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34/156)

  

치리링.

백호검을 검집에 꽂아 넣었다.

고개를 돌린 청풍, 양전당의 두꺼운 철곤이 동강나 부서진 것이 보인다.

망연자실, 잘려진 강편을 내려보는 종허도 시야에 들어왔다.

소호삼귀.

몰아치던 것은 분명 그들이나, 한 순간 입장이 바뀐 것이다.

져 버린 것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

“........”

패자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서영령과 함께 몸을 돌리는 청풍이다. 

“.......강하군. 백호검. 함부로 덤벼들지 말라고 해야 하겠어. 크크크.” 

다시 행보를 시작하는 그들. 

조금씩 변해가는 청풍의 뒷모습, 그 지나온 발길에 황요의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내리 깔리고 있을 뿐이었다.

  소호삼귀와의 싸움에서 얻었던 깨달음을 곱씹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그에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소호삼귀와 싸운 지 반 나절.

갈대밭을 지나, 장강 변 관도 위에 나타난 다섯 명을 시작으로 다짜고짜 살수를 날려오는 흑의인들이 계속하여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쐐액!

‘이 놈들은......!’

피해내는 청풍의 눈에 기광이 번뜩였다.

타타타탓.

달려오는 흑의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길쭉한 협봉검이다. 무표정한 얼굴 뒤에 고된 훈련의 흔적이 엿보이는 자들, 청풍은 알고 있다. 이들이 어떤 자들인지.

같은 무공에 같은 수법. 

다섯 명이 산개하여 움직이는 방식 또한, 눈에 익은 것들이다.

‘본산에서 보았던........’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첫 살인.

처음으로 백호검을 얻었을 때.

본산을 습격해 왔던 무리들과 똑같다.

사방신검 세 자루를 탈취해 갔던 흉수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치리링! 차앙!

망설이지 않고 백호검을 뽑아냈다. 협봉검을 튕겨내고, 서영령의 전방을 막아섰다. 

이 흑의인들의 살수(殺手)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위험한 자들, 서영령도 제 몸 하나 지키는 정도야 문제없겠지만, 그래도 앞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섯 자루의 검격을 튕겨내기 수차례.

“혈적(血積)......검법(劍法).......?”

뒤 쪽으로부터, 미심쩍은 듯한 서영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

청풍은 보았다.

달려들던 흑의인의 눈이 크게 흔들리는 것을.

쩡!

나아가며 쏟아낸 백야참에 협봉검 한 자루가 부러져 날아가 버린다. 당황한 흑의인 뒤로, 돌아쳐 오면서 뻗어내는 협봉검에 청풍의 신형이 쾌속하게 움직이며 적들의 쇄도를 차단해 버렸다.

“혈적검법! 혈적검법이 맞구나!”

다시 한번 들려오는 서영령의 목소리다.

적들의 무공을 말하는 것.

그녀는 어떻게 이들의 무공을 알고 있는 것인가. 무공을 알고 있다는 것은 이들의 정체 역시 알고 있다는 뜻, 궁금증이 절로 샘솟았다.

쩌정!

더욱 더 빨리 움직이는 청풍이다.

승부를 앞당길 요량, 서둘러 적들을 물리치고 서영령으로부터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들으려는 것이었다.

치칭! 치치칭!

백호검을 휘둘러 쏘아져 오는 두 개의 협봉검을 얽어맺다.

엉키는 검날 사이로 불꽃이 튀었으나, 손상당하는 쪽은 오로지 협봉검들 뿐이다.

당황한 흑의인들. 

튕기고 내리치는 검법에, 협봉검 하나가 적의 손을 벗어나고, 한 자루는 그대로 부러져 버린다. 

‘이 자들........’

본산에 쳐들어 왔던 자들보다 무공이 약하다.

그 때보다 청풍이 강해진 것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차이가 있었다. 자하진기를 겨우 깨달아가던 때, 첫 살인을 경험케 했던 그들의 인상에 비추어보자면, 이들은 그야말로 수준 이하라 할 수 있었다.

텅!

호보를 전개하여 발을 딛고, 찔러오는 협봉검을 쳐 낸다.

있는 힘을 다해 뛰쳐 들어오는 상대임에도, 그 검법을 파훼하는 데에 무리가 없다.

무공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는 싸움.

화산에 쳐들어 왔던 자들이 가리고 가려낸 정예들이라 한다면, 이들은 그 중에서도 평범한 실력을 지닌, 일반 무인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채챙! 빠악.

백호검으로 협봉검 하나를 막아내고 몸을 근접시켜 상대의 무릎을 차냈다.

휘청 흔들리는 흑의인, 훌쩍 뛰어올라 금강호보로 어깨를 찍어눌렀다. 

터엉!

땅을 뒹구는 흑의인을 박차고는 하늘로 솟구친 청풍이다.

위에서 아래로 쳐내는 백야참에, 아래를 노리고 날아드는 협봉검이 그대로 동강났다.

챙강.

땅으로 튀어 비산하는 협봉검 조각들 가운데, 병장기를 잃고서 포기할 만도 하건만, 적어도 이들은 무작정 덤벼들던 오합지졸과는 확실히 다르다. 

악착같이 달려드는 이들.

분명한 격차가 있음에도, 본산에서 겪었던 첫 싸움의 기억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말 한마디 없이 묵묵하게 몸을 날려오는 그들은 그 기세만으로도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데가 있었던 것이다.

퍼엉!

한 발 나아가 태을미리장을 전개했다.

내상을 입고 비틀거리는 동료 옆으로 제 몸을 가리지 않는 흑의인들이 저돌적인 쇄도를 보여 주었다.

안 된다.

검을 쳐 낼 수밖에.

치링! 촤아악!

선연한 핏줄기가 튀어 오르고 만다.

방울지는 선혈이 후두둑 떨어지는 가운데, 갈라진 가슴을 움켜쥐고 넘어가는 흑의인의 신형이 비쳐 들었다.

털썩.

‘깊었어.’

손끝에 느껴지는 감촉이 서늘하다.

치명상. 

죽는다. 급소까지 깊이 베어내어 쓰러지니, 생명을 돌이킬 수 없는 중상(重傷)이었다.

두근.

다시 한번 시작된다.

심장의 고동소리.

자하진기가 꿈틀 꿈틀 움직이면서 백호검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베어 넘기는 백야참이 한 바퀴 원을 그렸다. 쭉 뻗어나가는 일격. 금강탄의 내침과 비슷하다.  

퍼억.

쿵.

흑의인 한 명의 어깨가 쫙 벌어졌다.

내쏘기 시작한 살수를 제어할 수 없다. 심장을 옥죄는 이 기분. 숨이 차는 느낌. 심폐에 머무는 금기가 질주하고 있다.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터텅.

성큼 나아가는 청풍의 손에서 백호검이 요동을 칠 듯, 무서운 움직임을 발했다.

호왕(虎王)의 참된 모습이다.

순식간에 달려들어 급소를 짓이기고 목덜미를 물어뜯는 산중 제왕의 사나움이 거기에 있었다.

퀴융! 퍼벅!

살공(殺功)이다.

상대를 죽이려는 의지.

무공을 전개함에 있어 필요한 또 한 조각이 맞추어진 지금, 백호검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는 청풍 그 자신조차도.

“후우, 후우, 후우.......”

순식간에 쓰러진 다섯 흑의인들이다.

언제 이렇게 강해졌던가.

더운 피로 땅을 적시고 있는 그들을 둘러보려니, 몰아쉬는 숨에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자하진기를 끌어 올리며 폐장에 박동하는 백호금기를 가라 앉혔다.

들끓는 진기를 어렵사리 가라앉히고, 서영령을 돌아 보았다.

피 튀기는 싸움, 새로운 청풍의 모습에 놀랐을 만도 하건만, 딱히 그래 보이지는 않는다. 혈전(血戰)이 익숙한 것일까. 싸움의 흉험함 보다는 쓰러진 흑의인들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서영령의 말, 싸움 중에 들었던 무공의 이름에 생각이 닿았다.

“혈적......검법? 아는 무공인가?” 

흠칫.

서영령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다. 하얀 이빨로 고운 입술을 깨물었다.

“혈적검법은.......성혈교(聖血敎)의.......무공이에요.”

“성혈교? 철기맹이 아니라?”

철기맹.

서영령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한번 눈을 감았다 뜬 그녀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철기맹이 아니고, 성혈교가 맞아요. 혈적검법은 성혈교의 호교무인(護敎武人), 묵신단(墨神團)의 호교검법(護敎武功)이지요.”

“묵신단.......이들을 말함인가?”

“아마도요.”

성혈교. 묵신단. 호교검법.

무슨 말인가.

그렇다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사방신검을 탈취해간 자들. 철기맹일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헌데, 다른 집단이라니.

신여에 공격을 나갔을 때, 철기맹의 무인들을 보며 약간의 의구심이 들기는 했었지만, 그렇다고 철기맹이 아닐 것이라 단정내릴 수는 없었던 바다. 같은 집단이라도 소속된 곳에 따라 구사하는 무공이 다를 수 있는 법, 설마하니, 전혀 다른 곳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것을......어떻게 알고 있지......?”

저절로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성혈교.

화산장로들조차 잡아내지 못했던 이름이다. 목영진인의 깊은 안목으로도 알아채지 못한 집단일진데, 검공(劍功)만을 보고서 분간해 낸다는 것은 분명 예사롭게 넘길만한 일이 아니었다.

“성혈교......무공에 대하여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그 초식 구사나 움직임이 특징적이라 했었는데.......”

가볍게 말을 이어가던 서영령이 돌연,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다시 얼굴을 드는 그녀. 촉촉함이 그녀의 두 눈에 깃들어 있었다.

“미안해요. 풍랑. 풍랑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네요.”

고개를 저으면서 입을 여는 그녀다. 머뭇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휴우......그래요. 실은......들은 것이 아니라 보았죠. 일부는 직접 배워보기도 했어요.”

충격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잠자코 기다린다. 고백과도 같은 서영령의 이야기. 섣부른 짐작으로 판단을 내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요. 그렇다고 성혈교 교인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에요. 아버지.......는 세상 온갖 무공에 정통하신 분이라.......살검(殺劍)의 대표적인 예로서, 성혈교의 혈적검법에 대해 가르쳐 주셨었죠.” 

청풍을 바라보는 서영령의 눈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순수한 눈빛. 

숨기고 싶지 않다는, 하지만 모든 것을 말하지는 못하는 그녀의 마음이 진하게 전해져 왔다.

“아버지 역시 성혈교에 몸 담고 계신 것은 아니에요. 그런 곳에 들어가실 분이 아니시죠. 다만......아버지 성혈교와 적지 않은 관계를 맺고 있어요. 그것이.......바로 풍랑과 함께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죠.”

드러나는 진실이다.

그녀의 태도. 

사방신검을 탈취해간 자들의 정체.

하나 하나 짜 맞춰져가는 진실의 윤곽은 청풍이 생각했던 것과 너무도 다르다. 

직접적이지는 않다지만, 흉수들과 관련이 있는 여인.

서영령.

그녀와의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이란 사실을 피부로 실감할 수 있었다.

“먼저.......이야기 하지 못한 것. 미안해요. 자꾸 싫어질 일만 생기고 있네요.”

“아니. 그렇지 않아.”

마음에 직접 다가가는 마음이다.

개의치 말라는 청풍의 눈빛.

따뜻함이 머무르는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항상 앞으로 나서기만 하던 그녀지만, 이 순간만큼은 무척이나 작아 보인다.

또 다른 모습.

무엇인가를 덧붙이려는 그녀이나, 갑작스레 굳어진 청풍의 얼굴이 그녀의 입을 막고 말았다.

“이것은.......?!”

청풍이 뒤 쪽을 바라 보았다.

전해오는 기파.

다가오는 무인들이 있다.

고수들.

날카로우면서도 고고한 검기, 매화향이 맡아지는 듯, 익숙한 느낌이었다.

“집법원 정검대.......!”

한동안 잊고 있었던가.

집법원의 추격. 모르는 새에 계속하여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가야 해.”

청풍이 서영령의 손을 잡아 끌었다.

오는 자, 피하지 않고 맞서겠다 마음 먹었었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다.  

싸울 수 없다.

사문의 집법원, 함부로 검을 겨누지 못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제어할 수 없는 백호검이었다.

성혈교 무인들과 싸웠던 것처럼, 언제 살수가 뻗어 나갈지 모른다. 행여나 정검대 검사를 죽이기라도 한다면 그보다 큰 문제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더 강해진 후에......’

집법원과 부딪치는 것은 나중으로 미뤄둔다. 무공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든 후에 싸운다. 

멋대로 발동하는 무공으로가 아니라, 완성된 무도로서.

죽이지 않고 무릎 꿇릴 수 있다면, 그때는 달라질 것이다.

백호검주로의 자격을 확고하게 보여줄 수 있다면 장문인께서도 인정 할 수밖에 없을 터.  

이번까지는 충돌을 피하기로 한다. 

서영령과 함께 몸을 날리는 청풍.

또 하나의 목표를 가슴에 담아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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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글 전개가 정말 빨라질 겁니다.

너무 빨라져 문제가 생기지 않는지, 잘 보아 주시고 많은 의견 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 분께서 여쭤 오셨더군요. 

귀도가 나왔는데, 그게 그 귀도냐고요. 

그리고 다음 한백무림서는 귀도인지 신권인지 하는 것도요.

귀도는  당연히 그 귀도가 맞겠죠.

낭인이지 않습니까.^^

다음 것은 낭인왕전......이라 계획해 두고 있었는데......글쎄요.

지금 고무판에 비슷한 제목으로 연재 되는 것이 있지요?

그것 때문에 다소의 계획 수정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쩌면 소림신권(가제)을 먼저 쓰게 될 수도 있을지 몰라요.

소림신권은 말하자면 영지물 비슷한 것이 될 것 같아서.....조금 고민이네요.

화산질풍검에도 비검맹이 나오고 있으니, 소림으로 바로 넘어가도 괜찮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소림신권의 메인은 주인공과 비검맹의 싸움이니까요.^^

이런 저런 다른 질문들도 전부 답변해 드려야 마땅하지만, 정말 심각하게 바쁩니다. 오늘도 번역 작업 하고, 프리젠테이션 할 문서도 작성하려면, 틀림없이 밤을 새워야 할 겁니다. 

취침시간 새벽 2:30 기상 시간 5:30 인데......그래도 시간이 모자라네요. 

주말에는 시간이 좀 날련지......

예전에 한 분께서, 바쁠때가 좋은 것이라고 말씀 해 주신 적이 있는데, 과연 힘든 만큼 제대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나기는 합니다.  

하루 하루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할까요. 

일에 치여 압사당하지만 않을 수 있다면, 몸은 힘들지만 이렇게 지내는 것도 해볼 만 한 것 같습니다. 한가한 시간 없이 언제까지나 이어지면.....그것도 곤란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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