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156)

  

탁자에서 몰려나와 다가오는 이들.

“일남 일녀. 출중한 외모. 보물을 소유하고 있으나,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지는 의심된다.”

한 쪽 탁자. 한 명 더.

허름한 옷차림, 죽립을 눌러 쓴 무인 하나가 입을 열며 일어났다.

처음으로 말을 붙였던 무인이 고개를 돌리며 냉랭한 목소리로 외쳤다.

“홍안귀(紅顔鬼). 끼어들지 말아라!”

“웃기는군. 흥산파(興山派)의 시덥잖은 졸개들 따위가.” 

“무엇이!”

홍안귀란 자가 발한 폭언(暴言)에 처음 무인은 물론이고, 일어났던 다섯 명 모두가 격분한 표정을 떠올렸다.

그러나, 홍안귀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청풍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 뿐이다.

“벼라 별 말이 다 떠돌고 있다. 그저 잘 만들어진 보검이라는 말부터, 희대의 신병이라는 말까지. 어느 쪽이 진짜지?”

상당한 고수다. 

흥산파의 무리들이라는 자들도 분노에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지만, 경솔하게 달려들지는 않고 있었다. 그만큼 이 홍안귀라는 자는 다른 그들보다 강하다는 이야기. 뻗어내고 있는 기도가 제법 대단했다.

“무례하군요.”

서영령의 말.

홍안귀가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계집이 나설 때가 아니야.”

서영령의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당장이라도 출수할 듯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홍안귀. 말이 과하군. 물건의 흥정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지.”

나선 것은 청풍도, 서영령도 아니었다. 

홍안귀의 뒤 쪽, 세 명의 장한이 몸을 일으키며 성큼 성큼 걸어 나온다.       

“세상에 못 믿을 것이 관리들과 거지들의 입이라더니, 이번에는 용케 틀리지 않는구나.  보검(寶劍)인지 아닌지 어디 꺼내 보아라.”

청풍이나 서영령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는 그들이다. 방자하기 그지없는 작태였다.

“안하무인이 따로 없군요. 화산(華山)의 앞이라도 그러실 텐가요.”

“화산파? 무슨 화산파. 화산파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은 온 세상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철기맹? 철기맹의 이름 따윈 들어본 적도 없다! 하하하!”   

텅!

금강호보!

청풍의 신형이 일순간에 뻗어져 나갔다.

탁자 두개를 뛰어넘는 범의 기세.

이렇게 뛰어들 줄 몰랐던 장한이 다급하게 대도(大刀)를 꺼내 들었다. 

쿵! 키링! 큐웅!

금강탄이다.

무섭게 뜨여진 청풍의 눈은 이미 산중대왕, 범의 눈빛이었다. 거기에서 발해지는 형형한 기운이 검보다 먼저 상대를 압도하고 있었다.

쩌엉!

단 일격이었다.

굉음과 함께 반 토막으로 쪼개진 도신(刀身)이 하늘을 날아 객잔 기둥에 틀어박혔다.

“감히.”

비정한 화산파이지만, 또한 사부님의 화산파다.

고고한 매화향기 품에서 자란 그는 어쩔 수 없는 화산의 제자, 사문을 업수히 여기는 자를 그냥 둘 수는 없다.

치리리링.  

검집으로 들어가는 백호검의 찬연한 검신(劍身)이다.

의외의 무위(武威).

청풍의 무공은 그들끼리 짓고 까불면서 얕볼만한 수준이 아니다.

낭패한 표정을 떠올리는 자들.

  “이익!”

아직도 충돌의 여파가 남아 있는 듯, 손목을 붙잡고 있는 장한 뒤로, 두 명의 장한들이 각자가 지닌 대도(大刀)들을 휘둘러 왔다. 사납게 달려드는 서슬에 의자들이 공중에 떠오르고, 식탁 위의 식기들이 튕겨 나온다. 

텅!

청풍의 발밑에서 강렬한 진각음(震脚音)이 울려 퍼졌다.

호보(虎步)를 밟으면 곧 전진이라, 대도 사이로 뛰어들며 백호검을 뽑아낸다. 금강탄 발검술에 첫 번째 대도가 우지끈 구부러지고, 한 발 더 나아가 휘어 치는 착검술에 두 번째 대도가 주인의 손을 박차고 멀리 멀리 튕겨나갔다.

치리링! 퍼엉!

금강탄 발검과 착검.

짧은 시간 보여주는 휘황한 검신(劍身)이다. 이어지는 일격은 태을미리장. 옆구리를 얻어맞은 장한 하나가 허리를 꺾으며 탁자를 뒤엎고 땅바닥을 굴렀다.

와작!

순식간에 벌어지는 난장판 가운데, 누군가의 발밑에서 그릇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동시에 달려 드는 무인들. 

탁자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무인들까지 뛰쳐나오니, 조용하던 객잔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쩌정!

뻗어 오던 금강탄에 곤봉 하나가 단숨에 부러져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백야참!   

찔러 들어오던 귀두도(鬼頭刀) 한 자루가 나무 토막 쪼개지듯, 동강나고 만다. 그 날에 부딪치는 것은 어떤 병기(兵器)도 버텨낼 수 없다. 이제야 청풍의 손에서 제 모습을 지니게 된 백호검의 진가(眞價)였다.

퍼억.

백야참 검결 곳곳에 태을미리장이 섞여 들며, 아직도 꺼려하는 살수(殺手)를 대신한다. 두 무공을 상충되지 않게 만드는 것은 바로 자하진기의 묘용일진저, 순식간에 다섯 명의 무인을 눕혀 놓은 청풍은 비로소 한 사람 진정한 무인의 모습으로 탈바꿈 되어 있는 것이었다.   “오호라. 한 수는 있다는 것이렸다.”

홍안귀의 목소리.

기회를 보던 그가, 갑작스레 몸을 날리며 두 자루 비수(匕首)를 꺼내 들었다.

그의 비수가 향하는 방향.

그것은 청풍을 향해서가 아니다.

다름 아닌 서영령을 향해서.

여인을 미끼로 삼으려는지, 비열하기 짝이 없는 자였다.

쐐액!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홍안귀의 신형이다. 청풍의 눈이 잠시 동안 서영령에 머물렀다 지나갔다. 홍안귀의 무공은 이 객잔에 있던 무인들 중, 가장 고강하다. 그러나, 청풍은 알고 있다. 서영령의 무공은 그보다 또 더 고강했던 것이다.

차라라락!

소매로부터 나타난 길쭉한 물체.

손에 이르더니 넓게 펼쳐지는 그것은 하나의 부채였다. 하얀 빛 나는 강철(鋼鐵)로 살을 댄 철선(鐵扇)이 그녀의 손을 타고 화려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다.

챙! 채챙!

밀어치고 뒤를 돌아, 다시 홍안귀의 비수를 막아내는 모습이 마치 하나의 춤사위를 보는 것 같다. 아까의 욕지거리에 ‘잘 걸렸다’는 듯, 비수를 아래로 꺾어 놓고, 일장을 내쳤다.

파앙!

가벼운 일타(一打)로 보였지만, 보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버텨 서려 하는 데에도 다섯 걸음이나 물러나는 홍안귀. 그 서슬에 벗겨진 죽립 밑으로 그 이름처럼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당혹과 분노의 표정을 드러냈다.

“이 계집이!”

서영령은 대꾸하지 않았다. 화를 내며 광분하는 대신 그 얼굴에 냉정한 미소를 떠올리는 그녀다.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아래로 숙여들며, 한 마리 선학(仙鶴)과도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챙! 파팡!

홍안귀의 눈앞에 넘실대는 기예는 현란함과 단아함을 동시에 갖추었다.

첫 일격은 어찌 어찌 비수로 막아내지만, 그 다음 일격까지는 도무지 방어할 방도가 없었다. 부드럽게 강타당한 홍안귀의 어깨가 밑으로 축 쳐지더니, 그 다음부터는 비수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음유(陰柔)하게 풀어내는 경력이 혈맥을 제압한 까닭, 기술과 내력이 절묘하게 조합되어 있는 뛰어난 공부였다.

“큭!”

이제 홍안귀의 입에서 나오게 된 것은 욕설이 아니라 신음소리다. 반원을 그리는 백철선(白鐵扇) 끝에 걸려든 곳은 홍안귀의 허리다. 빠악, 하고 강타한 선법(扇法)에 고통을 참지 못하고 벌건 얼굴을 더욱 더 벌겋게 달아 올렸다.

콱! 우당탕!

서영령의 발이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의 정강이를 차 버렸다.

날카로운 일격.

탁자하나를 쓰러뜨리며 그것과 함께 땅바닥을 뒹구는 홍안귀다.

“말을 하려면 상대를 봐 가면서 해야지요.”

싸늘하게 내려앉는 그녀의 목소리.

그토록 경우 없던 홍안귀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초라해진 몰골로 일어나지 못하는 무인 하나만이 거기에 있을 뿐이었다.

쿵!

일곱 명 째.

쓰러지는 자를 지나 서영령을 향해 발길을 돌리는 청풍의 모습은 사납다고까지 느껴질 정도다. 아직도 쭈뼛 쭈뼛 서 있는 무인들이 세 명이나 있었지만, 더 이상 달려들지 못했다.

급격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청풍이다.

그의 모습에서 다소의 위화감을 지니게 된 서영령이었지만, 그렇다고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 생각했다. 

이 정도는 해 줘야 한다. 

강호를 살아가는 무인이라면. 

힘을 보여주어야 굽히는 자들이 있는 이상, 필요할 때 충분히 폭력적일 수 있어야 도산검림 풍진강호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법이었다.

“가요.”

쓰러진 무인들을 뒤로 한 채, 객잔을 나서는 두 사람이다. 

백호검을 노리는 무리들.

또 있다.

어찌 알고 왔는지.

어느새 이 객잔 바깥에는 또 한 무리의 무인들이 몰려와 있었던 것이다.   

  

“늙은 거지 놈의 이야기가 맞는군. 보검(寶劍)을 지닌 년 놈들이 틀림없으렷다.”

거지.

방금 전 객잔 안에서도 그랬다.

이 마을에 난데없이 몰려들어 온 무인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리도 쉽게 그들을 발견하고 알아본다는 것, 이상하게 생각될 수밖에 없다. 무엇인가 내막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물건에는 항상 올바른 주인이 있는 법이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어디한번 꺼내 놓아 보아라!”

다짜고짜 달려드는 자.

소부(小斧) 하나를 꺼내들며 흉흉한 기세로 짓쳐든다.

백주의 대낮. 모여 있던 무인들은 모두 여덟 명, 안 그래도 험악한 인상들인데, 병장기까지 휘두르고 있으니, 거기를 오가는 사람들 모두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텅!

청풍의 신형이 앞으로 나아갔다.

크게 원(圓)을 그리는 소부다. 그 안에 실린 속도와 내력. 충분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 안 객잔의 놈들보다 약한 자. 

과감하게 안쪽으로 파고들어 태을미리장을 전개했다. 백호검을 뽑아들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퍼엉!

튕겨나가는 거한의 신체를 타고 넘어, 다시금 금강호보를 전개했다.

어차피 백호검을 탐내고 온 이들이라면, 굳이 말을 섞어야 할 이유가 없다. 

문답무용.

그럴 바엔 청풍 쪽에서 먼저 손을 쓰는 편이 나은 것이다.

촤르륵.

한 쪽에서 들리는 소리. 돌아본 그곳에는 얇은 쇠사슬 끝에 강추를 매달아 놓은, 변형된 유성추(流星錘) 하나를 들고 있는 이가 있었다. 

“조심!”

서영령의 목소리가 들리고. 

쐐애애액!

하늘을 나는 유성추로부터 거센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굉장한 경력. 호보를 펼쳐 몸을 옆으로 빼고서는 상대를 향해 빠른 속도로 전진을 감행했다.

피이잉!

스쳐가는 공기에 일순간 두 귀기 멍멍할 정도다.

근접하여 쳐 내는 태을미리장. 

순식간에 회수해 오는 유성추가 그의 손을 노리고 민활한 움직임을 보였다.

‘고수!’

이 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객잔에 있었던 무인들과는 몇 수 이상의 차이가 난다. 태을미리장만으로 상대할 자가 아니었다.

치리링! 큐웅!

뽑혀져 나오는 백호검에 여름 태양의 광채가 빛을 발했다. 

눈부신 출수다.

그 검날에 걸려들면 제 아무리 살아 움직이는 듯한 쇠사슬이라도 단번에 끊어지리라. 유성추가 나선으로 회전하며 금강탄 검격을 피해내고, 단숨에 궤도를 바꾸어 청풍의 등 쪽 요혈을 노려왔다. 등 뒤로 날아드는 강추의 흐름이 저절로 느껴진다. 청풍은 등 뒤에 눈이라도 달린 듯, 스르르 몸을 피하며 보이지 않는 사각에서의 공격을 가볍게 비껴냈다. 여섯 검집의 착검 수련으로 얻은 감각이었다.

차르륵! 쐐액!

옆으로 돌아서기 무섭게 다른 한 곳에서 같은 파공음이 울려 왔다. 두 명이다. 유성추를 쓰는 자들. 순식간에 쇄도하는 또 하나의 유성추에 청풍의 몸이 급박하게 움직였다.

“유성이괴(流星二怪)!”

서영령의 경호성을 들으니, 머리 한 구석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다.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었다. 변형된 유성추를 쓰는 두 사람, 유성이괴. 항상 같이 다니는 강호의 괴인들이 그들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화산파가 위치한 섬서성에서 유명했던 자들이기에 더욱 눈길 끌었던 기억이 났다.

위이잉!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묵직했다. 문서(文書)상으로 보았던 인물들을 직접 만나게 되니, 과연 그 실력들이 남달랐다. 정신없이 쏘아져 들어오는 두개의 유성추들은 백호검과 부딪치는 것을 철저하게 피하면서도 절묘한 방향 전환을 보이며 위협적인 공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텅! 파아악!

땅을 찍는 유성추의 일격에 한 움큼 흙먼지가 일어났다. 움푹 패이는 땅바닥, 저런 것을 육신으로 맞았다가는 치명상을 입을 터. 하지만 이대로 기세를 올리게만 놓아둘 수는 없다. 금강호보로 땅을 박차고는, 과감하게 앞쪽으로 몸을 날렸다.

‘잘라 낸다.’

궤도 안 쪽으로 진입하면 할수록, 유성추가 움직이는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깊이 들어간 후, 백호검을 크게 떨쳐냈다. 뒤에서 들어오게 될 하나는 일단 눈앞의 유성추를 꺾어 놓고서 생각하기로 했다.

터텅! 우우웅! 쩌정!

호보의 속도가 절정에 달했다. 찰라의 순간에 일장 거리를 압축하며 백야참의 이빨을 드러냈다. 하얗게 빛나는 백호의 일격, 상상을 초월한 빠르기에 결국 유성추 쇠사슬이 단숨에 잘려나가며 갈 곳을 잃은 채, 제멋대로 날아가 버렸다.     

‘다음은 뒤!’ 

등 뒤 지척에 이르고 있는 유성추다. 왼발로 땅을 차고, 순식간에 몸을 돌려 백호검을 뻗어냈다. 추를 직접 갈라 부셔버리기 위함이었다.

차륵! 

급습으로 하나는 잘라 냈지만, 이번에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일순간에 궤도를 바꾼 유성추가 한 마리 영사(靈蛇)처럼 꼬아져 청풍의 오른 손을 감아냈다. 다급하게 손을 빼려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두 바퀴 세 바퀴 팔을 감아 잡아당기니, 온몸이 덜컥 끌려간다. 유성추 쇠사슬을 따라 전해지는 내력이 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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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타 사이트에서도 자리가 잡혀가는 모양입니다. ^^

유조아 투베 5 에는 못 들었어도, 무협 부문에서는 초우선배님 작품에 이어 오늘도 2 등에 마크 되었네요.

워낙에 다른 장르들이 강세이다 보니, 그것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는 거두었다고 생각됩니다. 

좀 더 치고 나간다면, 결국 5연참을 준비해야 하겠죠.

고민이 많은 나날입니다.

글. 그리고 스스로의 처신. 

반성과 결심.

어떤 고민으로 밤을 지새웠는지.

이 밑에 구구절절히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군요.

연재 분 이상으로 할 말이 많았는데.....

결론은......결국 그저, 화산질풍검 읽어 주시는 모든 분께 정말 큰 감사를 느낀다는 것 밖에 없네요.

글 쓰는 데 충실하고, 더 좋은 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것.

여러번 드렸던 약속이지만 한번 더 드리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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