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156)

  

“내가 싸우겠다. 다른 이들은 철기맹 문도들을 맡아라.”

매화검수 하운.

겁이 없다고 해야 하나.

아니다.

두려움을 이기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일 것이다.

거침없이 발을 옮겨, 검을 겨눈다.

가소롭다는 듯, 자전검을 빼 드는 백검천마. 태산같이 버텨선 하운의 모습 뒤로, ‘쳐라!’하는 누군가의 외침이 이 격전의 서막을 알렸다.

파파파팍!

화산파 무인들과 철기맹 문도들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검을 뿌리고, 병장기를 휘두른다. 파공음과 충돌음이 송림 가운데 공터를 가득 메우며, 시작되는 동시에 격함으로 치닿는 싸움이었다.

‘위험해. 혼자는 안 된다.’

함께 금강호보를 밟아 전진하는 청풍이지만, 그의 시선은 오로지 하운과 백검천마 종리굉에 고정되어 있다.

하운으로서는 안 된다.

종리굉의 무공은 고강하기 그지없는 바, 몇 합도 버텨내기가 힘드리라.

‘도와줘야 하는데.’

그러나.

하운이 그것을 용납할까.

그럴 리가 없다.

화산파 십이 계육 제 육계, 화산 문도는 다수가 한 사람을 핍박하지 아니한다.

상대가 어떤 고수라도 예외는 없다.

일대 일 비무에는 결코 다른 사람이 나서지 않는다. 미련하다면 미련하다 할 수 있는 계율,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화산파의 고매한 이름을 지켜온 가장 큰 법칙 중 하나였으니, 이를 깬다는 것은 화산문도로서 절대의 금기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부담이라도 덜어줘야 한다.

이 쪽의 싸움을 승리로 이끈다면, 하운도 승부에 훨씬 더 전념할 수 있을 게다. 상대가 안 될지 몰라도, 싸움이라는 것은 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바, 요행이 따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간다.’

터텅. 치리링!

금강호보.

금강탄이 다시 그 폭발적인 기세를 드러냈다. 이를 악물고 전개하는 검, 살수(殺手)의 끝에 달려들던 철기맹 문도의 낭아봉이 쪼개지고, 그 어깨가 쫙 갈라졌다. 

무서운 위력이다.

치명상을 입은 상대가 쓰러지는 것을 보며, 청풍은 그 살업(殺業)을 꾹 눌러 참은 채, 다음 일격을 준비했다.

화악! 퀴융!

백아참이다.

구환도 두꺼운 도신(刀身)이 제 멋대로 우그러진다.

일격 필살.  

백검천마 종리굉은 막아냈었지만, 철기맹 문도들은 그러지 못한다. 강력한 무공이다. 을지백이 가르친 무공은 역시나 전에 없는 무서움을 자랑했다.

쿠욱.

뚫고 들어간 감촉이 불쾌했다.

육신을 가르고 뼈를 가르는 느낌은 도무지가 익숙해지질 않는다. 그런 것을 자연스럽게 수렴하는 것이 진정한 검사의 마음가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챠압!”

낭랑한 기합성이 들려왔다.

매화검수 하운의 목소리다.

저절로 고개를 돌린 청풍. 

예상했던 것 대로, 일방적인 싸움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챙! 채채챙!

이십 사수 매화검법의 완벽함은 더할 나위가 없었지만, 도통 통하지 않는다. 

날카롭게 쓸어가는 검격에도 종리굉은 여유롭기만 하다. 매화검, 검결 하나 하나를 단숨에 파훼하는 모습이었다.

‘안돼.’

금강호보로 적들의 공격을 피하며, 하운과 종리굉이 싸우고 있는 쪽으로 발을 옮겼다. 요행을 바랄 때가 아니다.

종리굉.

매화검법을 다 견식 하겠다는 듯 하운의 검을 받아주고 있지만 이제 곧 파악을 끝내고서 무자비한 살수를 전개하리라. 이미 파탄을 드러내고 있는 하운의 매화검인 바, 그의 목숨은 그야말로 풍전등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치리링! 촤악!

철기맹 문도 하나를 또 베어 넘겼다.

얼마 안 남은 거리다.

백검천마 종리굉의 검세가 변하더니, 곧바로 하운의 가슴을 향해 찔러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쩌엉!

물러나는 하운의 신형이 위태위태 하다.

다음 검격이면 죽는다. 한계에 이른 것이다.

‘모르겠다. 구하고 본다.’

화산파 십이 계율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본산에서 보았던 매화검수 유자서의 죽음이 생각냈다. 또 그렇게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항상 눈앞에서 앞서 나가며, 등을 보이고 있는 매화검수의 모습.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텅!

청풍의 신형이 산중을 달리는 호왕(虎王)과 같은 기세로 뻗어나갔다.

몸에 배어 순식간에 이루어진 착검. 그리고 발검.

금강탄!

빛살처럼 뻗어나간 백호검이 하운의 목을 노리고 짓쳐들던 종리굉의 검날에 부딪치며 굉음을 울렸다.

쩌엉!

크게 밀려 빗나가는 검격이다.

목숨을 부지한 하운.

땅을 딛으며 백검천마 종리굉을 향해 검을 겨누는 청풍의 뒷모습에 분노에 찬 하운의 목소리가 박혀들었다.

“무슨 짓인가!”

힘에 부쳐 당해내지 못한다면, 그대로 죽는 것이 매화검수다. 허튼 짓으로 보일 수밖에. 그러나 청풍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한 마디만을 남길 뿐이다.

“이길 수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도움을 주고서, 도와달라고 한다.

하운이 이를 악물었다.

“도와 달라? 십이 계를 어길 작정인가.”

“예.”

망설임 없이 나오는 대답이다. 도리어 뻔뻔하다 느껴질 정도.

그러나 백호검을 들고 있는 강한 의지만큼은 진짜다.

진실된 의지. 

이런 이가 여지까지 묻혀 있었던 것에 화산파의 넓은 품을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장로들의 부족한 안목을 생각해야 할지, 하운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어찌 해야 하는가.

합공을 한다는 것, 매화검수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짧은 갈등, 그러나 망설일 시간은 없다. 눈앞의 상대가 그것을 용납지 않았던 것이다.

“잡설이 끝났다면, 이제 죽어라.”  

하나든 둘이든 관계없다는 듯, 백검천마의 신형이 단숨에 확대된다.

청풍에 일격.

막아내는 백호검을 타 넘으며 하운에게도 일 검을 내쳐 왔다.

쩡! 채채챙!

무림공적(武林公敵)으로 일 대(對) 다의 싸움이 익숙해서일까. 백검천마 종리굉의 검은 두 사람을 옭아매며 회피의 여지를 앗아갔다.

내치고 찍어내는 강력한 검법에 만련의 실전이 녹아 있으니 과연 전대 거마의 위용이라, 금새 손속이 어지러워진다.

합공을 하지 않을래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오른쪽!”

하운의 경호성.

휘돌아 꺾어드는 백검천마의 검풍(劍風)이 청풍의 오른쪽을 치고 들어온다. 다급하게 받아내는 청풍이다. 

계속되는 위기.

하운이 청풍의 후방으로 뛰어들며, 연환 되는 종리굉의 검격을 막아내 주었다.

‘위험하다. 너무 빨라.’

종리굉의 검세 전환이 지나치게 빠르다. 

상궤를 벗어나 무리가 갈 것 같음에도, 흔들림이 없어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예측 불허의 검예.

강호를 누비며 숱한 실전을 겪어 온 매화검수로서도 정신을 차리리 힘든 마당에, 청풍으로서는 오죽할까.

일타 일타 금강탄과 백야참이 발하는 위력은 비할 데 없이 강함에도, 전체적인 싸움을 보는 시야가 좁기만 하다. 

혼자서는 이길 수 없으니, 도와 달라고 했던가.

아닌게아니라, 하운의 지원이 없어서는, 청풍으로서도 금새 피를 뿌리면서 쓰러졌을 것 같았다. 

“뒤를 맡아 주겠다. 앞으로 나가!”

하운의 지시다.

스스로도 느끼는 청풍.

청풍으로서 가장 모자란 것이 실전이라면, 이 종리굉은 그야말로 경험과 백전의 화신(化身)이라 할 수 있다. 상대가 될 리 없다. 이제 막 써 보기 시작하는 무공으로는.

텅!

호보를 밟고, 전진한다.

자하진기를 극성으로 끌어올려, 백호검에 밀어넣고 백야참을 준비했다.

방어는 하운에게 맡기고, 공격에만 전념하는 것.

하운이 방패가 되어주면, 그는 공격을 위한 창(槍)이 되는 것이다.

화아악! 치리리링! 쩌엉!

백호검의 일참이 백야의 광영을 품고 긴 잔상(殘像)을 남겼다.

백검천마 종리굉의 얼굴이 처음으로 굳어지며, 급격하고 현란한 검세를 뽑아냈다. 무서운 충돌이 이어지고.......

쐐애액.

검격의 교환 끝.

불행하다고 해야 할지.

여력이 남은 것은 역시나 종리굉이었다.

청풍의 목을 노려오는 날카로운 검격에 하운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계속 가!” 

눈 앞에 어른거리는 검광이지만, 청풍은 그 위급함을 꾹 눌러 참고 오른발을 뻗어 금강호보의 기세를 드높였다. 

매화검수의 이름을 믿기로 한다.

멈추지 않는 청풍.

목덜미에 이른 백검천마의 검날에 하운의 검이 얽혀들고, 아슬아슬한 순간, 끝내 옆으로 비껴내고 만다.

스각. 

어깨를 스쳐 핏방울이 튀었지만, 상처는 그야말로 피륙이 긁힌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무시하고 나아가는 청풍의 백호검.

다시 한번 백야참의 강력한 검세를 뿜어냈다.

쩌어어엉!

회심의 일격이다.

막아내는 백검천마의 신형이 뒤로 튕겨질 정도였으니. 

떨리는 공기에 충돌의 여파가 진하게 맴돌았다.

“제법이군.”

백검천마 종리굉이 검을 잡을 손목을 휘돌렸다.

꽤나 놀랐다는 기색이다.

그러나 회심의 일격으로 보기에는 별반 효과가 있는 것 같지 않다. 과연 백검천마. 난공불락의 요새를 보는 듯 싶었다,

“재롱을 보아 주는 것도 지겹다. 끝낼 때가 되었어.”   

그렇게나 무시할 정도인가.

청풍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다.

들려온 하운의 목소리.

“심리전이다. 말려들지 마. 이번 일격, 분명히 통했다.”

마음을 잡아주는 한 마디다.

백호검 잡은 오른손에 힘을 더하고, 금강호보를 전개할 두 발에 굳건한 정신을 담아 두었다.

“가자. 이길 수 있어.”

“예.”

가슴이 끓는다.

매화검수와 손을 섞어 그 힘을 함께한 날.

스스로의 힘이 미약함을 느껴도, 이 순간만큼은 괜찮다.

생애 어떤 때보다도 강해진 기분. 무시무시한 기세로 돌진해 오는 백검천마지만,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터엉! 쩌정!

다시 붙어내는 이대 일의 격전이다. 

허언이 아니었던 듯, 더 기세를 올리는 백검천마 앞에.

밀리는 그들이건만 눈빛만큼은 밀리는 기색이 아니다. 두 사람의 의지가 흉험한 싸움에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               *              *

큰 의지와 함께 견뎌내는 싸움이지만,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근근이 버티는 청풍과 하운이다.

종리굉의 사나운 검격은 결국 청풍에게 몇 줄기 검상을 입혀, 어려운 싸움을 더욱 더 힘들게 만들어 놓았다. 

그 뿐인가.

다른 화산 제자들의 전황도 어렵게 흘러간다. 이미 두 명이 쓰러졌다. 숫자로 밀리고 있으니, 앞으로도 몇 명이나 더 희생당할지 알 수가 없었다.

쩌엉!

청풍의 신형이 뒤로 튕겨 나오고, 하운이 옆을 받치며 종리굉의 쇄도를 견제한다. 

한 순간, 얼굴을 굳히는 하운.

그가 검미를 좁히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것은........!”

공터 앞 쪽. 신여 방향.

꾸역 꾸역 몰려드는 군기(軍氣)가 있다.

철기맹 문도들일까. 

그렇다. 놈들이다. 뭉클뭉클 솟아오르는 악의(惡意)와 살기(殺氣)를 이쪽으로 겨눈 채, 한 마리의 대망(大?)처럼 도사리고 있는 것이었다.

“설마! 처음부터!”

외치듯 발하는 하운의 경호성에 백검천마 종리굉이 비웃듯 한 마디를 던진다. 처음부터 실수. 모든 것은 의도되었던 바였다.

“당연하지. 왜 이리로 끌고 들어왔을 것이라 생각하나.”

역시나 그랬다.

제자들을 하나 씩 죽여 가며, 하운을 경동시킨 것은 또 하나의 술책이었다. 이 공터로 몰기 위한 것, 적들의 진짜 주력은 이 곳에 진을 치고 있다. 범의 아가리로 머리를 들이밀 것을 기다리고 있겠다는 수작이었다. 

“옵니다.”

나직한 청풍의 목소리.

이번에는 무림맹이다. 

청풍과 하운, 척후조가 들어왔던 방향을 짚어가며 오고 있다. 한 명, 두 명, 제자들의 시체를 보았을 것이고, 지휘하고 있는 상원진인 역시 하운이 그랬던 것처럼 분노에 휩싸여 있으리라. 

뻔한 계책이라 할 수 있음에도.

화산파 문인들의 성정에 비추어 이 보다 효과적인 책략은 없을 것이다. 그것까지 꿰뚫고 본 것이라면, 철기맹, 저쪽에는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책사(策士)가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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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립니다. -_- b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하운의 한 마디.

마치 이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무슨 변명거리가 있겠는가. 

실력이 되지 않는 자. 강호가 구하는 피의 사슬에서 떨구어져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보는 것인지도 몰랐다.

터엉!

“다시, 가자!”

흉험한 상황임을 알면서도 다시 한번 부딪쳐 보는 그들이다.

청풍의 백야참과 하운의 매화검. 그리고 백검천마의 자전검이 격하게 얽혀든다.

밀리면서도 고집을 부리 듯, 덤벼드는 싸움이 점차 절정으로 치닿고 있을 때.

뒤 쪽의 숲이 갈라지며 나타나는 한 무리의 무인들이 있었다.

마침내 상원진인과 화산 제자들이 당도한 것이다.

“종리굉!”

분노에 찬 상원진인의 외침이 들려온다.

이어 “멈추어라!” 하는 그의 일갈이 사위를 울렸다.

극성으로 펼쳐내는 암향표다.

엄청난 기세로 몸을 날리는 상원진인의 뒤로, 화산파의 정영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기쾌하게 움직이는 화산 제자들의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 그러나, 청풍이 알고 하운이 알고 있듯, 그들의 쇄도는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앞 쪽의 숲으로부터 기다리고 있던 철기맹의 독아(毒牙)가 뿜어져 나온 까닭이었다.

쐐쇄새새새색!

첫 공격은 화살비였다. 

송림의 그늘. 잔뜩 겨누고 있었던 것인지.

돌진하는 화산파 문인들을 향해 수십 발의 화살이 날카로운 기세로 날아든다.

채챙! 챙! 채채채챙!

일제히 검을 휘두르며 빗발치는 화살을 막아내는 화산파 검수들이다. 전면을 방어하는 그들의 검술에 화살들이 모조리 튕겨 나가기 시작했다. 

겨우 그 정도였나.

그럴 리가 없다.

진짜는 바로 그 다음에 있었다.

파사삭.

두두두두두.

화살은 그저 정신을 분산시키기 위한 술수였을 뿐이다.

다시 날아들지 모르는 화살을 방비하기 위하여, 자세들을 가다듬던 순간. 숲 한 쪽이 갈라지며 철갑을 두른 기마무인(騎馬武人)들이 돌진해 왔다. 철기맹 주력 부대, 철갑기병대(鐵甲騎兵隊)였다.

청풍과 하운.

종리굉과의 싸움에 한 눈을 팔 여지가 없었지만, 상황이 이리 되니 절로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왜 화산파만?! 전부 함께 오는 것이 아니었나?!'

열 두 명.

상원진인과 함께 이 길로 들이닥친 이들은 그것이 전부다. 다른 파 무인들은 각기 다른 길로 오고 있는 모양, 더욱 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까 사방에서 들려오던 병장기 소리, 적들의 분산책에 넘어간 것이 틀림없었다.

“얄팍한!”

일갈과 함께, 공중으로 솟구치는 상원진인이 보였다. 

선두로 달려오는 기마 무인들을 공격하기 위함일 터. 강력한 내력을 담은 육합(六合)의 검력이 기마무인의 전면을 휩쓸어 갔다.

까가가가강! 

강렬한 충돌음. 

놀랍다.

‘저럴 수가!’

이 철기맹에 있던 고수는 종리굉 하나가 아니었음인가.

거기에 신경 쓸 때가 진정 아니었지만, 시선을 떼기 힘들다.

철갑기병대의 선두에 있는 자의 무위.

한 자루 철곤(鐵棍)을 휘두르는 선두의 기마 무인이 거기에 있어, 상원진인이 펼치는 화산육합검(華山六合劍)의 경력에 맞서 조금도 밀리지 않았던 것이다. 

“위험!”

역시나 안 된다.

뒤 쪽으로 물러나는 청풍, 하운도 그 옆에서 종리굉의 검격을 어렵사리 받아냈다. 급변하는 정황이지만, 그들은 여기에만 집중해야 한다. 잠시 흐트러졌음에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종리굉 역시 다른 싸움에 한 눈을 팔았기 때문일 터, 더 이상 요행을 바랄 수는 없었다.

쩌정! 쩡!

삼인의 싸움이 끝을 볼 듯 고조되는 가운데, 함정으로 들어온 화산 제자들도 격한 공격을 맞이한다. 상원진인이 선봉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은 곧, 적들의 기세를 살려주는 것 밖에 되지 않았기에 그들이 맞닥뜨리는 공격은 무척이나 거세고도 흉험했다.

두두두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

기마무인들의 숫자는 삼십 여기에 달했다. 짧은 거리를 거침없이 내달려, 흉흉한 중병들을 마구 내리꽂기 시작하니, 그 기세가 온 장내를 꽉 메워버릴 듯 싶었다.

파라라락! 채챙! 채채챙!

연이은 위기에, 계속되는 위험이다.

물러서지 않는 화산 제자들. 암향표 신법을 펼치며 몸을 띄워 올리고는, 지닌 바 검법들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철갑기마를 자유자제로 움직이며 강력한 위용들을 자랑하고 있는 그들임에도,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까강! 쩡!

흔들리지 않고 대응하는 화산 제자들이건만 상대하기 어렵다는 사실 만큼은 어쩔 수 없다.

적들은 강하다.

  화산 장로 상원진인으로서도 단숨에 물리칠 수 없는 고수를 내세우고 있을 뿐 아니라, 주력이란 이름에 걸맞게도, 철갑기마대 자체의 위력 역시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파캉! 챙! 채챙!  

화산 무공의 장점은 속도와 정교함, 그리고 날렵함과 섬세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헌데, 온통 갑주로 무장한 철갑기병과 철갑기마들이 돌진해 오니, 그 이점을 살리기가 힘들었다. 특히나 철기맹의 철갑은 그들이 자랑하는 철갑주조술(鐵甲鑄造術)로 만들어져 있어, 어지간히 정밀한 검술을 지닌 이라도 공략하기가 쉽지 않다. 요혈을 노리려 해도, 중요한 부분일수록 더욱 더 두터운 철갑이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쩡! 파라라락! 채챙!

한편 중갑(重鉀)을 입은 철기무인들로서도 날아다니듯 움직이는 화산 제자들을 격중시키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 난전이다.

사십 여 무인들이 어지럽게 얽히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쓰러뜨리지 못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크윽!”

먼저 타격을 입은 쪽은 철기맹 측이었다.

매화검수 동령(冬嶺)의 검격이 철갑무인의 갑주 사이에 있는 실낱같은 틈을 뚫고 치명상을 입혀 놓은 것이다. 그야말로 정교함의 극치다. 과연 매화검수라 불릴 자격이 있다고 할 만 했다.

다만 문제는 다른 제자들이 점차 그 움직임에 파탄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

평검수 정도의 수준으로는 동령과 같은 검격을 펼치기 힘들다.

처음 상대해 보는 난적(難敵)인데다가, 휘두르고 있는 중병들도 부담될 수밖에 없다. 피해내기엔 쉬울지 몰라도, 일격이라도 허용하면 곧 치명상을 면치 못하니, 거기에서부터 오는 중압감이 대단했다. 더욱이 난무하는 병장기들 사이에서 쉴 새 없이 움직여야 되는 것, 그 체력소모 역시도 결코 가볍게 넘길만한 것이 아니었다.

격해지는 동작들과, 길게 이어지는 싸움.

퍼억!

결국, 한 제자가 낭아봉의 일격을 얻어맞고 말았다.

“청겸(淸謙)!!”

곤두박질치는 그의 몸이다.

달려드는 철갑 기마 무인들. 휘두르는 두 자루의 창과, 한 자루의 곤봉이 더해졌다.

퍼퍽! 콰직!

비틀리는 허리에 함몰되는 가슴이 섬찟한 광경을 자아냈다.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죽음.

제자들의 손속이 더욱 어지러워졌다. 아직은 버티공 있다지만, 위태위태하기가 풍전등화와도 같았다.

‘이대로는 안 돼.’

청풍과 하운. 동시에 뇌리를 스친 생각이었다.

열려있는 귀로, 제자들이 희생당하는 소리들을 듣고 있는 중이다.

위기도 이런 위기가 없다.

백검천마 하나도 버겁기 짝이 없는데 이 장내의 전황 역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장로님께서........나서질 못하시니!’

화산제자들이 이렇게까지 고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상원진인이 단 한기의 철기무인에게 묶여 있다는 사실이었다.

보면서도 믿기 힘든 일이었다.

무구(武具)의 위력을 빌리고 있다지만, 이 철갑기마들의 수장(首長)은 실제 실력에 있어서도 상원진인의 무력에 근접해 있는 것 같았다. 구파의 장로를 이 정도까지 상대할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 드리워진 먹구름이 짙고도 짙어 헤어 나올 길이 없을 듯한 느낌이었다. 

“청로(淸露)! 피해라!”

누군가의 경호성.

어지러운 파공음과 기마들이 빚어내는 소음(騷音) 사이. 한 줄기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뼈 소리가 들려왔다.

콰직! 우득!

생명을 앗아가 버리는 끔찍한 그 음성. 그것이 불러온 결과는 결코 작지 않았다. 또 한 제자의 죽음에 움찔하는 상원진인. 손속이 흐트러진 틈을 타 뻗어 온 기마무인의 철곤이 상원진인의 어깨를 때린 것이다.

“크윽!”

공중으로 튕겨나가 불안하게 착지하는 상원진인의 귓전에 상대의 비웃음이 울려 왔다.

“크크크. 천하의 화산파도 어쩔 수 없나 보군. 기껏 제자 몇 명. 죽은 것에 이성을 잃고 스스로 함정에 뛰어 든 꼴이라니.”

상원진인의 눈에 불꽃이 번쩍 튀었다.

그렇다. 그는 어리석었다. 송림에서 보았던 화산 제자들의 시체들, 이 공터까지 유도하기 위한 술수다.

백검천마 종리굉. 일부러 한두 명 씩만 죽여서 보여 준 것이다. 이곳으로 오라고. 분노에 휩싸여 정황을 알아보지 못 하라고.

“악독한 수작을 부리다니!”

상원진인이 온 몸의 내력을 끌어 올리며 땅을 박찼다.

이전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공방을 펼쳤지만, 이미 부상을 입은 상원진인으로서는 승기를 잡기가 어려웠다. 적의 강맹한 경력을 흩어내며 튕겨 나온 그에게 다시 한번 철갑무인의 비웃음이 쏟아졌다.

“카핫! 악독하다? 우리가 싸움을 건 것은 애초에 너희 화산파일 뿐이다. 거기에 다른 문파들을 끌어들여 떼거지로 몰려 온 주제에 악독함을 이야기 하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상원진인으로서는 대꾸할 말이 없다.

그로서도 화산파의 싸움은 화산만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퍼억!

“안 돼!”

제자 하나의 외침과, 한 제자의 죽음이 더해진다.

‘절망적이로구나.’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화산파가 이 지경인데, 다른 두 방향으로 나아간 이들이라고 온전할까. 남은 것은 화산의 긍지를 지키는 것. 물러서지 않는 의기만이 이 절망을 빛나게 만들어 주리라.

“차앗!”

그 어느 때 보다도 큰 기합성을 발하며 검을 휘두르는 상원진인이다. 정교함을 첫째로 하던 매화검이나 육함검은 이미 없다. 화산검법 중 가장 격렬하고 살기가 짙다는 천류신화검법(天流神火劍法)이었다.

쩌정! 쩌저정!

사납게 터져나오는 검격의 충돌음이 청풍과 하운의 싸움 속으로도 섞여 든다.

상원진인의 절박함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

이 쪽도 위급하기 그지없는 것은 매한가지다.

벌써 네 군데나 검상을 입었다. 아무래도 익숙해질 수 없는 쓰라린 아픔이다. 청풍의 몸은 이미 피칠갑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붉게 물들어 있는 상태였다.

치리링! 쩌엉!

백야참을 힘껏 내쳐 보려는데, 진기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자하진기도 한계에 다다른 것일까.

지쳐 있기는 하운도 똑같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검을 전개하고 있는 것. 검사(劍士)의 호흡이란 항상 맑고도 잔잔해야 하는 바, 그 움직임에 파탄이 드러나고 있는 중이었다.

“큭!”

펼쳐낸 백야참을 거두어들이며, 금강호보를 밟고 옆으로 움직였다. 기이하게 꺾여 들어오는 백검천마의 검술. 하운의 검이 방어를 돕고, 청풍 역시 백호검을 휘돌려 상대의 검을 막아낸다.

어렵다.

그러고 보면 금강탄이나 백야참이나, 앞으로 나아가는 무공들 뿐이다. 수세를 위한 무공이 아니라는 뜻, 비할 데 없이 강력한 공격법을 지녔음에도, 그에 준하는 방어법이 없다. 배운 바가 없는 것. 하운의 방벽도 이제 한계에 달한 마당에 그 스스로도 막아낼 무공이 없으니, 남은 것은 결국 목숨을 내어주는 방도밖에 없을 듯 하였다.

  “!!”

한 순간, 죽음을 떠올렸을 때였다.

느껴지는 것.

또 온다. 

무엇인가 다가오고 있다. 아군(我軍)쪽에서.

세상을 뒤 덮을 듯한 군기(軍氣)다.

철기맹의 그것을 훨씬 상회하고 있는 힘! 

처음 백검천마 종리굉의 출현을 느꼈을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형언하기 어려운 것. 무시무시한 무엇인가가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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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part-2 가 시작됩니다. 위에 있는 공지글을  참고해 주십시오.

이벤트에 참가하셨던 모든 분들께는 한독 화장품에서 제공하는 오디오 세트를.....이 아니라.....오랜동안 행운과 행복이 함께 하시길.....기원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자리를 빌어, 많은 과심 보여 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ps: 집계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ps2: 악도경이 누군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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