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33/156)

    

           

 삼교채의 목책이 박살나고, 깃발이 꺾여졌다는 소문은 흐르는 장강의 물을 타고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백호검과 철선녀.

비검맹에 의해 강력한 질서가 짜여진 이후, 한 동안 잠잠하던 장강일대이기에 더욱 더 그 소문이 거세다.

삼교채의 일 뿐 이련가.

동릉으로 나아가는 길.

청풍과 서영령은 백호검을 노리고 달려드는 무리들이 둘이나 있었다.

뛰어난 무위로 가볍게 돌파한 두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단 한 명의 목숨도 빼앗지 않았으니, 또한 그렇기에 훨씬 더 대단한 무공이라 이야기되고 있었다.

“이제부터 진짜로군요.”

서영령의 말.

그렇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몇 번의 싸움을 겪었고, 이 쪽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소문이 퍼지면서, 백호검주가 고수라는 말이 돌고 있다.

어지간한 놈들은 이제 덤벼들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찾아 올 놈들은 두 부류로 압축된다.

지금까지처럼, 백호검을 노리고 찾아오는 자들이 첫째요.  백호검주의 실력을 보기위해, 비무를 청하러 오는 자들이 둘째다. 

드러내 놓고 움직이기 시작했으면, 결국 어느 쪽이나 반드시 감당해야만 했던 상대들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검을 부딪치고, 누군가를 쓰러뜨려야 하지만, 숨어서 산 속을 다닐 때 보다는 훨씬 마음이 편했다.

“기다리고 있네요.”

드디어.

고수들의 출현이다.

뒤에서 헐레벌떡 쫓아오거나, 어설픈 매복을 하고서 뛰쳐 드는 하수(下手)들이 아니라, 스스로의 실력을 믿고 기다리는 자들인 것이다.

스윽.

여전히 장강 줄기를 끼고서 움직이는 청풍과 서영령이다.

익숙해진 물 냄새, 강변의 솔길 위에 세 명의 남자가 삼엄한 기운을 내 뿜으며 서 있었다.

“백호검주?”

“그렇소.”

스스로 백호검주를 칭함이다.

검을 쥐고 앞으로 나서는 청풍의 마음에, 그 동안 쌓여진 자신감이 바람처럼 새어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소호삼귀(巢湖三鬼)라 불리고 있다. 백호검의 값어치, 그리고 백호검주의 실력이 궁금하여 찾아 왔다. 내 이름은 황요(黃搖), 삼귀의 대형이다.”

“이귀(二鬼). 종허(鍾許)다.”

“삼귀(三鬼). 양전당(楊專撞)이다.”

자신의 이름과 신분을 확실히 밝힌다. 

소호삼귀라면, 낭인(浪人)들. 

강호를 떠돌면서 돈에 실력과 무공(武功)을 판다는 낭인이란 무리들 중에서도 꽤나 이름 있는 자들이었다.

“화산파. 청풍이오.”

포권을 취하는 그 모습에 소호삼귀들이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화산파.

철기맹과의 싸움으로 한참 체면이 꺾였다고는 해도, 화산파란 이름 석자는 확실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랭이들이야,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서 화산파를 업수히 여길지 몰라도, 제대로 강호를 아는 자들이라면 결코 그럴 수 없다. 구파의 이름값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철기맹과의 싸움이 한창인 지금, 외따로 떨어져 나와 강호를 주유한다. 백호검사, 이유가 무엇이지?”

지금까지의 놈들하고는 확실히 틀리다.

소호삼귀의 대형, 황요의 질문.

무작정 덤벼드는 자들이 아니다. 배후에 화산파가 있는지, 청풍을 건드려도 후환이 없을지 가늠해 보려는 의도였다.

“갈 길이 바쁘오. 할 것이오, 말 것이오.”

스스로 뱉어 놓고도, 대담하다고 느끼는 한 마디다.

적들이 달라진다?

청풍도 달라졌다. 호승심(好勝心). 비무에서 지고도 헤헤 웃던 오랜 옛날이 생각나는 것은 어째서일련지.

“좋군. 그래야 제 맛이지. 뒷일을 생각하는 것 따위, 어울리지 않아.”

차창.

황요의 손에 길쭉한 기형도가 맑은 도명(刀鳴)을 뿌렸다.

“우리는 항상 함께 했어. 삼귀는 따로 움직이지 않아. 출수도 함께, 합공을 하겠다는 말이야.”

“관계없소.”

황요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짙어졌다.

청풍의 대답이 마음에 든 듯.

그가 뒤에서 병장기를 꺼내드는 두 남자를 돌아보았다.

“이 친구는 우리 셋이 전혀 두렵지 않은 모양이구나. 귀도님과 손을 나눠 본 이후, 간만에 재미있는 싸움을 하겠어.”

“귀도님과 비교할 바는 아니겠지요.”

텅.

두꺼운 철곤(鐵棍) 하나로 땅을 치며 말하는 이는 삼귀 양전당이다.

말없이 한 줄기 채찍을 꺼내드는 종허.

삼인이 모두 특이한 기병(奇兵)을 사용한다. 숱한 실전을 겪어 온 듯, 풍기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위험에 처하더라도 도와주지 마.”  

품(品)자 형으로 다가드는 삼인을 눈앞에 두며, 서영령에게 한 마디를 남긴다.

고개를 끄덕이는 서영령. 청풍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삼엄해지는 삼인의 기세다. 

혼자 해야 한다.

상황에 휘둘려 오던 그가, 비로소 제대로 된 싸움에 임하는 순간. 

마음이 들끓는다. 이것이 바로 검에 생명을 건 무인을 뜻하는 것인지.

하나 하나, 무인으로서의 긍지를 깨달아가는 청풍이었다.

타탓. 

쐐애액!

온다. 첫 번째.

황요의 기형도는 빠르다. 경쾌하면서도 틈새를 베어오는 정교함이 깃들어 있다. 낭인의 것이라고 보기 힘든, 그야말로 뛰어난 도법이었다.       

피핏!

호보를 밟아 비껴냈다. 한 박자 먼저 움직였다 생각했음에도 옷깃이 잘려나갔다. 보이는 것보다 더 정밀한 도세였다.

피리리릭! 파팡!

두 번째는 종허의 채찍, 강사(鋼絲)로 꼬아 만든 강편(鋼鞭)이었다. 편법(鞭法)이란 본디, 현란함과 투박함을 동시에 갖춘 기예라 할 수 있다. 넓게 휘돌아, 거세게 끊어 치는 일격에 강렬한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호보는 곧 전진.

자하진기를 최대로 끌어올리며 강편의 움직임을 느낀다.

허리를 옆으로 꺾은 후, 한 발 앞으로.

종허의 강편이 청풍의 발끝에 피어오르는 먼지를 흩어 놓을 때. 

마지막 세 번째의 공격이 들어왔다.

양전당의 철곤이다.

위이이잉!

두꺼운 철곤이 토해내는 바람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혔다.

“!!”

무시무시한 경력이다.

이런 위력. 자칫하면 죽는다.

삼첨극을 휘두르던 방조교도 천생의 신력을 타고 났던 것 같았지만, 이 양전당에 비하자면 천생신력이라 말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꽈아앙!

움푹 파이는 땅이다. 

흙먼지가 짙게 피어오르고 갈대 줄기가 마구 흩날린다.

철곤의 궤도 안 쪽으로 파고들어 양전당의 옆으로 돌아 나온 청풍.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생명의 위협에 더욱 더 눈빛을 빛냈다.

쐐액!

피리리릭!  

수레바퀴처럼 멈추지 않는 공격이다.

검자루에 손을 올리고는 있지만 마땅히 뽑을 시점을 찾을 수가 없다.

빠르다.

감각적인 공격들, 싸움으로 다져진 실전 무예였다. 

파팟! 터턱.

두 사람의 공격을 피하다가 운신이 어려워짐을 느꼈다.

기형도와 강편의 굴레 속. 막혔다.

촤촥!

옆구리에 강편의 일격을 허용했다.

비껴 맞았음에도 정신이 아득해질 충격이 전해져 왔다.

멈추어 버린 청풍의 신형.

그렇다면 세 번째다.

어김없다.

양전당의 철곤이 강력한 일격을 뻗어왔다.  

꽈앙!

절대적인 위기, 그의 몸을 지켜준 것은 단 하나.

자하진기와 금강호보의 호응이다.

발끝으로 땅을 찍고, 몸을 띄워 올려 한 바퀴 회전했다.

손을 짚으며 몸을 바로잡는 청풍, 스치고 지나간 하체에 찌릿찌릿 느낌이 남는다. 

이 공격이다.

승부를 단번에 끝 낼 수 있는 위용. 

삼귀, 마지막 일인이지만, 그야말로 가장 위험한 자였다. 

‘세 가지. 공격의 핵심은 철곤이다. 앞의 두 가지는 마지막을 위한 준비일 뿐이야.’  

첫 번째는 경쾌함으로 상대를 당황케 하고, 두 번째는 강편의 변화를 이용해 상대의 움직임을 한정시킨다.

그리고 결정타.

피하기 힘든 곳에 내리치는 철곤은 마지막 일격으로 더할 나위가 없었다.

세 기병으로 만들어내는 훌륭한 조화다.

그렇다면 청풍이 검을 뽑을 순간은 언제인가.

‘승부점은 거기다.’

검자루를 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금강탄과 백야참.

두 검법은 단숨에 이어져야 그 위력이 배가 된다. 두 가지를 단숨에 쳐 내려면, 그러기 위한 적절한 시점을 잡아야 하는 바. 

그것이 가능한 곳.

달리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다.

그곳 밖에 없었다.

쐐애애액!

마음을 정한 청풍이다.

거침없이 호보를 밟아, 앞으로 나아갔다.

예상한 대로.

다음은 역시나 강편이다.

줄기줄기 뻗어 오는 채찍 속으로 몸을 던졌다.

위잉! 촤아아악!

땅을 휩쓸어오는 강편을 뛰어 넘으며 그것을 휘두르는 종허의 왼편으로 돌아갔다.

일순간 멈춘 청풍.

아직도다.

백호검 검자루에 올려진 손은 움직이지 않는다.

기형도와 채찍을 피해낸 시점.

세 번째 공격이 들어오는 때. 

양전당의 일격.

‘지금!’

청풍이 택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다.

적들이 마지막으로 날려 오는 철곤.

결정타를 파훼하는 것이 곧, 적을 무너뜨리는 첫 걸음인 것이다.

텅!

그의 오른발이 힘차게 땅을 밟아, 용맹한 흰 범의 일보를 내딛었다.

치리리링! 퀴융!

금강탄이 뻗어 나간다.

힘대 힘.

정면승부!

쩌어어어엉!

호보로 버텨선 청풍의 발밑에서 흙먼지가 솟구쳤다.

경력의 여파가 주변의 갈대를 휩쓸어 몰아치고.

모든 것이 느려지는 정적 속에서, 청풍의 왼발이 앞으로 나아가 땅을 밟았다.

번쩍!

이어지는 백색의 광영.

멈춘 것은 양전당의 철곤, 계속 나아가는 것은 백호검이라.

피리리리릭! 스가각!

강사 줄기가 잘린 단면으로 쫙 풀려 나온다.

양전당을 타 넘으며 뻗어내는 백호검에 종허의 채찍이 중간부터 잘려나간 것이다.

터텅! 치리링!

얽혀든다.

마지막은 소호삼귀의 첫째인 황요의 기형도.

백야참을 뻗어내려 했다.

그 순간.

청풍은 자하진기가 백야참으로 쏟아지는 진기의 흐름에 잠자고 있던 백호 금기가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두근. 

심장의 고동소리.

백야참이 변한다.

치링, 치링, 치리링!

“크윽!”

황요의 기형도가 하늘로 튀어 올랐다.

그래도 끝이 아니다. 

더 나아가려는 백호검, 그 끝이 황요의 가슴으로 쏟아졌다.

“!!”

텅!

오른발을 땅에 박아 넣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손을 멈추었다.   

두근.

반 치.

황요의 가슴으로 파고든 것은 그것이 전부다.

더 들어갔으면 치명상. 아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엄중한 상세라 할 수 있다.

중간에 차단하기는 했지만, 백호검에 실려 황요의 가슴을 때린 경력은 작은 것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쿨럭!”

황요가 입에서부터 핏덩이를 뱉어 냈다. 

한 쪽 무릎을 꿇는 황요.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죽일 뻔 했다.......’

멈추지 않았다면 죽이고 말았을 터.

비록 싸움을 걸어온 자들이지만, 그리 나쁜 자들 같지는 않다.

다 이긴 마당에 살수를 쓸 이유가 없는 것, 그럼에도 손속이 과하게 나갔다.  

‘자하......진기......’

순간적으로 제어할 수 없던 변화 때문이다.

넓게 베어내는 웅혼함이 백야참의 특질일진데, 황요의 기형도와 부딪쳤을 때에는 뭔가 달랐다.

백야참 깊은 곳, 숨어 있던 무엇인가가 나온 것처럼. 

‘그것은 마치.......’

마지막 백야참.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화형권과 이형권, 그리고 비형권으로부터 태을미리장을 뽑아냈을 때의 느낌.

그때의 현상과 같은 느낌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자하진기의 공능.

무공의 진화다.

백야참도 변한다.

그것은 금강탄도, 금강호보도 변할 수 있다는 이야기일까.

무공지로(武功之路). 갑작스레 새로운 길이 열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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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같은 조마조마함은 다시 맛보기가 싫군요.^^

워낙에 바쁜지라. 오늘도 9시가 되어서야 겨우겨우 쓸 시간이 생겼네요. 

여하튼 오늘은 서둘러 올립니다.

뭔가.....

제 궤도에 올려 놓았다는 기분입니다. 

무당마검 여파로, 몇 가지 문제가 드러나고 있었거든요.

몇 몇 부분에 소폭 수정을 가해서 짜 맞추기만 하면, 앞으로는 수정 걱정이나, 흐름을 잃을 염려 따위는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청풍의 성격이나 잠재성이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으니, 글 쓰는 저로서도 좀 더 신나게 써 볼 수 있겠네요.

수정본에 관해서라면, 다음 주 쯤에 올리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차피, 대폭 흐름이 바뀌는 것은 아니고, 부분적인 수정이 가해질 것이니, 그냥 그대로 보아 주셔도 관계는 없을 겁니다.

무엇보다, 앞으로는 쭈욱 몰입도 있는 스토리가 유지될 것이니까요.   

간만에 드리는 말씀.

감기 조심하시고, 항상 건강하십시오. 

건강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몸이 건강한 사람은 마음도 건강하다는 말 역시, 대단한 명언(名言)이라 할 수 있지요.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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