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가장 가까운 수채(水寨)가 어디에 있지요?”
비검맹을 직접 이야기 할 수는 없다.
안휘성, 장강에 삶을 걸은 민초들에게 비검맹이란 그야말로 금기(禁忌)의 이름이었던 까닭이었다.
“수로채.......는 어인 일로.......”
동부 억양, 경계심이 묻어난다.
불안해 뵈는 표정, 어업(漁業)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얼굴에는 고된 삶의 그늘이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사람을 찾고 있답니다.”
짐짓 절박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서영령이다.
마치, 집나간 동생이라도 찾고 있다는 듯한 어조에, 남자의 눈살이 가볍게 찡그려졌다.
“어인 일로 찾으시는 것인지요.”
서영령을 한번 훑어보고는 청풍을 살펴보았다.
범상치 않은 외모들에 검까지 들고 있으니, 두 눈에 서려있는 불안감이 더욱 더 커진 듯 하였다.
“중요한 일이에요.”
“일 없소. 다른 데서 알아보시오.”
급기야는 손사래를 치고 만다.
더 이상 한 마디도 나누기 싫다는 표정, 강호의 일에는 끼어들 수 없다는 몸짓이었다.
“실은........집 나간 친지를 찾으려는 것입니다. 집이 가난하게 되었을 때, 무작정 산야로 뛰쳐나간 아이인데, 이제 와 형편이 되었으니 제대로 된 생활을 하게 해 주고 싶습니다.”
“거짓말 마시오. 이 동네 사람도 아니지 않소!”
청풍과 서영령은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북부 억양을 구사한다.
그 뿐인가.
겉보기에만도 타향 사람, 남자가 지닌 의심의 눈초리가 더욱 더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이 근처 수로에서 얼굴을 보았다는 고향 사람이 있어서 이렇게 먼 길을 떠나 왔습니다. 사정을 이해하실 만도 한데, 가르쳐 주세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잘도 지어낸다.
그럴 듯한 이야기에 남자는 찡그린 얼굴을 미처 풀지도 못한 채로, 억눌린 듯 억지로 입을 열었다.
“그럼,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오? 검을 차고 있으니 영 불안하지 않소.”
“아녀자의 몸으로 어찌 험한 길을 왔겠습니까. 저를 지켜줄 분이시랍니다.”
짜 맞추었을지라도 그렇게 잘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아리따운 얼굴에 애원하는 표정, 결국에는 어민(漁民) 남자가 지고 말았다.
“도무지 당할 수가 없소. 내 알려줄 수밖에.”
말을 뱉어 놓고도 멈칫 멈칫 하더니, 마침내 찡그린 표정 그대로 동쪽을 향해 손을 가리켰다.
“이 근역을 맡고 있는 수로채(水路寨)는 삼교채(三蛟寨)라 불리오. 저쪽 산등성이를 넘어 남쪽을 바라보면 밑으로 내려가는 지류가 있소. 꽤나 물살이 거세니, 배를 타고 들어가기는 힘들 것이오.”
“고마워요.”
가르쳐 줘 놓고, 또 그것대로 불안해하는 기색이다.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의 남자를 뒤로 한 채, 청풍과 서영령은 곧바로 그가 가르쳐 준 방향을 찾아 발길을 옮긴다.
“어때요? 잘했죠?”
청풍의 팔을 잡은 그녀가 두 눈을 반짝였다.
슬쩍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보는 청풍이, 꾸짖기라도 하듯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남을 속이는 것은 좋지 않아.”
“어머! 그런가요? 그럼 곧이 곧대로 이야기할걸 그랬네요.”
“그런 이야기가 아닌 것은 잘 알잖아.”
“흥! 이렇게라도 안 했으면 한참 걸렸을 걸 아니에요. 게다가 그 삼룡채니, 삼교채니 가 본다고 해도, 또 한 바탕 소란이 날 것이고요. 거기 간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닌 마당에 처음부터 막히면 곤란하죠.”
“그래도. 거짓말은 안 돼.”
“풍랑은 그럼 평생 거짓말 없이 살 거에요?”
“그래. 그럴 거다.”
진지한 눈빛.
그녀가 두손 다 들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어디 두고 봐요.”
활짝 웃어넘기는 서영령이다.
거리낌 없이 거짓말을 하지만 밉지는 않다.
상식을 벗어난 사람.
항상 새로운 얼굴에 예상치 못한 모습들이 가득했다.
“노상 착한 척만 하고. 남자는요. 못된 맛이 좀 있어야 해요.”
미간을 좁히는 그녀의 콧날에 잔 주름이 졌다.
일부러 더 밝게 행동하는 그녀.
사부님의 원수를 탐색하는 행로라면 침중하고 어두워야 마땅한 일이겠지만, 그녀 덕분에 마음의 부담이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다.
심적인 압박이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바, 그녀의 존재는 그야말로 청량한 샘물과 같다.
함께하는 그 자체로 힘이 될 만큼, 그의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쏴아아아아.
그 동안 산을 탄 시간이 얼마였던가.
능선 하나 타 넘는 것은 금방이다.
우거진 숲 사이 장강 줄기가 가지 치는 곳, 협곡으로 접어드는 수로에 거센 물결이 굽이치고 있었다.
“여길 말하는 거, 맞겠죠?”
청풍과 서영령은 협곡 등성이를 따라 아래를 내려보면서 그 남자가 가르쳐 주었던 수로채의 흔적을 훑어 나갔다.
상당히 험한 지형, 과연 수적들이 근거지로 삼을 만 하다.
쑥쑥 나아가는 그들, 어느 순간 청풍이 발을 멈추며 서영령의 어깨를 툭, 쳤다.
“저기.”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
급류 가운데에 솟아난 바위 사이로 몸을 숨긴 한 명의 장한이 자리하고 있었다.
망을 보는 자다.
급류를 타고 있는 수로(水路)를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위치였다.
“저 쪽에도.”
청풍이 또 한 쪽 방향을 가리켰다.
수로가 아니라 저편 산 등성이. 풀숲 사이로 졸고 있는 한 남자가 보인다.
제 기능은 못하고 있지만, 어찌 되었든 이 방향을 경계하고 있는 역할일 게다. 풀에 가려 제대로 눈에 띄지 않는 상태임에도 용케 알아챈 청풍이었다.
“눈도 좋네요.”
서영령이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슬며시 치켜 올렸다.
예민한 감각의 청풍이다. 그녀는 눈썰미를 말했지만, 결국 훌륭한 안력(眼力)의 의미하는 것은 곧, 뛰어난 인지력이라 말할 수 있다.
이 거리에 기척을 잡아내는 것.
세밀한 감각이다.
어느 새 청풍은 그녀 이상의 능력을 갖춰가는 중인 것이다.
“어떻게 하죠?”
“그냥 들어가면 되겠지.”
그 말이 그대로다.
경계서고 있는 자들에게 들키더라도 기실, 별다른 상관은 없다.
숨어서 들어갈 필요가 무에 있으랴.
어차피 비검맹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서 온 것, 다른 볼일 따위는 없는 것이었다.
탁! 타탁.
워낙에 신법들이 날렵하고 표홀한지라, 졸고 있는 경계 무인의 잠을 조금도 깨우지 않은 채, 옆을 스쳐 지나가 버린다.
능선 꼭대기를 넘어선 후, 이제는 내리막길이다.
긴 가지를 치는 나무들이 많았기에 그림자가 짙게도 물들어 있다만, 제대로 찾아온 것은 맞다.
저 밑에 보이는 깃발.
세 마리의 교어(鮫魚)가 조악하게 수놓아진 그 깃발이야말로 기나긴 장강의 칠십 이 수채들 중 하나, 삼교채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타탁.
엉성하게 새워 놓은 목책에 방만하게 흩어져 있던 수적(水賊)들이 하나 둘 몸을 일으켰다.
청풍과 서영령.
흉험하게 생긴 장정들 사이로 태연하게 걸어 들어갔다.
“이 것 들은 뭐 하는 년놈들이야.”
개 중에 힘깨나 쓰게 생긴 녀석이 어깨를 꿈틀거리며 성큼 성큼 걸어왔다.
그 자를 똑바로 직시하는 서영령.
던져낸 그녀의 말에 험상 굳은 수적들의 얼굴이 확 굳어 버렸다.
“비검맹 총단은 어디 있지요?”
덜컥 멈춰서는 남자.
제 멋대로 이해해 버린 그 녀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내 왔다.
“비......비검맹 분들이십니까?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단숨에 굽실거리면서 태도를 싹 바꾼다.
비검맹이 장강 일대에서 지니고 있는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죽을 죄 인 것을 알긴 아는군요. 간만에 왔더니 어디가 어딘지를 잘 모르겠네요. 총단이나 가르쳐 줘요.”
서영령의 태도는 진실로 자연스럽다.
오랜만에 장강을 찾은 비검맹의 고수라도 되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는 중.
급기야 한 장한이 목소릴 높이며, 삼교채 채주를 불러냈다.
“채주! 비검맹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어여 나오십시오!”
허둥지둥 뛰어가는 조무래기들이 있고, 쭈뼛 쭈뼛 다가오는 장정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웃통을 풀어헤친 채, 수적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 어인 일로 비검맹에서.......!”
순식간에 튀어 나오는 털보 장한이 있다.
비굴해 보이는 모습, 이런 일에 두목까지 나와 허리를 굽힌다는 것은 이 집단이 얼마나 얄팍한 집단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회심의 미소를 지은 서영령이 입을 열려 했을 때, 앞으로 걸어나간 청풍이 다 된 밥을 엎어 버렸다.
“뭔가 잘 못 알고 있군. 우리는 비검맹 소속이 아니오.”
잠시의 정적.
수로채 시커먼 장한들이 일순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의 얼굴들을 쳐다본다.
이에, 서영령이 청풍의 소매를 잡아채며 서글서글한 눈매를 치켜 올렸다.
“지금 뭐 하는 거에요.”
그녀를 돌아본 청풍.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다른 곳은 몰라도 비검맹을 사칭해서는 안 되는 일이야.”
“!!”
비검맹이 어떤 곳이련가.
파검존 육극신이 있는 곳이다.
사부님의 원수가 속한 집단, 입에 올리기도 꺼려지는 이름인 것이다.
“다시 한번 묻겠소. 비검맹 총단의 위치는 어디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는 얼굴을 굳힌 그녀를 뒤로 한 채, 청풍이 몸을 돌려 재차 질문을 던졌다.
“어이 어이. 잠깐. 비검맹이 아니라고?”
상당히 당황한 듯한 목소리.
털보 장한, 삼교채주 방조교(方釣鮫)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되 물어왔다.
“그렇소.”
태연하게 맞받는 청풍. 방조교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아니, 그럼 이 년놈들이 나를 데리고 사기를 쳤다는 게냐? 이런 흙에다가 뭉개 놓을 물고기들 같으니라고. 낚시 바늘에 꿰매어 혓바닥을 찢어버릴 년놈들이!”
입심 한번 대단하다.
침을 튀기며 욕설을 퍼 부은 방조교가 울그락 불그락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내 삼첨극(三尖戟)을 가져와!”
돌변하는 태도에,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한 수적들이 험악한 표정들을 떠올리며 청풍과 서영령 주변을 둘러쌌다.
당장이라도 덤벼들 기세.
졸개 하나가 육중한 삼첨극을 둘러매고 달려오니, 삼교채주 방조교가 그것을 받아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내장을 발라주마!”
꾸웅!
땅을 차고 뛰어 오른 방조교다.
살집이 붙은 몸매에 의외로 빠른 움직임이라.
천생 신력을 타고 난 듯한 일격에 과연, 보통의 수적들 사이에서는 두목 소리를 들을 만 할 것 같았다.
콰앙!
금강호보로 슬쩍 비껴선 자리에 커다란 흙먼지가 일었다.
제법 강한 위력이다.
뻔한 궤도에 단순한 공격이라 절대로 맞을 리 없겠지만, 그래도 행여나 허용한다면, 사람의 육신으로 버텨내지 못할 일격이었다.
“크합!”
기합소리도 그 병장기만큼이나 무지막지했다.
내기(內氣)를 발산하여 일합(一合)의 발경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턱대고 소리 지르는 무식함이다. 그야말로 막무가네, 도리어 맥이 빠질 지경이었다.
후우웅! 꽈앙!
일장의 활극이 따로 없다.
무작정 크게 휘둘러 치는 삼첨극 사이로, 완전하게 궤도를 읽고 있는 청풍의 움직임은 산중을 산책하는 대호의 진중함을 닮아 있었다.
백호검을 쳐 내기에는 마음이 동하지 않는 상대.
십 합이 넘어가도록 피하기만 했다.
“크아! 도망만 다니다니! 이런 똥물에 튀겨 죽일 두꺼비 같으니라고!”
씩씩대면서 지저분한 입담을 자랑하는 방조교다.
아직도 이 싸움의 양상을 인식하지 못한 모양, 그렇다면 직접 깨닫게 해 줄 수밖에 없다. 청풍의 손이 백호검 자루에 머물렀다.
“카합!”
후우우웅!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거세다.
청풍의 정면으로 들어오는 삼첨극.
검집에서 빠져나오는 흰색의 빛줄기가 경쾌한 마찰음을 울렸다.
치리리링!
오른 발을 반보 앞으로.
나아가는 일격에 삼첨극 세 개의 날이 얽혀 들었다.
치링! 치치칭! 쩌엉!
삼첨의 끝이 순식간에 부서져 나간다.
단 일격.
손에 느끼는 충격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뒷걸음치는 방조교의 얼굴에 불신의 빛이 떠올랐다.
치리링. 챙.
검집에 집어넣는 백호검.
청풍이 방조교의 얼굴을 직시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비검맹 총단의 위치는?”
“니미럴.”
마지막 오기이나 거기까지다.
본래부터 비굴한 성정일진저.
대답이 나오기까지는 고작 세 걸음으로 충분했다.
“도.......동릉(東陵). 장강을 따라 쭉 내려가다 보면 있소.”
“.........”
어이가 없다.
십인십색(十人十色).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성정을 지녔다지만, 이런 자는 또 처음 보았다. 우습다고 느껴질 정도, 다시는 상대하고 싶지 않은 인물형이었다.
“동릉.......이면 그리 멀지 않네요.”
뒤 돌아 걸어오는 청풍에게 서영령이 머뭇머뭇 어색한 모습을 보인다.
이내 입술을 한번 깨물고 청풍의 두 눈을 직시했다.
“풍랑. 미안해요.”
“괜찮아.”
희미한 미소로 받아 주는 청풍이다.
함께 돌아 나오는 길.
뒤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가 그들의 미소를 더 키웠다.
“저, 저, 찢어진 잉어 지느러미 같은 년놈들! 모두 뭐하냐! 가서 잡아! 너! 안 가? 빨리 움직여!”
뒤에서부터 달려드는 발소리로, 시커먼 수적들이 병장기를 휘둘러 온다.
백철선을 꺼내드는 서영령, 그리고 금강호보를 내딛는 오른 발에 쑥대밭 되는 삼교채의 뒷 모습이 절로 연상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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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글 쓸 시간 두 시간.
1초 차이. -_-a
스릴이 넘치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