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그다!’
그렇다.
무엇이 어떻게 되도, 절망은 이르다.
이 쪽에는 무신(武神)이 있다. 신여로 출발하기 전부터, 이 싸움은 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 않았던가.
굉장한 속도로 뻗어오는 기세.
화아아악!
송림이 갈라지며 그들이 오고 있다.
선두에 거대한 비천의 흑마(黑馬)를 이끌고, 비로소 청안의 마신(魔神)이 여기에 강림한다.
콰콰콰콰!
부서진다.
철갑을 두른 기마 무인들이 단숨에 무너지는 광경 뒤로, 그를 따라 말을 달리는 다섯 무인이 거친 쇄도를 보이고 있었다.
깨지는 강병(强兵)들과, 갑주들 위로 마검(魔劍)의 명령이 강렬한 잔영을 남겼다.
“비호, 진표. 모두 죽여라.”
무인지경으로 적들을 섬멸하는 그들이다.
전투력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그저 강한 자들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실제 싸움을 보니, 또 다르다. 무서운 무공들, 지극히 실전적이면서도 장중한 힘이 있어 일격 일타, 철갑 갑주와 기마 따위는 아무런 방어막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또각, 또각. 또각.
마치 그 홀로 다른 세상에 있는 듯.
여유롭게 말머리를 돌리는 그가 있다.
이 쪽이다.
다가오는 방향.
청풍과 하운이 있는 곳, 아니, 종리굉이 있는 곳을 향해서였다.
턱.
굉장한 명마, 내려서는 그 눈빛에 대해(大海)의 망망함이 담긴다. 단순히 걸어오는 것뿐인 데도 땅이 갈라지는 듯 했다.
치링!
뚝, 하고 멈추는 종리굉의 신형이다. 몇 합이면 지친 그들의 목숨을 거둘 수 있었을 터, 그럼에도 손속을 이어가지 않는다.
그들에게 검을 뻗을 수 있는 때가 아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선택이 아니라 강제(强制)다.
유형화 되어있기라도 하듯, 찌릿 찌릿 전율을 일으키는 그 무위는 일세거마로 천하를 굽어보던 종리굉에게 있어,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었을 것이었다.
“화산의 젊은 검사. 이름이 무엇인가.”
놀랍게도 그가 말을 걸어 온 것은 종리굉에게가 아니라, 청풍에게가 먼저였다.
종리굉의 눈썹이 꿈틀 치켜 올라간다. 종리굉을 놔 둔 채, 어린 애송이에게 말을 거는 오연함을 보이니 분노를 느낄 만도 하리라.
하지만, 그는 조금도 아랑곳 하지 않고서 청풍만을 보고 있다.
오연함이 아니라, 진실로 백검천마를 아래로 두고 보는 것인지.
이 엄청난 존재감.
대체 사람의 것이 맞기나 하나 의문이 들 정도다.
저절로 압도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청풍, 청풍이라 합니다.”
어렵사리 꺼내 놓은 이름이다.
하지만 이어 받는 그의 말은 청풍으로 하여금 움찔 몸을 굳도록 만들 뿐이었다.
“물러나라. 청풍. 저 자의 상대는 나다.”
울컥하니 무엇인가 올라오는 기분이다.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발해진 자신의 이름, 그러나 기껏 그 내용은 물러나라는 말이 전부였으니.
초라하다.
무엇을 기대한 것인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을.
“하지만..........!”
참을 수 없는 심정이 되어 뱉어낸 말이지만, 그것도 중도에 막혀 버린다. 갑작스럽게
번뜩인 검광.
기회를 보고 있었던 듯, 화산검수들과 싸우던 백검문 무인 하나가 그를 노리고 몸을 날려 왔던 것이다.
푸화학!
손목을 슬쩍 움직인 듯 보였을 뿐이었다.
뻗어나간 것은 흑색의 검날을 지닌 불길해 보이는 장검(長劍).
단 일격이다.
가볍게 쳐낸 일격에 사선으로 두 동강난 시체와 피가 땅바닥을 수놓았다.
“!!”
경악.
말을 이을 수 없다.
일격에 앗아가는 생명이다.
금강탄이나 백야참으로도 가능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일격은 근본부터가 다르다.
준비도, 발검도, 내력의 응축도.
무엇하나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냥 쓱 뻗어 내었는데, 사람의 몸이 터져 버리듯 반으로 갈라졌다.
‘달라..........무섭다.’
사람의 목숨을 그런 식으로 빼앗으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망설임이라고는 조금도 없다. 이미 청풍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듯, 몸을 돌려 버린 채, 종리굉에게로 걸어가는 그 발자국에는, 그 무엇도 거칠 것이 없는 한없는 자유로움과 부서지지 않는 검심(劍心)이 깃들어 있다.
‘무섭지만........’
온 몸이 떨린다.
전율이다.
뭔가 찾아야 할 것을 찾은 느낌이었다. 그가 봐야만 했던, 이 싸움을 통하여 얻어야만 했던 그것이 여기에 있었다.
‘저렇게 될 수 있다면.........!’
희망일까. 또는 도전의식일까.
그것은 한 발작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었을 터.
그러나.
청풍은 여기서, 그만 시선을 돌려, 그 마음만을 간직했어야 했다.
계속 지켜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그 무위를, 마검의 진정한 위용을 보고 만 것. 미처 알 수 없었다. 그것이 굴레가 될 줄은.
너무나도 그 차이가 컸기에 도리어 나아갈 의지를 꺾일 정도였음을. 그 순간의 청풍으로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북경, 어전 무도 대회에서 보았을 때, 반드시 검을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내 이름은 명경. 무당에서 무공을 닦았다.”
명경.
스스로 밝히는 그 이름.
이제 보니, 명경은 이미 종리굉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인연이 묻어나는 한 마디.
하지만 대꾸하는 종리굉의 말투는 거칠기만 했다.
“방자한 놈이로군. 나는 너와 같은 자를 본 기억이 없다. 함부로 나서는 주제를 알아라.”
명경을 격동시키려는 의도인 듯.
그러나 명경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흑암을 도로 거두는 명경.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운기하라. 차륜전으로는 베고 싶지 않다.”
명경의 말.
청풍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저런 말이 어찌 나올까. 굉장하고, 또 굉장하다.
“이 놈이.......감히........”
“........”
바다같이 푸른 눈.
‘압도 당하고 있다. 저 백검천마가........’
읽을 수 있었다. 종리굉의 눈. 등줄기를 훑어래리는 긴장감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죽이겠다.”
종리굉의 신형이 움직인다.
백검천마의 명성을 사해에 떨치게 만들었던 진신 무공, 백마검법(白魔劍法)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우우웅!
엄청난 속도의 종리굉.
청풍과 하운에게 검을 전개할 때보다 훨씬 더 빨라진 느낌이다.
진신 실력을 다 발휘하지 않았던 것인지.
전력을 다하는 종리굉의 무위는 직접 겪어 보았던 것 보다 배는 더 삼엄하고 사나웠다.
쩌어어어엉!
두 사람 검의 충돌이 굉음을 울렸다. 막강한 검도(劍道)를 구사하는 백검천마.
“타앗!”
백검천마 종리굉의 검이 기이한 움직임을 보였다. 상리를 벗어나 있었지만, 요혈을 노려가는 속도가 무시무시하다. 독특함을 넘어 이미 일가를 이룬 검도였다.
퍼펑!
이번에는 장력이다. 다가오는 보법도 언제 각법으로 변환될지 모르는 변화를 담고 있다.
아까도 그랬다.
세세한 움직임 하나 하나에도 공격의 가능성을 담고 있으면서, 언제든 방어와 회피를 해 낼 수 있는 진결을 지니고 있다.
경험의 소산이다.
백검천마는 그야말로 수십 년의 세월동안 강호를 헤쳐 온 노장(老將)인 것이다.
쩌정!
쩌저저저저정!
‘그래도 통하지 않아.’
하지만, 그것으로도 안 된다.
엄청나다.
명경의 무력은 제 아무리 천 번의 사선을 넘어 온 노장이라 할지라도, 보는 순간 고개를 저을 만큼 막강한 면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비등한 승부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 백검천마 종리굉의 움직임이 많은 것은 그 만큼, 명경의 검이 그에게 강렬한 위협을 주고 있다는 증거였다.
우우우웅!
‘저 검........!’
신기(神器)였다.
백호검이 신검(神劍)이라지만, 명경이 휘두르는 저 검 역시 청풍의 백호검에 비하여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느끼게 만드는 마검(魔劍)이다. 직접 상대하는 사람은 오죽할까. 백검천마도 강하지만 명경은 더 강하다. 막강한 힘. 마검이 없더라도 그 자체로 이미 두려움인 남자였다.
우웅!
‘비껴낸다! 아아! 저럴 수가.......!’
강검 안에 유검이 있다.
신랄함으로 무장한 종리굉의 검을 깃털처럼 가볍게 흘려내고는 방어하는 검초들을 헤집어 놓더니, 이윽고 치명적인 허점을 만들어 놓는다.
촤악!
종리굉의 가슴에 긴 검상이 새겨졌다.
선혈이 튀어 오르는 가운데 이를 악문 종리굉의 반격이 이어지나, 명경의 무공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았다. 완벽한 검공, 뒤따르는 마검이 두개의 원을 그려냈다.
쩡!
살초를 주고받는 생사결(生死結)의 싸움이다.
부상을 입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도, 검의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음이 또한 무인이 가져야 할 자세, 명경의 곧은 일검이 종리굉의 전면을 노리고 짓쳐 들었다.
슈각!
옆구리를 베고 지나간 흑암이다.
번쩍.
두 군데 입은 검상에, 종리굉의 눈이 단숨에 끝장을 보겠다는 듯 무서운 불꽃을 토해냈다.
자전검을 잡은 손에 내력이 들끓고, 전신에는 아지랑이와 같은 하얀 기운이 서린다. 백마검법 필살초 백마현신(白魔現身)이었다.
피리리리릿!
지금까지와는 다른 파공음이다.
쩌정!
명경의 검이 처음으로 다급한 움직임을 보였다.
상대의 경력을 풀어내기 위해 몸을 뒤로 튕겨낸 명경.
그의 검과 왼손이 교검의 자세를 만든다.
상대가 최후의 힘을 내 쓴다면 명경 쪽에서도 비장의 일격을 꺼내 놓겠다는 뜻.
교검세.
이어지는 필살검이다. 비단폭과 같은 경력이 공기를 찢어발겼다.
촤아아아악!
백마현신의 힘을 빌린 일초가 속절없이 스러졌다.
‘허어.........!’
믿을 수 없는 검력이다.
청풍의 눈이 다시없는 경악으로 물들었다. 방대한 양의 기(氣)였다. 저런 것은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다. 인간이 발하는 무공임에 어찌하여 저런 검격이 가능한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타핫!”
게다가 연환검이다.
이어지는 이격.
백검천마 종리굉의 신형이 방금이라도 쓰러질 듯, 위험하게 그 검격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불가능해. 이런 것은 있을 수 없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내력의 한도(限度)가 있고, 자연이 빌려줄 수 있는 힘의 한계가 있는 법이다.
모든 것을 초월했다.
이미 완성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무공이다.
무적의 무예. 이것이다.
두 눈에 환상처럼 박혀들고 있는 그 무신(武神)의 위용, 평생토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삼격, 사격.
그토록 강했던 종리굉일진데. 근근이 버텨내는 것이 전부다.
말도 안되는 광경이었다.
앞으로 나아간다? 저렇게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다.
자괴감마저 들기 시작하는 청풍. 더 이상의 충격이란 있을 수 없었다.
번쩍!
명경의 검이 다섯 번째 검력을 내 뿜었다.
종리굉도 질 수 없다는 듯 발악적으로 검을 찔러냈다.
순간의 교차.
두 사람의 결말은 극명하게 갈렸다.
푸학! 퍼허헉!
털썩.
종리굉의 몸이 땅을 뒹굴었다.
그 몸을 쫓는 청풍의 눈에 떠오른 감정은 이미 경악의 수준이 아니라, 자포자기한 눈빛에 가깝다.
한쪽 다리와 한쪽 팔을 통째로 날려버린 종리굉.
일어서지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죽다니.......이 종리굉이........무당이라 했나? 이번에는 비껴가겠지만........그 이후에는 쉽지 않을 터. 하지만 그것도 네놈만한 고수가 있다면 또 모르는 일이겠군. 허공 이후에.......사람이 없는 줄 알았더니. 탁가 애송이.......고생 좀 하겠어. 크크크.”
종리굉의 목소리는 점차 작아져, 잦아드는 마지막 웃음에는 피 끓는 소리가 섞여 나왔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며 무도한 생을 살았던 백검천마 종리굉이다. 그렇게도 살행을 하던 그가, 결국 입장이 바뀌어 초라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니, 그것도 하나의 업보라 할 수 있으련지.
“........”
종리굉의 얼굴에서 생명의 기운이 급속도로 사라져 갔다.
마침내 멈추어 버린 일대 거마의 심장. 모두의 시선이 그의 죽음에 집중되고, 모두의 마음에 그의 마지막 고동소리가 긴 여운을 남긴다.
‘이럴 수가 있는가.’
이렇게 죽을 줄은 몰랐다.
아까까지만 해도, 상대할 수 없는 강자로만 보였던 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송림에서 화산 제자들을 농락하며 죽음을 선사하던 자다.
그런 그가 이토록 쉽게 스러지는 모습을 보다니, 마치 일장의 꿈결같을 뿐이다. 하운과 손을 나누어 싸웠던 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명경. 무당파.........’
한 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느낀다.
엄청난 자를 보았다.
소용돌이치는 감정, 그러나 그 감정의 대상은 청풍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백검천마의 시신 앞에서 미련 없이 몸을 돌리는 명경이다.
명경의 바라보는 방향.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본 그곳에는 다른 싸움들도 거의 다 마무리되고 있는 중이었다.
명경이 데리고 온 무인들이 철갑 기마대를 격파하고, 상원진인이 어려운 접전 끝에 기마 무인들의 수장을 베어 떨굴 때 까지.
미처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악몽 같았던 송림의 싸움이 비로소 끝났지만, 청풍으로서는 그 승리를 기뻐할 겨를이 없다.
오늘 본 것.
믿을 수 없었던 광경.
온통 눈앞이 막막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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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명경의 등장은 거의 끝나게 됩니다.
이렇게까지 가까이서 행보가 교차하는 일은, 적어도 화산질풍검 속에서는 생기지 않을 듯 싶네요.
제 아무리 많아 보았자, 한 번 정도. 그것도 끝날 무렵에나 있을 것이니, 정말 한참 동안 명경이 직접 등장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아쉽네요.^^
비로소 무당마검의 후광을 벗고 제대로 된 승부를 하게 되겠죠.(가능할까요.^^;;)
다시금 청풍만으로 이 소설을 이끌어 가야 할 때.
마치 제 스스로가 명경을 상대로 압박감을 느끼는 청풍 자신이 된 기분입니다.^^
아 그리고.....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고등 학생, 중학생 독자님들! 시험은 다 끝나셨는지요.
아직 안 끝나셨다면 그 답안지 작성하시는 펜 끝에 무한한 행운이 있기를 기원드리며, 끝나는 시기를 가르쳐 주십시오.
시험기간이 끝나면, 이제 이벤트 part-3, 새 프로젝트 시작이 있을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