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38/156)

  

깎아지른 듯 조각같이 뚜렷한 윤곽, 초로에 가까운 나이에 수염은 기르지 않았다. 무인들을 훑어가는 그의 시선.

비로소 청풍의 젊은 얼굴에 머물렀다.

“!!”

감히 받아내기가 힘든 눈빛이다. 선악(善惡)을 초월한 강함이 그의 눈 안에 있었다. 

“백호검인가.”

그의 입에서 대지를 긁는 진득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청풍은 대답하지 않은 채, 고개만을 끄덕였다.

크다.

그리고 강하다.

태산처럼 보여지는 육극신임에, 그가 커 보이면 커 보일수록 스스로는 더욱 더 작아짐을 느낀다. 이래서야 싸워 보기도 전에 질 수밖에. 

자하진기를 끌어올리며 전의를 가다듬었다.

그 때였다.

육극신의 기파는 그 괴이한 신장귀들에게마저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지.

신장귀 하나가 참을 수 없다는 듯 난데없이 땅을 박차고 육극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파라라락.

신장귀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 육극신. 그의 입에서 짧은 한 마디가 새어 나왔다.

“거치적거리는군.”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보아라.

이것이 파검존이다.

파아아아!

육극신의 검이 뽑혀 나온다. 파검존. 그 자신의 검 역시 반으로 부러져 있는 파검(破劍)이다. 직선으로 뻗어진 일격. 그 검의 궤적에 맞닿은 공간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몰아치는 경력, 그 안에 들어온 모든 것을 사정없이 비틀고 있었다.

콰직, 푸하아아아아악!!

부수어 터뜨렸다. 

박살난 육신이 땅바닥에 흩뿌려질 때.

누군가의 낮은 침음성이 진한 여운을 남겼다.

“파검........공진격........!”

경이와 공포가 함께하는 광경이다.

파검공진격. 

장강 전체에 이름 높은 육극신의 절대 무공을 말함이다.

태연하게 청풍을 돌아보는 육극신.

가볍게 쳐낸 일격으로 그 본신 실력을 만천하에 보여준 것이다.

“오라. 그리하여 그 검의 날카로움을 보이거라.”

명령과도 같은 말이었다.

청풍은 자하진기를 있는 대로 전개하며 백호검을 들어 올렸다. 육극신의 출현이 가져다 준 위압감도, 그의 무공이 보여준 충격도 모두 다 잊었다.

검, 땅, 그리고 사람. 

육극신과 그 사이에는 오직 그것뿐이다.

그의 의지가 곧 자하진기가 되고 백호의 정기가 되어 그의 검 끝에 머물렀다.

텅!

사부님의 죽음을 이 검으로 묻는다. 자하진기와 백호기. 금강호보와 금강탄. 백야참과 미지의 검결이 한 데 뭉쳐져, 마침내 하나의 검무(劍舞)로 승화되었다.

백호무(白虎舞).

그 첫 번째. 

백호출세(白虎出世)의 일 초가 기나긴 세월의 시공을 격하여, 비로소 여기에 모습을 드러낸다. 백호검, 백색 광채 안에 승천하는 백호문양이 선명한 빛을 발했다.

우우우웅.

백호검의 진정한 실체에 맞서 육극신의 파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뻗어내는 공간에 일그러지는 경력. 파검공진격 일초 공진투(共震透)였다.

파아아아아앙!

두 검 사이에 격한 기(氣)의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금강호보, 앞으로 전진하는 청풍과 대력투형보, 대지를 가르는 육극신, 두 사람의 손에서 강력한 내력이 뻗어 나온다.

백호무 이 초. 

백호탐천(白虎貪天).

아래에서 위로 휘몰아치는 백광에 육극신의 파검이 만천(滿天)을 가르는 방어식(防禦式)을 만들었다. 

대천마진벽(大天魔振壁) 일초, 개천진벽(開天振壁)이다. 

뚫을 수없다. 자하진기 오단공의 진결을 최대한 운용하고 있음에도 내공의 부족을 확연하게 느낀다. 

믿을 수 없이 견고한 장벽이다.

완전한 방어. 그대로 서 있는 육극신의 일검은 그 자체로 무너지지 않는 철벽(鐵壁)이었다.

백호무 삼 초.

백호금광(白虎金光).

쑥쑥 빨려나가는 자하진기를 느꼈다. 검을 휘두르는 팔이 흘러드는 내력으로 인해 부서져 버릴 것 같다. 팔이 부서져도 내 쏜다. 의지를 넘어선 무공의 흐름. 백호무의 진결은 이미 그가 제어할 수 없는 위치까지 와 있었다.

쿵.

대력투형보 일보가 큰 진각을 발했다.

파검을 뒤로 치켜들며 내리찍을 기세. 형용할 수 없는 폭발력이 깃들어 있다. 내리친다. 백호금광의 일섬을 갈라내는 일격.

무적을 칭한다는 파검마탄포의 일초였다.

“안 돼!” 

서영령의 경호성이 들려 왔다.

파앙! 파아앙!

두 발의 이지선 소리.

청풍이 펼쳐내는 진경들을 모조리 깨부수면서 나아가던 육극신의 파검마탄포가 멈추었다.  

두 줄기 뛰쳐드는 백선에 육극신의 고개가 그 쪽으로 돌아갔다. 

‘!!’

고개만 돌린 것이 아니다. 파검의 방향도 바뀌고 있다.

파검마탄포를 전환하여 파검공진격으로. 

일 대 일 비무를 방해하는 자에게 가해지는 죽음의 징벌이었다. 

터엉! 

청풍의 몸이 다급하게 뻗어 나갔다. 

온 힘을 다해서 몸을 날리는 청풍이다. 그녀가 날린 백강환이 파검공진격의 경력에 휩싸여 공중에서 맴돌다가 하얀 가루로 부서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콰아아아아. 

서영령의 앞을 아슬아슬하게 막아 선 청풍이다. 

무시무시한 위력, 청풍의 백호검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파아아아아. 

떨리는 검이 튕겨 나갈 것 같다. 요동치는 그 서슬에 기력이 들끓고 내력이 뒤엉켰다. 

“쿨럭!” 

청풍의 입에서 핏줄기가 뿜어졌다. 

아찔해 지는 정신. 하지만, 몸을 추스릴 여유 따위는 없었다. 육극신의 공격이 곧바로 이어지고 있었던 까닭이다. 

우우웅. 

곧게 겨누어진 파검의 끝에서 그 무공의 이름과 같은 공진음(空震音)이 울려 나왔다. 

“막는다.” 

내상을 억누르고 자하진기를 끌어 올려 물러서지 않는 의지를 담아냈다. 

절대로 그녀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하겠다. 

공격할 길을 열어주지 않겠다는 기세로 버텨선 청풍, 한 순간 뇌리를 스치는 기이한 느낌에 몸을 돌려 서영령 쪽을 바라 보았다. 

“설마.......!” 

그렇다. 

잘못 알았다. 

육극신의 무공은 이미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나 있다. 

앞에서 막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공간을 뛰어넘어 흐르는 진기. 파검공진격의 기운이 청풍이 있는 곳을 건너 뛴 채, 서영령의 바로 앞에서 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러나!!” 

청풍의 외침. 

서영령도 불길한 낌새를 눈치 채며 백철선을 꺼내어 들었다. 

뒤로 물러서는 그녀. 

파아아아아아. 

하지만 늦었음인가. 

한순간 덜컥 충격을 받고 뒤로 튕겨 나가는 서영령의 모습이 청풍의 두 눈에 무섭도록 아로새겨졌다. 

“령!” 

비무가 문제가 아니다. 

뒤로 뛰어 서영령의 몸을 받아 들었다. 

입가에 흐르는 핏물, 죽지는 않았지만 기식이 엄엄했다. 

‘왜 나서서.......!’ 

그의 위기를 보고 출수한 결과다. 그의 목숨을 살리고자 이런 상처를 입다니,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이지선. 백학선법. 서자강의 여식인가.”

입을 여는 육극신의 오연한 모습이 거기에 있다. 

그녀의 어깨를 잡아 든 채, 자책과 분노의 눈빛을 보이는 청풍. 육극신은 개의치 않고 서영령의 얼굴에만 시선을 주고 있었다. 

“서자강, 숭무련이라면, 다른 사람의 싸움에 끼어들라고는 배우지 않았을텐데.” 

서영령의 무공과 출신을 알고 있는 듯 하다.

어찌된 일일까.

그런 그가 한 바퀴 주변을 둘러보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신장귀. 성혈교. 서자강. 숭무련. 거기에 비검맹까지. 삼황(三荒)이 여기에 모여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그의 시선이 닿은 성혈교 묵신단 무인들이 움찔 뒤로 물러났다. 

엄청난 존재감이다. 

누구도 거역하지 못할 기파가 온 몸에서 뭉클뭉클 솟아 나오고 있었다. 

“백호검주. 일 다경을 주마.” 

다시 청풍을 바라보는 육극신이다. 

일 다경. 

무슨 말인가. 청풍의 눈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서자강의 여식인지 몰랐다. 살리고 싶다면 어디 한번 도망쳐 보아라. 난 참을성이 그리 많지 않아. 그 정도 기회를 주었다면 서자강도 뭐라 하지는 못할 것이다.”

서자강.

서영령의 아버지를 이야기하는 것.

살아날 기회를 주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단. 일 다경 후에는 내가 직접 나서겠다. 다시 만나면.......” 

잠시 멈춘 그가 선언과도 같은 마지막 한 마디를 내려 놓았다. 

“죽겠지.” 

육극신의 날카로운 얼굴에 냉정한 미소가 깃들었다. 

“도망친다.......!” 

청풍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갔다. 

결국 그렇게 되는 것인가. 

그의 눈이 대천진 사방을 훑었다. 

성혈교 묵신단. 

신장귀. 

수적들. 

백호검을 노리는 강호 무인들. 

그리고, 새롭게 나타난 비검맹 무사들. 

‘도주(逃走)라니.......’ 

싸우고 장렬히 죽는다? 

그 혼자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서영령은 어찌해야 하는가. 

여기서 그녀가 죽기다로 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청풍의 책임이다. 여기서 청풍 때문에 죽게 놔 둘 수는 없다. 청풍 그 자신이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지만, 그녀가 죽는 것은 그야말로 두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치욕의 도주다. 

다시 싸운다 하더라도, 그녀만큼은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아야 한다. 여기서 싸울 수는 없었다.

‘일단 피한다.’ 

청풍은 결정을 내렸다.

육극신을 돌아보니, 정확히 일 다경을 재겠다는 듯, 파검을 늘어뜨린 채 눈을 감고 있다. 모든 것을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있는 자. 이자와 싸우는 것은 아직 이르다. 너무나 무모한 짓이었던 것이었다.

텅!

서영령을 안아든 채, 몸을 날렸다.

장강 하류 쪽. 동쪽으로.

남은 자들이 육극신의 눈치를 보았다. 쫓아가도 되는지를 가늠하고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그 때였다.

타다다다닥.

비검맹 무사들이 먼저 달려 나가며 청풍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일 다경을 주겠다는 것은 오직 육극신에게만 국한된 이야기였던 듯 하다. 비검맹이 먼저 추적에 나섰다면 다른 이들이 여기에 멈춰 있을 이유가 없었다.

성혈교 묵신단부터. 

일제히 몸을 날리며 청풍의 뒤를 따랐다.

파검존 육극신보다 먼저 백호검을 빼았아 멀리 멀리 도망치려는, 그야말로 허황된 꿈을 꾸는 자들이었다.

텅! 터텅!

금강호보는 격한 보법이다.

흔들리는 서영령임에, 내상이 심해지고 있음을 한 몸처럼 느낀다.

따라잡히더라도 속도를 줄여야 할 마당, 내력을 끌어 올리고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여 달리는 신법에 안정감을 더할 수 있도록 애썼다.

‘죽지 마.’

속으로 몇 번씩 되뇌이는 말이다.

죽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갚을 것이 얼마인데.

받은 것이 얼마인데.

달리는 신형, 길 옆의 장강은 그의 다급한 마음을 알지도 못하는 듯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파파파파.

뒤에서 들려오는 파공음이 움직이는 그의 발을 더욱 빨리하게 만들었다.

' 벌써......!'

따라잡히는가.

육극신은 아니다.

다른 자들.

그러나 서영령을 안은 상태로 어찌 싸울텐가. 급박함에 고통도 잊었지만, 등 뒤에 꽂힌 반 토막 검 또한 움직임을 더디게 하는 요인이다. 난감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파팍. 쐐액.

삼엄한 공격. 성혈교도, 수적들도 아니다.

처음 보는 무공과 신법이다.

비검맹, 육극신과 함께 검형에서 내려왔던 자들이었다.

‘어찌해야.......’

몸을 숙이면서 다시금 땅을 박찼다.

위험하다.

공격을 막을 방도가 없다. 몸을 돌릴 수도 없는 지금, 이대로 등 뒤의 공격들을 피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호보. 금강탄. 백야참.......’

청풍의 두 눈에 기광이 스쳐 지나갔다.

돌아서지 않고, 뿌리친다.

자하진기를 끌어 올리며 허리를 한번 튕겼다.

치리리링!

발검이란 것을 굳이 오른 손으로만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신체 어느 부위라도 검집을 흔들 수 있는 것이면 된다. 튀어 나온 백호검 검자루가 청풍의 왼손에 감겨들었다.

퀴융!

팔을 뒤로 떨쳤다. 백호검 끝에 머무는 자하진기. 상궤를 벗어난 금강탄임에도, 자연스럽게 뻗어 나간다. 펼치는 동작이 곧, 공격법. 백호무(白虎舞)의 재현이었다.

쩌엉!

등에 눈이라도 달린 듯, 짓쳐오는 검을 비껴냈다. 감각이 극대화 된다. 자하진기의 공능, 팔방 모든 방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손바닥 위에 그려지듯, 뚜렷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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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지지 않을 겁니다. 걱정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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