챙! 채채챙!
다시금 시작된 공격이다.
백검천마 종리굉의 출현 후, 달라진 것.
비천마 새긴 흑의무인들 외에 회색 무복에 하얀 색 검(劍) 문양을 박아 넣은 무인들이 더해져 있다. 복식만 다른 것이 아니다.
낭아봉이나 구환도와 같이 투박한 병장기를 쓰는 철기맹과 달리, 회의(灰衣) 무인들은 하나 같이 길쭉한 백색의 철검을 들고 있었다.
특징 있는 그들의 모습에 청풍과 제자들은 백검문(白劍門)을 떠올렸다.
백검천마 종리굉이 이끄는 백검문.
이 숲에 있는 것은 철기맹 문도들뿐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철기맹이 화산을 상대로 과한 선전을 보인다 했더니만, 그 이면에는 이처럼 생각지도 못한 타(他) 문파의 지원이 함께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슈각!
한 사람의 죽음이 더 긴장된 검격을 불러 왔는가.
물러나지 않고 싸우는 화산제자들의 선전(善戰)은 눈부시다.
아직까지도 백호검을 꺼내 놓지 않은 청풍. 금강호보와 태을미리장만으로 싸우는 데에도, 벌써 다섯 명의 습격자들을 눕혀 놓았다.
“또 옵니다!”
확실하게 드러난다. 매화검수의 무공과 실전 능력이 뛰어나다고는 해도, 감각적인 면에 있어서는 청풍보다 예민하지 못한 것 같다. 자하진기와 육합구소신공의 차이일련지. 청풍의 경호성에 잠시 눈살을 찌푸린 하운이지만, 방금 전처럼 대 놓고 질책을 하지는 않았다.
화아악!
손을 휘돌려 전진을 멈추고 방어를 단단히 하라는 수신호를 내린다.
멈추어 버린 화산 제자들.
숲 옆에서 네 명의 백검문 검수들이 나타나고, 전방에서 철기맹 무인들이 흉흉한 살기를 내뿜어 왔다.
얽히는 병장기들 사이로, 급박함이 고조 될 뿐.
잘 못 안 것이 아닌가, 화를 내려던 하운은 순간적으로 끼쳐드는 살기(殺氣)에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켜 버렸다.
“위!”
사라질 듯, 나타나고, 농락하듯 기세를 드러냈다 꺼뜨린다.
정확한 위치를 잡아낸 유일한 사람은 청풍 뿐.
그러나, 청풍으로서도 늦었다.
콰직!
하늘에서부터 떨어져 내리며 내리 꽂은 검격이다.
정수리부터 갈라져 신음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즉사(卽死).
또 하나의 제자가 속절없이 죽어 버린다.
화아악!
화산 검수들 아홉 명 사이.
그 가운데에 우뚝 선 백검천마의 기세.
“하나 더 죽일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목소리다.
누구 하나 검을 떨쳐 내지 못했다. 그 무시무시한 무공에 압도 당했다기 보다는, 놀라고 분노한 마음이 지나치게 컸기 때문일 터. 일순간 백검천마 종리굉이 화산 제자들을 비웃듯 그대로 신형을 뽑아 올려 밖으로 치고 나갔다.
“챠압!”
먼저 정신을 차린, 하운이 검을 날렸다.
이십 사수 매화검법, 너무나도 유명한 그 절기가 다섯 개의 꽃잎을 피워냈다.
쩌정! 쩌저쩡!
검을 놓쳐 버리게 만들 듯한 압력.
날카롭고도 정교하게 뻗어 갔던 하운의 검이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막혀 버렸다. 튕겨날 듯, 뒤로 물러난 하운에 다른 제자 하나가 발악적으로 몸을 띄워 백검천마에게로 돌진해 갔다.
파파팍!
백검천마는 벌써 한 그루의 노송(老松)을 타고 올라 옆으로 뛰고 있는 중이었다. 굉장한 신법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나무 가지들 사이를 유령처럼 휘돌아 나간다. 뛰쳐나간 제자가 재빨리 나무 위에 올랐지만, 이미 백검천마의 종적은 묘연하다.
당황하며 내려 오려하는 제자.
그 때다.
‘돌아온다! 안돼!’
입으로 뱉어 놓지도 못한 청풍의 경호성 뒤로, 죽음의 검날이 짓쳐 들었다.
나무 위에 올라 있는 제자의 팔이 단숨에 날아가고, 내리 치는 검격에 가슴이 쫙 갈라진다.
휘청, 떨어지는 그의 몸.
아래 쪽 가지 위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린다. 갈라진 배로부터 꾸역 꾸역 쏟아지는 내장.
공포스럽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또 죽을 놈은 얼마든지 따라오라.”
나무 가지 위, 하늘을 날 것처럼 픽 꺼져버리는 백검천마다.
속수무책.
이 보다 그 말이 어울리는 때가 어디 있을까.
순식간에 세 명의 제자를 잃었다.
“간다!”
매화검수 하운의 입에서 서릿발 같은 한 마디가 떨어졌다.
앞에서 뛰어드는 철기맹 문도들을 돌파하며, 이제 여덟 명 남은 척후조가 달린다.
수렁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면 어쩔 수가 없다. 이렇게 된 바, 갈 데까지 가는 것이었다.
“잠깐. 이 소리.”
깊이 들어온 송림. 하운이 일행들을 멈추었다.
채챙! 채채챙!
안 쪽에서부터 병장기 소리가 들려온다.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무림맹 무인들은 아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다만 아직 일다경은 지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은 그들이 달려 온 방향이 아니라, 저 앞이었던 것이다.
“다른 무인들은 아니고........교란(攪亂), 교란책인가.”
이 병장기 소리.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싸움에 의해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자기들끼리 부딪치는 소리였다. 송림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무림맹 무인들을 현혹하기 위한 술수임이 틀림없었다.
“머리를 쓰는 군.”
분노가 극에 달했기에 도리어 냉정해진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들을 가늠한 그가, 모두에게 말했다.
“밖에서는 우리들이 흩어졌을 것이라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우리는 그대로 간다. 끝까지 가서, 지나온 길을 보여주자. 그 길이 죽음을 향한 것일지라도!”
하운의 말.
청풍의 뇌리에 순간적으로 위화감이 스친다.
화산의 정신.
그것이 옳은 것인지. 이렇게 제자들을 잃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매화검수의 선택은 과연 현명한 것인지.
의문을 갖지 말아야 하는 것이겠지만, 도무지 용납하기 힘들다. 나직한 어조로 말하고는 있어도 이미 분노에 휩싸여 버린 하운이다. 정말 제대로 된 판단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가 걱정이 앞섰다.
사사삭!
결국은 하운의 뜻대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러나 죽음을 말한 만큼, 그 앞은 위험하다. 다시 히끄무레하게 보이는 백검천마의 신형, 청풍의 경호성 없이도 모두가 두 눈에 그 모습을 확인했다.
쐐애액!
'또.......!'
백검천마.
달려오는 위용이 엄청나다.
여덟 명, 화산 제자쯤이야 별 것이 아니라는 듯 일직선으로 짓쳐 온다. 선두에 선 하운의 검을 흘려내고 깊숙이 들어와 세 개의 검을 한꺼번에 튕겨냈다.
쩌정! 채채채챙!
굉장한 속도, 강력한 내력이다.
몇 수 위라는 비교 자체가 의미 없을 정도, 근접해오는 백검천마가 마침내 청풍의 앞까지 이르렀다.
‘내가 목표인가!’
본능적으로 금강호보를 밟으며 한 발 옆으로 비껴 섰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검광(劍光).
안 된다.
금강호보만으로 피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가자.
당장이라도 가슴을 갈라버릴 것 같은 검광을 향해 도리어 오른발을 내딛었다. 금강호보에 이어 반자 몸을 낮추고, 검집를 튕겨 검신(劍身)을 밀어낸다.
‘발(發)!’
꽉 잡은 오른손에 자하진기의 내력이 깃들어, 한 줄기 백색의 빛살이 되니, 그것이야 말로 금강탄(金剛彈)이라, 백호검의 신력이 마침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치리링! 쩌어어엉!
백검천마의 자전검이 처음으로 목표를 맞추지 못한 채, 중간에 막혀 버렸다.
백검천마 종리굉의 눈이 번쩍 기광(奇光)을 흘릴 때.
휘어지는 백광(白光)의 잔영이 한 순간 몰아치며, 대지를 하얗게 휩쓸 듯한 일섬(一閃)의 검격을 뿌려냈다.
‘백야참(白野斬).’
백야참이다.
금강탄의 발검에 이은 백야참이 완전한 연환검을 만들고 있었다.
키링! 쩌저정!
종리굉의 검격이 백야참의 강맹한 일격을 흩어낸 것은 그가 그의 자전검을 세 번이나 휘돌린 후다.
옆으로 물러난 그의 얼굴에 강한 살기(殺氣)가 어렸다.
백검천마 종리굉.
“좋군. 넌 마지막이다. 마지막에 죽여주마.”
천천히 뱉어내는 그 말에도 누구하나 움직이질 못한다.
화산제자들 모두. 종리굉의 무위에 놀라고, 청풍의 일수에 놀랐다.
화산 검수들 사이, 그가 뒤로 몸을 날리더니, 한 순간 옆으로 몸을 비틀었다.
쐐액.
사선으로 내리치는 검공(劍功).
애꿎은 희생자는 청료였다.
평검수 천화관이 막히면서 무공은 평검수 수준이되, 아직까지 선검수로 머물러 있었던 꿈 많던 제자. 매화유변(梅花柔變) 일초를 펼치며 막아보려 했지만, 백검천마 종리굉의 쾌검은 그 방어를 여지없이 깨뜨리며 그의 가슴을 통째로 갈라놓았다.
비틀 비틀 물러나다 한 그루 노송에 기대어 미끄러지는 청료.
생기가 사라져가는 그의 얼굴 위로, 종리굉의 냉막한 한마디가 내려 앉았다.
“하나는 가져가야지.”
왔으니, 한 사람은 죽였다는 이야기다.
이제는 누구도, 하운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았다.
너나 할 것 없이 백검천마의 뒤를 쫓는다.
도리어 앞장서던 하운만 멈칫, 청풍을 돌아 볼 뿐, 허나 청풍은 이미 그 백호검을 환집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달리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대체.......이것이.......!’
매화검수 하운.
흔들리는 두 눈이다.
보무제자 청풍. 천문표국 국주 정사원이 보내온 인계장에는 단순히 그것만 적혀 있었다. 첫 인상이 단정하고, 잘생긴 얼굴에 차분함이 엿보여, 보무제자 출신으로 강호에 나선 속가 제자라고만 생각했었다.
천문표국 국주의 안목은 온 화산이 인정하는 바.
평검수 수준의 검수들이 모인 신여 공격대에 배치시켜 주었다면, 그래도 기본은 갖추었다는 뜻. 보무제자 출신이되 강호에서 굴러먹어. 어느 정도 실력을 쌓은 정도일 것이라 추측했었는데, 이것은 그런 수준이 아니다.
‘어떻게 된 것이지.’
백검천마의 접근을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지금 보여준 연환검(連環劍)은 이미 매화검수의 그것에 필적해 있다. 아니, 어쩌면 그가 펼칠 수 있는 검격보다 더 강할련지도 몰랐다.
‘정체가 무엇이냐.’
매화검수까지 동년배 중 최단 시간 내에 올라섰던 하운이다. 항상 듣던 천재라는 명칭, 앞에서만 달려와 곧바로 강호행을 나갔다. 줄곧 본산에 남아있던 청풍과는 그 오랜 시간 동안에도 그 길이 교차되었던 적이 없었던 바, 하운으로서는 청풍을 오늘 이때까지 전혀 모르고 지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청풍이 매화검수 하운에게 감탄을 했었다면, 하운도 비로소 언제나까지나 자신이 최고일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챙! 채챙!
앞에서부터 들려온 병장기 소리가, 이어지던 하운의 상념을 깼다.
그럴 때가 아니다.
큰 인상을 받았다면, 그것으로 그만.
지금은 싸워야 할 때다.
청풍이 어떤 이든지 간에, 차차 알아보면 된다.
그것도 이 앞에서 살아남아야 하겠지만.
암향표를 펼치는 그의 앞으로 계속되는 피의 돌파가 시도되고 있었다.
갑자기 밝아진 시야.
반경 이십 장이 넘도록 탁 트인 공터다. 내리막 아래쪽에 자리하여, 바깥에서는 미처 있었는지조차 몰랐던 공터였다.
하운과 여섯 명의 제자들.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삼십에 달하는 철기맹 무인들이다.
칠 대 삼십.
한 사람 당 네댓 명만 상대하면 되는 것인가.
아니다. 중간에 서 있는 한 사람이 그 모든 계산을 흐트린다.
“죽으러 잘도 왔군.”
백검천마.
백주(白晝)에 서 있지만 그 모습은 송림을 누비던 귀신같은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사신(死神)의 무서움이다.
분노에 휩싸여 여기까지 오기는 했다만 난감함이 먼저 찾아드는 것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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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 다시 읽어 보지 않고, 퇴고 한번 하지 않은 채, 벌써 1권 분량을 연재했습니다. 써 놓고 다듬지를 않으니, 모자란 점이 당연히 있겠지만, 바빠서 도통 어쩔 수가 없네요. 언제든 새롭세 싹 수정할 날이 오겠지요.
더불어, 내일은 이맘 때 글이 올라가지는 않을 겁니다.(아마도요.)
로칼 실습을 끝내는 시험이 닥쳤거든요. 내일 밤 12 시 조금 넘어 올라오지 않으면, 그 다음 오후(금요일 오후)에나 올리게 될 것입니다. 결국 연참은 계속 하겠다는 이야기죠. ^^ 연참이 멈추는 일은 천재지변에 준하는 사고가 없는 한, 아마 발생하지 않을 거에요.
우승은 제 겁니다. -_-a
이벤트는 역시 어렵군요. 이벤트 마감은 토요일 0:00 이니, 얼른 얼른 참가해 주십시오. 그럼, 내일의 행운을 빌어 주십사 감히 부탁드리며, 지금 시험 보시고 계실 고등학교, 대학교 학생 모든 분들께, 억수의 요행이 함께 하시길 기원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