경이다.

‘저것들이!’

또 다른 변화를 윤미령은 목격했다. 프락시안의 건쉽들이 파동 쳐 오는 붉은 빛의 방향을 향해 날아간다. 왠지 다급하고 당황한 것 같다. 대낮의 저 석양빛이 프락시안들에게 좋지 않은 현상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

하늘에서 숲으로 시선을 돌린 윤미령은 질주해 오는 짐승을 확인했다.프락시안의 침략과 더불어 나타난 괴수중의 하나다.붉은 혓바닥을 가진 원숭이.흉악한 놈들 무리가 달려온다. 윤미령 자신을 사냥하려는 거다.

‘원숭이 새끼들이!’

돌아서 달리며 윤미령은 비구를 발사했다. 전복된 차량을 넘어오던 원숭이가 흩어졌다. 그렇지만 놈들은 멈추지 않는다. 터널을 덮은 덩굴을 잡고 차고 달려온다. 그렇게 쫓기는 윤미령 앞에 웅찬이가 나타났다.투르르륵, 터널을 울리는 자동소총의 소리와 함께 원숭이들이 쓰러진다. 침착하게 사격하는 웅찬이 앞에 다다른 윤미령은 수류탄을 까 던졌다.폭발화염에 원숭이들이 휘말릴 때 윤미령과 웅찬이는 철문을 닫았다.

* * *

서울 어디쯤인지 이제야 알았다. 서초동 법조단지가 있던 곳이다. 흔적도 알아보기 힘들게 폐허가 됐다. 주변도 마찬가지다. 모든 빌딩과 아파트를 비롯한 구조물들이 파괴됐다. 그 위를 거대수와 수림이 뒤덮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거야?’

당혹과 충격 속에서 최준후는 중원무림에서 지낸 시간을 헤아렸다. 한 달 정도였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과 초조가 커져가던 차, 이렇게 돌아봐 결과를 보고 있다. 서울은 역시 폐허로 변해버린 거다.

'두 세상의 시간 흐름이 같다면······‘

프락시안의 공격에 이렇게 변하는 것은 정상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과 기대가 있었다. 그것이 여지없이 깨져버린 광경이다.

‘어!’

상공에 몰려드는 프락시안의 건쉽들을 본 최준후는 미친 듯이 뛰었다. 까뒤집히고 파헤쳐진 아스팔트 도로를 달려 거대수 아래로 몸을 던졌다.

‘모함에 이상이 생기자마자 몰려드는 구나.’

수림에 몸을 숨기며 최준후는 상황을 지켜봤다. 프락시안의 모함이 추락한 곳, 자신이 넘어온 웜홀이 있는 곳은 화염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모함 안으로 무림인들이 들어간 거야.’

그런 결과임을 확신한다. 벽력진천뢰라는 생각지도 못한 공격을 받은 프락시안, 원시인이 쏜 화살에 맞은 미래 군인의 꼴이다. 압도적인 무기와 전력인데도 당했다. 놈들은 당황과 분노에 사로잡혀 패닉 상황이다.

‘그런데다 어검술을 펼치는 고수들에게 당하고 있으니.’

생각지도 못한 상황인 거다. 사냥감이 강하면 강할수록 좋아하는 종족이지만 이건 그런 게 아닌 거다. 무공이라는 허황된 능력을 가진 존재들과의 싸움이다. 지닌 무기들이 소용이 없다. 사냥당하는 건 자신들이다.

‘그래, 이제부턴 너희들이 사냥당하는 거다······!’

부드득 소리나게 이를 문 최준후는 검의 비상을 목도했다. 추락한 프락시안 모함의 후미가 폭발하며 터져 나왔다. 건쉽들을 가르며 날고 있다.

‘제대로 됐어.’

무림인들이 몰려나오고 있다. 저들에게 프락시안의 사냥을 맡기는 거다.

‘가자.’

최준후는 몸을 돌려 달렸다. 윤미령과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다. 서울 북부의 신명시, 이렇게 달려갈 수는 없다. 올 때처럼 해야 빨리 갈수 있다.

‘유인.’

계획을 머리에 그리며 최준후는 수림을 헤쳐 달렸다. 전방에 거대한 광장 같은 곳이 있다. 원형으로 이뤄진 공간, 뭔가 폭발해 퍼져나간 흔적이다.그런 게 뭐가 있을지 떠오른다.핵이다.가장자리로 거대수들이 섰다.유리질로 변해버린 원형광장을 밟으며 최준후는 튀어나갔다.상공을 지나가는 건쉽을 향해 비구를 발사했다.에너지를 감지한 건쉽은 회피기동을 했고 하강해 온다.착륙하는 걸 기다리지 않고 달려갔다. 놈이 나온다.프락시안이 칼을 뻗어내는 순간 최준후는 같이 칼을 뻗어냈다. 놈의 다리를 휘감았다. 이화와 오융등에게서 배운 비룡편의 수법, 제대로 했다.머리 옆을 스치는 프락시안의 칼날을 느끼며 최준후는 움직였다. 다리를 건 칼날을 잡아당김과 동시에 등천비룡의 수법을 펼쳤다.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놈의 전신을 난자하는, 채찍으로 후려치는 폭풍 같은 수다.아머로 보호받는 놈의 몸에서 무수한 불꽃이 피어났다.그 형상에 최준후는 충돌했다.철산고라는 수법, 오른 어깨에 내력을 실어 강타했다.엄청난 소리를 내며 프락시간은 뒤로 날아갔다. 놈에게 바로 쇄도했다.

‘이새끼!’

다시 일어서려는 프락시안의 머리통에 최준후는 왼손을 뻗었다. 주먹, 소림승들이 터트리던 격공권력을 보고 돋아난 마음속의 한수를 냈다.콱, 생나무에 도끼날이 파고 들어간 것 같은 소리가 났다.최준후의 주먹은 프락시안의 헬멧을 타격하며 멈췄고, 놈의 머리통은 뒤로 밀렸다.균열, 프락시안 헬멧고글에 금이 간다.이내 바스러지듯 떨어진다. 그렇게 드러난 헬멧 안의 형상은 엉망이다.뭉개진 머리가 흘러내린다.

‘됐다!’

전율과 환희에 사로잡혀 최준후는 잠시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란 자각으로 다시 움직였다. 프락시안의 아머와 무기를 수거하고 건쉽에 올랐다. 신명시를 목적지로 생각하며 떠올랐다.

‘어서 가자.’

전속력으로 최준후는 비행했다. 그런데 홀로그램 레이더에 나타난 비행체를 확인하고 경직했다. 프락시안의 전함, 또다른 모함이 오고 있다.

‘죽일!’

이가는 숨을 흘려내며 최준후는 기원했다. 무림인들이 잘 싸워주기를, 이렇게 혼자만 다른 곳으로 가는 행동을 용서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 * *

뭔지 모르지만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걸 윤미령은 직감했다. 여태 일어나고 겪은 일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엄밀히 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하늘에 퍼지는 저 붉은 파동에 예사롭지 않은 것이란 확신이 든다.

‘제발, 이 재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간절한 기원을 드리며 윤미령은 그를 생각했다.최준후, 그가 보고 싶다.

* * *

신명시로 접어들었다. 거대수들의 수림이 지형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지만 왕정터널로 건쉽은 날고 있다. 과연 윤미령과 아이들이 무사할지 모르겠다. 제발 아무 일 없었기를, 전부 그대로인 모습으로 보길 바란다.

‘다 왔다.’

거대수들에 가려진 왕정터널로 건쉽은 속도를 늦추며 날아 들어갔다. 그런데 그 순간 홀로그렘 레이더에 점들이 나타났다. 다른 건쉽들이다.

‘엇!’

당황한 최준후는 기수를 돌려 터널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건쉽들이 공격해 왔다. 너무 급작스런 상황, 이리저리 피하다 거대수들과 충돌했다.수림 안으로 추락한 건쉽에서 최준후는 튀어나왔다.푸른 광구의 기총사격을 피해 달리며 이 상황을 짐작했다.모함으로부터 멀어지는 건쉽, 그럴 상황이 아니기에 프락시안들은 특정한 거다. 격추명령을 내린 거다.

‘이 근처에 있던 건쉽들이!’

모함으로 돌아가려던 놈들이다. 명령을 받고 인비저블 모드로 숨어 있다가 공격해 온 거다. 모두 여섯 대나 된다. 터널로부터 멀어지고 잇지만 이대로는 위험하다. 윤미령 등의 생사안위 확인 전에 죽게 생겼다.

‘이런 엿같은!’

분노를 삼키며 최준후는 수림 속을 치민 듯이 달렸다.그런데 달려가는 앞쪽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그 힘이 휘날려 가랑잎처럼 날려갔다.거대수에 연속해 충돌하며 처박혔다. 아머덕분에 안 죽고 숨을 쉰다.

‘흐으.’

형용하기 힘든 충격 속에서 최준후는 엎어진 몸을 뒤집었다.제대로 가눌 수 없는 몸으로 폭발원점을 응시했다.붉은빛과 황금빛이 섞여 출렁인다.

‘저게 뭐······’

흐릿한 시야에 초점을 잡으며 최준후는 깨달았다.

‘웜홀.’

그것이다. 그것이 생겨났다.웜홀의 에너지가 분출해 나오는 힘에 충동한 거다.그런데 왜 난데없이 여기에 웜홀이 생긴 건지 모르겠다.프락시안의 모함이 뚫고 들어가려던 세상, 중원무림과 이어진 다른 통로인가?

‘어?’

웜홀의 터널로부터 누군가 나왔다.장검을 움켜잡은 사내다. 그가 바라본다.깊고 무거운 눈.저 눈을 안다.분명히 기억하는 눈이다.상대도 자신을 아는 것 같다. 그렇지만 다가오지 않고 하늘로 검을 뻗어낸다.

‘어검술!’

중년의 사내가 하늘로 찌른 검에서 검이 터져나갔다. 원형은 그대로인데 분명히 검이 폭발해 나갔다. 그 검들이 건쉽들을 관통했다. 하늘은 화염으로 흔들린다. 그걸 바라보던 중년사내가 땅을 가볍게 차고 오른다.

‘어검비행술!’

사내는 하늘을 날아간다. 앞으로 뻗어낸 검에 이끌려, 검과 하나가 되어 비상한다. 그 모습이 사라진 때에 다른 자들이 웜홀로부터 나왔다.

“분명히 준후가 있는 곳을 찾아서 연결한 거라니까 왜 말을 안 믿냐?”“지랄을 예술적으로 하시네, 누가 들으면 박준 네가 팔문금벽 창조자인줄 알겠다?”“음. 대충들 해라.”

세 사람의 목소리. 첫 번째 목소리 뒤로 면박을 주는 목소리는 분명히 전복아저씨다. 그 뒤로 무거운 숨소릴 낸 사람은 양아버지 최창수다.그들의 얼굴이 보인다. 말다툼하듯 걸어 나오던 그들이 최준후 자신을 본다.

“어라?”“엥, 저친구 저거?”

전복와 박준의 반응을 뒤로 두고 다가오는 이는 최창수다. 혈금광처럼 출렁거리는 눈동자로 바라본다. 그러다 두 팔을 벌리고 이름을 부른다.

“준후야.”

최준후는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인지하지 못한 채 최창수에게 안겼다. 그렇게 모두를 봤다. 움바바족 박현과 무슬란, 타이그란족 그렉, 그리고 삼백이까지. 꿈에서만 그리던 얼굴들이 눈앞에 모두 있다.

“여기도 난리 난 게 확실하지?”

박현의 불퉁거리는 것 같은 말에 무슬란이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뭔 상관이야, 지옥사신 강흑성이 왔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감격 속에 있던 최준후는 그렉의 손짓을 봤다.

“저기 누가 오고 있다. 여자 같은데.”

돌아선 최준후는 그녀를 봤다.윤미령, 그녀가 비구를 푸르게 물들인 채 오고 있다.

“미령아!”

윤미령을 목청 터지게 부르며 최준후는 달려갔다.하늘은 무슨 일인지 흔들리고 있었다.지옥사신 강흑성이 날아간 곳에서다. 그러나 푸르다.

(혹성강호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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