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5/156)

   

‘지금 해야 하는 것은 세 가지다.’

악양을 벗어나 이동을 계속하던 청풍은 먼저 그 행보를 동북쪽으로 잡았다.

‘사부님.’

사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확인하는 것이 그 첫 번째다. 사방신검을 찾는 것은 그 다음, 문파에서 받은 명령이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겠지만, 실제로 을지백이 가르쳐주지 않는 이상, 청룡검을 찾는 것은 소원한 일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부님에 관한 것일 게다. 오랫동안 묻어 두었던 기억을 끄집어내어 이제, 그 진실을 찾아가야 할 때, 더 이상의 망설임을 있을 수 없다. 

파검존 육극신. 

비검맹의 인물이라 하였다.

비검맹 총단의 위치는 어느 한 곳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장강 수로(水路)를 따라 변화무쌍하게 움직이고 있다 전해진다. 장강 중하류 안휘성 안경(安慶)에서 화현(和縣)까지, 그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비검맹을 찾으려면 어찌 되었든 그 부근으로 가야 되리라. 

안휘성은 악양이 있는 호남성에서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니, 행보가 북동쪽으로 정해진 까닭이라, 그 방향이라면 서영령으로서도 찬성이라 하면서 그 동행을 계속하게 되었다.

‘청룡검은 사부님의 일을 알아본 후에 찾는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서천각의 힘을 쓰기에는 집법원의 추적이 있으므로 백매화 원로원 은패는 일단 무용지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방법 이외의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 바. 강호의 소문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며, 따로이 정보를 모을 수 있는 방법 또한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정보망을 찾아야 했다.

청룡검의 위치를 알고 있을 을지백이 나타난다면 모든 것이 쉬워지겠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악양에서 얼핏 본 이후로는 도통 모습을 드러내질 않는다. 결국은 자력으로 해결해야 할지 모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고 있었다.

‘그 다음은 철기맹.’

철기맹에서 본격적인 도발을 걸어온 상황.  

이제는 정면 승부다. 

화산파에서도 총력을 투입하기 시작할 것이고, 수많은 싸움이 강호를 달구게 될 것이다. 

그 때까지.

청풍 자신도 많은 싸움을 하게 될 터.

사부님의 일을 알아보고, 필요하다면 싸우기로 마음을 다졌다.

청룡검을 얻는 일 또한 험난하기는 매한가지일지니, 그 때에도 혼신의 힘을 기울여 싸우기로 했다.

그러면서 힘을 키우고, 그 이후에는 화산파와 철기맹의 싸움에 뛰어든다.

문파에 필요한 전력으로서, 집법원이 건들지 못할 위치에 올라야 한다. 장문인께서 청풍 자신을 그 자체로 받아들여, 백호검의 주인으로 인정하신다면, 그 때에는 다른 제약을 가하지 못할 것이었다.

‘나머지는 그 이후로 미룬다.’

다른 복잡한 것은 전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화산파의 추적. 

원로원과 검문의 갈등. 

화산 장문, 천화진인의 진의(眞意). 

알려고 한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안다고 해도 별반 달라질 것이 없는 것들이다.  

거기에 신여 공격에서 있었던 일.

그가 마음을 잡지 못했던 가장 큰 원인도 일단 떨쳐버리기로 했다.

무당파 명경에서 받았던 위압감. 그 그림자. 

지금은 잊어버릴 때다.

탁무양, 천화진인, 명경.

악양에서의 일에서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들은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청풍과는 전혀 별개의 영역을 구축한 채, 천하를 논하는 자들. 

스스로의 그릇 안에 천하(天下)라는 두 글자를 담아두지 못하는 청풍으로서는 거기에 휘말릴 필요도, 흔들릴 이유도 없다.

아직까지는.

거기에서 좌절을 겪기에는 너무도 이르다는 뜻이었다.   

한참 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나자 조금 더 편해지는 마음을 느꼈다.

동정호 변에서 홍의 무인들을 뿌리친 지 벌써 하루.

인적 드문 관도 샛길을 따라 꽤나 먼 거리를 왔다.

‘서영령........’

문득 돌아 본 서영령의 옆 모습.

종일 말 한마디 제대로 붙이지 않으면서 오직 상념 속에 빠져 있던 그를 묵묵히 지켜보아 준 서영령이다. 

부드러운 콧날과 잔잔한 눈빛이 지는 석양에 붉은 빛으로 비쳐 든다.

청풍이 쳐다보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한 듯.

서영령으로서도 웬일인지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았다.

허나, 어찌 되었던 그의 상념을 방해하지 않았던 배려만큼은 무척이나 고맙다고 할 수밖에 없다. 보면 볼수록 장점만이 부각되는 그녀다. 그녀에게는 분명 사람의 마음을 끌게 만드는 강한 매력이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

“!!”

청풍의 시선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피하는 청풍. 

청풍이 긴 생각에서 벗어났음을 알아챈 그녀가, 질문을 던져왔다.

“안휘성에는 무슨 일로 가는 것이죠?”

“........사부님의 원수가 거기에 있습니다.”

원수(怨讐).

불공대천지수(不共戴天之?)라는 말. 

입 밖으로 내 놓고 나자 더욱 더 확실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

그저 진실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만나면 싸워야 한다. 정당한 비무(比武)임에, 생사(生死)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지만, 그래도 청풍에게는 원수다. 거기에 어떤 내막이 있더라도, 그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미안해요. 누구.......인지는 알아요?”

“예. 압니다.”

“물어 봐도 되나요?”

굳이 감출 것이 있으랴. 

청풍은 서영령을 돌아보며, 장현걸이 알려 준 그 이름을 말했다.

“파검존(破劍尊), 육극신(陸克愼)이라고 하더군요.”

“누........누구요?”

서영령의 안색이 변했다. 빠르게 말을 잇는 그녀. 알고 있는 이름인 모양이었다.

“육극신이라면.......비검맹........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예.”

“!!”

가던 길을 멈출 정도로 놀라버린 서영령이다. 

그녀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입술을 한번 축이고 입을 열었다.

“지금.......그래서, 설마하니 그를 찾아가고 있는 것인가요?”

“예.”

“세상에........!”

그녀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그렇게 강한가. 

알 수 없다.

그래도, 화산 장문인 천화진인보다는 아래이지 않을까. 무당의 무신, 마검 명경의 무위에는 못 미치지 않을까.

“말리고 싶네요. 그 자는........그 자에 대해서 알기는 해요?”

“비검맹의 주축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주축 정도가 아니에요. 파검존이란 마주치는 모든 검(劍)을 깨 부수는 자, 비검맹에서 가장 강한 삼존(三尊) 중에서도 첫 손가락을 꼽는 이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이름 있는 자가 아니었는데, 지금은 강동 지역 전체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인물로 이야기되고 있어요.”

“........”

서영령의 굳은 표정.

굉장한 고수이긴 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렇게 강한 자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두려움은 생기지 않는다.

도리어 생기는 마음은 강렬한 호승심(好勝心).

묘한 일이다.

어딘지 안심이 된다고 할까.

사부님을 돌아가시게 만든 자, 그런 자가 그냥 그런 무인일리 없다. 사부님께서 평범한 무인에게 패배하셨다면 그것이 도리어 무서운 일. 그토록 강한 자에게라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누가 뭐라 해도, 그의 사부님이다. 그 분이 이유 없는 죽음을 당하실 리가 없는 것이다.

“말리.......기 힘들겠네요. 그런 고집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역시나 단숨에 청풍의 마음을 읽어낸다.

여인들은 다 그런 것인지.

연선하도 그랬지만, 서영령은 연선하보다 훨씬 더 빠른 느낌이다. 지내온 시간이라면 서영령이 연선하에 비해 훨씬 못 미칠 것임에도, 어찌 그럴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것만 말할게요. 더 강해질 필요가 있어요. 그 검. 파검존은 보검(寶劍)을 탐하지만, 그것은 그가 소유하기 휘해 탐하는 것이 아니라 해요. 보검을 꺾어놓기 위해 탐한다고 하죠. 그야말로 범상치 않은 성정에,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아 누구도 제어하지 못한다고 전해져요. 심지어는 비검맹주마저도 그의 처사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하죠.”

보검을 부러뜨리기 위해 찾는다.

그래서 또한 파검존.

파검존에게 패배한 사부님에 그 제자는 신검(神劍)을 얻었다. 

돌고 도는 고리다. 

다시 파검존에게 도전하려는 제자.

육극신.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강하게 남는 이름이었다.  

“강해져야죠. 벅차다는 것을 알지만, 물러서지는 않을 겁니다. 이제는 그럴 때가 아니에요.”

청풍의 의지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말에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 서영령이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걱정이 아닌 다른 것을 말하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청풍의 모습에 즐거워 보이는 듯한 눈빛이 떠올라 있는 것이다.

“좋네요. 하지만, 그보다 먼저........골치 아픈 일들이 생길 거에요. 그 검에 대한 소문이 나고 있는 이상, 슬슬 그것을 노리는 자들이 나타날 것이니까요. 지금까지는 별 일 없었지만 이제 곧, 우리의 위치가 알려지게 될 것이고, 그러고 나면 상당히 험한 길을 가게 되겠죠. 거기다가, 화산파의 추적도 있고.......저를 쫓는 자들까지 있느니, 더더욱 어려운 길이 될 것이에요.”

“상관없습니다.” 

단호한 목소리의 청풍이다.

심경의 변화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시점이랄까.

확실히 달라졌다. 누가 와도 받아 주겠다는 눈빛,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나저나, 그 자들은 누굽니까.”

늦은 감이 있는 질문에, 서영령의 눈이 미미한 떨림을 보였다.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결국 고개를 모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사문(師門)의 사람들이라 할 수 있어요. 다소 문제가 있어........밖으로 나와 있는 상태죠.”

다소의 문제라.

거기까지다.

서영령의 내력.

궁금하기가 이를 데 없었지만, 때가 되면 그녀 스스로 이야기 해 주리라. 만일 이야기를 들을 만큼 가까워지지 못한다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아쉬움이야 어쩔 수 없더라도, 동행 그 이상을 생각하기에는 산적해 있는 문제들이 지나치게 많았던 것이다.

“사문.......을 이야기하니, 참 그렇네요. 그러고 보면 이렇게 동행해서는 안 되는데. 설마 그가 거기에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뜻을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한숨을 내 쉬는 서영령의 얼굴에는 착잡함이 묻어나고 있다.

마치 이 동행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듯한 어조임에, 청풍은 영문 모를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여하튼. 우리 모두 쫓기는 마당이니, 서로 돕도록 해요. 잠시만이나마. 이렇게 하는 강호행일 진데. 한 사람 보다는 두 사람이 낫겠죠.”

신검(神劍)을 탐내는 자들이 나타날 것이란 서영령의 예상은 바로 그 다음날부터 현실로 나타났다.

서영령의 사문이라는 홍의 무인들의 추격을 조심하면서, 동시에 화산파 집법원 검사들의 추적을 경계하며 이르게 된 한 마을.

겸사 겸사 들어간 객잔에는 강호의 무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상당수 앉아 있었다.

“낌새가 안 좋아요.”

속삭이는 서영령의 한 마디에 청풍도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맹지 악양에서 멀지 않다고는 하지만 이 객잔의 규모나 마을의 크기로 볼 때, 이 만한 수의 강호 무인들이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객잔 전체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이십 여 명. 그 중, 병장기를 갖춘 이들만도 십 여 명에 이른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청풍과 서영령으로서는 절로 경계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어디서 오는 길이요?”

아니나 다를까.

강호 무림, 사해(四海)가 동도(同道)라는 말이 있어도, 갑작스레 걸어오는 이 한 마디는 아무래도 과하다. 속이 보이는 질문, 남자의 목소리엔 누구라도 눈치 챌만한 탐색의 의도가 잔뜩 담겨 있었다. 

“림상(臨湘) 쪽에서 오는 길인데요.”

태연하게 받는 서영령이다.

림상이라면 정남향(正南向), 실제로 그들이 온 방향과는 조금 어긋난다.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었던 듯, 말을 걸어온 남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청년이나 아가씨나, 헌앙하기 짝이 없는 모습들을 갖추었구료. 비범한 젊은이들인데, 절로 알아두고 싶은 마음이 드오. 어떻소. 합석하여서 요즘 한창 소문이 나고 있는 보검(寶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실라요?”

“괜찮습니다.”

냉랭하다면 냉랭한 거절이다. 

허나, 저쪽에서도 무언가 눈치를 챈 듯,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왔다.

“소협의 허리춤에 있는 것. 특이해 보이는 검이요. 한 번 견식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없으실까.”

남자가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말하자, 마치 관계없는 사람인 것처럼 다른 탁자들에 있었던 다섯 명의 무인들까지 슬그머니 일어나고 있다.

고조되는 경계심.

검자루를 천으로 잘 감싸 두어, 그렇게 눈에 띄는 것이 아닐 텐데도, 특이해 보인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노리고 왔다는 뜻, 웃는 얼굴 뒤에 숨겨진 음험함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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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말, 너무나도 감사하고도, 감사한 날입니다.

글을 쓰면서 이렇게나 기쁨을 느껴본 적이 손 꼽을 정도네요.

이벤트 Part-3 가 성공을 거두면서, 오늘 하루 유조아 투데이 베스트에 화산질풍검의 이름이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일부러 찾아 주셔서 힘이 되어 주신 분들께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누군가 말씀하셨습니다. 

독자들의 모습이 북풍단 같았다고요.

댓글 보면서 전율을 느끼기는 또 처음이었지요.^^

이 정도면 화산질풍검 5연참을 준비해야 할 것 같네요. 다만 히딩크의 말이 생각날 뿐이죠.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ㅋㅋㅋ

독자 여러분의 마음을 깊이 새겨, 더 좋은 글로 보답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ps) 새롭게 시작하는 연참 대전......누가 저를 꼴지로 지적하셨는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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