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156)

철기맹이 발호함에 따라 무림맹이 발동된다. 

분쟁이 지나치게 커 질 것을 우려한 각파 원로들이 반대의견을 피력했지만, 화산파의 피해는 단순한 논쟁으로 해결될만한 일이 아니었다. 

대대적인 공격을 주장한 화산파. 

결국, 발발하게 된 무림맹의 대(對) 철기맹전(鐵騎盟戰)은 화산, 무당, 종남 뿐 아니라, 천하제일가문 구양세가, 검왕, 검성이 버티고 있는 남궁세가가 참전하게 되면서 전격적인 전면전으로 비화된다. 

구파 중 삼파에 삼파에, 육대세가 중 두 세가를 상대해야 했던 철기맹이다. 처음부터 승산이 전무했던 그 싸움에서, 철기맹이 보여준 대응책은 실로 뜻밖의 것이었으면서도 굉장히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한백무림서 무림편.

강호난세사 중에서.

  

청풍과 서영령의 동행은 그로부터 몇 일이나 더 계속되었다.

서영령의 끈질긴 설득에, 둘 사이의 말투는 꽤나 순화되고, 친근해졌지만, 뻣뻣한 청풍의 어투를 완전히 바꿀 수는 없었다.  

“오늘은 저기서 쉬어요.”

“음........괜찮을련지.”

“아직은 안전하지 못해도, 어느 정도는 거리를 벌려 놓았을 거에요.”

두 명 다.

워낙에 눈에 띄는 외모라 죽립을 깊게 눌러쓰고 추적을 조심하면서 마을 두개를 지났다.

눈에 띄는 것이 외모 뿐이련가.

백호검도 문제다.

목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되는 대로 평범한 검집 하나를 맞춰 검신을 가렸으며, 손잡이에는 얇은 천을 말아 묶어 비범한 그 재질을 감추었다. 

“정말 사태가 가볍지 않군요. 큰 일로 번지겠어요.”

“.........”

청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가지 소문들을 들었다. 하나같이 마음을 착잡하게 만드는 것들 뿐. 

철기맹.

그리고 화산파.

안가보와 서협표국을 친 것에 이어, 철기맹은 정말 큰 싸움을 벌이겠다는 의도인지, 강서 근처, 화산의 속가 문파 하나를 더 괴멸시켰다.

인명 피해가 작지 않다.

화산파가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들이 나 돌고, 강호를 진동시키는 전운(戰雲)의 공기가 진하게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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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참대전의 분량 이라는 것이 사람 속을 터지게 만드네요.

장이 전환되는 부분인데.....

한번 어긋나고 나니, 이렇게 또 반으로 나누어 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두 편 연참이라고 기뻐하셨을 분들께, 죄송스럽다는 말씀 드려야 하겠네요.

추석 연휴 안 쉬고 연참한 것 감안하여, 용서해 주십시오.

물론, 이 밑의 23화와 24화는 합쳐서 1회로 카운트 되야 하겠지요.^^

“무당산도 당했다고 하네요.”

“듣고 있습니다.”

객잔에 앉아 청력을 돋구어 듣는 풍문들은 갈수록 가관이다.

무당산 본산도 화산처럼 급습을 받아 수많은 제자들이 죽고, 건설 중이던 커다란 도관들이몇 개나 불탔다고 하였다.

게다가, 그 흉수역시 철기맹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니, 철기맹은 대체 무슨 배짱으로 구파를 둘씩이나 건드려 놓은 것인지, 절로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이대로라면 무림맹이 소집될 거예요. 아직은 일러도, 이 정도라면 조만간 무림 전체가 들끓게 되겠지요. 다른 구파와 일방 그리고 육대세가는 좌시할 수 없을 것이겠죠. 민심도 문제니까요.”  

“........”

철기맹과 화산파가 싸움을 벌인다. 그것도 무림맹이 움직일 만큼의 큰 싸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청풍에게 있어, 화산에서 평생 보았던 가장 큰 사건은 종남파와의 친선 비무가 아니었던지. 이렇게 피튀기는 강호 일전이란, 그야말로 상상 속에서나 있을만한 일이었던 까닭이다.

“화산과 무당의 참전은 거의 확실하겠고........강서면 남궁세가, 남궁가도 움직이겠네요. 구양세가야 중원 무림맹지의 코 앞에 자리하고 있는 만큼 당연히 나서겠지요. 악양, 온 강호의 군웅들이 악양에 집결하겠어요,”

악양, 그리고 무림맹.

사건이 벌어진 곳들은 화산이 있는 섬서성과 호북, 호남을 아우르는 호광성이다. 

그야말로 중원의 한 가운데인 바.

철기맹이 있는 곳인 강서성까지 지역을 교차하여 보면 이번 무림맹의 회합장소는, 결국 전통적으로 무림맹이 열리던 곳 중 하나인 악양이 될 것이었다.

중원(中原) 무림맹지(武林盟地), 악양.

사천, 운남, 감숙을 맡고 있는 사천 무림맹지 삼합, 그리고, 산동부터 절강까지 동부를 아우르는 안휘 무림맹지 소호 까지, 삼대 무림맹지 중 하나가 악양이다. 악양에서 무림맹이 소집되면, 소림, 무당, 화산, 종남, 그리고 구양세가와 남궁세가까지, 쟁쟁한 맹회가 구성된다. 

안가보와 서협표국을 무너뜨린 것으로 보아, 철기맹의 힘이 들리던 것보다는 강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이만한 세력을 상대로 한다면 싸움 자체가 가능할 리 없다.

온 강호를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패배가 확실한 싸움. 

보면 볼수록 무슨 의도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쩔 것이죠? 이제 어디로 갈 거에요?” 

“글쎄........잘 모르겠어서.......”

청풍으로서도 정말 혼란스럽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임무라면 다른 세 신검을 찾아야 하는 것인데, 그것이 어디 있는지 모르니 답답할 수밖에 없다.

화산을 습격했던 것. 철기맹이라 한다.

세 신검도 철기맹에 있을까 싶지만, 그것도 확신할 수는 없다. 설마하니, 그 세 신검을 얻었다고, 화산파에 싸움을 걸어오는 것일까 하는 추측도 해 보지만, 그런 것은 아닐 것 같다. 지나치게 무모한 일인 까닭이었다.

호북성 죽산을 지나고 강하나를 건너 흥산까지 지나쳤다.

주로 질문하는 쪽은 서영령.

단조로웠던 화산파의 이야기를 해 주는 청풍.

많은 풍물을 보고, 많은 대화를 했지만, 점점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니 하는 말들이 자꾸만 겉돌고, 단순해진다.

마음이 가까워짐을 느끼면서도, 청풍이 진 고민이 워낙에 무겁다.

사방신검을 찾는 것도 문제고, 화산파 집법원이 쫓아오는 것도 그러하며, 지닌바 무공도 모자라다. 

그 뿐인가.

철기맹과 화산파가 일전을 벌일 기세인데, 거기서 자신은 어찌해야 할지, 제자로서 싸움에 참가해야 할지, 아니면, 계속 보이지도 않는 검을 좇아 알 수 없는 곳으로 나아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갈수록 말이 없어지고 생각이 많아지는 청풍. 

장강을 건너기 위해 의창까지 이른 시점, 그녀가 불쑥, 청풍에게 작별을 고했다.

“여기서 만날 사람들이 있어요. 그 동안 즐거웠어요.” 

남쪽으로. 

그녀에게도 어디든 목적지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러쿵 저러쿵 해도, 자신만의 일이 있는 타인(他人)인 것일까. 고맙기 짝이 없는 은인이지만, 제대로 감사의 마음마저 표현하지 못했다. 이렇게 헤어진다니, 갑작스럽고도 당황스러웠다.

“아니, 아, 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아니요. 재미있었어요. 모처럼 지루하지 않게 보냈고요. 다시 볼 때는 좀 더 반갑게 맞아 주었으면 좋겠네요.”

“이렇게 간다니, 아쉬울 뿐이요.”

“하하! 얼굴 색 하나 안 변하고, 그런 말을 하네요. 보고 싶을지도 모르겠어요.”

당돌하면서도 활기가 넘친다.

서영령의 옆에 있자면, 청풍 자신도 기운이 더 나는 느낌이었다.

“그, 목걸이 잘 간직하세요. 잘 가지고 있나 확인하러 찾아갈게요.”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찾냐고요? 강해져요. 그리고 유명해지세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온 강호가 다 알 만큼요. 그러면 찾기 쉽겠죠.”

“........”

말문이 막힌다. 

장난스러운 농담이지만, 틀린 말이 아니기에. 

또한 그것은, 을지백이 말했던 ‘천하’와 같은 맥락으로 들리기에, 대답할 말을 찾기가 힘들었다.

“뭐, 그것도 아니라면요. 저번 같이.......우연히 재회할 수도 있겠고요. 운명처럼요. 하하. 그럼, 잘 지내요.”

수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기 위해 몰려 있는 의창, 장강 변에서, 그녀는 손을 흔들고 인파 속 어딘가를 향해 섞여들고 만다.

몸을 돌려, 장강을 건너는 범선을 향해 걸어가는 청풍이다. 

진하게 밀려드는 공허함.

그처럼 짧은 만남에, 그의 마음에는 무엇이 얼만큼이나 새겨지게 된 것인지.

‘언제쯤이나 다시 볼 수 있을까.’

사방신검도, 철기맹도. 

지금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아주 작작 하는구나.”

마음을 부여잡고 있는 것도 잠시 뿐이다. 바로 위쪽, 배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 백관에 백의 장포. 그가 청풍에게 말했다.

“어서 올라오라. 아직도 멀었어. 한참이나.”

혼자되는 줄 알았더니, 금새 또 동행이 생긴다.

어찌 그를 찾은 것인지.

화가 난 얼굴에 여전한 독설.

찾아 온 방법이야 무엇이든 무슨 상관이 있으랴.

다시 보니 의외로 기분이 밝아진다.     

을지백.

을지백이 거기에 있었다.

“꼬락서니 하고는........”

죽립을 눌러쓴 데다가, 도복도 상당히 지저분했다. 

무엇보다 백호검.

을지백으로서는 가장 거슬려 할 것이 아마도, 청풍이 들고 있는 백호검일 것 같다. 볼품없는 검집에 매끄럽던 검병까지 온통 천으로 감아 놓았느니 격이 맞지 않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도무지 봐 줄 만하지가 않다. 그래도, 조금은 나아진 모양이니, 다음으로 넘어갈 만은 하겠어.”

“다음......이라면.......?”

“금강탄(金剛彈). 그리고 백야참(白野斬)을 말함이다. 금강탄은 발검(拔劍)과 착검(着劍)의 비기, 백야참은 그 검을 쓰는 검술이다. 백호무(白虎舞)는 그것이 모두 완성 되었을 때, 저절로 나타날 터, 그것은 그야말로 나중의 일이겠지.”

“금강탄.......”

“배에서 내리는 대로, 장검을 두 자루 구해라. 백호검으로는 안 돼. 어차피, 네 능력으로는 한참 걸릴 것이니, 간단하게 시작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무시하는 언사를 . 

사람을 자극하는 법을 알고 있다. 문득 오기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눌러 참았다. 실력이 되지 않으니 할 수 없다. 그저, 배우고, 또 배워서 그만한 자격을 갖추게 되면, 그 때는 을지백의 평가도 조금은 달라지리라.

장강을 건너, 바로 내린 청풍은 을지백의 말에 따라 두 개의 청강장검을 사서 등 뒤에 묶었다. 소지하고 있는 검이 세 개나 되니 제법 거창해 보인다. 그러나, 그 중 하나 조차 제대로 못 다룬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우스운 일. 을지백은 그대로 청풍을 이끌고서 산 속으로 들어갔다.

“금강탄의 핵심은 발검보다, 착검에 있다. 언제 어느 순간에서라도 검을 환집(還?)할 수 있도록 훈련한다. 검을 줘 보아라.”

치이이잉!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발검.

발검 끝에, 막강한 검력이 머문다.

괴력이다.

금강탄이라더니, 과연 뽑아서 뻗어나가는 기세가 탄력이 넘치고, 날카롭기 짝이 없다.

“본디, 검(劍)이라는 병기는 베기보다 찌르기를 주 공격법으로 삼는다. 곧고 얇으니,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백호검은 일반적인 검과 그 효용이 다르다. 검신(劍身)이 두껍고 날이 잘 서있어, 도(刀)처럼 베는 것도 문제가 없다. 금강탄과 백야참은 그 특성을 최대한 살리는 검법이다.”  

치리리링!

금강탄, 폭발적인 검세가 한 순간에 검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착검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만큼, 무척이나 인상적인 환집이었다.

“백야참은 이르다. 먼저 발검과 착검 두 가지만 수련한다. 구결을 일러 줄테니, 잘 듣고 잊지 말아라.” 

나아가는 오른발에 검병을 잡고, 금강호보에 이어 쳐낸다. 

시선은 자유롭게. 다만 생명선만은 놓치지 말면서, 단숨에 극점까지 이른다. 손목을 사용하여 발경을 극대화 하는데, 이 때 내력은 단전에서 검 끝 까지 일거에 통과할 수 있도록 검신일체를 이룬다.

환집, 착검은 발검과 똑같은 속도로 할 수 있도록 세심하고 정교하게 숙달시킨다. 검집에 난 구멍은 몸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기 마련, 검집을 손에 쥐지 않고도 단번에 집어넣을 수 있어야 한다. 

금강탄의 발검이란 일거에 강한 힘을 내뿜는 것이니, 손에 든 것을 탁 놓아 버리는 느낌과 같다. 하지만, 그렇게 큰 힘을 뻗어낸 직후라면 반드시 힘의 공백이 생기기 마련인 바, 착검의 숙련은 그 공백을 최소화 시키는 동작이다.

쳐 내고 방어에 들어가는 찰라.

곧바로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 정교함과 집중력을 유지하기에는 그만한 수련도 없다. 실지로 착검을 하지 않더라도, 언제나 발검 때와 같은 집중도를 잃지 않는다. 그래야 백야참까지 이를 수 있다.

“검집에 생기는 미세한 움직임을 느껴라. 점과 각도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꽂아 넣는 것이다. 탄법(彈法)이 폭발적일 수 있으려면, 그저 힘이 강해서만은 안 된다. 얼마만큼의 힘을 어디까지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그 폭발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다시! 거기서 조금 더 조여. 그래, 그렇게.”        

을지백의 가르침은 언제나처럼 거칠고, 때로는 혹독했으나 하나 하나 지적해 주는 것들에는 그야말로 무신(武神)의 안목(眼目)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정확하기 짝이 없었다. 조금의 실수도 없도록. 혼자서도 언제든지 연마할 수 있도록 다듬어 준다.

급하게 재촉하는 것도 여전했고, 속성의 숙련을 강조하는 것도 똑같았지만, 익숙해지니, 그것도 할만 하다. 다그치는 만큼, 청풍 스스로도 그 속도에 맞추어 자기 자신의 기준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치리링!

잘 못 꽂아 넣으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

바지 옆단이 찢어지기가 일수요, 심지어는 옆구리에 몇 줄기 검상까지 입었다.

금강탄, 나아가는 발검은 어느 정도 요령을 깨우쳤지만, 환검은 진실로 힘들다. 대신, 그 성공률이 좋아질수록 검에 대한 감각이 확실하게 늘고 있음을 느꼈다. 

‘아직 멀었어.’

차근 차근, 천천히라는 마음은 이제 먹지 않는다. 여유를 부릴 새가 없다. 항상 을지백이 말하듯, 당장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수련에 임했다. 천성이라는 것이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닐지라도, 엄한 스승이 옆에 있으면서 그 변화를 종용한다. 무엇보다 본인이 그 필요성을 느낀 바, 청풍이 무공을 대하는 태도는, 화산에서 익힐 때와 분명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거기.”

“예, 알고 있습니다.”

이제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안다. 하도 많은 지적을 받다보니, 조금만 잘못해도 스스로 뭐가 틀렸는지 파악이 된다.

몇 번이나 휘둘렀는지.

자하진기가 없었더라면.

조금만 쉬어도 기력을 회복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심법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련하고 연구했다. 끊임없이 자하진기를 휘돌리면서, 한 발작 걸을 때에도 금강호보의 구결을 되뇌이고, 손을 한 번 움직임에도 금강탄 발검을 생각한다. 자다가도 번쩍 검병에 손이 올라갈 만큼, 충실하게 검을 닦았다.

“더. 아니야. 백호검의 날은 무디지 않아. 검집을 통째로 부숴먹을 작정인가!”

열심히 연마하는 것을 보면, 조금은 풀어줄만 한데도, 을지백은 항상 처음과 같이 여일했다. 그러기도 쉽지 않을 텐데, 대단하다 느낀다. 어찌 보면 그것은 모두, 청풍 자신의 무공을 위해서이니, 더 이상 답답하다거나 과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천하.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딛고 선 땅 만큼은, 제대로 걸어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마을에라도 내려갔다 오거라. 그 몰골로는 원 거지같아서 가르칠 마음도 안 생기겠다. 갔다 오면, 내일부터는 두 자루로 한다. 백호검을 쓰는 것은 그 다음이야.”

며칠이 지났는지.

청풍은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수련에만 전념했다.

머리는 산발을 했고, 수염도 거칠게 돋아났다. 도복은 을지백의 말마따나 누더기가 다 되어 있었으며, 특히 옆구리 부분은 완전히 헤어져 있어 보기에 민망스러울 정도다. 

“아직, 아직이다.”

입버릇처럼 말하며 어딜 가는지, 숲 속으로 사라지는 을지백이다.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란 것을 익히 아는 바.

청풍은 그저 그 뒤에 포권을 취하며 발길을 돌렸다.

‘얼마만이냐.’

간만에 마을로 내려가, 도복 대신 허름한 마의(麻衣)를 몇 벌 구한 후, 객잔에 들러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수련하던 산에 올라가니, 기약 없이 사라졌던 저번과는 다르게도, 을지백이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용케 도망가지 않는군. 불평도 안 하고 말이야.” 

“별 수 있겠습니까.”   

멀끔하게 수염도 깎았지만, 집도 없는 산 생활이 가져다 준 야성(野性)은 여전히 그의 얼굴에 머물러, 조금은 강인해진 인상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곧바로 재개되는 수련이다.

검을 꺼내어 구결을 되짚어보는 청풍이나, 급하게 몰아붙이는 을지백이나 서로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을지백.

청풍의 경지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험담을 하는 가운데 은근한 믿음이 자라나는 것 같다. 천재적인 오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지만, 청풍은 이제 처음과는 확실히 다르다. 깨우치는 속도가 묘하게 빨라지고 있고, 응용하는 적용력도 점차 나아지고 있다. 재능 자체가 성장하고 있다면 딱 맞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겨우 금강탄의 초입이다. 검을 집어넣는 것은 손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야. 손으로 검자루를 잡고 검날을 집어넣는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 그것을 알아야 해. 검이 움직이지 않더라도 네 몸이 움직여서 검집에 집어넣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생각을 자유롭게 하고, 시야를 넓게 가져라. 네가 적을 베는 것과, 적이 와서 베어지는 것. 금강탄 발검과 환검은 그와 같아서, 둘이지만 또한 하나다. 기(氣)가 검을 이끌고, 검(劍)이 기를 이끈다. 어검(御劍)은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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