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1/156)

진실한 모습이 다르다는 것.

“자하진기는 자연기(自然氣) 모두를 포용하지만, 백호검의 검법은 그렇기 않아. 금강호보. 금강탄. 백야참은.......한편으로 치우친 무공이지. 방어보다는 공격에 더 특화되어 있어서 항상 전진하지 않으면 그 위력이 반감 돼. 넓게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라 한 곳으로 파고들었다는 말이야.”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고, 펼치는 방식이 다르다. 

자하진기가 넓고 넓은 대지라면, 백호는 오직 서방의 금기(金氣)를 발함이다.

“오리무중이군요. 설명이 잘 안 돼요.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처럼 치우친 무공이면서, 그렇게나 독특한 백호기인데도, 다른 진기와 융합이 잘 된다는 사실이겠죠. 제가 익힌 천지일기공도 천지간의 모든 기운을 아우른다는 심법이라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지나치게 잘 섞여 들었어요. 풍랑 말마따나, 무엇인가 다른 이유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에요.”   

확실히.

그날 그 때 이후로, 아무런 조짐을 느끼지 못했다.

뭔가 사단을 일으키기는커녕, 더욱 더 몸속 진기의 흐름에 동조해, 완연한 한 줄기로 흡수되어 버린 백호기다. 

처음부터 같은 기운이었던 것처럼.

이제는 확실히 자신의 내력이라 말 할 수 있을 만큼, 무리가 없어졌다.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작용이 있어, 온전히 본신 내력의 일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증강된 내력.

청풍은 박차를 가했다.

하루 종일 자하진기의 운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사부님께 자하진기를 배울 때처럼, 걸을 때나, 설 때나, 앉을 때나 자세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내력 연마를 계속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연련하는 심법이다.

백호기를 유도하여, 전신 세맥을 단단히 하고, 불어난 진기의 활용을 최대화했다.

‘삼단공의 벽은 확실히 넘어섰다. 사단공, 그것도 막바지에 올라왔어.’ 

오단공의 장벽을 바라보는 위치.

비약적인 성장이었다.

화산에서 하산할 때 까지만 해도, 삼단공의 끝자락을 겨우 붙들고 있던 청풍이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하늘이 그에게 수많은 좌절과 어려움을 주었어도, 그의 내공, 자하진기는 그를 배신하지 않았던 모양. 무공을 익히고 실전들을 치루면서 하단전과 중단전의 그릇이 커졌고, 마음과 영혼(靈魂)에 시련을 겪으면서 상단전의 힘이 불어났다.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이련가.

사부님이 남긴 자하진기는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는 동안, 꾸준히 성장하여, 여기까지 이루어 놓았다. 백호검이 선사한 백호기는 그 촉발제 역할을 했을 뿐, 그의 진신 무공은 역시 자하진기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익주에서 배를 타요. 안휘에 이르기까지는 그 편이 빠르겠어요. 게다가 육극신을 만나려면 이렇게 움직여서는 힘들죠.”

도회로 나가면 다시 무인들의 눈에 띄겠지만, 그런 것을 감수하더라도 이제는 산에서 나서야 할 때다.

이렇게 숨어서 이동하는 것만으로는 비검맹의 총단을 찾아낼 수 없으니까.

안휘성이 가까워지는 지금, 파검존 육극신과 접촉하기 위해서는 슬슬 이 쪽에서도 정보를 모아야 하는 것이다. 

“파검존은 검(劍)을 탐한다고 했으니, 이쪽에서 몸을 드러내면, 그 편에서 먼저 찾아 올 수도 있어요. 산에서 내려가면 더 이상 노숙은 안 해도 되겠지만, 오히려 더 험난하면 험난하지, 가볍지는 않을 거에요. 강해진 내력을 믿어볼 수밖에 없겠네요.”

청풍이 자하진기의 수련에 힘쓰는 동안 천지일기공을 통해, 백호 금기(金氣)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서영령의 말이다. 

그녀의 말처럼. 

더욱 더 험해질 행보.

두 사람의 발걸음은 힘 있게 나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                 *                *

“익주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그래? 그들 맞아?”

“예. 확실합니다.”

“익주.......익주라.......생각보다 많이 갔어. 사람들을 피하면서 그만큼이나 움직인다라.......그렇게 철저한 성품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지. 역시 동행한다는 여자가 문제인가.”

“........”

“.........왜 말이 없어. 그 여자에 대한 조사도 지시했었잖아.”

“그것이.......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짐작 가는 곳이 있기는 한데, 함부로 단정 짓기는 힘듭니다.”

“그런가? 요즈음.......후구당(嗅狗堂)의 성과가 영 심상치 않단 말야.”

“다 아시면서 그러십니까. 말도 마십시오. 코가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구파의 뒤치닥거리나 하려니까 그렇지. 숭산(崇山)에 전서라도 넣어야 하겠어. 맘대로 불러 쓰지 좀 말라 그러게.”

“소림 방장이 콧방귀나 뀌겠습니까. 용두 방주께서 진 빚이 얼만데요.”

“그도 그렇군. 여하튼, 그 양반은........” 

잠시의 침묵.

젊은 용안(龍眼)에 강렬한 빛이 깃들었다.

“그래서. 어디야? 후구당에서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곳이. 숭무야, 단심(丹心)이야?”

흠칫. 후구당 부당주 남진중의 얼굴이 굳었다.

“하기사 삼절(三絶)의 눈을 누가 속이겠습니까. 산서신협의 독문 무공이라 짐작되는 흔적이 발견 되었으니, 아마도 숭무련 쪽에 가깝겠지요.” 

“잘 하는 짓이군. 이런 시기에 딸 간수도 못하다니. 잘하면 경극(京劇)거리 하나 또 나오겠구만.”

“그렇겠습니다. 철기맹 탁가 놈의 일도 있는 마당에요.” 

“뭐, 그것은 그렇다 치고........익주면, 장강을 타고 내려가려는 건가?”   

“예. 배편을 구하여 수로(水路)를 이용하려는 모양입니다.”

“익주에서 출발하는 배편이 어디까지 가던가?”

“서진(西津), 안경(安慶), 아니면 장봉포(張烽浦)입니다.”

“비검맹에 직접 덤비겠다는 것이로군. 대책 없는 친구네.”

“육극신이 어떤 자인지 몰라서겠죠. 어찌 할까요.”

“뭘 어찌해. 일단 그 근처 무인들부터 엮어 줘야지. 저번이랑 똑 같이 해. 집법원 검사들이 따라잡을 시간은 벌어 줘야 할 게 아냐.”

“저번처럼 말입니까.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

“두 사람의 행보. 비검맹에도 흘려.”

“예?”

“육극신이 직접 나오도록 말이야.”

“아니.........대체........”

“그렇게 해. 그러다가 죽으면.......뭐, 할 수 없는 것이고.” 

*                  *                    *

익주에서 배를 타고, 장강을 따라 안휘성으로 접어들었다.

내리 쬐는 태양 밑에 시원한 강바람을 받으며 장강 물살을 가르고 있자니, 그야말로 유람이라도 나온 듯한 착각이 든다.

모처럼의 여유로운 시간.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다.

서진(西津)에 이르러 배에서 내린 그들을 맞이한 것은 또 한 무리의 무인들.

예상했던 일이다.

도회로 들어가 배를 구하고 행장을 새롭게 하던 하루, 눈에 불을 키고서 그들을 찾고 있던 강호인들임에, 하루라는 시간은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짐작대로네요. 어떻게 할까요.”

“싸워서 쫓아내야겠지.”

“좋아요.”

장강을 오가는 커다란 범선, 내리는 사람들이 심상치 않은 공기를 느끼고, 길을 트기 시작했다.

갈라지는 사람들 사이로 걸어 나온 서영령이 무인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군요.”

태연한 신색에, 여유만만한 태도를 지니고 있으니, 무인들로서도 제법 당황한 것 같다.

병장기를 뽑을 준비를 하는 그들, 서로 서로 눈치를 보듯, 얼굴을 돌아보더니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목소리를 높였다.

“보검(寶劍)을 지닌 자들이 맞으렸다!”

‘여기에 당도한지 오래지 않았군.’

급조된 무리, 조직적인 움직임이 아니다.

오합지졸. 

저번에 보았던 자들만도 못한 이들이었다.

“재미있네요. 그 정도로 다른 사람의 물건을 탐하는 것인가요.”

“흥! 간이 배 밖으로 튀어 나왔구나! 얌전히 보검을 내 놓고 간다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흉악하게 생긴 자, 입심만큼은 누구 못지않다. 하지만 무공이 받쳐주지 않음에야. 입심은 어디까지나 입심뿐일 따름이었다.

“앞으로........”

그녀가 고개를 돌려 청풍을 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이 교차되고, 이내 그녀가 발하는 마지막 선고가 장내를 울렸다.

“실력이 되지 않는 자들, 함부로 찾아오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촤르르르륵.

소매에서 뻗어 나온 부채. 

그녀의 신형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파아앙!

엄청나게 빠른 신법이다.

백철선으로 내려친 일격에 첫 번째 무인이 무릎을 꿇고 땅을 굴렀다. 그대로 전진하여, 위  아래 단타(短打), 두 번째 무인의 몸이 휘청 중심을 잃어 버렸다.

채챙!

갑작스런 쇄도에 그제서야 병장기를 뽑는 자들.

그러나, 햇빛 뿌려내는 살벌한 병기 사이에서도 서영령의 얼굴을 차분하기만 하다. 고수(高手)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무공들이라면, 그 병장기가 몇 자루가 되었던 결코 그녀를 위협할 수 없었던 것이다.

땅! 퍼억!

또 한명 쓰러지는데 이어, 부채살을 접고서는 휘둘러 오는 병기를 튕겨내었다.

  

유연하게 휘어지는 신체에 부드러운 탄력, 며칠 전과는 또 다른 경지의 무공을 보여주고 있다. 백호기를 받아들인 덕분이다. 강력해진 천지일기공이 불러낸 새로운 조화였다.

위잉! 채채챙!

쏟아지는 도검장창 속에서 서영령의 단아한 움직임은 홀로 외로이 빛나는 별과 같다. 흘러 넘기고 튕겨내는 동작들 바깥, 마침내 그 별을 밝혀 줄 한 자루의 검이 더해졌다.

텅!

뒤에서부터 날아든 청풍의 몸이다.

달려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몸을 숙이는 그녀를 뛰어넘어 도약의 끝에 이르니, 잠시동안 공중에 멈춰 있는 것처럼 보였다.

번쩍!!

천천히.

하늘에서 내려오는 청풍의 허리에서 백광의 금강탄이 뻗어 나왔다.

산중 대호의 광폭한 기세 그대로, 내리치는 휘황한 검신에 한 무인의 대감도(大敢刀) 한 자루가 밑 둥에서부터 뚝 하고 부러져 나갔다. 

턱!

날 없는 대감도 위로 무인의 어깨를 밟으며 다시 한번 몸을 띄운다.

백호금기가 꿈틀거리며 자하진기의 잔잔한 파도를 멋지게 쳐 받아 올리고 있다. 자하진기가 본체라면 백호금기는 그 본체의 의지를 실현시키는 한 자루의 검! 

그 강렬한 기운이 백호검을 타고 비로소 그 막강한 위력을 십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쩌엉!

이번에는 검이다.

잘 제련된 청강장검이 유리처럼 깨져 나갔다.

백야참 백색 광망이 깨져 날아가는 검조각에 비쳐 햇살 속 부서지는 빛무리를 만들었다. 비산하는 검날에 찔려 피투성이로 쓰러지는 무인을 타 넘고, 단숨에 휘어 친다. 반원을 그리는 검격에 창봉(槍棒) 하나가 반으로 잘라졌다.

호쾌하다.

그것이 바로 백호검의 본 모습이라 할까.

금강호보와 금강탄이 완벽하게 호응하며, 응축된 진결이 백야참을 타고 내뿜어졌다.  

쩌저엉! 우수수수.  

신기(神技)였다.

사람의 육신을 베어내지 않으면서도, 전의를 상실케 만드는 무공.

수숫단을 베어 넘기는 것처럼, 부서진 병장기들이 땅으로 떨어진다.

공중에 난무하는 파편들 사이, 가볍게 착지한 청풍이다.

어느 곳으로 튀어 나갈지 모르는 힘.

“이야야야압!”

눈앞에 있던 한 남자가 발악적인 고함을 지르며 무거워 보이는 철추(鐵鎚) 하나를 휘둘러 왔다.

꾸욱.

오른손으로 휘두르던 검자루에 왼손이 대어지고.

양손으로 치켜올린 백호검 끝에 자하진기의 진력이 흘러든다.

휘둘러 오는 철추에 정면으로 내리치는 검격이다.

검신에 새겨진 비천백호(飛天白虎) 문양(紋樣)이 튀어나갈 듯.

머리 위로부터 번쩍 내려오는 백광(白光)에 무서운 기세가 실렸다.

치리링! 꽈앙!

폭음에 가까운 충돌음이 터져 나왔다.

코와 입에서 피를 쏟으며 튕겨나가는 남자다. 

떨리는 두 손에는 쫙 갈라져 박살난 중병(重兵)이 흉하게 우그러들어 있었다.

“저럴 수가!”

누군가의 경악성.

비로소 깨닫는다.

달려들어 빼앗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젊고 곱상하게 생겼지만, 그것과 별개로 법접하기 힘든 무공을 지녔다.

이미 고수의 반열, 격이 다른 것이었다.

치리링.

백호검을 휘수하여 검집 안으로 집어넣는 청풍이다.

검자루를 잡은 손에 내력을 가하여 백호검 훌륭한 자태를 감추고 있던 천 조각을 부스러 뜨렸다.

푸스스스.

손가락을 펴 늘어뜨리는 그 동작에 백호검 검자루를 가리고 있던 천 줄기가 가닥 가닥 흩어져 버렸다. 

엄청난 내력이다.

이제는 백호검의 주인으로서 백호검을 감추지 않겠다는 의지다.

여기에 백호검주가 있다.

빼앗으려면 빼앗아 보라는 것.  

터벅.

순식간에 무기들을 파괴하고, 굳건하게 땅을 밟아가는 그의 모습에 그처럼 기세등등하던 무인들도 결국 뒷걸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

두 눈에 호안(虎眼)의 강렬함을 담고서, 말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마주치는 시선을 피하는 무인들이다.

감히 그의 눈을 맞받는 사람이 없을 정도.

그의 단전 깊은 곳에서 잠재되어 드러나지 않던 자하진기가 비로소 바깥으로 발산되니, 절정고수의 풍모가 전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타탁.

먼저 앞으로 나섰지만, 이제는 뒤를 따르는 서영령이다.

안휘성, 장강을 따라 내려가는 길.

길 위에 막강한 백호검과 철선녀.

두 사람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는 그 첫 행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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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권왕무적 초우님께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후배들에게 항상 멋진 모습 보여주시는 작가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일요일 온 종일.

많은 생각과 고민 속에 처음으로 화산질풍검을 다시 읽어 보면서 수정 작업을 해 보았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이나 전개는 의도한 바 대로지만, 여러가지 측면에서 답답함이 남아 있더군요.

세세한 부분을 몇 군데 손 보고, 자연스러운 흐름이 될 수 있도록 손을 썼습니다.

수정본을 여기에 올릴 지 안 올릴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책으로 나왔을 때는 확실히 진보된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청풍의 가능성을 좀 더 많이 보여드리기로 했거든요.

또한 거기에 더해.....원래 서장을 쓰지 않는 주의지만, 한 문장만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잔잔한 미풍으로 시작하여, 마침내 강호를 누비는 질풍이어라. 그 이름처럼 흘러가는 한 줄기 바람 같도다." 

책 첫 장에 들어갈 어구입니다.

좋은 자리 만들어 주신 금강님께, 큰 감사의 말씀을 올리오며, 금강님, 금강님께서는 영원한 저희의 문주님이십니다.^^ 

무당마검 때.....문주님께는 물론이고, 별도 선배님께 큰 가르침을 얻었는데, 이번에는 초우 선배님께 커다란 은혜를 입었습니다.

더 좋은 글 쓰는 후배가 되도록 열심으로 노력하겠습니다.

PS. 자청비 송하원 누님. 

      동생으로 받아주시길 다시한번 간곡히 청하옵니다.

      앞으로는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열심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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