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156)

  

“합!”

다급하게 옆으로 비껴서며 기합성을 내지르며 일장을 내쳐보았지만, 백의인 손은 그것을 교묘한 일수로 봉쇄해 버렸다. 태을미리장의 정심함을 단숨에 파훼하는 눈부신 동작, 이어서 날아드는 그 손이 청풍의 허리춤을 잡아챘다.

훅!

청풍의 몸이 내던져졌다. 빠르게 비틀어 버리는 회전력에 한 쪽 무릎을 꿇고 한 바퀴 뒹굴었다. 꼴사나운 일, 청풍은 예상 밖의 일수에 너무 놀라, 그것이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도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

“그것 밖에 되지 않나?”

청풍이 이를 악물었다.

백포의 고수, 다시 한번 성큼 다가오는 것에 마음을 굳게 먹고 검을 휘둘렀다. 

위잉!

매화삼릉검의 날카로운 검격이 허점을 노리지만, 백의인은 한 발, 한 발, 찍듯이 땅을 누비며 단 한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았다.

선이 굵은 움직임이다.

그 움직임이 뚜렷하게 보이는 가운데, 특별히 빨라 보이지 않음에도 완전한 회피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것은........’

허공에 휘두른 검이 십 합에 이르렀을 때. 

청풍은 일순, 기이한 것을 느낀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다. 어디서 본 듯한 보법. 백의인의 움직임은 왠지 처음 대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화악!

청풍을 놀리기라도 하듯 여유로움을 보이던 백의인의 눈이 일순간 빛을 발했다.

순식간에 다가와 손을 뻗어오니, 날카로운 경기가 느껴진다. 

온 몸을 자하진기에 맡기고, 시선은 상대에 손끝에 집중시켰다.

파아아!

첫 일격은 피해냈다. 하지만, 이어지는 연환세는 어쩌지 못한다.

상대할 수 없는 무공. 

장중함과 정교함이 함께하는 그 수공(手功)은, 본디 검법의 형을 지니던 것이다. 청풍이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 백호검을 얻었을 때의 그 장쾌한 검도가 거기에 있었다.

텅!

청풍의 몸이 뒤로 튕겨나갔다.

크게 밀려나갔으나, 묘하게도 충격이 없다.

찰라의 시간동안 보여준 완벽한 힘의 수급, 측량하기 힘든 고수였다.

“검을 고쳐 잡아라. 이 정도 밖에 안 되나?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백포의 남자는 더 이상 손을 쓰지 않겠다는 듯, 두 팔을 교차하여 팔짱을 끼고 있었다.

흔들리는 청풍의 눈.

그가 느낀 놀라움의 정도는 경악에 가까웠다.

누구이길래 그 무공을 사용하는 것일까.

엄청난 고수라는 사실보다, 백호검으로 펼쳐냈던 그 검도를 알고 있다는 것이 더 놀랍다.  

신비로운 기도와, 백호신검의 무공.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백호검을 탐하여 나타난 것은 분명, 아닌 듯싶다. 어떤 방식으로든 백호검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만큼은 틀림없지만, 그것이 어떤 것일지는 청풍으로서 알 도리가 없었다.

“대체.......당신의 정체는........?”

“내 이름은 을지백이다.”

스스로를 을지백이라 칭한 백포의 고수. 빤히 쳐다보는 깊은 눈빛에, 청풍이 그제서야 포권을 취하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화산 제자, 청풍이라 합니다. 헌데, 어찌하여.......”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 검을 제대로 쓸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해서지. 허나 그 주인이 이와 같아 난감함이 앞선다.”

“가르치기 위해서라니........” 

오랜 사명과 세월의 약속이 묻어나는 을지백의 눈이다.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두 눈을 크게 뜬 청풍.

“답답하다. 아직 그릇이 작아.”

을지백이 신경질적인 어조로 한 마디를 던졌다.

잠시 그대로 서 있던 을지백. 

성큼 성큼 걸어 오더니, 청풍의 손에서 백호검을 빼앗아 들었다.

손 쓸 틈도 빼앗긴 백호검이다. 자신의 물건이라도 되는 양,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져간지라, 달려들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삭. 사삭.

을지백은 그제서야 다가드는 청풍을 전혀 개의치 않은 채, 백호검 검끝으로 땅 위를 누비며 복잡한 도형을 그려냈다.

엄숙하다고 느낄 정도로 진중한 표정에 압도당한 청풍은 미처 더 접근하지 못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십여 개의 선과 몇 개의 점.

을지백이 고개를 돌렸다. 

“잘 보아라. 일보(一步)는 여기. 이보(二步)는 여기다. 이 선을 따라 움직이고 방향을 전환한다. 기본은 사상이나, 음양을 항상 염두에 둔다. 방어보다 공격에 치중하고 생명선을 선점하여, 일타 필살의 묘를 살린다.” 

휘익.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청풍을 향하여 백호검을 되 던졌다.

‘!!’

난 데 없는 무공 설명도 놀랍지만, 백호검을 되돌려 주는 것은 더더욱 뜻밖이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돌아 본 을지백의 얼굴에는 변함없는 태연함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금강호보(金剛虎步)다. 백호검을 쓰는 기본이지. 여기서 힘을 받아야 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가능하다.”

청풍은 그 준수한 검미를 찌푸리며, 다시 한번 을지백의 얼굴을 살폈다.

새로운 무공을 얻는다? 

어떤 안배일까. 매화검신께서 보내주신 사람인가

처음 보는 자의 무공 전수. 알 수 없는 의도였다.

을지백의 표정은 그저 그대로다.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어쩌겠는가.

청풍은 머뭇 머뭇, 의아함에 복잡한 눈빛을 떠올리며, 땅바닥에 그려진 금강호보의 도해(圖解)를 바라보았다.

을지백이 가리킨 일보. 그리고 이어지는 동선(動線).

어떤 보법인지 한 번 보기나 하자는 마음으로 쳐다 본 도해다. 하지만, 금새 그의 뇌리를 자극하는 그 무엇.

묘했다.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것은!’   

백호검의 하얀 광채. 

날카롭게 짓쳐들던 양영귀의 이빨.

텅! 쩌정!

요녀와 싸우던 순간이 번쩍 눈앞에 떠올랐다. 호쾌한 움직임에 땅을 찍고 거리를 좁히던 백호검이 보인다.

다름 아닌 자신의 모습이다. 

쿵! 

착지 하던 오른 발.

그 때의 그 보법이었다.

백호검 금기(金氣)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펼쳐내던 미지의 무공이 여기에 있었다. 호보(虎步). 산중을 누비는 한 마리 범의 혼(魂)이 깃든 장쾌한 내달림이었다.

“금강호보를 익혀라. 오늘부터. 백호검의 진정한 주인이 되고 싶다면.”

금강호보를 익히는 것.

그것은 머릿속에 울리는 명령과도 같다.

심혼을 두드리는 을지백의 음성에 청풍은 문득 한 가지를 떠올렸다.

“하지만, 화산의 문규는 외문(外門)의 무공을 익히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저절로 나오는 존대다. 이에 을지백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나쁘지 않은 무(武)의 재능이지만, 정신(精神)은 어리기 짝이 없다. 사방신검은 화산(華山)에 있었고, 금강호보는 백호신검의 무공이다. 거기에 외문(外門)은 웬 외문이란 말이냐.”

“아.......!”

“아?! 감탄할 이유가 뭐가 있나. 이런 놈에게 이어지다니. 참으로 모를 일이다.” 

을지백이 고개를 흔들었다.

백호검을 내려다 본 청풍. 그가 반짝 눈을 빛내며 다시 한번 물었다.

“그렇다면........산(山)에서 오신 것입니까? 그러니까, 신검께서 보내주신 분인가요?”    

“산이라........일단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는 청풍이다.

매화검신.

하산할 때까지 얼굴도 뵙지 못하여 실망했었는데, 괜한 마음이었다. 원로원과 도문에서 청풍과 백호검에 대한 처사가 가볍지 않다더니, 이렇게 사람을 보내 주시려 그랬던 모양이다. 역시나 그 뒤에 안배가 있었던 것이다.

‘잘 되었구나.’

갑작스런 하산이었지만, 화산은 그를 버린 것이 아니다. 

금강호보. 백호검의 무공을 가르쳐 줄 사람.

어찌 해야 될 바를 몰라 난감하던 마음에 내려진 한 줄기 단비다.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닌 것이었다. 

    

*              *              *

을지백은 그대로 청풍을 더 깊은 산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무공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리고 배우기 위해서 동행하는 두 사람이다.

양광이 내리쬐는 고적한 오후.

숲 한가운데 풀잎들을 날리며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청풍이 거기에 있었다.

“삼 일이나 지났다. 그것밖에 못 하나?”

삼일이나가 아니다. 이제 겨우 삼일이다.

천재를 기대하기라도 한 것일까.

을지백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청풍을 몰아 붙였다.

타의보다는 자의로.

을지백의 호통을 묵묵히 견디며 삼일만에 금강호보의 투로를 거의 다 파악했다.

자하진기의 힘이 컸다. 

그 정도 속도의 깨달음.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라 할 만 했지만, 을지백은 만족함이 없었다. 

“더 빨리! 그래서야 일격이라 맞추겠는가!”

무엇이 그리도 못마땅할까.

한 치의 실수가 있을 때 마다 엄격한 지적을 하고 있다. 쉬지 않고 배우는 무공. 자하진기로 얻은 끈질긴 체력으로도 큰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렵구나!’

어려운 스승이다.

사부님, 선현진인은 이렇지 않았다. 매화검수 연선하 역시,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급하다. 그리고 빨랐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심하게 재촉한다.

천천히 견고하게 세우는 무공이 아니라, 속성으로 빠르게 연성하는 무공수련이었다.

텅!

처음부터 끝까지.

금강호보 칠장, 스물여덟 동작을 완전하게 마무리했다.

기진맥진한 기분으로 돌아 본 을지백.

그가 얼굴을 찌푸렸다.

“아직도 그 정도! 느끼질 못하는군? 흐르는 것은 진기지만 움직이는 것은 네 몸의 근육이다. 관절의 각도와 힘이 받는 부위를 의식해! 처음부터 끝까지 펼친다고 다가 아니야!”

‘하지만.......’

을지백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안다.

하지만 그것이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던가.

며칠 만에 하라는 것은 무리였다.

“그 표정! 알아먹지를 못하는군!”    

역정을 내는 을지백. 

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못하고, 잠도 거의 못 잤다. 

혼이 나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청풍으로서도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단번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으로 발해 본 의견이다.

화산에서 특별히 보내 준 사람이더라도, 이것은 너무하다. 그는 이제 고작 보무제자가 아니었던가.

“단번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째서 단번에 하지 못하지?”

도리어 반문하는 을지백.

그의 얼굴에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과 함께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떠올라 있었다.

“겨우 금강호보다! 금강탄(金剛彈)과 백야참(白野斬)은 시작도 못했어! 벌써 삼일이다. 이제 기껏 투로를 파악했다. 그 정도, 하루면 할 수 있었어야지!”  

‘그것을 어찌 하루에.......!’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다. 

금강호보.

호보는 역동적이며 장쾌하다. 빠른 와중에 굳건함과 날카로움을 담아야 한다.

큰 깨우침이 있어야 하는 상승무공이란 이야기다. 그것을 하루에 해야 한다는 사람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또, 못하겠다는 표정이군. 너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가? 하루 만에 하지 못하는 것에 화가 나지 않느냔 말이다!” 

청풍은 을지백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의아함. 수려하고도 순수한 청풍의 얼굴에 당혹감이 깃들었다.

이 사람은 무엇을 기대하는 것인가.

문득, 두려움이 앞선다. 이 사람은 분명 천재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청풍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

“갈! 천하(天下)에 이르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한다. 나약한 심성이야! 제 내력만도 못한 정신상태로 무공은 무슨 무공!”

‘천하라니........!’

충격이다.

이제 강호 초출인 청풍에게 천하를 논하고 있다. 천하에 이르는 무공. 상상해 본 적도 없다. 아직도 마음은 옛날 옛적 그대로인 청풍인 것이다.

“쯧쯔.”

여전히 같은 표정, 청풍을 본 을지백이 몸을 돌렸다.

성큼 성큼, 백포를 휘날리며 숲으로 가버린다.

“아........아니..........”

얼이 빠진 듯, 을지백을 부를 말을 찾고 있는 청풍.

그의 심란한 얼굴을 뒤로 한 채, 사라지는 을지백이다.

“도통 가르칠 마음이 나지 않는다. 다시 볼 때 까지, 금강호보가 완성되어 있기를 빈다.”

숲으로부터 들려오는 한 줄기 목소리가, 청풍의 귓가에 남는다.

‘천하........라니.........’

지친 육신이다.

따스함을 품은 봄바람이 그의 몸을 매만지며 열기를 식히지만, 혼란스러운 그의 마음만큼은 어루만져 주지 않았다. 

‘천하........’

하늘을 올려 보는 청풍의 눈에 하얀 구름들이 비쳐들었다.

기이한 굴곡을 이루고 있는 그 구름은 마치 주황빛, 화산(華山)의 모습처럼 보인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겪고 있는 청풍이다. 산 속 풍암당. 그동안 자하진기만을 벗하며 살았던 삶의 단조로움을 순식간에 갚아내기라도 할 듯, 천하는 그에게 급격한 굴절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청풍은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듯, 삼일을 더 금강호보를 연마했다.

호보.

화영보 같은 보법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자하진기를 통해, 얻어내는 깨달음으로도, 밑바닥을 측량하기 어려웠다. 구결들을 섞어 몸에 붙이는 그 공능이 있음에도, 자하진기는 금강호보를 변화시키지 않았다.

더 위로 나아갈 곳이 없다.

그 구결만으로도 족하다는 이야기다. 완전히 연성해 냈을 때의 위력. 감히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이제 겨우 투로를 익혔을 뿐인데........’

을지백은 완성을 이야기했다.  어찌 그것을 완성시킬 수 있을까.

해 내기 힘들다. 을지백이 언제 다시 올지는 모른다. 확실한 것은 짧은 시간 내에 그 완성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털썩.

양손으로 검을 쥐고, 땅에 주저앉았다.

온통 땅을 누비고 다녀, 풀밭의 풀이 성한 곳이 없었다. 

“후우........”

풀 밭 한 쪽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행낭, 건량 주머니는 이미 빈 상태다. 배고픔을 느끼며 한숨을 내 쉬었다.

‘그러고 보면, 그 분도 그 때 사흘 동안 아무것도 안 드셨지.’

을지백도 허기가 져서 짜증을 냈던 것일까.

그리 생각하니 꽤나 우습다. 혼란스런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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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가서 술마시며 쑈하고(레벨이 레벨인지라......) 집에 들어와 화산질풍검 연재란을 보니, 오오. 

감동입니다.

정말로 댓글 100개를 넘겨 주셨네요.

제가 지금까지 받은 댓글.

5천개가 훨씬 넘어 1만개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스스로는 아직 초보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많은 분들이 인정해 주시고 있고 기대도 많이 해 주시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수천 개의 댓글들. 그 중 대부분이 짧은 한 마디이며, 다들 비슷 비슷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건성으로 보지 않으며, 글 쓰는 기쁨으로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여러 의미 있는 비평들도 좋지만, 전혀 생각 없이 쓰시는 듯한 칭찬 한마디들이 저에게는 더 글을 열심히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네요^^

다른 작가님들도 그러신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저는 그렇습니다. 젊어서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댓글들.

누가 자꾸 요상한 말을 해대는데......

아무리 짧아도 주저 없이 달아 주세요.

가보로 간직합니다. 

아, 물론 정말 재미가 없다면, 안 다셔도 됩니다. 

자꾸 안 다시면, 다시 재미있게 만들어 반드시 다실 수 있도록 만들 겁니다. 

관심 많이 많이 가져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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